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남의 요리는 특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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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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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3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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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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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

DUMMY


* * *


서민훈은 CPA(공인 회계사 시험)를 준비 중인 회시생이었다. 벌써 공부한 지 2년 반이 넘어간 그는 수려대학교 고시반에서 매일 공부에 매진하고 있었다.


두 번의 1차 시험에 전부 아슬아슬하게 불합격했다. 단 몇 점 차이로 두 번이나 불합격하니, 애가 달았다.


수려대학교라는 학벌은 그리 좋은 학벌이 아니었다. 인서울 하위권 대학으로 취업시장에서 마이너스가 될 정도의 학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플러스 요인도 아니었다.


CPA는 1년에 한 번 밖에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만큼, 한 번 불합격할 때마다 1년씩 추가되는 것이었다. 서민훈은 벌써 스물아홉의 나이로 내년 시험에도 떨어지면 서른이 넘어갔다.


공인 회계사 자격증이 있으면 취업에 유리한 것은 사실이나, 대형 회계 법인에 들어가려면 학벌도, 나이도 중요했다.


학벌이 애매한 만큼 최대한 빨리 붙어야 좋은 법인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런 생각이 서민훈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형, 벌써 밥 먹으러 가?!”


고시반 옆자리에 앉은 후배가 서민훈에게 물었다. 매번 오후 1시가 지나서 점심을 먹는 그가 오늘은 12시 정각이 되자마자 일어났기 때문이다.


“응. 집중이 계속 안 돼서 그냥 밥이라도 빨리 먹으려고.”


이런저런 잡생각 때문인지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문제 풀이에 집중이 안 됐다. 그럴 바에는 밥이라도 빨리 먹자는 생각이 들었다.


“갔다 올게.”


학교 근처에 가성비 밥집은 학교 식당, 백반집이 있었다. 두 군데 모두 맛은 있지만, 가격이 조금 있었다.


학식당은 6천 원, 백반집은 6천오백 원부터 시작이었다. 보증된 맛이지만 공부하는 학생이 한 끼를 사 먹기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그때 떠오른 <백반 컵밥>. 컵밥 하나에 5천 원으로 싼 가격에 양도 많았지만, 결정적으로 맛이 없었다.


“네가 지금 그런 거 가릴 때냐.”


다 큰 아들이 부모님께 용돈을 타 쓰고 있는데 부모님을 생각하면 한 푼이라도 아끼는 게 맞았다. 게다가 오늘같이 스스로가 실망스러운 날에는 더욱.


그렇게 스스로에게 벌을 주는 심경으로 <백반 컵밥>에 들어섰다.


“치킨마요 컵밥, 되나요?”


<백반 컵밥>에서 많은 컵밥을 맛보지는 못했지만, 치킨마요 컵밥은 <백반 컵밥>에서 먹었던 컵밥 중에 가장 맛이 없는 메뉴였다.


이왕 벌주는 김에 메뉴도 확 맛이 없는 걸 먹을 생각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스스로가 너무 못나서 견딜 수 없었다.


“당연히 됩니다.”


훤칠한 사장이 나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서민훈에게 그런 건 보이지 않았다.


회계사 시험을 그만두게 되면 뭘 먹고 살아야 하나, 붙을 수는 있을까, 붙는다면 언제쯤 붙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부엌에서 생각보다 맛있는 향기가 풍겼다.


‘전에도 요리할 때 이런 냄새가 났나?’


전에 왔을 때는 고시반원들과 함께 와서 냄새를 못 맡았던 것 같기도 하다.


“치킨마요 컵밥 나왔습니다.”


평소보다 이른 점심이었다. 그리 배가 고픈 상태로 온 건 아니었지만, 요리하면서 나는 음식 냄새가 침샘을 자극했다.


딱 봐도 저번보다는 시각적으로 훨씬 나았다. 저번에 먹었을 때는 치킨 조각의 크기도 제각각이었고 마요네즈도 균일하지 않게 뿌려져 있었다.


가운데에 예쁘게 산처럼 쌓인 김 가루를 보다가 서민훈은 참지 못하고 입안 가득 치킨마요 컵밥을 넣었다.


“······!”


어릴 적 전날 시켜 먹고 남은 치킨으로 엄마가 치킨 덮밥을 해준 적이 있었다. 문득 그날이 생각났다.


방금 입에 넣은 치킨마요는 엄마가 해준 것보다 확실히 맛이 있었지만, 이상하게 자꾸 엄마의 생각이 났다.


“흐···. 흐헙.”


엄마가 해준 애정 어린 집밥의 맛이었다.


* * *


눈물의 의미를 알려주기라도 하는 듯 상태창이 떴다.


[메뉴명: 치킨마요 컵밥]

[손님의 만족도: 10/10]

[10포인트가 추가 됩니다.]

-백기용 어린이, 수고했어요!


드디어 상태창이 사라지면서 정신 나간 BGM도 끊겼다.


눈앞에 있는 서민훈이 너무 울길래, 기용은 요리가 잘못된 줄 알았다. 그건 아닌 모양이다.


“손님, 괜찮으세요?”


건장한 성인 남성이 ‘끅끅’ 소리까지 내면서 우는 게 안쓰러워서 그냥 모른 척할까, 싶다가도 너무 울어서 그럴 수 없었다.


“어흐흑. 네. 감사합니다. 음식이 정말··· 맛있네요.”


그렇게 말하고 씩 웃는 서민훈의 얼굴이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한결 나아 보였다. 사회에, 세상에 찌든 청년의 얼굴이 아니라 해맑은 소년의 미소였다.


“다행이네요. 어··· 많이 힘드시겠지만, 다 지나가실 겁니다. 제가 손님보다 얼마 더 살지는 않았지만, 사는 게 다 그렇더라고요. 죽을 것처럼 힘들다가도 또 살아지고 힘든 날이 있다가도 이런 날이 오려고 그간 그렇게 힘들었구나, 싶은 날도 있고요.”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기용은 말을 보탰다. 그 말은 기용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이혼, 그런 거 아무것도 아니라고.


서민훈의 사연을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친하지도 않은 사람 앞에서 이렇게까지 우는 걸 보니 엄청나게 힘든 시간을 보내는 중일 테다.


지금 힘들어도 언젠가 볕 들 날이 올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 흐어헝.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치킨마요 컵밥을 입에 욱여넣으며 연신 고개를 숙이는 서민훈. 이러다가 체하겠다, 싶어서 기용은 부엌 깊은 곳으로 들어가 서민훈이 편하게 식사할 수 있게 배려했다.


“킁. 잘 먹었습니다. 어릴 때 엄마가 해준 치킨 볶음밥이랑 같은 맛이 나더라고요. 오전에 힘든 일이 있어서 그런지, 엄마 생각에 울컥했습니다. 물론 오늘 먹은 게 엄마가 해준 것보다 훨씬 맛있었어요.”


여전히 빨간 눈시울과 콧잔등을 하고 웃으며 말하는 서민훈. 기용은 제가 손님에게 눈물이 날 정도로 맛있는 음식을 제공했다는 생각에 감격스러웠다.


“맛있게 드셔주시니 제가 더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남자는 현금으로 계산하고 가게 밖으로 나갔다. 그 뒷모습에서 기용의 취준생 시절과 겹쳐 보였다.


“상태창.”


[이름: 백기용]

[Step 1. <백반 컵밥> 메뉴 정복하기! (29% 진행 중···)]

[포인트: 70 +10]

[요리 실력: 하]

[미각: 하]

[]

[][]

···


포인트가 어느 정도 모였나, 확인해 보려는데 기존에 유영에게 받았던 10포인트보다 60포인트나 더 쌓여 있었다.


“아···! 설마 포장 손님 것도?!”


가만히 생각해 보다가 유영이 제육 컵밥 여섯 개를 포장해 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런 식이면 포인트 모으기 쉽겠는데. 오후에 오는 손님들은 좀 다양한 메뉴를 시키셨으면 좋겠다.”


하지만 기용의 기대를 부수려고 작정한 듯이 제육 컵밥과 치킨마요 컵밥만이 불티나게 팔렸다. 서민훈이 왔다 간 후로 한동안 한가하더니 저녁 시간이 되자, 손님들이 밀려왔다.


‘오늘 학교 식당이 문을 안 열었나···?’


기용은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포장 손님도 많았고 매장에 와서 먹는 손님도 많았다.


오픈 때 이후로 이런 적이 없었다. 매출이 증가하니 기분은 좋았지만, 이상하게 손님들이 제육 컵밥과 치킨마요 컵밥만 주문했다.


바쁘지 않을 때는 이 정도가 아니었는데, 상태창이 뜰 때마다 나오는 상큼 발랄, 귀염 뽀짝한 배경 음악이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상점, 상점이 필요해···!’


* * *


사정은 그랬다. 제육 컵밥을 시킨 사람들은 학보사 기자들의 친구들, 지인들이었다.


<백반 컵밥> 사장이 각성했다는 입소문을 듣고 제육 컵밥을 먹기 위해 왔던 것. 수려대학교 학보사 기자가 추천하는 맛집은 믿을만하다는 게 기자 친구들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치킨마요 컵밥은 서민훈이 대학 내 커뮤니티인 <모든 시간>에 글을 올렸다. 엉망이 될 뻔했던 하루였으나, 점심을 맛있게 먹은 덕에 공부도 잘되고 기분도 나아졌다.


<후문 쪽에 있는 컵밥집>


[오늘 점심에 가서 치킨마요 컵밥 사 먹고 왔는데 엄청나게 맛있었음.


ㅇㅇ 컵밥, XX 컵밥 등 웬만한 프랜차이즈 컵밥, 도시락집에서 치킨마요 많이 먹어봤거든. 피시방에서도 치킨마요만 시켜 먹고. 근데 내가 먹어봤던 치킨마요 중에 최고였음.


치킨은 기름에 전 냄새 없이 담백하고 바삭했고, 치킨이 밥이랑 양념이 같이 비벼서 나와서 밥에 간이 다 뱄음. 위에 얹어주는 스크램블도 부드러운 게 웬만한 브런치 가게 뺨쳤고 마요네즈랑 김 가루 양도 적당했음.


근래에 학교 근처에서 먹어봤던 음식 중에 제일 맛있었음. 가성비 이런 거 다 떠나서 맛만 봤을 때도.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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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1) 그 가게는 사장님 얼굴만 맛집으로 유명했던 거 아님? 당신 치킨마요 먹은 거 맞아? 사장님 얼굴 보러 간 거 아니고?

└(익명_글쓴이) 돈 없어서 제일 싼 가게 찾다가 컵밥 가게 생각나서 갔는데?; 나 여자 아니고 남자임.


-(익명 2) 사장님 바뀜? 그 잘생긴 사장님 아니고 다른 사장?

└(익명_글쓴이) 같은 사장님 맞음. 사장님이 장사가 너무 안돼서 각성하신 듯. 얼굴은 좀 달라진 듯? 장사 안돼서인지 얼굴 조금 맛 감. 내 기준.


-(익명 3) 그 잘생긴 얼굴이 맛 갈 정도로 장사가 안됐다니···. 사장님 제가 오늘 갈게요. 현생에 치여서 사장님 얼굴 보러 가는 걸 잊고 있었어요.


-(익명 4) 백반 컵밥 가게에서 돈 받았냐? 갑자기 왜 이런 글이 올라오지;;

└(익명_글쓴이) 오히려 치킨마요 컵밥값 주고 왔는데? 진짜 맛있어서 그럼. 꼬우면 넌 사 먹지 말아라.


-(익명 5) 전에 갔을 때는 갱생 불가능한 맛이었거든. 사장님도 안 바뀌었는데 갑자기 음식 맛이 달라질 수가 있나?;;

└(익명 5) 이 글 보고 속는 셈 치고 사장님 얼굴 한 번 더 볼 겸 갔다 옴. 속아보세요, 여러분;; 치킨마요 맛집임. 사장님 얼굴은 고생 좀 하셨는지 글쓴이 말처럼 조금 더 사연 있어 보이심. 뭐 그래도 여전히 잘생김.

└└(익명 7) 그 얼굴이 뭐가 잘생겼냐? 걍 평범하더만.

···


* * *


덕분에 기용은 포인트가 쉴 새 없이 쌓였고, 330포인트를 찍고 가게를 마감했다. 퇴근하기 전에 상태창이 일러줬던 것처럼 제육볶음에 양념을 미리 재워두고 퇴근했다.


물론 양념도 상태창의 지시하에 하라는 대로 정확하게 했다. 내일은 치킨을 직접 튀기기 위해 닭고기도 사고 돼지고기도 앞다릿살을 주문했다. 깻잎도 주문했다.


앞다릿살은 뒷다릿살과 가격 차이가 조금 났지만, 그래도 성공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면 작은 돈은 아까워하지 않기로 했다.


“그나저나 내일은 손님들이 다른 메뉴도 주문해 주셨으면, 싶은데.”


빨리 다음 스탭에 도달해서 이 정신 나간 배경 음악을 꺼버리고 싶었다.


“다른 메뉴들의 가격을 내릴까?”


그렇게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컵밥 하나에 5천 원밖에 하지 않아서 마진이 많이 남지 않았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기용이 사는 투룸 빌라의 3층까지 계단으로 오르고 있던 그때였다.


“지금 퇴근하세요?!”


익숙한 목소리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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