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남의 요리는 특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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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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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3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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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6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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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

DUMMY


집주인 아주머니 김미영이었다. 편하게 아주머니라고 부르라고 해서 그렇게 부르고는 있었지만, 아주머니라고 부르기엔 뭣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도 아직 40대이고 관리를 잘해서 40대로도 보이지 않았다.


“네. 오늘은 퇴근이 좀 늦었네요.”


멋쩍게 웃으니, 김미영이 안쓰러운 얼굴로 기용을 바라봤다.


“저녁은 드셨어요?”


미영의 질문에 기용은 번뜩이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요. 아주머니는요?”


갑자기 웃는 기용의 얼굴에 미영은 당황했다.


“저도 아직이긴 한데. 괜찮으시면···.”

“제가 식사 한 끼 대접해 드려도 될까요?”


미영의 말을 가로막고 기용이 물었다. 환해지는 미영의 얼굴.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처에 맛있는 김치찌개 가게가 있더라고요. 거기에 가서 먹는 건 어떠세요?”

“아······.”


망설이는 기용이었다.


“외식 말고 제가 요리를 해드려도 될까요? 신세 진 게 많아서 맛있는 한 끼를 직접 드리고 싶었습니다.”


미영은 그간 기용의 편의를 많이 봐줬다. 기용이 월세를 밀리거나 집을 험하게 쓴 건 아니었다. 하지만 공과금이 가끔 밀렸다.


공과금 내는 걸 까먹은 달도 있었고 가끔은 공과금 낼 돈이 없어서 미루다 보니 못 낸 날들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미영은 자기 것 내는 김에 같이 냈다며 기용의 공과금을 대신 내주기도 했다.


기용은 자금에 여유가 생기자마자 갚으려 했지만, 미영은 한사코 거절했다. 그래서 명절이나 특별한 날마다 미영에게 비싼 선물을 사서 주기도 했다.


-그 여자 좀 이상해. 왜 남의 집 공과금을 내줘? 우리가 부탁한 것도 아닌데 말이야.


서정은 늘 그렇게 말하며 의심의 눈초리로 미영을 바라봤다. 기용은 좋은 집주인도 있는 거 아니겠냐고 서정을 말렸다.


-그래도 대가 없는 친절은 없는 법이야. 그 여자 혹시 오빠한테 사심이 있는 거 아니야?!


발끈하던 서정을 그때 알아봤어야 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그저 착한 집주인을 저 혼자 색안경을 끼고 봤다.


미영은 기용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세입자들에게도 친절했다. 명절마다 선물 세트를 돌렸고 코로나 때는 월세를 전체적으로 5만 원씩 깎아주기도 했다.


“어머. 안 그래도 기용 씨가 음식점을 한다고 해서 궁금했거든요.”


손뼉까지 치면서 좋아하는 미영의 모습이 꼭 어린아이 같았다.


“댁에 계시면 음식 올려다 드릴게요.”

“같이 안 드시려고요···?”


실망하는 기색의 미영.


“아. 제 집은 더러워서요. 금방 해서 드릴게요.”


서정의 짐을 다 뺀 후로 집 청소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복수심에 눈이 멀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청소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날들도 있었다.


기용의 말에 미영은 뭔가를 말하려다 말고 그냥 웃었다.


“그래요.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요.”


기용은 미영과 헤어지고 집에 들어오자, 덜컥 겁이 났다. 미영에게 요리를 해주려고 했던 건 상태창의 효과를 보기 위해서였다.


Step을 최대한 빠르게 끝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굳이 손님이 아니어도 남에게 요리를 해주는 행위 자체로 레시피가 오픈되지 않을까, 기용은 그렇게 생각했다.


기용의 요리 실력이 ‘하’인 걸 알게 된 이상 신세진 게 많은 집주인에게 하찮은 요리를 대접할 수는 없었다. 만약 새로운 레시피가 열리지 않는다면 집에 있는 냉동 치킨으로 치킨마요 덮밥이나 해줄 생각이었다.


‘치킨마요 덮밥은 그래도 검증됐으니까.’


걱정 어린 마음으로 참치 통조림을 따려던 그때였다.


[메뉴명: 참치마요 컵밥]

[완성도: 5/10 판매 보류!]

[부족한 재료: 마늘, 생강, 깻잎, 양파]

[부족한 맛: 소스의 감칠맛이 떨어집니다. 참치의 비린 맛이 심합니다.]

[Tip! 비린내를 잡기 위해 소스에 마늘과 생강을 넣어주세요.]

-빠빠빠빠밤. 빠빰. 빠빠빠라빠라밤.


“무슨 참치마요 만드는데 마늘이랑 생강까지 들어가···.”


상태창이 유난이다, 싶었다. 게다가 요즘 시중에 나오는 참치 통조림 안의 참치는 비린내가 그리 심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말고 기용은 본인의 미각 수준을 떠올렸다. 보통 사람들보다 떨어지는 ‘하’.


고개를 젓고 하라는 대로 하기로 했다. 다행히 집에 마늘과 생강이 모두 있었다.


소스 안에 넣을 것이라면 둘 다 편 썰어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기용의 판단이 맞았는지, 팁 창이 따로 울리지는 않았다.


프라이팬에 편 썬 마늘과 생강을 넣고 설탕, 미림, 진간장을 넣고 잘 섞었다. 마늘과 생강을 제외하고는 원래 기용이 하던 레시피였다.


“참치마요는 큰 문제가 없었나 본데?”


중불로 소스를 끓이고 끓기 시작하니 불을 끄려던 그때였다.


[Tip! 1분 정도 중약 불로 소스를 조려주세요. 소스가 걸쭉해집니다.]

-표보봉!


“그럼 그렇지. 내 요리가 어떻게 완벽하겠어.”


완성도가 이전에 했던 다른 메뉴들보다는 높다고는 하지만, 참치마요 컵밥도 여전히 판매 가능한 수준은 아니었다.


스크램블은 치킨마요 컵밥을 만들 때와 동일하게 마요네즈와 소금, 후추를 넣고 거품기로 저으니 따로 팁 창이 뜨지는 않았다.


양파는 잘게 썰어서 참치마요의 씹는 맛을 더해줄 생각이다. 그러려면 매운맛을 빼야 했다.


찬물을 받고 그 안에 썰어둔 양파를 넣으려고 했다.


[Tip! 물에 소금을 한 티스푼 넣어주세요. 삼투압 현상으로 양파의 수분은 배출되고 영양소는 응집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표보봉!


“오. 이건 진짜 꿀팁이네.”


전에는 그냥 찬물을 받아서 양파의 매운맛을 뺐는데 물에 소금을 넣으면 영양적인 면에서도 좋다고 한다.


기름기를 뺀 참치와 매운맛을 뺀 양파를 잘 섞고 스크램블 위에 올렸다. 소스를 적당량 붓고(이 적당량도 상태창의 코칭 하에 이루어졌다.) 김 가루와 마요네즈를 뿌리고 마무리했다.


“그나저나 깻잎은 여러 곳에 쓰이네. 많이 사둬야겠다.”


<완성>

[메뉴명: 참치마요 컵밥]

[완성도: 8/10]

[이 정도면 훌륭해요~!]


완성도가 8이나 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요리를 하고 있으니, 서정과 신혼 때가 생각났다.


서정의 요리를 잘한다는 칭찬 한마디에 기용은 그날부터 요리와 청소를 도맡아서 했다. 서정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집에 오면 제 몸만 씻고 누워있기에 바빴다. 하는 일도 없었으면서 말이다. 서정의 손에 놀아났던 거다.


“영악한 년.”


기용은 혼자 씩씩거리다가 지금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떠올렸다.


어디에서인가 최고의 복수는 성공이라고 했다. 기용은 그 말을 마음에 새기며 성공할 그날만을 기다렸다.


“그때 다시 와서 받아달라고 하면 내쳐야지.”


혼잣말하고 참치마요 컵밥을 들어서 랩에 쌌다. 미영의 집은 기용의 바로 위층인 4층 집이었다.


-띵동.


초인종을 누르니, 미영이 금세 현관문으로 달려 나와 얼굴을 비췄다.


“와. 맛있는 냄새!”


컵밥을 랩에 씌워왔음에도 음식 향이 나는 모양이었다.


“맛있게 한다고 했는데,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네요.”

“기용 씨가 직접 만드신 음식인데 당연히 맛있겠죠. 다 먹고 그릇 가져다드릴게요.”


미영의 말에 기용이 고개를 저었다.


“일회용 그릇이라 안 가져다주셔도 괜찮습니다.”

“아······.”


어딘지 모르게 아쉬워 보이는 미영의 얼굴을 뒤로 하고 기용은 곧장 집으로 향했다.


* * *


미영에게 참치마요 컵밥을 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정말 각 잡고 집을 청소할 생각이었다.


서정의 흔적을 아주 싹 지울 거다. 이 집에 있으니, 서정과 함께했던 추억들이 자꾸만 떠올라서 힘들었다.


누가 봐도 서정이 잘못한 상황에서 그녀를 잡았던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녀를 미친 듯이 사랑했던 것도 아니고 서정 없이 못 살겠어서도 아니었다.


그저 가족이, 가정이 필요해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는 줄곧 고모네 집에서 지냈다.


고모 부부는 아이가 없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기용을 살뜰히 챙기는 분들은 아니었다. 두 사람 모두 과묵한 경상도 사람으로 기용에게 친절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쁜 사람들도 아니었다.


기용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기용에게 부모님의 보험금을 주고 서울에서 혼자 지내라고 했다. 그들에게 배려였을지는 모르지만, 이상하게 기용은 내쫓기는 느낌이 들었다.


고모 내외는 혼주석도 채워줬고 기용이 아주 가끔 명절 때마다 연락드리지만 그뿐이었다. 더 이상의 교류는 없었다.


그래서 기용은 여자를 만날 때마다 결혼을 생각하고 만났다. 늘 상대방은 그걸 부담스러워했지만, 서정은 달랐다. 오빠 같은 사람이면 당장 내일도 결혼할 수 있다고 했다.


“날 좋아했던 게 아니라 내 배경, 돈을 좋아했던 거였어.”


고무장갑을 끼고 화장실 타일을 칫솔로 빡빡 닦고 있을 때였다.


-똑똑.


소리가 들렸다.


* * *


“하마터면 들어와서 차 한잔하고 가라고 할 뻔했네.”


미영은 빨개진 볼을 손으로 식히며 현관문을 등지고 혼잣말했다. 기용은 안쓰러운 남자였다.


다른 흑심이 있는 건 아니었다. 처음 기용네 부부와 계약했을 때, 참 예쁜 부부라고 생각했다.


요즘 같은 때에 신혼에 투룸 빌라에 사는 데도 여자는 군소리 없이 남편을 보필하는 것 같았다. 기용은 대기업을 다니다가 퇴사하고 근처 대학가에 컵밥 가게를 차렸다고 했다.


열심히 사는 부부가 안쓰러워서 공과금도 몇 번 대신 내주고 좋은 음식이나 선물이 들어오면 기용네에 몇 번 가져다 주기도 했다.


‘저렇게 밑바닥에서부터 함께 시작하는 부부였다면 내 결혼생활도 달랐을까?’


이혼 경력이 있는 미영은 그런 생각으로 둘을 도왔다. 하지만 미영이 사람을 잘못 본 모양이었다.


“저, 저 여자 밑층에 사는 여자 아니야?!”


차를 타고 근교 카페에 가서 머리를 식히려다가 서정과 그의 내연남을 발견했다. 미영도 남편의 외도로 이혼했었다.


그때 받은 위자료로 빌라 건물주가 된 것이다. 돈만 보고 한 결혼에서 남았던 건 역시 돈뿐이었다.


괜찮은 척했지만, 배우자의 외도가 주는 타격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가족, 친구들에게도 자존심이 상해 이혼 사유를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다.


이후로 기용이 불쌍해 보였다. 그래서 더욱 잘 챙겨줬다. 남의 부부 일에 간섭하는 게 아니라는 제 신조에 맞게 기용에게 서정의 외도 사실을 알리지는 않았지만, 고민했다.


이걸 알려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은 얼마 가지 않아 서정이 짐을 빼는 걸 확인했다.


“어머, 어디 친정이라도 가시나 봐요?”


큰 상자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오르내리는 서정을 보고 미영이 물었을 때였다.


“아니요. 이혼해서 짐 빼는 중입니다.”


날카로운 말투의 서정이었다. 그리고 서정과 함께 내려간 1층에서는 서정을 기다리고 있던 문신 돼지가 보였다.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기용이 참 힘든 시간을 보내는 중이라는 걸.


위로해 주고 싶었는데 혹시나 오해할까 봐 말았다. 그러다가 오늘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아. 제 집은 더러워서요. 금방 해서 드릴게요.”


미영 자신의 집에서 함께 먹어도 괜찮다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흑심이 있는 여자 같아 보여.’


기용이 이혼했다고 하면 그에게 흑심을 품고 다가오는 여자들이 많을 것 같았다.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묘한 눈빛에 남자다운 얼굴.


그 언발란스가 이상하게 여심을 울렸다. 다만 확실한 건 얼굴에 요리는 없었다. 요리를 잘할 것 같지는 않았다.


지금 받아 든 컵밥도 얼추 흉내나 냈을 것이다.


“그래도 비주얼은 괜찮네. 사진 한 장 찍어놔야지.”


식단 조절을 하는 미영은 밥을 먹기 전에 사진을 찍어두는 습관이 있었다. 식단 기록용이었다.


게다가 이 참치마요 컵밥은 시각적으로도 훌륭했다. 바라만 보다가 참치마요 컵밥을 입에 넣었다.


“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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