아포칼립스, 항공 요새로 꿀 빱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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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살별l
작품등록일 :
2024.08.0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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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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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9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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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탈영하라는 건가요

DUMMY


세상은 서서히 말라 죽고 있다.

전기와 물 그리고 통신이 끊기기 시작했고,

정부에서는 급하게 대부분의 군부대를 서울 인근으로 불러들였다.


북한이라는 존재보다.

괴물이 더 위협적이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군병력이 서울로 들어가는 길목을 차단했고 그 덕분에 수도권은 잠시나마 어느 정도의 안정을 되찾았다.


홍천에 있어야 할 11사단이지만,

그들이 현재 경기도 광주에 있는 이유다.

11사단이 맡은 임무는 중부 고속도로를 차단하고 이천과 용인에서 몰려오는 괴물을 무슨 수를 쓰더라도 막는 것이었다.


이동 배치된 이후.

작전은 어느 정도 통했다.

아무리 많은 괴물이 밀려와도 화력으로 버틸 수 있었다. 더구나 한국에 사는 남자들은 총만 줘도 충분히 전투력으로 써먹을 수 있잖아.


하지만 닷새째가 되던 날.

정오가 될 무렵에 대규모의 괴물들이 밀려왔다.

지금껏 볼 수 없었던 규모인 데다 총알이 통하지 않는 껍질이 두꺼운 괴물이 가장 앞에 서 있었다.


방어선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바리게이드를 넘어 도시 안으로 괴물이 쏟아져 들어왔고 병력은 도시 곳곳으로 흩어졌다.

이제부터는 각자 살아남는 수밖에 없었다.


“엄우주 뱅장님, 완전히 포위됐지 말입니다. 아무래도 우리 좆된 거 같은데요?”


11사단 기갑수색대대에 소속된 하정구 상병은 건물 주변을 살피더니 앓는 소리를 냈다.

상황이 급박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장난기가 묻어 있었다.


“꼴통 새꺄, 요즘 누가 군대에서 그런 말투 쓰냐. 그것 좀 바꾸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죽을 때까지 안 바꾸네.”

“하하! 제가 평범한 거는 싫어하지 말입니다.”

“너는 죽어도 입은 살아 있을 거다.”


말은 거칠게 오가고 있지만,

두 사람의 눈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현재 건물 옥상에 포위되어 있는 부대원은 모두 합쳐서 네 명.


엄우주 병장과 하정구 상병.

그리고 기윤철과 양차일 일병이 전부였다.

다들 여기저기 다친 곳이 많았고 그중에서도 양차일 일병은 발목이 크게 부어서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냥 저 놔두고 가시라니까···.”


양차일 일병은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했다.

괴물들이 밀고 들어왔을 때 아주 잠깐 후퇴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무조건 자신을 구해서 함께 가겠다고 다들 고집부리다 기회를 놓쳤다.


결과는 너무나 뻔했다.

현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괴물들.

숫자만 무려 백여 마리는 훌쩍 넘어갈 것 같았는데 도저히 여길 뚫고 나갈 방법이 없었다.


“탄 남는 분 계십니까?”


묵묵히 조준 사격을 하며 건물로 기어 올라오는 괴물을 처치하던 기윤철 일병이 소리쳤다.


“나도 마지막 탄창이었어. 정구야 너는?”

“저도 끝이지 말입니다.”

“제길, 탄 박스를 어떻게라도 챙길걸 그랬나.”

“그랬으면 이미 뱅장님은 먹기 좋게 찢어져서 저것들 뱃속에 들어갔지 말입니다.”


여기까지 살아서 온 것도 기적이었다.

엄우주 병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가장 앞에 서서 도끼를 들고 가로막는 모든 괴물을 반토막 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불가능했지만,

그는 최근에 각성했기에 지금껏 버틴 거다.

하지만 혼자 모두를 구해낼 수는 없었기에 여기까지 오며 소대원 절반이 죽었고 엄우주의 눈에는 죄책감이 깃들었다.


그걸 너무나도 잘 알기에.

하정구 상병은 계속 말을 걸었다.

지금은 쓸데없는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누구보다 오랜 시간을 함께했기에 엄우주도 그가 왜 그러는지 알고 있었다.


“뱅장님. 제가 가서 탄 박스 꺼내오면 저번에 면회 오셨던 동생분 소개시켜 주실 겁니까?”

“좆까! 내가 여기서 죽어도 그 꼴은 못 봐.”

“서운하지 말입니다.”


가볍게 한 차례 웃은 뒤.

하정구는 허리춤에서 칼을 꺼냈다.

더는 쏠 총알이 없기에 육탄전이라도 할 생각이었다. 그 모습을 본 기윤철은 마지막까지 총을 쏘던 양차일을 부축했다.


“모두 내 옆에 붙어. 끝까지 절대 포기하지 마.”


엄우주는 자신이 목숨을 잃더라도.

소대원들은 어떻게라도 살리고 싶었다.

마지막 결심을 하고 있을 무렵에 양차일이 갑자기 하늘 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게 도대체 뭐죠?”


프라 모델이 날아다니는 느낌이랄까.

구닥다리 쌍엽기 한 대가 주위를 빙빙 돌더니 갑자기 급강하를 하며 기관총을 쏘기 시작했다.

옥상 위로 총알이 쏟아지진 않았으나 충분히 위협적이기에 다들 엎드리며 소리쳤다.


“엎드려!”

“썅! 제대로 좀 쏴라.”

“엇··· 다시 돌아오는 것 같은데요.”


양차일이 소리치자 엄우주도 하늘을 잠시 보더니 반대쪽 방향으로 손짓했다.


“날아오는 방향 반대로 뛰어.”

“옛 썰! 윤철아, 차일이 같이 부축하자.”


하정구가 외치자 곧바로 기윤철이 양차일 옆에 서서 거의 들듯이 반대편으로 옮겼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정체불명의 비행기에서 기관총이 쏘아졌다.


누군지는 알 수 없으나.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그래서인지 엄우주 병장을 비롯해 모두가 살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렇게 몇 차례 기관총을 쏜 뒤.

마지막으로 폭탄까지 떨구자 건물을 포위하고 있던 괴물들이 더는 못 버티겠는지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누군지 몰라도 멋지다!”


하정구가 일어나 손을 흔들자.

나머지 셋도 감사의 인사를 담아 환호했다.

그러자 비행기를 탄 조종사가 한 차례 선회하더니 낮게 날아와 뭐라고 외쳤다.


“여 기··· 딱 기···려!”.


거리가 그리 멀진 않았으나.

엔진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진 않았다.

하지만 대충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었다.

비행기는 다시 고도를 높여 하늘 저 멀리 사라졌고 옥상에 있던 네 명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차일아, 뭐라는 거냐?”

“여기서 기다리라는 말 같았습니다.”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일병들에게 자기가 들은 게 맞는지 확인한 하정구는 엄우주를 바라보며 물었다.


“뱅장님, 어떻게 하실래요?”


엄우주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여기서 나간다고 도시를 벗어날 방법이 있을까.

아직 도시 곳곳에서 총소리가 들리고는 있으나 옥상에서 버티는 사이에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더구나 총알도 다 떨어졌다.

200m 거리에 보급용 차량이 있으나.

근처에 기웃거리는 괴물이 몇 마리가 보였고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르기에 거기까지 가는 것도 쉽지 않아 보였다.


“하 상병님, 아무래도 조금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병장님 상태가···.”


기윤철의 말을 들은 하정구는 그제야 엄우주의 팔과 다리가 바들바들 떨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도대체 몇 번이나 도끼를 휘둘렀을까.


그걸 보니 어서 가자고 재촉하긴 어려웠다.

엄우주는 자긴 괜찮다고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려 애썼으나 감춘다고 감춰지는 게 아니었다.

하정구가 좀 쉬라며 어깨를 눌러 앉히자 그제야 엄우주는 가쁜 숨을 내쉬었다.


“딱 10분만 쉬자.”


그 말을 남기고 엄우주는 곯아떨어졌다.

정확하게는 반쯤 기절한 상태라고 봐도 됐다.

다행히 주변에 괴물들은 다른 곳으로 다 떠났는지 조용했기에 하정구도 그대로 누웠다.


“너희들도 쉴 수 있을 때 쉬어.”


꿀 같은 휴식을 잠시 취하던 중.

등 뒤에서 갑자기 인기척이 들렸다.

혹시라도 괴물이 올라온 건가 싶어 하정구가 벌떡 일어났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 너무나 태연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잠깐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


항공 요새로 돌아온 뒤.

나는 곧바로 요새를 이동시켰다.

사냥했던 곳과 현재 요새가 있는 곳의 거리는 대략 2.5km.


적어도 30분은 이동해야 했다.

이럴 때는 요새의 속도가 너무 갑갑했다.

카멜 정도의 속도까지 바라지도 않으나 시속 5km는 너무한 거 아니냐고. 직접 달려가도 요새보다 더 빠를 것 같았다.


그래서 프레드를 다시 출격시켰다.

위에서 지켜보다 혹시라도 괴물들이 달라붙으면 처리하고 혹시라도 이동하면 어디로 가는지 지켜보는 것이 녀석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누구길래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우경현은 요새까지 이동하며 데려오려는 사람들이 누군지 궁금해했다.


“군인 네 명이요. 그중에 하나는 각성자고요.”

“요새에 대해 말은 해봤어?”

“카멜 위에서 어떻게 대화해요. 위험하길래 일단 괴물들 쓸어버리고 잠깐 기다리라고 했죠.”

“이동하는 사이에 다른 곳으로 대피했을 수도 있겠네.”


그럴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일단 시도는 해보고 싶었다.

지상 작전이 가능한 인력이라는 점과 파일럿의 구출 작전에 대해 이야기하니 우경현도 필요성을 인정했다.


“잡다한 생활 물품들을 지상에서 수집해 와도 낭비되는 포인트가 꽤 줄긴 하겠네.”


먹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포인트로 사기 아까운 물건들이 많더라고.

잠시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요새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경현의 집에서 가져온 고배율 망원경으로 아래를 보니 네 명 모두 지쳐서 뻗은 것이 보였다.

그와 동시에 연료를 거의 다 소모한 프레드가 요새로 들어왔다.


“수고했어. 별다른 일 없었지?”

“괴물들은 대부분 북서쪽 방향으로 올라갔어요.”

“쯧! 서울 안쪽으로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려는 것 같네. 형, 저는 잠깐 내려갔다가 올게요.”


우경현에게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긴 뒤.

아까 본 군인들이 있는 옥상으로 내려갔다.

지쳐서 널브러져 있는 줄 알았는데 긴장까지 풀고 있진 않았는지 작은 인기척이 들리자 다들 벌떡 일어나 경계했다.


“안녕하세요. 잠깐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누가 봐도 민간인이었지만,

세상이 망해가는 와중이라 그런가.

군인들의 경계심은 쉽게 낮춰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거리를 조금 두고 서자 병장 계급을 가진 남자가 일어났다.


‘저 친구가 각성자구나.’


위에서 볼 때는 몰랐는데.

제법 근육질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

그를 제외하면 일병 둘과 상병 하나가 전부였기에 병장과 대화하면 될 것 같았다.


“누구십니까?”


오··· 목소리 봐라.

낮고 굵은 음성이 꽤 독특했다.


“먼저 고맙다는 인사부터 하는 게 예의인 것 같네요.”

“뭘 고마워하라는 거죠?”

“아까 제가 이 근처 싹 다 쓸어줘서 무사하신 거잖아요.”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쉽게 이해하지 못한 병장과 달리 옆에서 경계하고 있던 상병은 금방 내 정체를 알아챘다.


“비행기 타고 날아다니시던 그 분?”

“맞아요.”

“정말 고맙습니다. 선생님 아니었으면 우리 모두 다 괴물들한테 죽었을 겁니다.”


얘 뭐라는 거야?

내가 왜 갑자기 선생님이 되는 건데.

외모만 보면 병장 계급을 달고 있는 저 친구가 더 나이 많아 보였다. 그래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감사의 인사를 받아보는 거라 기분 나쁘진 않았다.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었는걸요. 저는 조정석이라고 합니다.”

“11사단 기갑수색대대 소속 엄우주 병장입니다. 그런데 옥상으로 올라오는 문은 잠가놨는데 어떻게 올라오신 겁니까?”

“하늘 위에서 뚝! 떨어진 걸지도 모르죠.”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킨 뒤.

다시 바닥으로 향하자 네 명 모두의 시선이 손끝을 따라 움직였다.


“크크큭, 농담하시는 거죠?”


엄우주 병장 옆을 지키고 서 있던 날렵한 인상의 상병이 뭐가 웃긴 건지 키득거리며 웃었다.


“글쎄요. 믿든 말든 제가 알 바는 아니죠. 제가 여기 온 거는 한 가지 제안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무슨 제안이죠?”

“당분간 저와 함께 다닐 수 있나요? 대신 안전과 삼시세끼 모두 제가 책임질 수 있습니다.”


요새가 위험했던 적은 없다.

지상으로 내려갈 때는 몰라도 적어도 쉴 때는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다.

다만, 결론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기에 요새에 대해 모든 것을 알려줄 생각은 없었다.


“저희보고 탈영하라는 건가요?”


엄우주 병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군대에 엄청난 뜻이 있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고 비겁하게 도망간다는 게 싫은 느낌이었다.


“단어 선택이 좋지 않네요. 잠시 임대 영입 정도라고 할까요. 여기서 자력으로 부대 복귀하는 게 쉽겠습니까?”


그냥 오라니까.

군인들 정보가 제대로 남아 있겠어?

대부분 전산으로 기록되어 있는 데다 여기서 사라지면 탈영이 아닌 실종이나 사망 처리될 것이다.


더구나 가는 길이 쉽겠어?

보아하니 총알도 다 떨어진 것 같던데.

설사 총알을 구하더라도 고작 네 명이 괴물들을 뚫고 원대 복귀하긴 어렵다.


“···그렇기는 하죠.”


현실적인 이유를 말해주자.

엄우주 병장은 마지못해 인정했다.

하지만 선뜻 말을 꺼내지 못했는데 혹시라도 자기 때문에 후임들까지 탈영병이 될지 모른다는 부담감이 있어 보였다.


그쯤에서 시계를 한번 바라봤다.

길게 기다려줄 수 없다는 제스처였다.

한동안 엄우주 병장이 말이 없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상병이 주저앉아 있는 일병을 가리키며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뱅장님, 어디가 되었든 안전한 곳이 있으면 일단은 그냥 가시지 말입니다. 차일이 저 상태로 옮기는 것도 무리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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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불벼락의 검사 +6 24.08.20 12,627 312 13쪽
» 탈영하라는 건가요 +7 24.08.19 13,021 309 13쪽
9 여기서 딱 기다려 +12 24.08.18 13,677 332 14쪽
8 문제는 누굴 데려오냐 이거지 +7 24.08.17 14,644 351 15쪽
7 설마 아니겠지 +14 24.08.16 15,067 380 13쪽
6 결국, 전기가 나갔네요 +5 24.08.15 15,311 365 13쪽
5 잘 차려진 밥상은 먹어야지 +7 24.08.14 15,778 369 12쪽
4 이런 곳에 살고 있었구나 +9 24.08.13 16,800 387 15쪽
3 이제 다 죽었어 +18 24.08.12 18,011 407 14쪽
2 솝위드 카멜 +13 24.08.12 21,197 388 13쪽
1 탑승하시겠습니까? +27 24.08.12 27,248 44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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