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한 깡패가 너무 유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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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천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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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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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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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운방사’를 찾아가다

DUMMY

교도소 감방에서 가졌던 다짐대로 마중을 나왔던 기와집 식구들과 여러갈래 마음으로 이별을 했다. 주변환경과 만나는 사람들을 바꿔야만 자신이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호는 오래 전부터 자신이 해야 되는 일을 구석이 형님이 대신 했다고 생각,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오야붕에 대한 적개심에서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되는 조직 내 형님을 찔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안 해도 되는 잘못을 저지르고 감방에서 3년이나 썩었다는 참담함을 익히 아는지라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오며 죄송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형님! 어디로 가시든지 건강하세요. 그리고 틈틈이 전화도 주시고.”

“인마! 어디로 가든지 떠나면 그만이지. 전화는 왜 자주 하냐?”


이모님 역시 집도 절도 없이 세상천지 챙겨줄 부모님이나 친인척 하나 없는데 어디로 가느냐고 끝까지 따라오며 손을 놓지 않았다. 지갑에 있는 돈을 한 푼 남기지 않고 쥐어 주었다.


지옥 같던 감방 생활과 달리 파란 하늘을 언제라도 올려다 볼 수가 있었다.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라서 긴장은 되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오야붕이 있는 기와집을 고집할 필요는 없었다.


“이모! 저기 시외버스 터미널에 세워 줘요.”


구례 ‘운방사’를 찾아 가야되겠다고 다짐했다. 여섯 살 때처럼 다시 혼자가 되었다.


***


새벽 시간 두부만 먹고 지금껏 굶은 탓인지 시장끼가 돌았다. 식당에 들어가자 운동장처럼 넓은 홀에 아직은 손님이 없었다.


널찍한 식탁 위에서 보글보글 찌개가 끓었다. 김치찌개에 라면사리를 넣은 사제 밥은 감방에서 먹었던 관식과는 달랐다. 라면 발을 호로록 넘기며 맛을 음미할 때쯤 출소했다는 자신을 다시 실감할 수 있었다.


느긋한 마음으로 식사를 마쳤다. 밥값을 계산할 때서야 주머니가 가벼운 신세를 깨달았다. 바깥 세상은 돈이 없다는 절박함이 감방과는 달랐다.


20년도 훨씬 전 탁발스님이 적어준 쪽지를 보고 무작정 구례 ‘운방사’를 찾아가는 길!

시외버스 손님이라곤 드문드문 서너 명 노인들만 있었다.


열린 차창으로 덜커덩 소리가 들려왔다. 따스한 햇살도 들어왔다. 서너 평 감방과 달리 살아 있는 세상을 온몸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바깥을 나가기만 하면 양은 냄비에 라면을 3개쯤 넣고 보글보글 끓여 신 김치 안주 삼아 소주를 맥주 컵에 부어 단숨에 벌컥벌컥 마시고 싶었었다.


담배개피가 절반쯤 타 들어 가도록 숨이 멈출때까지 깊이 빨아 연기가 배꼽까지 가도록 어지럽게 피우고 싶었었다.


헌데, 교도소 문을 나선지 반나절! 사람 마음은 참으로 간사했다.

감방에서 가졌던 마음은 깡그리 사라졌다. 이제부터 어디를 가서 이슬을 피하고 어떻게 살아야만 제대로 살 수 있을까? 어둠이 내리는 저녁이 오는 것이 걱정 되었다.


전국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지도를 챙기는 것처럼 ‘구석’이는 여섯 살 적 스님이 적어준 쪽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부처님을 모시는 자신도 튀밥 값을 해야 할 것 아니냐’고 삼촌에게 목소리를 높였던 스님 목소리가 또렷하게 떠올랐다.


***


이른 아침 출발했지만 버스를 기다리고 바꿔 타는 바람에 오후가 돼서야 구례에 도착했다. 이곳은 불교 신자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신라 고승들이 지었다는 ‘화엄사’가 있는 곳이었다.


우리나라 국보와 보물을 가장 많이 보유한 사찰이었다. 지리산자락 구례는 모래가 좋은 섬진강 주변이었다. 주머니 돈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초행길이라 터미널에서 택시를 탔다.


“아저씨, 산동마을 ‘운방사’요.”


50대 남짓 됐을까? 풍채 좋은 대머리 택시 기사는 뒷좌석 손님 ‘구석’이를 몇 차례나 룸미러를 통하여 슬금슬금 쳐다봤다.


“왜요? 제 얼굴에 똥이라도 묻었어요?”


‘구석’이는 장난스럽게 농담을 했다.


“아니요. 이 동네서 꽤나 오랫동안 운전 했지만, 이 시간 손님 차림으로 운방사에 가는 사람은 없어서요. 혹시 스님이세요?”

“하하, 머리카락이 이렇게 긴데 스님이라니? 재밌으시네요. 한번 알아 맞혀보세요.”


감방 생활, 스님처럼 빡빡 머리를 할 때면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전과자란 사실을 두 배쯤 실감했다. 머리카락은 얼굴 만큼이나 여러가지 것을 담고 있었다. 굳은 절개를 나타내며 머리카락을 자른 선비도 있었다.


“이 일을 40대 초반에 시작, 이제 내년이면 환갑이니까 강산이 두 번 변하는 긴 세월이라서, 내가 행색만 보고도 반쯤은 점쟁인데 머리도 그렇고, 손님은 도무지 종 잡을 수가 없어서요.”


“네, 어제까지는 관식(官食)먹다가 오늘부터는 민간인 신분이니 그러기도 하겠네요. 저도 마음 따라 발길 따라 가는 초행이네요.”


“관식이라면 군대를 말하는 것 같은데, 제대를 했으면 곧장 집으로 가야지. 왜 운방사에 가시는지?”


별다른 생각 없이 감방에서 먹었던 식사를 관식이라고 표현했던 것인데, 아저씨는 군에서 주는 ‘짬밥’과 교도소에서 주는 ‘콩밥’을 혼돈한 듯 했다. 그러나 굳이 교도소라고 솔직함을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혹시 절에 계시는 스님이 부모님이라서 찾아 가는지도 모르겠지만.”


기사아저씨가 혼잣말을 했다.


“부모님이라니요? 한번 맞혀 보세요. 택시비 따블로 드릴 테니까.”


아저씨는 이젠 대 놓고 뒷좌석 ‘구석’이를 돌아다 보았다.


“거참, 희한한 일이네요. 말씀도 잘 하시고 성격도 무척 쾌활해 보이시는데. 운방사는 남자들 보다는 나이 지긋한 여자들이 많이 가고, 주지 스님을 만나거나 불공을 드리러 가는 아주머니들은 주로 아침나절 가거든요.”


기사 아저씨는 옆집 가정사를 살피듯 모든 것을 꿰뚫고 있었다.


***


어느덧 마을 길로 접어들었다. 평평한 들녘 띄엄띄엄 집들이 있는 꽤나 큰 동네였다. 멀리서 소 똥 냄새가 바람을 타고 고약하게 왔다. 어느 집 외양간에선 가 ‘음-머’ 하고 황소가 긴 울음소리를 냈다.


산으로 이어진 좁다란 1차선, 두 마리 황소가 양쪽에서 온다면 오도 가도 못하는 좁은 길이었다. 뱀 허리처럼 구불구불한 길을 얼마쯤 올라갔을까? 바람이 쉬어가는 골짜기, 제법 큰 절이 보였다. 높다란 지붕이 오야붕 기와집을 연상케 했다.


택시에서 내린 ‘구석’이를 보고 여승(女僧)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가까이 왔다.


“어서 오세요. 처사님!”


‘구석’이를 향해서 헐렁한 승복차림 아주머니가 합장을 했다. 그러나 절반만 스님인 듯 건네는 말투가 세련되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하게 했다. 그 사이 외부인 방문을 눈치 챈 강아지가 가까이 와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뒤편 커다란 소나무 아래 7~8명 스님들이 모여있었다. 운방사와 소나무는 누가 먼저 자리를 잡았을까? 태풍도 막아낼 것 같은 아름드리 소나무! 웅성웅성 스님들이 모여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일까? 궁금증이 생긴 ‘구석’이는 가까이로 갔다.


“어디, 개똥별이라도 떨어졌어요?”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개구쟁이적, 소나기가 그친 뒤 초승달모양 무지개가 나타나면 매미 채를 가지고 앞산 으로 개똥 별을 주으러 다녔던 기억이 생각났다.


“그게, 저기 나무 꼭대기 고양이가 올라갔는데 무서워서 못 내려와요."


스님이 소나무를 향하여 손가락질 했다.


“고양이가요?”

“나무아미타불! 벌써 열흘째입니다. 굶어서 탈진하면 떨어져 죽을텐데.”


올려다보니 정말 누런 점박이 고양이가 아름드리 소나무 가지에 웅크리고 있었다. 아마도 호기심에서 날카로운 발톱을 이용 올라갔는데 내려오는 것은 무서워서 포기한 듯 했다.


그러나 스님들은 웅성웅성 쳐다만 볼 뿐 도와 줄 방법이 없었다. 벌써 열흘이나 됐다며 탈진해 죽는다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잠깐만요. 혹시 밧줄 같은 거 있을까요? 아, 큰 바구니도요."


‘구석’이는 줄 끝에 바구니를 매달았다.


“혹시 맛있는 냄새나는 구운 ‘소세지’ 같은 것도 있습니까?”


채식만 하는 절간이라 모두가 고개를 가로 젓는 데 택시에서 내렸을 때 '처사님'이라며 말을 걸었던 아주머니가 구운 소세지를 가져왔다.


소세지를 받아 든 구석이는 양말을 벗고 맨발로 전기 업자가 밧줄을 이용, 전봇대를 오르듯 과감하게 소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태권도, 유도, 합기도 단수가 두 자리 수! 구석이 근력은 매 끼 풀대기만 먹는 스님들과는 하룻강아지와 범처럼 차이가 났다.


다람쥐처럼 올라가던 ‘구석’이가 4층 높이 가지에 웅크리고 있는 고양이 주변까지 갔다. 그러나 놀라지 않게 눈을 슬쩍 피했다. 급하게 잡으려고 하다가는 더 올라가거나 아래로 떨어지면 큰 낭패였다.


그리곤 바구니에 든 소세지 냄새를 맡고 다가오기를 진득하게 기다렸다. 지금부턴

시간 싸움이었다. 어찌나 편안하고 진득하게 기다렸는지 고개를 들고 쳐다보던 스님들 모두가 지쳐버렸다.


그리고도 얼마나 기다렸을까? 탈진한 고양이가 늘보 걸음을 했다. 천천히 다가왔다. 먹을 것을 찾아 스스로 바구니에 들어온 것이었다. 고양이를 구사일생으로 구했다. 열흘 만에 스님들과의 재회였다.


안타깝게 지켜보던 스님들이 탈진한 고양이와 맨발 차림 ‘구석’이를 보고 감동의 박수를 쳤다. 단 한 사람 의도 된 것 없이 마음으로 치는 자랑스런 박수였다.


***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그런데, 오늘 큰 도움을 주신 처사님은 누구신지.”

“성함은 잘 모르지만, 운방사 스님 한 분을 찾아 왔는데요...”


구석이가 말끝을 흐렸다.

스님들이 ‘구석’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핀다는 느낌이 들었다.


새벽까지 감방에서 징역을 살았던 모습인지라 머리도 짧고 푸석푸석한 피부가 세련되지 못했다. 몇 시간 전 택시 기사도 손님을 모시는 일을 오래했지만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손님’이라고 부모님 만나러 가느냐 했었다.


“여기 운방사에는 공부하는 젊은 분까지 열 명이 넘는 스님이 있습니다만.”


‘구석’이는 여섯 살 적 스님이 적어준 쪽지를 내 밀었다.


“글씨체로 보아 아마도 ‘보국스님’을 말씀하신 것 같은데, 오늘은 마을로 탁발(托鉢)을 나갔습니다. 들어오실 때가 되긴 했지만.”

“오래전에도 민가를 다니던 중에 만났는데 아직도 탁발을 다니시나 봐요?”

“나무관세음보살! 스님이 탁발하러 민가에 가는 것은 불심(佛心)을 키우는 일이라 ... 이쪽으로 오세요.”


스님이 안내한 곳은 사무실처럼 생긴 정갈한 방이었다. 손님들이 묵어가는 객방으로 보였다. 나무로 된 탁자만 중앙에서 빈 방을 지키고 있었다. 사방이 창문 하나 없는 독방 이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깡패는 깡패대로 스님은 스님대로 교도소를 나오며 마지막으로 인사했던 교도관은 지키고 가두는 것이 직업인지라 무조건 상대방을 의심스런 눈초리로 살폈다.


한참을 기다리고 서야, 50대로 보이는 스님이 헛기침을 하고 들어왔다. 민가(民家)로 탁발을 나갔다던 스님이 마치고 온 듯했다.


“나무관세음보살! 저를 찾는다고 들었습니다만.”


오래 전, 이모님 얼굴처럼 하얀 스님은 아니었다. 허긴 20년 세월은 강산을 두 번씩 변하게 하는 기나긴 세월이었다.


그러나 수십 번 수백 번 그려온 ‘이목구비’는 어렴풋이 남아있는 듯 했다.


“스님! 저는 여섯 살 적 탁발 다니시던 스님을 ‘신원리’에서 만났던 ‘이구석’인데, 알아보시겠습니까?”


‘운방사’ 주소가 적힌 빛바랜 쪽지를 내 밀었다.


“나무관세음보살! 어렸을 적 만나고 어른이 되어 만나는 이런 경우는 드문 일이라. 밖에서 스치듯 만났다면 못 알아 볼 뻔 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스님은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잠시 침묵에 잠겼다.


“기억납니다. 그 때 아저씨를 따라다니며 튀밥 기계를 돌리는 꼬마를 보고 나중 찾아오라고 주소를 적어 줬었지요. 나무관세음보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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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화 ‘운방사’를 찾아가다 +2 24.08.16 1,246 24 12쪽
5 5화 적개심이 부른 죄 +1 24.08.15 1,294 21 11쪽
4 4화 염소 도둑놈(2) +1 24.08.14 1,443 19 12쪽
3 3화 염소 도둑놈(1) +1 24.08.13 1,690 25 11쪽
2 2화 모질고 척박했던 초년 +1 24.08.12 1,924 35 12쪽
1 1화 두 사람 운세(運勢) +2 24.08.12 2,888 4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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