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한 깡패가 너무 유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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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천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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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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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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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염소 도둑놈(2)

DUMMY

상명하복은 조직의 제1 목표였다. ‘구석’이처럼 결손 가정에서 태어난 인호는 공부하는 것을 포기하고 김두한 같은 멋진 건달이 되기 위해서 주먹 세계 왔다고 했었다. 깡패 두목 김두한이 수표교 다리 밑 거지들을 챙기며 도와주는 모습이 의리 있어 보여서 좋았다고 했다.


6개월 전 조직에 들어 온 인호는 구석이보다 두 살 아래였다. 결손 가정이긴 했으나 부모님이 있는 인호는 자신보다는 형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인호 생각은 ‘구석’이와 달랐다. 차라리 없다면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라도 있을 텐데, 이틀이 멀다 하고 싸움만 하는 부모님은 차라리 없는 것 보다 못하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은 청소년 인지라 덩치만 큰 죽순처럼 마음이 약해서 형님들한테 꾸중을 듣거나 단체로 몽둥이를 맞는 날은 참지 못하고 울었다. 담력을 키워야만 하는데 참지 못하고 운다는 이유로 또 맞았다. 이중고였다.


“그리고 인마, 이런 일은 주인한테 우리가 얘기를 안 해서 그렇지 서로 나누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해.”

“나누는 일이요?”

“그래 인마, 이런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길거리에 염소를 매 둔다는 것은 누구든 가져가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일이라니까?”


교통사고를 일으킨 가해자가 큰 부상을 당한 피해자한테 왜 하필 그 자리에 있어서 사고가 나게 했느냐며 책임을 떠넘기는 것처럼 비겁한 일이라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구석’이는 양심에 걸리는 나쁜 일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약한 것, 비겁한 짓을 보면 마음이 쓰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염소를 주인에게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깡패 짓’과 ‘도둑질’ 두 가지다 좋은 일은 아니지만 깡패와 절도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강제로 끌려와 생전 처음 타보는 승용차에서 오돌 오돌 떨고 있는 겁먹은 염소를 모른 척 한다면, 도둑질과 염소를 죽게 하는 두 가지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었다.


염소는 자신에게 닥칠 운명을 짐작한다는 듯 ‘음매에’ ‘음매에’ 그치지 않고 울어 댔다. 처음엔 산머루 닮은 똥만 쌌는데 시간이 지나자 오줌까지 쌌다. 차내 휴지로는 해결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똥,오줌에서 코를 막아야 할 만큼 심한 지린내가 났다.


그러나 구석이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망치 형님은 빚쟁이가 숨어 들었다는 동네 입구 마트에서 막걸리를 사 평상에서 마시며 주인에게 빚쟁이를 염탐했다. 삐구형님도 자연스럽게 술친구가 되었다.


승용차엔 ‘구석’이와 인호, 염소, 셋만 남았다. ‘구석’이는 잔꾀를 냈다. 어떻게 해야만 염소를 주인에게 돌려 줄 수 있을까? 여기서부터 염소를 끌고 온 동네까지는 15분 거리였다. 용기를 내서 결단을 해야만 했다.


‘구석’이는 염소를 끌고 온 동네를 향해서 과감하게 차를 몰았다. 이럴 땐 생각을 오래하면 수많은 군더더기가 들러붙어 옳은 일을 올곧게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염소를 주인에게 돌려주겠다는 한 가지만 생각했다.


“형님! 어쩌려고 우리 마음대로 이러는 거여요?”

“인마, 우리가 깡패지 도둑놈이냐? 너도 김두한 같은 약한 사람들 도와주는 의리 있는 건달이 되고 싶어서 왔다며?”

“그거야 그렇지만. 저 형님들이 끌고 온 것인데, 우리가 아무 말도 안 하고 갖다 주면 하극상이잖아요.”

“하극상 좋아하네? 너는 졸려서 차에서 자느라 아무것도 몰랐다고 해.”


***


어느 새 어둑어둑 땅거미가 내리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염소가 싼 오줌,똥 냄새가 코를 찌를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똥 구멍을 막을 수도 없었다.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도 않았다.


코를 막고 오만상을 찡그리는 사이 염소를 데려온 마을에 도착했다. ‘구석’이는 급한 나머지 재빨리 마을 회관 전봇대에 염소 고삐를 묶어두었다. 염소는 계속해서 ‘음매에’ 소리 내어 울었다. 주인이 찾아갈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잘못 채운 단추를 바로 채운 듯 안도감이 들었다.


이제는 재빨리 돌아가 망치 형님만 설득시키면 되었다. 두 사람은 이곳에 술 마시러 온 사람들처럼 아직도 마트 앞 평상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어떻게 구워 삶았는지 마트 주인까지 나란히 앉아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너희들 어디 갔다가 왔냐? 염소는 어디 있고?”

“형님! 그것이 문제가 좀 생겨서요.”


‘구석’이는 대답을 제대로 못하고 머리를 긁적이며 머뭇거렸다.


“글쎄, 이 새끼야! 염소는 어디 있냐고?”


망치 형님은 자신이 진짜 염소 주인이라도 되는 듯 불같이 화를 냈다. 계속해서 말을 안 하면 후려칠 기세였다.


“제가, 염소 알레르기가 있어서 같이 차 안에 있을 수가 없어서요. 여기 한번 봐 봐요? 얼마나 심하게 났는지?”


‘구석’이는 잔꾀를 부리느라 피부 조직이 약하고 부드러운 목 주변을 미리서 세차게 긁어 놨었다. 그러자 두드러기 자국처럼 발진이 번졌다.


“그래서 나한테 물어 보지도 않고 네 맘대로 갖다가 줬단 말이야?”

“형님! 차 한번 보세요. 염소가 똥,오줌을 얼마나 많이 쌌는지 냄새도 심하고. 형님은 술 마시고 있어서 '선 조치, 후 보고' 하려던 참이었어요.”


“하, 요 쥐새끼 같은 놈 좀 봐라? 깡패는 해도 도둑질은 안 한다 이 거지? 구석이 너, 알레르기라는 것이 애매하긴 하지만 봐주는 것은 요번 한번 만이다. 다음부턴 국물도 없어?”

“예. 형님! 확실히 하겠습니다.”


배운 것이 부족 투박한 깡패는 욱하는 것은 있었지만 의외로 단순한 면도 있었다. 형님 최고! 라고 인정해 주고 띄워주면 웬만한 것은 단순하게 넘어갔다.


전봇대에 고삐를 메어둔 염소를 주인이 찾아 갔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찾아 갔다면 주인은 누군가 마음씨 좋은 사람이 길 잃은 염소를 주인한테 돌려주려 회관 전봇대에 묶어 둔 것이라고 좋은 생각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자 눈썹 닮은 초승달이 산 자락에 걸려 있었다. ‘구석’이는 아직까지도 모양이 비슷한 ‘초승달’과 ‘그믐달’을 정확하게 구별하지 못했다.


‘구석’이는 오늘 형님들이 양심을 속이고 훔친 염소를 주인에게 돌려 줘 까딱했다가는 개소주집에서 죽을뻔한 염소 목숨을 건졌다. 몇 시간 동안 차 안에서 염소와 함께 있느라 온 몸 똥냄새가 배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음매에’ ‘음매에’ 염소 우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했다.


***


내리막길은 페달을 밟지 않아도 자전거 바퀴가 혼자서 구르는 것처럼 아무 짓을 안 했는데도 세월은 혼자서 굴러만 갔다.


약한 사람들을 겁주고 괴롭히는 깡패 생활은 자신도 모르게 지옥 행을 쌓는 업보(業報)가 되었다. 이모님은 며칠 전 오야붕 아저씨한테 폭행을 당해 뇌진탕으로 병원에 입원 했다.


술과 담배는 최근 시작한 것이 아니고 오래 전 외로움과 참담함을 달래려고 시작했던 것인데, 오야붕은 새삼스럽게 ‘여자가 건방지게 술과 담배를 한다.’는 이유로 상소리를 해 댔다.


그러다가 단 한마디라도 자신이 듣기 싫은 말대꾸를 하면 무서운 헐크가 되었다. 험상 궂은 얼굴로 육두문자를 해 대며 이모님을 현관 문짝에 내팽개쳤다. 그 바람에 문 틀에 머리를 부딪쳐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이모님은 고통과 서러움에 외마디 비명을 질러 댔다. 오늘도 승부가 빤한 일방적인 폭력을 시작한 것이었다.


보고 있던 ‘구석’이가 무섭고 놀라서 그만 하라고 소리를 질러 댔다. 그러자 '매사 불만이 많은 너도 이 년과 똑같은 놈’이라고 몇 차례나 뺨을 후려 갈겼다. 순간 ‘구석’이도 눈이 뒤집힐 만큼 화가 났다.

자존감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오야붕을 개구리처럼 땅바닥에 패대기치고 싶었다.


희한하게도 뺨은, 맞았다는 아픔보다는 상대를 쳐 죽이고 싶을 만큼 자존심이 상했다. 머리 끝까지 화가 났다. 그러나 수십 명 졸개를 거느린 오야붕을 이길 수는 없었다.


병상에 머리를 싸매고 누워있는 이모님은 ‘구석’이 뿐이었다. 서너 평 좁은 병실이었지만 잠시나마 평화가 찾아 왔다. 젊은 이모님과 청년 구석이 모습은 옆 사람들에겐 행복한 모자(母子)로 보였던 것 같다. 건너 건너 병상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가 아들이냐며 보기 좋다고 시샘 했다.


***


얼마 전부터 기와집에서 20키로쯤 떨어진 도회지 마을에 재개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얼핏 듣기엔 경사진 산 동네와 기다란 시장 통 헌 집을 뜯어내고 새집을 짓겠다는 명분은 좋았다. 그러나 다방 구석진 탁자 똑같은 성냥개비로 탑을 쌓듯 천편일률적 세상은 단순하지 않았다.


수십 년 전부터 이곳에서 모여 살던 사람들은 거미줄처럼 크고 작은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킨 지역이었다. 설사 솔로몬 지혜처럼 묘수가 있다 해도 단박에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본주의란 정해진 먹이를 가운데 두고 서로가 먹겠다고 으르렁대는 게임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무슨 일이라도 최우선적으로 돈 만을 생각하는 오야붕 아저씨는 자신이 ‘해결사’라도 된 듯 기일을 정해서 이주민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 해 주기로 시공사측으로부터 큰돈을 받아냈다.


메뚜기도 가을 한 철 신바람 나서 이권 사업에 싱글벙글했다. 나중 공사가 시작되면 ‘함바’나 ‘샷시공사’는 자신이 알선한 업체가 맡아서 하겠다고 허접한 계약서를 들고 다니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깡패 조직으로서는 떼돈을 벌 수 있는 기회라고 믿었다.


성격이 급해서 1차로 이주 한 집이나 가게는 유리창에 붉은 색 스프레이로 ‘공가’라고 쓴 후 한 칸씩 정리해 나갔다. 문 틀도 유리창도 빈집처럼 부쉈다. 반면 가족의 생존권을 위협 받는 반대 주민들 역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이대로는 비워줄 수 없다고 극렬하게 저항했다.


가족 밥그릇을 뺏기는 가장(家長)은 눈에 보이는 것도, 못하는 일도 없었다. 이주 책임을 맡은 깡패 집단과 반대 주민들의 밀고 밀리는 극렬한 싸움이 벌어졌다. 세상일이란 묘하게도 법으로는 풀 수 없는 어중간한 것들이 있었다.


***


오야붕은 부 두목 무등산 아저씨와 통화에서 ‘가장 극렬하게 저항하는 한 놈을 잡아 본 보기로 병신 만들어야 겁을 먹고 물러간다.’고 했다. 반대하는 주민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간단하게 생각했다.


그러면서 이 일은 전과(前科)나 처벌 경력이 없는 나이 어린 ‘막내 인호’에게 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훈장을 달아줘야만 조직에서 신임을 얻고 클 수 있다고 선심 쓰듯 말했다.


오야붕 아저씨와 함께 기와집에 사는 ‘구석’이는 반대 주민을 몰아낼 방법을 귀가 따갑도록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반면 가족을 지켜야만 하는 가장(家長)과 돈이라면 양심을 저버리고 주먹과 연장으로 싸우는 깡패 집단은 애초 적수가 아니었다.


더구나 생존권을 위해 재개발을 반대하는 주민을 칼로 병신 만든다는 것은 비겁하고 나쁜 일이었다. 한 가정을 송두리째 파탄 내는 중대한 범죄였다.


그러나 자신들 이득을 위해서라면 산 자락 평화롭게 풀을 뜯던 남의 염소를 훔치듯 돈이라면 무슨 일이라도 한순간 망설임도 없었다.


순간 ‘구석’이는 오야붕 아저씨에 대한 불신이 하늘까지 닿았다. 마음대로 할 수 없도록 자신이 어떻게든 훼방 놔야겠다고 생각했다.


무리 지어 몰려 다니는 깡패 일행을 보고 반대 주민들은 무서워서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힘없고 약한 주민들이 불쌍했다. 자신을 친형처럼 따르는 인호도 마찬가지였다.


인호는 틈 날 때마다 불우했던 가정 생활이나 부부 싸움만 했던 부모님에 대한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뻘 인호를 위해서라도 이 일은 자신이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경찰에 잡혀가게 되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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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화 적개심이 부른 죄 +1 24.08.15 1,293 21 11쪽
» 4화 염소 도둑놈(2) +1 24.08.14 1,443 19 12쪽
3 3화 염소 도둑놈(1) +1 24.08.13 1,690 25 11쪽
2 2화 모질고 척박했던 초년 +1 24.08.12 1,924 35 12쪽
1 1화 두 사람 운세(運勢) +2 24.08.12 2,888 4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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