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남의 요리는 특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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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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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3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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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3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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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

DUMMY


-빠빠라밤~!


[백기용 어린이, 성공 프로젝트 Step. 1!]

[Step. 1 <백반 컵밥> 메뉴 정복하기!]


“이, 이게 뭐야?!”


기용은 화들짝 놀라서 하마터면 뒤로 자빠질 뻔했다.


“사장님, 무슨 일 있어요?!”


부엌 밖에서 듣고 있던 유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물었다. 우당탕 소리가 나면서 기용이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다.


“아니야! 별일 없어.”


기용은 그래도 손님은 유영을 놀라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앞에 뜬 상태창을 바라봤다.


평범한 게임에서 뜨는 상태창이 아니었다. 묘하게 촌스럽고 유아틱한 것이···. 그래 딱 애들이 쓰는 교육용 게임 느낌이었다.


아침에 분명 미신 같은 건 믿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온 기용이었지만, 눈앞에 뜬 건 아무리 봐도 묘했다.


상태창은 기용의 이름도, 이 컵밥 가게의 상호도 그리고 기용이 성공을 바란다는 사실도 전부 알고 있었다.


그때였다. 기용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려는 듯 새로운 창이 다시 떴다.


[메뉴명: 제육 컵밥]

[완성도: 4/10 판매 금지!]

[부족한 재료: 돼지고기 앞다릿살, 대파, 깻잎]

[부족한 맛: 돼지고기의 누린내가 심합니다. 채소의 신선도가 떨어져 음식에 풍미가 나지 않습니다.]

[Tip! 돼지고기의 앞다릿살을 쓰세요. 양념 후 하루 정도는 숙성하세요. 신선한 채소를 쓰세요.]

-빠빠빠빠밤. 빠빰. 빠빠빠라빠라밤.


“허!”


핑크빛에 리본으로 장식된 상태창이었다. 컵밥은 가성비가 중요했다. 싼 가격에 맞는 적당한 음식을 팔기 위해 기용은 늘 재료도 가성비를 따졌다.


돼지고기의 앞다릿살 대신 조금 더 싼 뒷다릿살을 썼고 제육볶음에 들어갈 채소도 양파와 다진 마늘이 전부였다.


가성비를 따진다고 해서 값이 싼 하급 채소만 산 건 아니었다. 적당한 가격의 채소를 샀다.


하지만 장사가 영 되지를 않으니, 재료를 묵히는 날이 많아졌고 자연스럽게 신선도는 떨어졌다. 고기를 재워두는 것도 그랬다.


하루 전에 재워둘 정신없이 늘 청소하고 퇴근하기에 바빴다. 이 상태창은 기용의 상황을 마치 CCTV 보듯 꿰뚫어 보고 있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기용이 설치한 매장 내 CCTV는 손님들이 앉을 테이블 쪽에 있는 한 대가 전부였다.


“사장님, 아직이에요?!”


원래는 시간이 이 정도 되면 기용이 가스 불을 켜고 고기를 볶는 소리가 났어야 했다. 하지만 아까의 큰 소리 이후 부엌에서 이렇다 할 소리가 나지 않고 있었다.


“미안.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느라! 금방 할게.”


기용은 서둘러 답했다. 그리고 가스 불을 켰다. 상태창에 대한 생각은 이따 유영이 간 후에 해도 늦지 않았다.


일단 대파와 양파를 썰 준비를 했다. 기용의 제육 컵밥에 원래 대파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상태창에서 넣으라고 하니 넣어볼 생각이다.


깻잎은 가게에 있지도 않아서 넣을 수도 없었다. 대파를 어슷하게 썰려던 그때였다.


[Tip! 대파를 4~5cm 길이로 크게 썰어주세요. 대파의 풍미가 올라갑니다.]


-아차! 칼을 쓸 때는 조심조심~ 백기용 어린이, 안전하게 칼 사용할 수 있죠~?


친절한 여성의 음성으로 어린아이 달래듯 물었다. 기가 찼다. 이제 채소를 써는 법까지 간섭하는 상태창이었다.


그냥 무시하고 원래 하려던 대로 썰려다가 원래 기용의 제육 컵밥이 완성도가 10점 만점에 4점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게다가 옆에 빨간 글씨로 뜨던 ‘판매 금지’라는 말도. 기용은 한숨을 푹 내쉬고 대파를 큼지막하게 썰었다.


“그나저나 아까부터 이건 대체 무슨 소리야.”


상태창이 떠 있을 때마다 비눗방울이 터지는 소리, 실로폰 소리와 같은 게 섞여서 상태창의 BGM을 깔고 있었다.


대파가 익어갈 때쯤 아침에 재워둔 고기를 프라이팬에 넣으려던 때였다.


[Tip! 다진 마늘 두 스푼과 참기름 한 스푼, 후추 한 스푼을 넣어주세요. 누린내가 덜 나게 할 수 있습니다.]


“네. 네.”


이쯤 되니 요리는 상태창이 하고 기용은 조리하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도 상태창이 하는 말 중 틀린 말은 없어서 다 따랐다. 유영이 기다리고 있기도 하고.


중불에서 고기를 잘 볶고 있는데 귓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고기가 어느 정도 익으면 센불로 후~~수분을 날려~! 주세요.


기용의 아이 취급하는 낯 간지러운 목소리가 흐른 후로도 기용의 앞을 가로막고 뜨는 상태창들.


[Tip! 요리용 토치로 불맛을 입혀 주세요.]

[Tip! 밥은 적당량 퍼주세요. 지금 양은 제육볶음의 양념이 충분히 배지 못할 양입니다.]

[Tip! 완성된 요리에 깨를 뿌려주세요.]


하다못해 밥의 양까지 조절할 줄 아는 상태창이었다.


<완성>

[메뉴명: 제육 컵밥]

[완성도: 7/10]

[다음에는 완성도를 더 올릴 수 있죠~?]

-빰빠밤. 빠라바밤.


잠깐 사이에 익숙해진 상태창을 손으로 휘휘 저어버리고 유영에게 제육 컵밥을 건넸다. 자꾸 뜨는 상태창도 정신없었지만, 정말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은 깜찍 발랄한 BGM도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제육 컵밥의 냄새가 조금 다른 것 같은데요?!”


후각에 예민한 유영이었다.


“오늘은 조금 다르게 요리해 봤는데 네 입맛에 어떨지 모르겠구나.”


기용이 생각해도 부족한 점을 상태창이 잘 집어주긴 했지만, 그래도 유영은 기존 기용의 음식이 좋아서 왔던 단골이었다.


맛이 갑자기 달라진다면 싫어할 수도 있어서 미리 언질을 줬다.


“왜 갑자기 다르게 요리하셨어요? 이혼하고 각성이라도 하셨나?!”


유영은 그렇게 말하고 키득댔다.


“뭐 그런 셈이지.”


기용은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들썩였다. 그리고 내심 유영이 뭐라고 말할지 기대됐다.


유영의 답에 따라 상태창의 처분을 결정할 것이다. 갑자기 나타난 만큼 기용이 처분한다고 해서 될 것 같지도 않았지만.


유영이 입을 크게 벌리고 제육볶음과 밥을 적당량 퍼서 입에 넣었다. 기용이 컵밥을 가져왔을 때부터 전과 다르게 깨도 뿌리고 향도 다르다는 걸 느꼈다.


평소보다 요리하는 시간도 좀 걸리길래 유영은 기용이 이혼의 충격 때문인가 싶었다. 유영은 이혼을 해본 적이 없으니, 그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는 없지만 CC였던 남자친구와 헤어졌을 때를 생각하면 기용의 심경이 어느 정도 이해됐다.


오늘의 요리가 맛이 없다고 해도 이해해 줄 생각이었다. 어차피 <백반 컵밥>에 맛있는 음식을 먹겠다고 오는 건 아니었다.


잘생긴 기용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오는 거지.


“······!!”


입에 넣을 때부터 전에 없던 불맛이 느껴져서 특이했지만, 맛은 더욱 좋았다. 고기에서 나던 누린내도 덜했고 그 자리를 불 향이 채웠다.


대파도 맛있게 익어서 고기와 함께 씹으니, 입안에서 대파의 풍미와 고기가 만나 환상이었다.


“사장님, 대박인데요? 너무 맛있어요!”


걱정스럽게 쳐다보고 있는 기용에게 유영은 제 엄지를 추켜세우고 다시 제육 컵밥의 맛을 보기 한창이었다.


“맛있어···?”


기용은 거의 게걸스럽게 제육 컵밥을 먹어 치우고 있는 유영을 멍하니 바라봤다. 유영이 한 번도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다.


오히려 입이 짧은 쪽이었다. 음식을 시켜놓고는 음식을 먹을 생각은 하지 않고 실컷 떠들다가 가는 날들도 있었다.


그때마다 기용은 유영의 마른 체형이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밥을 저렇게 먹지 않고 내 떠들기만 하니, 살이 찔 틈이 없겠다고.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유영의 모습은 미튜브 영상에서나 보던 먹방 미튜버의 그것이었다.


“와···. 찢었다.”


10분도 되지 않아 컵밥을 전부 먹어 치운 유영이 멍하니 혼잣말했다. 유영은 원체 입도 짧고 식욕이 별로 없는 스타일이었다.


같이 활동하는 학보사의 동기, 후배들은 맛있는 음식에 집착했지만, 유영은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밥은 끼니때가 됐으니까 먹는 숙제 같은 거였다.


물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맛을 느끼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다시 먹고 싶은 음식은 없었다.


“너무··· 맛있어요. 제육 컵밥에 무슨 짓을 하신 거예요? 한 번도 이런 맛을 내신 적 없잖아요···.”


유영은 거의 배신감에 찬 얼굴이었다. 왜 그간 이 정도의 맛을 낼 수 있으면서 내지 않았냐는 눈빛이었다.


“그, 그 정도였어···?”


[메뉴명: 제육 컵밥]

[손님의 만족도: 10/10]

[<백반 컵밥>의 음식을 먹고 손님이 처음 만족했습니다!]

[10 포인트가 추가 됩니다.]

-백기용 어린이, 수고했어요!


어제 이혼하고 왔다고 하니 위로하려고 하는 말일까 봐 걱정했는데, 상태창이 유영의 진심을 대신 전해주고 있었다.


‘부엌에서만 뜨는 창이 아니구나.’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 기용은 다시 유영을 바라봤다. 여전히 황홀한 표정이었다.


“사장님, 제육 컵밥, 포장도 되죠?”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잔뜩 신이 난 유영이 물었다.


“그럼. 학보사 애들 주려고?”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기용이 직접 학보사에 배달하러 가기도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배달 대신 유영이 혼자 가게를 찾는 일이 많아졌다.


유영이 혼자 와서 포장 주문을 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네. 같은 메뉴로 여섯 개 포장해 주세요. 방금 저한테 한 그대로 요리해 주셔야 해요!”


정말 맛있었는지 조리법까지 그대로 해달라는 유영에 기용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친구들 먹을 거라고 하니, 맛있게 해줄게. 걱정하지 말아.”


기용이 환하게 웃자, 유영은 제육 컵밥의 생각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수려한 그의 웃음이 유영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기 때문이다.


‘사장님 전 아내는 대체 왜 사장님이랑 이혼한 걸까? 저렇게 잘 생기고 이제는 요리까지 잘하는 남자를 두고···.’


유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기용이 열심히 요리하고 있는 옆모습을 멍하니 지켜봤다.


* * *


유영이 제육 컵밥 여섯 개와 함께 떠나고 기용은 멍하니 방금 있었던 일들을 곱씹어 봤다. 갑자기 상태창이 떴고 요리 실력이 늘었다.


기용은 원래의 제 제육 컵밥도 나쁘지 않은 맛이라고 생각했다. 미각이 예민하지 않은 탓이었다.


기용은 알지 못했지만, 그의 전 아내인 서정의 미각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디를 가든 크게 맛이 없는 게 아니면 음식은 곧잘 먹었다.


서정은 음식 외의 모든 면에서 까다로웠기 때문에 기용은 서정이 미각만큼은 예민하지 않다는 걸 몰랐다.


“상태창.”


기용은 제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혼자 작게 읊조려 봤다. 가게 안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혹시나 누가 들을까 봐 걱정스러웠다.


요즘 보는 웹툰에서 주인공의 눈앞에 상태창이 나타나곤 했다. 방금 기용의 눈앞에 떴던 것도 웹툰에서 봤던 그것이었다.


“헉.”


그냥 해본 말이었는데 진짜 기용의 상태창이 떴다. 미친 BGM과 함께.


[이름: 백기용]

[Step 1. <백반 컵밥> 메뉴 정복하기! (14% 진행 중···)]

[포인트: +10]

[요리 실력: 하]

new! [미각: 하]

[]

[]

[]

···


이후로 길게 빈 슬롯들이 보였다. 여자애들이나 좋아할 것 같은 핑크빛 상태창. 이름 바로 밑에 칸을 바라봤더니, 높은음의 비눗방울 소리와 함께 설명이 떴다.


[Step: Step을 전부 깨면 백기용 어린이는 성공한 남성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Step은 학업 성취도가 80%에 도달해야 다음 단계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표보봉. 푱뵹.


‘성공한 남성’이라는 말에 집중해 보니 간밤에 꾼 꿈이 떠올랐다.


“이거, 진짜 엄마랑 아빠가 보내준 거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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