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 기생충으로 살아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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뀨우팡
작품등록일 :
2024.08.09 10:19
최근연재일 :
2024.08.09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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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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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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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9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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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DUMMY


‘으음···’


꿈인가. 왜 이리 차갑고 축축하지?

분명 이불 속에 웅크리고 새우잠을 청하고 있을 난데···

도대체 이 낯선 감각은 뭐지?


꿈벅.


나는 게슴츠레 눈을 떴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이 괴상망측한 느낌에.

그런데···


‘··· 뭐지?’


이상하다.

여긴 내 방이 아니다.

칠흑 같은 어둠. 굵직한 빗방울.

죽은 나뭇가지 위에서 날개를 퍼덕이는 까마귀들.

거기에.


‘묘, 묘비?’


인간의 삶과 죽음이 수치화된 비석까지.


그렇다. 여기는 공동묘지. 죽은 자들의 넋을 기리는 장소다.


‘아니, 내가 왜 여기에···’


무슨 괴한들에게 납치라도 당해서 이런 음지로 끌려온 걸까.

정작 난 빈털터리 유리 지갑 직장인에 불과한데···

행여 목에 칼을 대고 가진 거 다 내놓으라고 협박을 당하는 상상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와중에.


‘응? 왜 목소리가···’


입을 열어 혼잣말한답시고 했는데 말이 안 나온다. 거기에 소리도 안 들리고.


‘아직 마취에서 덜 풀린 걸까.’


그렇겠지.

뭐,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우려먹는 클리셰 있잖아.

갑자기 뒤에서 수면 마취제가 듬뿍 묻은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으면 귀신같이 기절하는.


‘어쩐지···’


갑자기 온 세상이 흑과 백, 두 가지 색으로만 보이더라.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나는 잠시 기다렸다. 육체의 감각이 회복되기까지를.

허나 몇 분의 시간이 지나도 내 상태는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점점 의구심이 들었다.


나는 마음 한편에서 애써 외면한, 불쾌하기 짝이 없는 진실을 마주보았다.


‘설마··· 아니겠지.’


사실 깨어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부터 의아하긴 했다. 허나 그것을 진실로 치부할 순 없었다. 절대로.

왜냐. 나는 이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삶을 영위하는 스물아홉 셀러리맨이었으니까.

뭐 돈을 많이 벌었거나 유명세가 있는 인생을 살아가진 못했지만 적어도 한 가지 사실은 분명했다.


나는 인간이다.

주객을 떠나 절대적으로 적용되는 만고불변의 진리.

이런 말을 하긴 뭐 하다만 나는 분명 사람이다.

딱히 무어라 주석을 붙이거나 설명하지 않아도 내가 황인종의 인류라는 사실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내, 내가 벌레라고?’


자고 일어났는데 한자어로 벌레 충이라 명명되는 존재로 전락했다고? 내가 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기막힌 상황에 나는 ‘그것’을 부정고자 감각에 집중했다.

팔과 다리를 움직인다 생각하고 실행에 옮기자.


꿈틀꿈틀.


어느새 내 몸뚱이는 배를 질질 끌며 부단히 움직이는 중이다.


‘이 모든 게 꿈이 아닌 현실이라고?’


어이가 없었다.

내가 이럴려고 학창 시절 책상머리 앞에 앉아 공부 삼매경을 했는지.

지난 29년의 부단한 삶은 결국 ‘벌레’가 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었는지.

라는 생각이 들자.


‘씨발.’


나는 분노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어?’


내 왼쪽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 다가오고 있었다.

뼈와 관절이 사라진, 아주 유연한 목을 우아하게 옆으로 꺾으니.

빨간 등껍질에 간헐적인 검은 반점이 찍힌 무당벌레 한 마리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설마.’


아니겠지. 당신 같은 거대한 성체가 하찮은 미물 따위를 먹이로 삼진 않겠지.


슬금슬금.


나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원래 그러기로 한 듯 자연스레 밑으로 기었다.


‘아. 존나 느리네 진짜!’


가관이다. 나름 전속력으로 달린다 생각하며 움직이는데 이제 겨우 성인 남자 손 한 뼘 정도 되는 거리를 이동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당벌레는 잠자코 대기 중. 도무지 무슨 생각인지 전혀 알 수 없다.

되려 그렇기에 엄청난 공포가 되어 나를 압박한다.

자고로 상상력이란 무서운 것이니.


‘개짜증나네.’


이럴 바엔 차라리 생각 없는 무뇌충으로 빙의하는 게 백번 이롭겠다는 생각이 들 때.


사그락.


부동의 자세를 취하던 무당벌레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유감스럽게도 내가 있는 방향으로.


‘아니. 원래 진드기가 주식 아니었어?’


나는 속으로 온갖 쌍욕을 내뱉으며 전력 질주했다.

아마 살면서 이보다 더 젖 먹던 힘까지 달렸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그러나 태초부터 각인된 종의 격차는 까마득했다.


스르르.


무당벌레는 마치 빙판 위의 피겨스케이트 선수처럼 기민하게 움직였다.

내가 백번을 꿈틀거려야 이동할 거리를 단 몇 번의 발놀림으로 손쉽게 추격한다.


‘미친! 이거 안 되겠는데?’


뛰어봤자 벼룩. 역시 옛날 조상님 말들 치고 틀린 말 하나 없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이 높은 나무 위에서 몸을 내던지는 것뿐.


‘설마 뒤지기야 하겠어?’


괜찮을거다. 애초에 근육이나 관절도 없는 미물이다.

하물며 무게와 질량도 형편없는 수준일 테고.


나는 학창 시절 때 배운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을 떠올렸다.

질량이 있는 물체는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작용한다.

이 힘의 크기는 두 물체의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두 물체 사이의 거리에 반비례한다.

그렇기에 하찮은 질량을 지닌 나 ‘미물’ 아무개에게 작용하는 중력 가속도도 형편없을 것이다···


‘씨, 몰라!’


밑져야 본전, 죽기 아님 까무러치기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절체절명의 순간.


타앗.


나는 몸을 던졌다.

약간의 추락감과 공기 저항만이 있을 뿐. 죽음의 공포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응?’


역시 미개한 질량 덕분일까.

중간에 꽤나 넓은 나뭇잎에 충돌한 뒤 지면으로 튕겨졌음에도 단 1의 타격감도 없었다.


‘휴.’


살았네.

여유가 생겨 잠시 숨을 돌리려는데.

아니나 다를까.

야생의 먹이사슬은 무자비했다.


‘이번엔 개미냐···’


유토피아인 줄 알고 내려온 지면도 지옥도 그 자체.

하필 재수 없게 일개미들 근처로 떨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주변에 떨어진, 자두와 유사한 열매에 정신이 팔려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지만.


‘역시 이불 밖은··· 아니 지상은 위험해.’


먹이사슬 꼴찌에 해당되는 나에게는 개미도 거신병 그 자체.


‘그래. 땅 밑으로 숨자.’


그래도 거기라면 좀 살만하겠지.

나는 부드러운 흙바닥을 향해 머리를 짓이겼다.

문제는.


‘존나 느리네···’


아무리 온몸을 비틀고 난리 부르스를 춰도 생각보다 진전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

그래도 하다 보니 나름의 요령이 생긴 걸까.

나는 기어이 몸을 숨기는 데 성공했다.


‘아오. 힘들어 뒤지겠네.’


반성이 된다.

맨날 일과 인간관계가 고되다고, 월급이 너무 적다고 불평불만을 일삼던 지난 인간으로서의 전생이.

벌레가 되고서야 절실히 깨달았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 아니 인간의 삶이 훨씬 윤택하다는 사실을.


‘그나저나···’


이제 뭘 어쩌지?

진짜 이대로 벌레로 살다가 뒤지는 운명인가.

앞으로 어찌 살아가야 좋을까 고민에 잠겨있을 때.


흔들흔들.


갑자기 저 밑 어디에서 전해지는 진동.

몸이 절로 들썩이는 걸 보면 보통내기가 아닌듯 싶다.


‘하아. 미치겠네···’


이거 보아하니 지렁이가 꿈틀대는 것 같다.

본래 지렁이는 흙이나 찌꺼기가 주식이지만 혹시 모른다.

먹이 섭취 과정에서 나까지 삼켜질지.


‘도망가자.’


방법이 없다. 살려면 천적을 피해 안전한 곳을 찾아야 한다.

나는 최대한 용을 써가며 몸을 움직였다.

이런 내 노력이 하늘을 감복한 걸까.


우우웅!


갑자기 커다란 진동이 내 전신을 강타하더니.

말 그대로 허공에 붕 떴다. 그 어떤 존재의 힘에 의해서.

인간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이런 우라질. 비 오는 날에 뒤지고 지랄이야!”


늙고 거친 음성.

나이든 남자는 불만을 토해낸다.


“도대체 뭐가 급한지 이런 좆같은 날씨에 매장해 달라 육갑을 떠들어 대는지 원! 진짜 내가 은화 한 닢만 아니었다면···”


알겠다. 지금 남자는 죽은 시체를 매장하기 위해 삽질하는 중이구나.

근데 왜 사람 목소리만 들리는 걸까. 애초에 난 청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벌레인데.

나는 벌레인 주제에 사유했다.

허나 그것도 잠시.

이내 내 몸뚱이는 흙덩이와 함께 빠른 속도로 추락했다. 아마 관 위로 떨어진 거겠지.


“흐흐! 그래도 뒈진 놈 하나 묻고 은화 한 닢이 어디냐! 오늘은 ‘푸른 고래’에서 생맥주 한 잔 마시며 카드놀이나 해야겠군.”


분에 넘치는 보수에 흥이 난 걸까.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는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작업에 열중하는 노인.


‘잠깐···’


그러고 보니 한국말이 아니잖아. 근데 왜 나는 이 낯선 언어를 다 알아먹는 거지?

하긴 전생의 기억을 가진 벌레가 된 마당에 뭔들 이상하겠냐만···

의문과 체념이 한데 뒤엉키는 와중에.


‘어?’


목관이 싸구려였던 걸까. 아니면 물 먹은 흙더미가 무거워진 탓일까.

관 위에 있어야 할 내 몸뚱이가 밑으로 떨어졌다.

그 말인즉슨···


‘하아.’


지금 나는 죽은 남자와 동거 중이다.

그것도 시체의 턱 부근에.

그걸 어떻게 아냐고?

그야 내 배때지에 짧게 깎은 수염 특유의 까칠함이 느껴지니까.


‘그래도 천적은 없어서 다행인 건가···’


이제야 한숨 좀 돌리겠구나.

잠시 수염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자 하는데.


[기생 가능한 숙주를 발견했습니다.]


[전용 특성 기생을 활성화하겠습니까?]


내 시야로 검붉은색의 글씨가 나타났다.

놀랍게도, 그것은 인디 게임 ‘헬 고운’의 안내창과 같은 형식.


‘미친. 내가 게임 속 벌레가 되었다고?’


그때였다.


[경고! 너무 오래 바깥 공기에 접촉했습니다.]


[한 시간 이내로 숙주의 뇌에 기생하지 못할 경우 사망합니다.]


다시금 기생을 권하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지랄.’


나는 처음으로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혀 몰랐다.

기생충이 된 내가 숙주를 인형사처럼 조종하고 다닐 줄을.


전용 특성 기생이 얼마나 개사기적인 능력인지를 말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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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16 ak******..
    작성일
    24.08.10 00:00
    No. 1

    “거리에 반비례” ->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 “중력가속도” -> “중력” 혹은 “충격량” 혹은 “힘” (중력가속도는 지구상 모든 물체에 9.8m/s로 일정하므로)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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