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궁 천재의 탑 공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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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무(海霧)
작품등록일 :
2024.08.08 00:19
최근연재일 :
2024.08.14 12:1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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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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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블루 스크린은 때리면 낫는다

DUMMY

7.



검은 탑에서의 일상에 제법 적응이 되었다고나 할까.

나는 캠프에 드러누워 그동안 얻은 수확을 점검했다.


“어디 보자······. 마석이 얼마나 모였나?”


나는 지난 일 주일간 모은 마석을 확인해 보았다.


“미친.”


아공간에서 줄줄이 꺼내어 바닥에 늘어놓으니, 제법 양이 되었다.

정확하게 숫자를 헤아려보니, 100개가 조금 넘는 숫자였다.


“지도도 점점 자세해지고, 범위도 엄청 넓어졌어. 남쪽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지형은 파악된 것 같은데······.”


쉼터에 몰려드는 플레이어들의 이야기를 듣자하니, 숲의 끝자락에는 일종의 ‘한계선’이 있다고 했다.

더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투명한 방호막 같은 것이 존재한다고.

놀랍게도 이곳, 드라이어드의 안전구역을 중심으로 어마무시한 크기의 원을 그린 형태였다.


“남쪽에 대한 정보는 일절 없는 건가. 뭔가가 있다는 뜻이군. 1층의 플로어 보스라거나.”


지도의 남쪽.

그 어떤 플레이어도 정보를 가져오지 못한 공백이 있었다.


몬스터의 분포나 위험도 또한 이 주변에 비할 바 없었으니.

아무래도 플로어 마스터가 그 일대에 존재하는 듯했다.


‘나만 1층의 지리를 알고 있다는 점은 엄청난 이점이야. 다른 누군가가 남쪽에 무언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에 움직여야 해.’


정보를 모아 지도를 완성하는 것은 좋지만, 너무 뜸을 들이다가 보스를 빼앗겨 버리면 그 또한 문제였다.


‘슬슬 출발할 때가 된 건가?’


늘어놓은 마석과 장비들을 갈무리했고, 적당한 식량 또한 챙겨두었다.

슬슬 남쪽을 향해 출발하려던 그때였다.


- 이윤호 님. 누군가 이윤호 님의 캠프로 오고 있어요.


드라이어드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서둘러 ‘은둔자의 가면’을 뒤집어 쓰고 신중현의 얼굴로 위장했다.


“저······. 신중현 플레이어님. 계십니까?”

“들어오슈.”


중년과 노인 그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남자가 캠프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플레이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빼빼 마른 몸을 하고 있었는데, 잔뜩 주눅이 든 표정으로 양손을 배꼽에 가지런히 모은 채였다.


‘아. 나흘쯤 전에 도착한 아저씨네.’


기억났다.

검은 탑에 입장함과 동시에 며칠동안이나 풀숲에 누워 있었다는 남자.


“무슨 일이유?”

“아이고. 신중현 플레이어님. 다름이 아니라, 제가 긴히 말씀드릴 것이 있어 이렇게 찾아 뵈었습니다.”


신중현의 얼굴이 제법 나이 들어 보이는 편이라고는 하나, 남자의 태도는 지나칠 정도로 비굴해 보였다.


“뭐요?”

“다름이 아니라······. 제, 제가 이 안에서 농사를 좀 지어 보려고 하는데요······. 허, 허락해 주신다면 나오는 작물의 일부를 신중현 플레이어님 앞으로 남겨놓겠습니다.”

“농사? 어느 세월에 농사를 짓는데요?”


남자의 표정이 다급해졌다.

그는 캠프의 입구를 살짝 열어 드라이어드의 본체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사, 사실은 제가 며칠 전에 야생 감자를 몇 알 심어봤거든요. 제, 제가 밖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이라서······.”

“감자? 웬 감자?”


남자는 설명했다.


혹시나 싶어 감자를 한 번 심어봤는데, 이상할 정도로 생장 속도가 빠르다고.

이 정도 속도라면, 대략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수확할 수 있을 정도라고.


감자가 고작 한 달도 안 되어 자라다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설명을 들어보니, 대충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 커다란 나무에서 멀어지면 평범하게 자라더군요.”

“아. 생장의 지팡이.”

“예······?”

“아, 아무것도 아니요.”


말이 지팡이지, 아무래도 토템이라고 불러야 더 정확할 것 같았다.


“······. 그럼 그렇게 합시다. 대신, 수확물의 절반은 내 거요. 나머지는 당신이 가져다 팔든가 하시고. 이 안에서는 식량이 귀할 테니까.”

“아, 아이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신중현 플레이어님!”

“꼬불칠 생각 마쇼. 안전구역에서 일어나는 일은 내가 어디에 있더라도 알 수 있으니까.”

“아무렴요! 여부가 있으려고요!”


남자는 신이 나서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마음이 바뀔까 두렵다는 듯 캠프 밖으로 뛰쳐나갔다.

행색이나 말하는 투를 보아하니, 전투 따위에 익숙한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남자가 사라진 뒤, 한참이나 캠프 구석에 숨어있던 에피가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흥! 농사라니. 완전히 하등종족의 서식지가 되었네요.”

“그렇지.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본격적인 전초기지가 될 것 같아.”

“전초기지요?”

“그래. 그 어떤 경우에서도 보급은 중요한 법이야. 그런데 탑 외부의 물건은 안으로 들어올 수 없으니까. 플레이어는 이 안에서 자급자족해야 한다는 뜻이지.”


대부분의 경우, 식량은 사냥을 통해 해결되었다.

나야 드라이어드의 가지에서 자란 과일을 먹으며 버텼고, 종종 다른 플레이어들이 사냥한 작은 동물과 교환하기도 했다.


하지만 농사가 시작된다면?


“1층을 공략할 때뿐 만이 아니야. 앞으로도 탑에서 활동하는 모든 플레이어들의 보급기지가 될 수도 있어.”


생각보다 내 안전구역이 잘 나갈 것 같다.



***



드라이어드와 노인(진)에게 안전구역에 대한 일을 맡겨둔 채, 나는 남쪽으로 향했다.

쓸만한 정보가 모두 모였으니, 이제는 움직일 때였다.


“당신. 여기서 왼쪽으로 가면, 당신을 위한 행운이 기다리고 있어요. 아마도 룰렛일 거에요!”

“그래?”

“으, 으응······? 왜 그렇게 반응이 시큰둥한 거예요! 제가 기껏 알려줬는데!”

“왜냐니. 이제 아이템이 나와봤자 간에 기별도 안 간다고.”


안전 구역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이권이 내 몫이었다.

지금도 통행료는 드라이어드의 손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으니.

굳이 1층의 황금 룰렛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하위 리그에서 적당히 승리를 챙기고 나면, 상위 리그로 승격하는 게 순서라고.’


툴툴거리는 에피를 내버려 둔 채로, 나는 손에 들린 양피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안전구역에서부터, 내가 왔던 길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독도법을 모르는 이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자세하게 작성된 지도였던 덕분이었다.


“이제······. 이 앞으로는 지도가 없는 구역인데······.”


내가 직접 발로 뛰며 지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뜻.

텅 비어버린 남쪽 구역이 코앞이었다.


“흠. 뭔가 이전과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기도 하고.”

“으익······. 어디서 냄새가 나요. 이 에피님의 코는 엄청 예민하단 말이에요.”

“그러게. 뭔가 하수구 같은 냄새가 나······.”


앞으로 나아갈수록 평범한 숲이던 주변 풍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나무들이 힘을 잃고 시들어가고 있었고, 발에 밟히는 흙에서 퀴퀴한 냄새가 올라왔다.


‘역시. 뭔가가 있었군.’


나는 최대한 감각을 곤두세운 채, 시위에 활을 매겼다.

며칠간 재미없는 안전구역 주변만 돌아다니던 덕분에 좀이 쑤실 지경이었다.


남쪽으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숲의 모습은 기괴해져만 갔다.

냄새가 심해지고, 나무들이 죽어 있었다.

바짝 마른 나무들 덕분에 먼 곳까지 시야가 확보된다는 점에서는 예전보다 나았다.


“으웨에에······.”


어깨 위에서 헛구역질을 하는 에피만 빼면.


“에피. 그렇게 힘들면 인벤토리에 들어가 있을래?”

“아뇨······. 그래도 명색이 플로어 마스터인걸요. 고작 냄새 따위에 내뺄 수는 없어요.”

“플로어 마스터는 무슨. 자기 층에 뭐가 있는지 기억도 제대로 못 하면서.”

“이익! 그, 그건······! 저도 정말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단 말이에요!”


에피가 입을 삐죽 내밀고 토라지려던 그때, 녀석의 귀가 바짝 솟았다.


“다, 당신! 잠시 멈춰요!”

“뭐?”

“도망쳐요! 당장 도망치란 말이에요!”


겁에 질린 초식동물처럼 폴짝폴짝 뛰어대는 에피.

나는 녀석의 입을 틀어막은 뒤 말라 비틀어진 수풀 사이로 몸을 숨겼다.

식물이 썩은 끈적한 진액이 몸에 묻었지만, 지금은 그런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쿠웅-!


땅에서 미세한 떨림이 전해져 왔다.


“으브븝······! 으븝!”

“알아. 안다고. 뭔가 불운이 다가오고 있다는 소리지?”

“으브븝.”


에피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만, 녀석의 귀띔이 없어도 알 수 있었다.


쿵!

끄드드드득.


쿵!

끄드드드드득.


먼 곳에서 들리던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언제든 시위를 당길 수 있게 몸을 긴장시킨 채로, 소리가 나는 쪽을 내다보았다.


‘저건······. 뭐지?’


먼발치에서 소리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좀비······?’


눈앞에 보이는 저걸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

좀비 영화에나 나올 법한 살아 움직이는 시체.

문제는 흔히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좀비’의 모습이 아니었다.


쿵!

끄드드득······.


수많은 시체가 한데 엉겨 붙어 구체의 형상을 이루고 있었다.

이전에 보았던 골드 슬라임보다 못해도 두 배쯤 커 보이는 몸뚱이.


시체로 이루어진 촉수를 뻗어 앞을 짚고, 시체로 이루어진 몸뚱이를 질질 끌고 있었다.


‘과녁은······. 보인다.’


대충 ‘좀비 슬라임’이라고 이름을 붙여두고, 나는 천천히 시위를 당겼다.

녀석은 아직 나를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처리한다. 뒤에 불안요소를 남기고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수는 없지.’


주변에 다른 몬스터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이 녀석을 처리하기에 최적의 상황.


끼기기긱-!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활의 장력을 최대한 올렸다.

당기기 버거울 정도로 강한 탄성이 느껴졌고, 나는 화살 끝을 좀비 슬라임에 두었다.


[인챈트 – 샤프니스]


“후우우우······.”


호흡을 정돈한 뒤, 녀석이 움직이는 박자 사이를 노려 화살을 날렸다.


쉬이이이익-!


날카로움을 더한 화살이 푸른 빛깔의 궤적을 그리며 좀비 슬라임을 꿰뚫었다.


“그어어어어어-!”


시체뭉치 사이에서 기괴한 울음이 터져 나온 뒤.


철푸덕!

철퍽!


썩어가는 시체들이 바닥에 마구잡이로 널브러지기 시작했다.

시체로 된 슬라임이 죽고, 평범한 시체로 돌아온 듯 했다.


“큭······. 냄새······.”


나는 서둘러 시체 무더기를 향해 다가갔다.

썩어가는 시체에서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악취가 풍겼다.


“흐갸아아악! 저, 전부 하등종족의 시체잖아요!”

“맞아. 전부······. 플레이어야.”

“이런 끔찍한 몬스터가 있다니······. 이 에피 님이라면 절대로 이따위 몬스터를 만들지 않을 거예요.”

“뭔 소리야. 네가 아니면 이곳에 누가 몬스터를 배치해?”


에피가 또 건망증을 호소하기에, 가볍게 핀잔을 날려주었다.


이 숲에 인간이 플레이어 말고 누가 있을까.

입고 있는 옷과 들고 있는 장비로 봐서는 플레이어들이 분명했다.

애초에 이 남쪽 숲에서 1층을 시작했거나, 혹은 길을 잘못 들어 여기까지 흘러들었거나.


나는 시체들을 향해 짧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고, 그들 사이를 뒤져 좀비 슬라임의 마석을 채취했다.

그리고


[플로어 보스 ‘자이언트 골드 슬라임’이 처치되었습니다.]

[클리어 선언을 위해 플로어 마스터를 소환합니다]


“뭐······?”


플로어 보스라니.

거기에 ‘자이언트 골드 슬라임’이라니.

내가 죽인 건 분명······.


눈살을 찌푸리며 푸른 글씨를 쳐다보던 그때였다.


[플로어 마스터를 소환할 수 없습니다]

[오류]

[오류]

[오류]

[오류]

[오류]

[오류]

······

···


발작하기 시작하는 시스템 메세지.

당혹스러운 심정으로 어깨 위의 에피를 잡아 들었다.


“에피! 이게 무슨 일이야!”

“흐에에······. 흐게겍!”


에피는 하얗게 눈을 까뒤집은 채로 널브러진 채였다.

중간중간 간질을 일으키듯 팔다리를 움찔거리는 모습.


‘미친······! 설마 에피가 지금 나와 함께 있어서······?’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상황에 서둘러 에피를 흔들어 깨우려던 그때.


[플레이어를 플로어 마스터에게 소환합니다]


파아아아-!


눈앞에 어마어마한 빛이 터져 나오며, 나는 어디론가 소환되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여긴······?”


축축한 갈색 이끼가 앉은 돌벽.

석회질이 섞인 물방울이 떨어지는 종유석.


“튜토리얼 때 왔던 곳이잖아?”


동굴 벽면에 박힌 커다란 못이 보였다.

그 아래, 썩어가는 거대한 토끼의 시체가 쓰러져 있었다.

한때는 어린이 애니메이션 속의 캐릭터처럼 발랄했을 외형은, 썩고 녹아내려 볼품없었다.


“죽은 건가? 아니면······.”


자신을 보지 말라며 소리를 질러대던 예전과는 달리, 완전히 바닥에 늘어진 채로 눈을 감은 녀석.

못에 박혀있던 왼쪽 뒷다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시위에 화살을 메기며 시체로 천천히 다가서던 그때였다.


“내 반쪽······. 돌려줘······.”

“살아있었네?”


거대한 ‘에피’의 시체가 눈을 번쩍 뜨며 나를 향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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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궁 천재의 탑 공략법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중단 공지 24.08.15 26 0 -
» 블루 스크린은 때리면 낫는다 24.08.14 51 3 13쪽
6 아는 것이 힘이다 24.08.13 70 3 20쪽
5 뽑기는 원래 재미있다 24.08.12 90 4 19쪽
4 네가 왜 거기서 나와? 24.08.11 110 5 19쪽
3 남자라면 당연히 24.08.10 133 4 14쪽
2 행운이 찾아온다고 24.08.09 174 5 17쪽
1 금메달리스트는 튜토리얼이 너무 쉽다 24.08.08 218 6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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