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궁 천재의 탑 공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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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무(海霧)
작품등록일 :
2024.08.08 00:19
최근연재일 :
2024.08.1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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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2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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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뽑기는 원래 재미있다

DUMMY

5.



에피가 내 어깨 위에 앉아 조잘댔다.


“햐-! 드디어 그 거지같은 동굴에서 해방되다니. 꿈만 같아요. 그곳에서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썩어가고 있었던 건지······.”

“썩어가고 있기는 했지.”

“흐갸아악! 떠올리지 마세요! 제 부끄러운 모습을 상상하지 말란 말이에요!”


튜토리얼이 끝나던 순간, 내가 쐈던 화살은 제대로 명중했던 모양이었다.

다만, 녀석의 뒷다리에 그려진 과녁이 아무래도 ‘못’을 가리키고 있던 것 같았다.


“아무튼, 하등종······. 커흠! 당신 덕분이에요. 그 거지같은 봉인을 꿰뚫어 버리다니.”

“그래? 그냥 거기가 약점이라는 줄 알고 쏜 거였는데.”


내 특성의 크리티컬 판정을 모르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물론 ‘크리티컬’이라는 말도 그냥 내가 가져다 붙인 것이었지만, 과녁에 명중하면 굉장한 위력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썩 틀린 표현도 아닌 듯했다.


“아무튼. 이제부터 당신에게 이 에피님이 행운을 가져다줄 거예요. 아시겠어요?”

“좋지. 그런데 어떤 식으로? 일단 네가 알려준 방향으로 가고 있기는 한데······.”


나는 숲길을 나아가고 있었다.

주변 지리를 모르는 와중에 움직이는 것은 현명하지 못했으나, 우거진 숲에서 시야를 확보할 방법이 여의치 않았다.

다만,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걷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서 왼쪽! 앞으로 쭉 걷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도세요.”

“오른쪽?”

“네. 길을 잘못 들면 불운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이른바, ‘행운’ 네비게이션.

튜토리얼에 대한 보상으로 ‘자신이 줄 수 있는 최고의 보상’을 약속했던 에피.

녀석의 말에 따르자면, 그 최고의 보상이란 다름 아닌 봉인에서 풀려난 자기 자신이었던 모양이었다.


‘하긴. 소유자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부적이라니. 그 부적에 이렇게 빠그라진 인성을 가진 인격이 있다는 건 특이하지만. 성능은 확실하잖아?’


부적이 내 소유가 되면서, 에피는 나를 향한 ‘행운’을 감지할 수 있게 되었다고.


“그런데 말이야, 에피.”

“네?”

“너는 1층의 플로어 마스터라며. 굳이 행운 같은 걸 느낄 필요가 있나? 1층에 있는 보상 위치를 말해주면 그만이잖아.”

“으, 으윽······. 그, 그건 말이죠······.”


어깨 위에 앉아 있던 에피가 앓는 소리를 냈다.

이상한 기색에 나는 자리에 멈추어 에피의 귀를 잡아 내 얼굴 앞에 들었다.


“흐, 흐갸아악! 무슨 짓인가요! 이 야만스러운 짓을!”

“혹시 나를 속이려는 거야?”

“무슨 소리인가요! 저는 행운을 가져다주는 존재! 거짓말은 제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짓이에요! 제가 그따위 짓을 할 것 같나요?”

“흠······.”


썩 만족스러운 대답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이 녀석이 나를 물 먹이려고 했다면, 벌써 몇 번이나 기회가 있기는 했지.’


나는 다시금 녀석을 내 어깨 위에 올려놓으며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건 알겠어. 그런데 결국 지금 찾아가는 ‘행운’이 도대체 뭘 말하는 거야?”

“그건······.”


에피가 또다시 앓는 소리를 내다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저도 기억이 안 나요······. 제가 플로어 마스터로써 숨겨둔 보상들이······.”

“뭐?”

“왜, 왜 그런지는 저도 몰라요! 그냥 기억이 나질 않는 걸 어떡해요! 그래도 당신에게 지금 필요한 행운이 저쪽에 있다는 것 하나만큼은 확실하다고요! 지금 제 소유자는 당신이니까요!”


필사적으로 항변하던 에피가 자신의 짧둥한 팔을 뻗어 숲의 저편을 가리켰다.


‘뭐, 결국 알게 되겠지.’


나는 다시금 걷기로 했다.

지루한 숲의 녹색이 이어졌고, 에피의 지시에 따라 이리저리 걸음을 옮겨 나갔다.

그리고


“공터?”


숲의 가운데에 넓게 자리한 공터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그야말로 거대한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여기에요!”

“저 나무?”

“네. 제 레이더가 저 나무쪽을 가리키고 있다고요!”


저 나무가 행운이라는 뜻일까.

분명 범상치 않은 모습이기는 했다.


공터의 중앙에 자리 잡은 거대한 나무.

나무의 줄기는 까맣게 말라가고 있었으며, 이파리는 갈변하여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무의 밑동에는 거대한 점액질의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저건······.”


나는 공터 가장자리의 나무 뒤에 몸을 숨긴 채로 그 ‘점액질’을 관찰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대는 황금색의 젤리 같았다.

젤리 가운데에는 둥근 모양의 진한 황금색 핵이 존재했다.


나무에 붙어서 무언가를 빨아들이고 있는 녀석.

녀석이 한 번 몸을 꿈틀거릴 때마다, 녀석의 몸집이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점액질 사이를 활발하게 부유하는 핵은, 마치 기쁨에 겨워서 춤을 추듯 움직이고 있었다.


“슬라임이네. 핵 위에 과녁이 보여. 에피, 네가 말한 행운이 저 몬스터야?”

“네. 분명히 저쪽 방향이에요.”

“그렇단 말이지······. 거리는 대충 150m 즈음 되는 것 같고.”


나는 천천히 시위에 활을 걸었다.

남은 화살은 세 발.


“자, 잠깐만요. 당신, 괜찮겠어요? 거리가 너무 멀잖아요! 게다가 저게 움직일 때마다 핵의 위치가 계속 움직인 다고요!”

“괜찮아. 과녁이 이미 보이니까.”


걱정스러운 투로 떠들어대는 에피의 목소리를 잠재운 뒤, 천천히 시위를 당겼다.


꽈드드드득-!


한계까지 당겨진 활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150m 정도면 이 활의 최대 유효 사거리겠지. 제대로 힘이 실릴지는 미지수이긴 한데······.’


슬라임의 점액질은 두꺼웠고, 액체였다.

한계에 가까운 사거리에서 발사했을 때, 그 두꺼운 점액질을 뚫고 핵까지 닿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맞히는 건 쉽다. 그것이 유효한 타격을 줄 수 있을지는 다른 문제였다.


‘끄응······. 목재로 만든 조악한 단일궁인 게 문제야. 괜찮은 활이 있었다면 충분한 힘을 실어서 날릴 수 있었을 텐데. 장비가 아쉽네.’


혹자는 말한다.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였다.


‘장인은 언제나 최상의 도구를 쓰니까, 굳이 장비를 탓할 필요가 없는 거지!’


활의 퀄리티가 못내 아쉬웠지만, 선공을 점했다는 이점을 포기할 이유는 되지 않았다.


“후우우······.”


마지막으로 호흡을 가다듬은 뒤······.


쉬이이익-!


화살을 시위에 실어 날렸다.

그리고


퍼어어억-!


슬라임의 점액질이 어마무시한 기세로 폭발했다.

마치 젤리 위애 거대한 돌멩이를 던진 것처럼.

하지만


“쯧. 역시 핵에는 닿지 못했나.”


과녁에 명중하며 발생한 충격이 녀석의 흐물거리는 점액질에 분산되어버렸다.

순간적으로 핵이 드러나기는 했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원래의 모습을 회복해버리는 녀석.


“회복하는 데 1초도 안 걸린다고?”


꾸르르륵!

꾸르르르르륵!

열이 받은 듯 괴상한 소리를 토해낸 녀석이 나를 발견하고 달려들었다.


“흐갸아아아악! 빨라요! 빠르다고요!”

“아하하-! 슬라임도 덩치가 저렇게 크니, 빨라질 수 있구나?”

“다, 당신! 그렇게 태평하게 웃고 있을 때예요? 슬라임이 오잖아요! 저 흐물텅한 몸에는 화살이 안 먹힌다고요! 완전히 상성이에요!”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제압한다고 했다.


태극권을 창시했다고 알려진 ‘장삼봉’이 했던 말이라고.

지금에 와서 그 말을 생각해보니, 참으로 쌈뽕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강철같은 피부는 쉽게 뚫어도, 점액질은 쉽게 뚫지 못 한다라······. 재밌잖아?”

“재미? 재미이이이? 빨리 튀어요!”

“괜찮아. 에피.”


꾸르르르륵-!


슬라임은 거대한 점액질의 외부를 빠르게 회전하며 다가왔다.

인간이나 짐승에 비할 바 없는 굉장한 속도였지만, 워낙 먼 거리였던 탓에 아직 여유가 있었다.

나는 다음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방금 하나 날렸고, 남은 화살은 두 발이라······. 딱 맞네.’


꾸드드득-!


다시 한 번 한계까지 시위를 당겼다.


“뭐, 뭐 하는 거예요!”


에피가 애달픈 목소리로 외쳐댔지만, 이미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150m······. 130m······.’


슬라임은 나를 향해 직진하고 있었고, 나는 한껏 각도를 들어 화살을 날렸다.


쉬이이이익-!


화살이 높은 포물선을 그리고 날아올랐다.


“오, 온다아아아! 어디로 쏘는 건가요!”

“지켜봐.”


나는 마지막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이 화살이 슬라임의 점액질을 뚫지 못하면 끝장.

내가 이 우거진 숲에서 슬라임을 피해 달아날 수 있을까?


‘아니. 이게 빗나가면 죽겠지.’


오싹.


척추를 타고 아찔한 감각이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목숨을 걸고 쏴야 한다니.

역시······.


“아하하-! 검은 탑은 최고야!”

“흐갸아아아악!”


꾸드드드득-!


있는 힘껏 시위를 당겨 슬라임을 정조준했다.


100m······.

80m······.

50m······..


점점 가까워진 슬라임은 적어도 3m가 넘는 크기를 하고 있었다.


꾸르르르륵-!


슬라임이 분노에 찬 소리로 울어댄 그 순간.


퍼어어어억-!


슬라임의 점액질이 다시금 터져나갔다.

나는 아직 시위를 당기고 있는 상태였다.


‘지금-!’


쉬이이이이익-!


점액질이 터져나가며, 순간적으로 핵이 겉으로 드러난 짧은 순간.


푸슉-!


화살은 바람을 가르고 녀석의 핵을 깔끔하게 관통했다.


10점.


언제나 그렇듯, 내 화살은 빗나가지 않았다.


곧 슬라임의 점액질이 순식간에 바닥에 녹아내렸다.

내 머리통 크기의 핵만을 남긴 채로.


“어, 어어······! 어떻게 한 거죠?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요!”

“예전에 내기를 한 적이 있거든? 동료 선수 한 녀석이 나한테 날아가는 화살을 쏴서 맞출 수 있냐고 하더라고.”

“선수요?”

“아. 내가 양궁 선수였거든. 아무튼······. 그래서 시도해 봤지. 화살을 한 발 높이 쏜 뒤에, 그 화살이 떨어지는 타이밍에 맞춰서 다시 쏘는 거야. 그러면 화살로 화살을 맞출 수 있어.”


각도를 다르게 해서 각각 쏜 화살이 동시에 떨어지게 하는 것.

10만 원 빵 내기였는데, 덕분에 그날 저녁을 호화롭게 먹었더랬다.


“그, 그러니까, 첫 번째 화살로 점액질을 터트리고, 그 순간을 노려 화살로 핵을 쏴 맞췄다고요?”

“응.”

“첫 화살이 슬라임의 머리 위로 떨어질 줄 어떻게 알고요?”

“말했잖아. 내 화살은 빗나가지 않는다고.”

“무슨······!”


에피는 동그란 눈을 더욱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았다.

녀석을 뒤로한 채, 슬라임의 핵에 다가가 그걸 주워든 순간이었다.


[네임드 몬스터, ‘골드 슬라임’ 토벌 성공]

[플로어 마스터 ‘행운을 부르는 토끼발’이 지정한 규칙이 충족됩니다]

[플로어 마스터 ‘행운을 부르는 토끼발’의 권능이 발현됩니다]


“뭐, 뭐야?”


눈앞에 푸른 글씨가 터져 나왔다.

플로어 마스터의 권능이라니.


“기, 기억났다!”


에피가 갑작스러운 타이밍에 발작하듯 외쳤다.

아까 전에 커져 있던 눈이 다시 한번 커졌는데, 어디까지 커질 수 있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기억났다고?”

“검은 탑의 각 층은 플로어 마스터가 정한 규칙에 의해 지배돼요!”

“그랬어? 밖에 있을 때 비슷한 내용을 본 것 같은데.”

“제 권능은 행운······. 그리고 제가 정한 규칙은······!”


[황금 룰렛이 등장합니다]


푸른 글씨가 떠오름과 동시에, 허공에 커다란 황금 룰렛이 등장했다.

누군가 등장해 ‘준비하시고, 쏘세요!’를 외칠 것 같이 생긴 룰렛이었다.

꼭대기에는 화살표가 있었고, 둥근 원판에는 여러 종류의 그림이 있었다.


띠리리리리리리리링-!


등장과 동시에 요란한 소리를 토해내며 도는 룰렛.

에피는 그 룰렛을 보고 소리쳤다.


“룰렛! 맞아요! 기억났다고요! 어째서 내가 이런 중요한 사실을 까먹고 있었지? 그럴 리가 없는데······?”

“네가 ‘행운을 가져다주는 토끼발’이라더니. 딱 어울리는 규칙인데?”

“1층은 플레이어들이 앞으로 탑을 공략하기 위한 발판이 되는 층. 그래서 제가 층 이곳저곳에 룰렛을 잔뜩 숨겨놨다고요!”

“이런 게 또 있어?”


띠리리리리링-!


맹렬하게 회전하던 룰렛의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그리고


“멈췄다. 무슨 책 모양인데?”

“대박! 대박이다! 스킬이에요! 검은 탑에서 스킬을 얻는 건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라고요!”


전체 비율로 따지면 손톱만 한 정도의 비중을 지닌 구역에 그려진 책 모양.

원판 꼭대기에 걸린 화살표는 그 책 모양을 가리키고 있었다.

원판이 허공에서 황금빛을 흩뿌리고 사람짐과 동시에, 다시금 푸른 글씨가 눈앞에 떠올랐다.


[스킬 : 인챈트(A)를 획득합니다]

└[인챈트(A) : 정신력을 소모하여, 사물에 일시적으로 효과를 부여합니다]


“인챈트?”

“우헤헤헤-! 어때요? 이 에피 님이 안배해 놓은 룰렛의 맛이! 참으로 달콤하지 않나요? 신나게 탑을 오르고 싶지 않나요? 이 에피님은 베테랑 플로어 마스터다, 이 말이에요!”

“흠. 그럼 화살에 이런저런 효과를 부여할 수도 있는 건가?”

“그래요! 마침 당신에게 딱 어울리는 효과 아닌가요? 히야-! 이 에피님의 유능함은 스스로도 두려울 정도에요!”


기세가 살아 떠들어대는 에피.

나 또한 기뻤지만,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


“스킬을 얻은 것까지는 좋은데, 때마침 화살을 전부 날려버렸어. 시험해보고 싶은데······.”


점액질과 함께 튕겨져 날아가거나, 혹은 핵을 관통해서 멀리 갔거나.

날아간 방향을 알고 있으니, 찾아보면 금세 찾아낼 수 있으리라.

귀찮았지만 적어도 화살이 없으면 내 활 솜씨가 무용지물이었으니, 스킬을 확인해 보기 위해서라도 찾아야만 했다.


그렇게 내가 화살이 날아간 나무 쪽으로 다가가던 그때.


- 저기······. 호, 혹시 그 괴물을 무찔러 주신 건가요? 저, 저를 위해서······?


“엥?”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린 곳에는 공터 가운데에 솟은 나무가 있었다.

방금 죽인 그 슬라임이 붙어있던, 다 죽어가던 커다란 나무.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거짓으로 얼룩진 숲에서 저를 구해주시다니······.


“나무? 네가 말하는 거야?”

“당신. 갑자기 웬 헛소리에요? 지금 누구랑 대화하는······.”


머릿속에서 울려대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나무를 향해 말을 걸었다.

그때.


화아아아아-!


나무줄기에서 밝은 빛이 터져 나왔고, 그 안에서 녹색 피부를 가진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무덩쿨로 된 머리카락에, 나무껍질과 나뭇잎을 엮어서 만든 드레스를 입은 여자.

그녀는 우아한 동작으로 나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어떤 말로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제 목숨을 구하신 분. 성함을 여쭤봐도 될까요?”

“이, 이윤호인데······. 너는 누구야?”

“죄송해요. 제 이름은 너무나 오래되어 잊었지만, ‘드라이어드’라고 불러주시면 될 것 같아요. 이윤호 님.”


드라이어드.

대충 전설 속의 나무 정령이었다.


“으, 으잉? 당신은 또 무슨 하등 종······. 흐븝!”


경박한 목소리로 외치는 에피의 입을 틀어막았다.

도대체가, 얘는 자기가 설계했다는 층에 뭐가 있는지 아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드라이어드? 반가워.”


존재조차 모르던 그녀를 구해주려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나는 굳이 그 사실을 입밖에 내지 않았다.

때로는 침묵이 가장 아름다운 법이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답례를 하고 싶으나, 제가 드릴 수 있는게 많지 않은 것을 용서하세요.”

“답례?”

“네. 이윤호 님이 싸우던 모습을 지켜봤어요. 어찌나 용맹하신지. 제 뿌리가 떨려올 지경이었답니다. 이걸 받아주세요.”


우드드득!


그녀와 내 사이, 텅 빈 공터 잔디밭에 나무줄기가 하나 자라났다.

순식간에 길게 모양을 잡은 나무줄기가 단숨에 어떠한 형상을 이루었다.


“활?”


[정령의 활(S) : 사용자가 원하는 형상으로 모습을 바꿀 수 있는 활. 마력에 굶주린 상태에서는 시들어 버립니다.]


눈앞에 떠오른 푸른 글씨가 활의 정체를 알려주었다.

그녀는 내게 활을 내밀었고, 나는 그 활을 받아들었다.


유연하고도 단단한 목재로 된 활이었고, 식물성 섬유질로 추정되는 시위가 걸려 있었다.

내가 튜토리얼 때 받은 활과 완벽하게 동일한 스펙을 유지하고 있었다.


“으음······. 기왕이면 좀 더 장력이 강했으면 좋겠는데.”


내가 작게 불만을 표시한 그때였다.


꾸드득-!


활이 내 손안에서 꿈틀대더니, 내가 머릿속에 그린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크기가 줄었지만, 더욱 유연한 몸체.


평생 다뤄온 양궁과는 그 형태부터가 멀어졌지만, 장력이 강해져 있었다.

실전에서 다루기에는 훨씬 나은 형태였다.


“오오······!”

“화살을 원하시면, 활에게 요청하세요. 그리하면 내어드릴 겁니다. 그러나······.”

“그러나?”

“정령의 활은 먹보랍니다. 주기적으로 마력을 공급해 주지 않으면 시들어버려요. 마력을 충분히 주시면 더욱 힘을 내어 자라나고요.”

“진짜 식물 같네.”


마력이라.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손에 들려있던 슬라임의 핵을 활의 가까이에 들어보았다.

알려진 정보에 의하면, 슬라임의 핵은 마석 그 자체였으니까.

그리고


휘리릭-!


활 끝에서 작은 뿌리가 촉수처럼 뻗어 나왔다.


쪼오오옥!


슬라임의 핵을 파고든 뿌리가 무언가를 빨아들이기 시작했고······.


“히이익-! 화, 활이 마석을 먹어요!”

“에피, 너는 진짜 아는 게 없냐. 플로어 마스터라며?”

“그, 그건······!”

“기억이 안 난다고? 그러시겠지.”

“진짜라는 말이에요! 거짓말이 아니라고요!”


필사적인 에피의 항변과 함께,


부르르-!


만족스럽다는 듯 손안에서 작게 몸을 떠는 활.

나는 흡족한 마음으로 드라이어드를 돌아보았다.


“고마워. 이런 걸 바라고 한 일은 아니었는데.”

“아녜요. 은인께 이 정도밖에 해드릴 수 없어 슬플 따름입니다.”

“에이.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그, 그래서 부탁이 있어요.”


아하.

이렇게 기름칠을 해준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는 뜻인가.

받아먹은 보상이 제법 짭짤했기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드라이어드가 우물쭈물하는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최근, 방금 이윤호 님이 처치하신 괴물과 똑같은 것들이 제 몸의 양분을 노리고 찾아와요. 그들의 손아귀에서 저를 지켜주실 수 있을까요?”

“뭐? 저 골드 슬라임과 똑같다고······?”

“그런 이름인 줄은 몰랐지만요. 저 괴물은 보통 떼를 지어 다니거든요. 덕분에 저 또한 시들어가고 있답니다. 부, 부디 도움을······.”


골드 슬라임이 떼거지로 있다니.

황금 룰렛도 떼거지라는 뜻이 아닌가.


[히든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히든 퀘스트 : 드라이어드 수호]

[클리어 조건 : 습격에서 드라이어드를 지키십시오]

[다음 습격까지 남은 시간 : 10]


“10······? 열 시간? 십 분?”


[다음 습격까지 남은 시간 : 9]


“아.”


황금 룰렛들이 떼거지로 몰려들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지금 내 코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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