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 기생충으로 살아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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뀨우팡
작품등록일 :
2024.08.09 10:19
최근연재일 :
2024.08.09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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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9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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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DUMMY

사실 선택권은 전혀 없었다.

기생 아니면 죽음.

뭐가 어찌 됐든 일단은 생존이 최우선.


‘하아···’


근데 어떻게 기생하는 거지? 뭘 해봤어야 알지···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 때.


[추천 진입 루트]


[이목구비 그리고 항문]


내 난감한 상황을 눈치챈 시스템이 센스 있게 답해준다.

물론 기분은 썩 유쾌하지 않았지만.


‘··· 일단 항문은 절대 사절.’


아무리 하찮은 벌레가 된 나라지만 그렇다고 후각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인간 시절보다 한층 더 예민해진 것 같다.

아까는 경황이 없어 미처 인지하지 못했는데 머리 위에 달린 더듬이가 코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 중이다.


‘그렇다면 답은 이목구비인데···’


나는 최적의 루트를 개척하기 위해 눈보라를 뚫고 산을 오르는 셰르파처럼 사전 답사를 시작했다.


우선 첫 탐사 지역은 입. 현재 내가 머물고 있는 턱수염 캠프에서 가장 가까운 진입로다.

나는 배의 촉감을 곤두세운 채 입술 위에 올라탄다.

씨발. 말랑말랑한 감촉이 아주 엿같다.


‘으음···’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입술 주변을 배회했다.

혹여나 빈틈이 있나 확인했지만 허사.

입술 사이를 비집고 안에 머리를 박았지만 굳게 다문 이빨이 나의 출입을 거부했다.

무엇보다도.


‘씨발. 입냄새 존나 역겹네.’


사체의 구강 악취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도 그럴 것이 헬 고운은 중세풍 기반의 판타지 게임. 당연한 말이지만 치약이나 구취제거제 따윈 없다.


‘주둥이는 탈락.’


그다음 목적지는 코. 가파른 인중 비탈길을 내려가자 콧구멍 동굴이 나를 안내한다.


‘그래도 입보다는 훨씬 쾌적하겠지?’


나는 일말의 기대감을 품은 채 구멍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으으··· 제기랄!’


쾌적은 개뿔. 여기 역시 험지다.

일단 수북한 콧수염 숲이 나의 진입을 가로막는다. 거기에 코딱지는 덤.


‘일단 후퇴···’


나는 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여정을 떠났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눈. 나는 질끈 감긴 눈두덩이 틈새로 대가리를 들이밀었다.


‘오. 일단 스멜 부분은 합격.’


눈물샘을 막고 있는 눈곱의 비린내가 좀 역겨웠지만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어디 좀 더 탐색해 볼까.

나는 입을 앙 크게 벌려 눈곱을 물었다.

순간 구역질이 확 일었지만 잽싸게 고개를 틀어 토해냈다.


‘좋아. 이제 들어가볼까···’


개방된 눈물샘 구멍으로 머리를 밀었다.

그런데···


‘어? 왜 이리 좁아?’


이거 진입로가 너무 협소하다.

뭐, 온몸 비틀기를 시전하면 억지로 들어갈 수야 있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중간에 낀 채로 뒤질 염려가 있었다.

고로 눈은 불합격.

그렇다면 이제 확인할 곳은 하나, 귀다.


‘제발··· 나 많은 거 바라지 않아.’


애써 맨탈을 부여잡은 나는 귓구멍 입구에 도착했다.


‘으. 찌린내!’


귀라고 방심한 내가 바보지. 경단처럼 뭉친 귓밥에서 풍기는 특유의 냄새는 흡사 생선 비린내와 유사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점은 귀지 자체는 별로 없었다. 아무래도 평소 주기적으로 귀 청소를 한 모양.


‘그나마 여기가 제일 괜찮군.’


나쁘지 않다.

길 자체도 넓고 혐오 물질도 그나마 적은 듯싶다.


나는 곧장 숙주의 뇌를 향해 전진했다.


‘퉷! 퉤엣!’


좀 더 깊숙이 진입하자 찰지게 뭉친 귀지 문지기가 길을 막지만 뭐 어떠하리.

그냥 주둥이로 왕하고 한입 크게 물어버린 다음 뱉으면 그만이다.

왜냐. 난 혀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니까. 생각보다 할 만하다.


그렇게 얼마나 기어갔을까.

이쯤 갔으면 도착했겠지,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풍덩.


나는 물에 빠졌다. 정확히 말하면 뇌를 감싸고 있는 수막에.


‘오오. 여기가 뇌구나.’


물론 생각보다 큰 감흥은 없었다. 그냥 물컹한 젤리 같은 느낌이랄까.


뭐 별거 없네.

이제는 벌레 라이프에 적응한 내가 우두커니 있을 때.


[전용 특성 기생의 발동 조건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사망한 지 3시간이 지난 숙주입니다.]


[페널티로 모든 숙주의 능력치가 50% 감소합니다.]


[숙주에 기생하겠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이 빌어먹을 상태창이 기생을 권한다.


‘쩝. 진짜 엿같네.’


죽은 사람의 몸에 기생하다니.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었지만 뾰족한 방도가 없다.

뭐가 어찌 되었든 일단 살아야 하니.


‘그래. 그놈의 빌어먹을 기생. 하겠다.’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전용 특성 기생이 활성화 됩니다.]


[히든 클래스 기생충왕이 숙주를 지배합니다.]


[전용 특성 효과로 페널티 디버프가 20% 감소합니다.]


나의 기생이 시작됐다.


‘어어?’


내 몸이 뇌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마치 쇠의 성질을 끌어당기는 자석처럼.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견습 기사 진 하르말의 숙주화가 성공했습니다.]


번뜩!


나는 ‘눈’을 떴다. 칠흑 같은 어둠이 나를 반긴다.


‘··· 진짜 기생했다고?’


나는 ‘손’을 들어 관짝을 어루만졌다. 까칠까칠한 재질의 싸구려 목재를.


‘그것도 이미 죽은 몸으로?’


두근두근.


뛴다. 정지 상태의 심장이 다시 세차게 박동한다. 이미 싸늘히 식은 육신에 온기가 돌기 시작한다.


‘와···’


믿기지 않는다. 내가 게임 속 기생충이 되었다는 사실을 처음 인지했을 때보다 더.

나는 다시 인간이 되었다.

비록 그 방식은 기괴한 형태로 이뤄졌지만


“이게 새로운 몸. 이게 나···”


옛된 목소리다. 아마도 십대 후반 즈음?

거기에 견습 기사 클래스라.

보통 이런 경우 십중팔구 귀족 가문 태생이다.

물론 모든 귀족들이 다 지체 높고 부유하진 않다.

흔히 ‘몰락 귀족’이라 불리는, 말 그대로 겨우 작위만 유지 중인 족속들도 많았으니까.


“수상쩍군···”


이상하다. 아무리 몰락 귀족이라 해도 귀족은 귀족. 태생 자체부터 일반 백성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족속들이다.

그런데 이런 저급한 공동묘지 구석에 암매장된다고? 묘비 하나 없이? 이건 분명 뭔가가 있다.


‘마침 매장도 끝난 것 같은데.’


늙은 노인의 구시렁 거리는 소리도 더 이상 들려오지 않는 것을 보면 확실하다.


‘나가자.’


답답해 죽겠다. 관 속에 남아있는 공기로는 오래 버틸 수 없으니.


나는 있는 힘껏 관짝을 들어 올렸다. 역시 견습 기사 베이스라 그런지 보기보다 근력이 높다.


그렇게 일 분 정도 흙더미와 사투를 벌였을까.

죽기 살기로 발악한 끝에.


“허어어억!”


나는 탈출에 성공했다.


“아무도 없는 것 같네.”


주변에 느껴지는 인기척은 없었다.

나는 서둘러 훼손된 묫자리를 정리했다.

그 다음 잽싸게 묘지 옆 울창한 수목 사이로 몸을 숨겼다.


‘으으! 찝찝해 뒤지겠네.’


온몸이 역한 시취와 지저분한 흙탕물 범벅이다. 누가 보면 그야말로 상거지 꼴.

이 비주얼로 보란 듯이 위풍당당 성문에 접근하면 그냥 입구컷. 수상쩍은 범죄자로 낙인찍혀 감방에 투옥될 수도 있다.


‘안 되는데···’


행여나 주머니에 내 신분을 증명해 주는 물건이 있나 싶어 뒤졌지만 허사. 땡전 한 푼도 없다.

하긴 뭐가 있었다면 아까 그 노인네가 진작 털어갔겠지.


‘어찌한다.’


그렇게 상거지꼴로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데.



[전용 퀘스트 — 생존]


난이도 : EX


조건 : 헬 고운 클리어.


보상 : ???


제한 시간 : 4년.


설명 : 실패 시 헬 고운의 소멸



빌어먹을 시스템이 찬물을 끼얹는다.


“하아···”


진짜 가지가지 하네. 가뜩이나 정신 사나워 뒤지겠는데.

이제는 클리어 실패 시 세계와 함께 소멸한단다.

거기에 미해금 된 보상 꼬라지는 또 뭐고.


“흐음.”


그때였다.

한 남자가 등장했다.

궂은 날씨에 전혀 적합하지 않은 검은 정장에 검은 에나멜 구두.

긴 은발에 붉은 눈동자, 다소 창백한 피부에 수려한 이목구비까지.

흡사 조각 같은 미남자가 입꼬리를 올린다.


“이상하다. 분명 죽었다고 들었는데.”


그러자 어둠 속에서 나타난 집사 차림의 노인.


“집사. 어떻게 된 일이지?”

“글쎄요. 저도 처음 겪는 일이라···”


집사가 약간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인다.


‘미친!’


저 두 사람이 왜 여기에 있지?

대관절 어떤 이유로 일개 견습 기사 진 하르말을 죽인 거고.


나는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저 은발 미남자의 이름은 아벨.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나 귀족이요, 라는 아우라를 뽐내는 아벨의 작위는 대공. 제국에서 제일 가는 ‘삼재상’ 중 한 명이다.

그 옆에 있는 노인의 정체는 카일.

이 노친네 역시 제국의 십검주라 불리는, 가장 강한 10명의 소드 마스터 경지에 이른 검사들 중 일좌를 차지한 자고.


‘미치겠네···’


뭔가 수상쩍은 죽음이긴 했지만 설마 저 음흉한 아벨 공작과 연관된 일이라니. 이거 제대로 똥 밟았다.

고인물들이-나 또한 포함해서-분석한 ‘헬 고운 클리어가 불가능한 7가지 원인’ 중 하나가 지금 나를 찾고 있다.


“흐음. 분명 집사가 실패할 리가 없는데···”


탁!


아벨이 싱긋 웃으며 손을 튕겼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무슨 조화인지는 몰라도 갑자기 허공 위에서 떨어진 남자.


“어이쿠! 이, 이게 대체···”


놀랍게도 날 매장한 노친네의 목소리다.


“집사. 저 노인이 흥미로운 말을 꺼냈다고?”

“네. 푸른 고래에서 맥주를 마시며 카드놀이나 해야겠다고 그러더군요.”

“흐음. 역시···”


아벨 공작이 살짝 눈웃음을 친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우아한 귀족적인 제스처로 비춰지겠지만.

나는 안다.

지금 아벨은 심기가 불편하다.

그것도 많이.


“당신은 헬 고운 플레이어군.”


뭐야. 아벨이 어떻게 헬 고운과 플레이어에 대해 아는 거지?

그리고 나 말고 빙의한 사람이 더 있다고?


흡사 둔기에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 나를 강타할 때.


“네? 그게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노인이 덜덜 떨며 울부짖는다. 눈에 눈물이 고이고 가슴까지 탕탕 치며 결백을 호소한다.


“억울합니다! 소인은 평생 이곳 고운에서 살아온 원주민입니다!”

“이봐. 아직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된 ‘뉴비’라 기억이 가물가물한 모양인데.”


아벨이 씨익 웃는다.


“푸른 고래가 아니라 푸른 흰 수염 고래야. 그리고 거긴 싸구려 흑맥주만 팔고. 마지막으로 여관에서 도박 행위는 일체의 불법이고.”

“그게 아니라··· 쉰네가 이제 나이를 먹어 노망이 든 겁니다! 죽을 때가 되니 정신이 오락가락한 것이지요!”


노인은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눈물 콧물을 쏟아낸다.

어떻게든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지만.


푸확!


허사다.

집사의 검이 호선을 그리더니.


탁. 노인의 왼쪽 팔이 바닥에 떨어진다.


“끄어어억! 팔, 내 파아아알!”


노인이 피가 철철 흐르는 절단면을 부여잡고 바닥에 나뒹군다.


“고인물까지는 아니고 깔짝 플레이하다가 접은 모양인데···”


아벨이 착 가라앉은 눈으로 노인을 벌레 보듯 노려본다.


“이봐. 솔직히 말하면 고통 없이 저세상으로 보내주지.”

“커, 커헉··· 그 말 진짜냐?”


노인, 아니 헬 고운 플레이어가 본색을 드러낸다.


“그럼. 나 아벨 공작, 한 번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킨다.”


지랄. 권모술수의 화신인 네놈이 그럴 리가 없지.


‘명복을 빕니다. 부디 죽어서는 좋은 곳으로 가시길···’


미안합니다. 같은 동향 사람으로서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어서.


나는 곧 다가올 남자의 죽음을 기렸다. 가슴 한편에서 점차 커지는 무력감을 숨긴 채.


그때였다.

아벨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단어가 언급된 것이.


“혹시 네놈은 고인물 플레이어 ‘찹살떡’과 같이 플레이한 적이 있는가?”


고인물 플레이어 찹쌀떡.


놀랍게도 내가 헬 고운에서 사용한 캐릭터 닉네임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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