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 항공 요새로 꿀 빱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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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살별l
작품등록일 :
2024.08.0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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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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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2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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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탑승하시겠습니까?

DUMMY

몽실거리는 구름 속.

시야 가득 펼쳐진 새하얀 세상.

그 안은 몽환적이고 미스테리했지만,

구름 밖으로 나오는 순간 쨍한 햇살이 동공을 찌를 듯이 쏟아졌다.


고도 15,000피트의 세상.

저 멀리 있는 별마저 가깝게 느껴지는 높이.

고요한 세상 속에 펼쳐진 시리도록 푸르른 창공은 언제봐도 일품이었다.


하지만 감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내 시야는 다시 아래로 향했고 구름 사이로 지상을 향해 꽂히듯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 덕분에 구름을 꿰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쉐애애애앵!


찢어질 것 같은 날개의 울림과 거친 엔진음.

마침내 보이는 드넓은 대지 위를 날고 있는 먹잇감들이 보였다. 사냥하는 매처럼 급강하하는 상황에서 내게 주어진 틈은 고작 1~2초.


두두두! 두두두두!


손가락을 짧게 당기는 순간.

기관총에서 총알이 발사되었고,

어김없이 목표로 삼았던 전투기에 박혔다.

발사된 총알 대부분이 명중하는 신기에 가까운 솜씨였다.


저렇게 맞고 버틸 수 있는 존재는 없다.

곧바로 기체에서 검은 연기와 화염이 솟아났고 붉은 유성이 되어 저 아래 지면으로 떨어졌다.

길고도 험난했던 전투의 끝이었기에 사방에서 무전이 쏟아져 들어왔다.


[나이스 샷! 역시 슈밤이야.]

[하하! 우리 혜성 클랜 최고의 에이스답다. 오늘도 아름다운 퍼포먼스 잘 봤어.]

[이 자식 도대체 몇 대를 격추한 거야?]

[일곱 대. 슈밤다운 하드 캐리였지. 다음 주에 있을 한일전도 부탁할게.]


콜사인 슈밤(Schwarm).

살짝 욕처럼 들리는 어감이지만,

엄연히 전투기 편대 전술에 나오는 단어다.

이걸 설명하자니 이야기가 길어지니 다음에 하는 걸로 패스!


보다시피 내가 실력이 조금 좋다.

괜히 다들 에이스라 부르는 게 아니거든.

조금 전에 끝낸 게임에서도 상대편 클랜에서 20대의 전투기가 출격했으나 나 혼자 무려 7대를 격추했다.


뭐, 이번에는 조금 특이한 경우긴 해.

평소보다 격추가 상당히 많은 이유가 있거든.

오늘 있었던 클랜 토너먼트에서는 1차세계대전에 등장한 전투기만 골라야 하는 제한이 있었는데 나만큼 그 시대 기체에 대해 잘 아는 사람도 없다.


내가 나름 유명한 항공 덕후야.

어려서부터 항공기에 관련된 것이라면.

국내외 가리지 않고 책을 읽었고 심지어 실제로 상업용 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는 면장까지 획득했다.


블로그에 연재도 꽤 많이 했는데.

출판사에서 출판 제의를 받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저변이 넓은 분야는 아니었기에 그 제안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삼백만 원도 안 되는 돈을 받고 시간 낭비하고 싶진 않았거든.


나 못지않게 우리 클랜도 꽤 유명했다.

트리플 에이스는 아케이드적인 성향의 게임이 아니라 실제 전투와 흡사한 시뮬레이션에 가까웠다.

그런 탓인지 전현직 공군 파일럿과 민항기 파일럿도 제법 많이 소속되어 있었다.


해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죽하면 공군 조종사가 가장 많이 하는 게임이라고 소문났을 정도라니까. 비행 면장이 없는 이들마저 이미 썩을 대로 썩은 고인 물이 된 상태다.


그래서인지 쉬운 상대가 없었다.

국가별로 가장 성적이 좋은 클랜들끼리 토너먼트가 열리면 아주 후끈 달아오를 정도라니까.

더구나 그게 일본이라면 격추당하기만 하더라도 몇 개월은 조리돌림당할걸.


“저는 오늘 여기까지만 할게요. 내일 봬요.”


마음 같아서는 더 하고 싶지만,

매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있어서 애매했다.

유저가 많이 빠진 탓도 있었고 혜성 클랜이 꽤 유명해서 우리끼리 뭉쳐서 있으면 들어왔다가도 도망가기 바쁘거든.


내일 보자는 인사를 한 뒤.

접속을 종료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 앞쪽에는 모니터 세 대가 줄지어 세워져 있었고 터치식 노트북과 값비싼 컨트롤러까지 완벽하게 콕핏처럼 꾸며져 있었다.


나름 꽤 돈이 많이 들어간 세팅이다.

컨트롤러 가격만 합쳐도 수백만 원 들었거든.

중고로 최대한 세팅했는데도 전체 장비를 다 합치면 거의 칠백만 원쯤은 들어간 것 같다.


정확한 금액은 나도 모른다.

한 번에 세팅이 완료된 것은 아니었다.

여유가 될 때마다 하나씩 맞추다 보니 정확하게 계산되진 않더라.


그래도 후회는 없었다.

내 유일한 취미가 비행이잖아.

술, 담배 안 하고 여자도 만나지 않으니 돈이 나가는 곳이 생각보다 별로 없었다.


아! 내 소개가 아직이구나.


올해 27살이 된 내 이름은 조정석.

군장학생은 포기하고 일반병으로 전역해서 항공운항과를 얼마 전에 졸업한 이미 상업용 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는 CPL 면장이 있는 조종사다.


왜 군장학생을 포기했냐고?

공군에 들어간다고 전투기를 반드시 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라운드로 빠질 가능성이 더 크다.


그라운드에서 십몇 년을 어떻게 버텨.

차라리 일반병으로 빠르게 다녀오고 말지.

요즘 내 또래 친구들을 보면 군장학생을 선택하는 일은 굉장히 드물더라.


어쨌든 현실은 시궁창에 가까웠다.

대형 민항기 회사에서는 운송용 조종사 면장인 ATPL만 뽑는데 그 면장을 따기 위해서는 국내 기준으로는 천 시간 이상의 비행시간이 필요하다.


그걸 채우는 게 너무 어렵거든.

인턴으로 입사하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인 데다 국내에서 CPL 면장이 있다고 할 일이 없었다.

돈으로 비행시간을 채우는 방법도 있으나 내가 그 정도로 갑부는 아니거든.


그래서 내 계획은 미국으로 가는 것이다.

아무래도 땅덩이가 넓은 곳이라 비행기를 자가용으로 쓴다거나 농사를 짓는 데 비행기를 활용하기에 일자리가 가장 많은 나라 거든.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비행시간이 절실한 것은 그쪽도 알거든.

알아보니 대우도 좋지 않고 거의 노예처럼 부린다는 말을 제법 많이 들었는데 어쨌든 지금은 레저용 비행기를 몰며 최대한 돈을 모으고 있는 중이다.


왜 그런 거 있잖아.


10분에서 30분 비행하고,

급강하 등을 하며 무중력 체험하는 거.

코스에 따라 비용을 최소 7만 원에서 20만 원까지 받는데 그중의 일부가 내 몫으로 떨어지거든.

솔직히 말하면 벌이가 좋지는 않았다.


평일에는 손님이 많지 않거든.

그래서 주로 주말 위주로 일하고 평일에는 온갖 알바를 하면서 최대한 돈을 모으는 중이다.

미국에 가려면 몇 개월 정도는 버틸 돈은 있어야 할 거 아냐.


생각할수록 가슴이 답답해져 참을 수 없었다.

이럴 때는 비행이 최고인데··· 탁 트인 하늘을 날면 모든 고민이 사라진다.

마음 같아서는 하늘 높이 계속 날아올라 이 지구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도 종종 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우주 비행사에 관심있는 거는 아니고.’


내가 얼마나 비행에 진심인지는 방 안에 가득 채워져 있는 것들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침대와 책상을 제외하면 온통 비행에 관련된 것들이 가득했다.


수없이 많은 항공 관련 서적.

직접 그린 비행기 도해와 프라 모델까지.

그중에서도 가장 아끼는 것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개봉한 탑건이라는 영화의 오리지널 포스터다.


시원하게 달리는 오토바이.

남자가 봐도 잘생긴 톰 크루즈.

그리고 섹시하게 잘 빠진 기체를 자랑하는 F-14A 톰캣과 MIG-28의 웅장한 전투 장면까지.

지금까지 내가 본 모든 영화를 통틀어 최고의 작품은 역시 탑건이다.


카톡!


잠시 포스터를 바라보며 서 있자.

책상 위에 올려놨던 스마트폰에서 카톡이 왔다는 알림이 울렸다. 뭔가 싶어서 확인해 보니 같은 클랜에 소속된 형이 보낸 기프티콘이 보였다.


[조정석, 네 덕분에 오늘도 즐겜했다.]


게임에서는 콜사인을 부르지만,

핵심적인 클랜원은 내 이름을 알고 있다.

거의 매일 접속해서 한두 시간씩이나마 비행하는 데다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끼리는 오프라인 만남도 자주 하는 사이거든.


게임 자체가 어려운 탓일까.

클랜의 평균 연령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고등학생과 대학생이 몇 명 있긴 했으나 그 숫자가 많지 않아 이십 대 중반인 나도 막내 라인으로 들어가는 편이다.


덕분에 꽤 귀여움을 받고 있었다.

모임에 나가도 서른 이하는 돈을 낼 기회조차 주지 않을 정도였다. 파일럿 형님들이 종종 꼰대 짓을 할 때가 있긴 해도 엄청 챙겨주시는 편이거든.


콜사인 팻맨.


우경현도 그렇게 만났다.

내가 사는 곳은 원당이고 형은 일산이라 거리도 가까운 데다가 이 형도 나 못지않은 항공 덕후더라.

대학교 전공도 항공 정비였고 최근에 민간 항공사에 입사했으니 더 설명할 게 뭐 있겠어.


심지어 우리 둘.

예전부터 아는 사이였다.

안면이 있던 것은 아니고 이쪽 바닥에서 우리 둘 다 꽤 유명했기에 온라인에서 댓글을 통해 대화와 토론도 많이 했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우경현과 나는 금방 친해졌다.

형이 취직한 이후부터 자주 보지 못하고 있으나 그전에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만나서 덕후답게 비행기 이야기를 했었다.


[잘 먹을게요. 다음 주 한일전 출전하실 거죠?]

[그러고 싶은데 입사한지 얼마 안됐잖아. 야간 근무 땜빵 들어가는 일이 종종 있어서 아직 잘 모르겠어. 온종일 게임만 하던 예전이 그립다.]

[에휴··· 그게 저한테 할 소리인가요?]

[하하! 미안. 다음에 휴가 잡으면 저번처럼 우리 둘이 비행이나 가자.]


아주 가끔.

나는 먼 곳까지 비행을 한다.

내 소유의 비행기가 아니기에 맘대로 할 수는 없으나 사장님이 종종 기분 좋을 때는 허가해 주시거든.

그러다가 한번 우경현도 태워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 경험이 꽤 강렬했던 것 같다.


그 마음 나도 이해한다.

처음 경비행기를 타고 날았던 날.

정신 차리지 못할 정도로 헤롱거렸었다.

경비행기를 타면 대형 여객기를 타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탓이다.


앱으로 치킨부터 주문해 놓은 뒤.

잠시 바람을 쐬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은 원당에 있는 4층짜리 빌라의 옥탑방인데 다른 거는 몰라도 옥상 전체를 내가 쓸 수 있다는 점은 꽤 마음에 들었다.


“달이 참 밝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하늘이 잠시 어두워지는 느낌이 들어 자세히 보니 사방에서 새가 날아오르고 있었다.

한두 마리도 아니고 인근에 있는 모든 새가 날아오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동네 개들과 고양이도 난리였다.

길고양이들은 미친 듯이 뛰어다니고 있었고,

이웃집에 사는 평소 조용하던 반려견들마저 목청 높여 짖어대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안 좋은 징조 같단 말이지.

평소 감이 좋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데 갑자기 목덜미가 서늘해지며 팔뚝에 닭살이 돋았다.


애석하게도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꽤 거리가 먼 곳의 허공에 검은 소용돌이가 생겼다. 처음에는 작은 점에 불과했으나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더니 구멍이 넓어졌다.


생전 처음 보는 현상인 데다가.

설명하기 어려운 비현실적인 모습이었다.

잠시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더니 구멍 속에서 뭔가가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악몽이 시작되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들이 거리를 헤집고 다니며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거든.

사방에서 비명이 들렸고 거리 곳곳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사람이 보였다.


괴물의 형태는 다양했다.


동물의 모습과 흡사한 것도 있었고,

사마귀와 개미 같은 곤충 같은 것도 보였다.

심지어 좀비처럼 보이는 썩어가는 시체와 뼈만 남은 해골이 거리를 배회하기도 했다.


심지어 숫자는 계속 늘어났다.

마치 수돗물을 틀어 놓은 수도꼭지 같달까.

구멍에서 나오는 괴물의 숫자는 점점 더 많아졌고 거친 파도처럼 모든 것을 파괴하며 사람들을 살육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애석하게도 괴물들의 파도는 내가 사는 집을 향해 오고 있었는데 건물을 타고 기어오르는 것들도 있었기에 집 안에 숨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집이란 곳이 안전한 편은 아니거든.

현관문은 제법 단단하지만, 창문 없는 집은 존재하지 않는다. 외벽을 타고 기어오른 괴물들은 창을 깨고 어떻게든 안으로 들어가려 애썼다.


심지어 우리 집은 옥탑방이다.

현관문의 절반이 불투명 유리로 되어 있는 옛날 스타일의 문이라 어떻게든 옥상까지 올라올 수 있다면 방안까지 침범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였다.


‘이번 생은 여기서 끝인가?’


그런 생각이 들 무렵.

갑자기 하늘에서 빛줄기가 떨어졌다.

마치 핀포인트 조명 같은 빛이었는데 그 숫자가 최소 수백 개 이상은 될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위험하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심지어 그 빛줄기 중의 하나는 내게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눈앞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창이 하나 떴는데 거기에는 이상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항공 요새의 사령관으로 각성하셨습니다. 탑승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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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결국, 전기가 나갔네요 +5 24.08.15 15,313 365 13쪽
5 잘 차려진 밥상은 먹어야지 +7 24.08.14 15,778 369 12쪽
4 이런 곳에 살고 있었구나 +9 24.08.13 16,802 387 15쪽
3 이제 다 죽었어 +18 24.08.12 18,014 407 14쪽
2 솝위드 카멜 +13 24.08.12 21,205 388 13쪽
» 탑승하시겠습니까? +27 24.08.12 27,251 44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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