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가 사랑하는 괴물 천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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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퍼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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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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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를 단번에 잡다 (2)

DUMMY

송창한에게 연락하기 전, 나는 그에 대해서 찾아봤었다.

많고 많은 작가들 중에 왜 나를 선택했을까.

그는 어떤 피디일까.


송창한은 그간 공모전 작품 심사위원을 많이 했고, 안목이 뛰어나 투자나 배급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그의 인터뷰 내용도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 세상에는 새로운 희망이 필요합니다. 뻔하고 진부하고 쉽게 간주하는 희망이 아니라, 신선한 희망이요.


작품에 임하는 신념이 담긴 말이 인상적이었다.


기획, 제작한 작품들이 대부분 중박은 쳤지만 탑급 스타를 쓰거나 큰 화제를 부르진 못했다.


그가 여태 어떤 작품을 해왔든.

어떤 상업성과 예술성을 지녔든.

남을 위해 살던 삶에, 처음으로 나를 위해 살라고 손을 내민 사람이었다.

그의 안목을 휘어잡을만한 역량을 펼치고 싶은 욕구도 차올랐다.


5월에 먹은 팥빙수의 맛은 아마 세월이 흘러도 잊지 못할 것이기에.



* * *



좋은 손 스튜디오에서 단막극을 맡은 세 명의 피디는 도민준이 보낸 기획안을 검토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완성했기에 퀄리티에 대한 의심까지 생기는 상황.


하지만 우려는 대충 접어 주머니에 집어넣어도 되겠다.

보조작가 경력 5년 차 답게 잘 정리된 문서.

시간 대비. 아니, 시간을 생각하지 못하게 만든다.


기획안 첫 마디는 이랬다.


“젊음으로 돌아간다면,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오, 휴머니즘 감성 진하네.”

“첫 부분만 따도 감 오는 예고편 나오겠는데?”

“심지어 우리 예산에 최적화예요. 오바스럽고 인위적인 것보단 나은데요.”

“기획안에 있는 대사들을 홍보용으로 쓰고 싶네요. 이 대사들 다 대본에 넣으시겠죠? 특히 이 말은 꼭 살렸으면 좋겠어.”


왜 우리가 이걸 생각 못 했을까.

송창한은 뿔테 안경을 지긋이 올렸다.


“맞아. 왜 노인과 판타지로 가자고 했을까. 상부와 대중이 원하는 게 뭘까. 이거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었어.”

“그걸 생각해서 도민준 작가님이 기획안에 잘 적어 놓으셨구요.”


얼마나 어려지고 얼마나 부딪히고 깨지면서 얼마나 기막힌 일들이 우여곡절 생겨나냐!

이런 아이디어 싸움만이 아니었다.


노인에 대한 고찰.

그들에게 필요한 게 뭘까.

뭐긴 뭐야, 언제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든 자식 생각은 여전한 것 아니겠어?

대중이 공감 가능한 보편적인 주제 라인이 핵심 포인트였다.


“캐릭터도 좋아. 어디에나 있을 법한 겉바속촉 아버지네. 단막극 특성에도 맞고 말이야.”

“느낌 팍 와요. 오늘 회의... 빨리 끝날 것 같죠?”

“그러게.”


점심이 지나서 도민준이 출근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인 작가의 등장이었다.

노인의 이야기를 기획 잡아 줄거리를 뽑아낸 사람답지 않게 한 손에 젤리 봉투가 들려있었다.


“도민준 작가님, 손에 뭐예요?”

“아. 젤리요. 좀 드시겠어요?”

“어어! 입 심심하지, 간식 필요하지, 젤리가 최고지. 난 간식 중에 젤리가 젤 좋더라고.”

“참. 송 피디님께서 언제 젤리를 드셨다고...”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는 송창한이 도민준에게 다가가 어깨에 먼지를 털어주는 시늉을 했다.


“우리 사무실에도 젤리 좀 쟁여놓자고! 우리 도 작가가 좋다는데 말야. 어? 하리뽀 좋아하나? 킹꿈틀이? 마이꾸미?”


황마리도 거들었다.


“뭐든 말만 하세요. 제가 다 시켜놓을 테니까.”


젤리는 도민준을 위한 것인데, 구태윤이 눈치 없이 숟가락을 얹었다.


“마침 잘됐네요. 저도 요새 젤리 당겼는데. 사주시면 잘 먹을게요.”

“하... 구 피디님?”


황마리가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짓고는 다시 도민준에게 시선을 틀었다.

그녀의 안도감 어린 낯빛에서 도민준도 조금의 안도를 얻었다.


기획 방향성이 괜찮았던 건가.


빨리 피드백을 받고 싶었지만, 일 얘기만 할 수는 없겠기에 도민준은 스몰토크에 동조했다.


뭔가 젤리에 이어서 말을 해야할 것 같은데.


“저는 마이꾸미 좋아합니다.”



* * *



회의는 길지 않았다.

좋다, 이 이상으로 뭐가 더 필요한가.

아이디어를 덧대고 기대감을 설명하고 좋았던 점을 늘어놓고 핵심을 다시 짚고.

기획안에 맛보기로 들어간 문장 중에 꼭 살렸으면 하는 대사들 넣어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특히 황마리는 특정 부분들에 꽂혀있는 듯 보였다.


“난 다시 태어나도 똑같이 살 건데, 너는 그러지 말아라. 김학수 대사 이건 살려주실 거죠?”

“네. 기획안에 적은 것들은 다 넣을 겁니다.”

“휴, 다행이에요. 기획안이랑 내용이 다른 경우도 종종 봐서 노파심에 말했어요.”


도민준은 보조작가 세월 경력을 여실히 드러내듯, 스케일에 대한 캐치도 빨랐다.

주. 조연 배우 수 몇 명 이하, 지나친 판타지 장면 자제, 장소의 제한 등을 빠르게 알아듣고 메모했다.


“이 부분들만 고려해주시면서 대본 초고 써주시면 돼요.”

“알겠습니다.”

“젊어지는 묘사 같은 경우에는 기획안에 나와 있는 것처럼 짧게 생략해서 가주시되, 주인공 반응을 부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구요.”

“네.”


수정보다는 발전을 요하는 대화가 오갔다.


“도 작가님께 물어보고 싶은 건, 어떻게 짧은 기간에 김학수 노인 캐릭터를 잡았는지예요.”


도중 황마리가 질문했다.


“제가 오래전에 습작으로 써놨던 작품이 있었는데 그때 잡았던 인물을 좀 활용했어요. 또 저희 고시텔 사장님이 마침 나이가 좀 있으셔서 인터뷰도 할 수 있었어요. 아무래도 주변인과 대화할 수 있는 게 도움이 되더라구요.”


박종찬 덕에 세상에 나온 작품들이 많지만,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습작 작품들도 많았다.

그곳의 캐릭터들도 잘 활용해 앞으로도 숨 쉬게 할 생각이었다.


“오, 고시텔 사장님 인터뷰는 언제 또 하셨대.”

“운이 좋게도요.”


황마리 질의응답 시간이 점점 끝을 달려갔다.

송창한이 마무리를 하려는 듯 손으로 턱을 쓸었다.


“시나리오 초고, 언제까지 가능하겠어? 편하게 말해줘.”

“음... 일주일이면 초고 나올 것 같아요. 1시간 분량이니까요. 70씬 정도 나올 것 같아요.”


벌써 씬 각까지 잡아놨다.


“그래. 너무 무리하진 말고. 언제든 나랑 황 피디랑 구 피디를 써먹고!”


또 그들은 도민준에게 개인적인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뭔가를 사주겠다, 뭘 먹고 싶냐, 뭘 좋아하냐, 도민준이 좋아하는 걸로 사무실을 채워놓겠다는 식이었다.

도민준은 괜찮다며 손을 저었다.


기획안은 선물 포장지다.

그 안에 내용물을 보고 더 느꼈으면 하는 바람에 밥을 먹기보다 글을 더 쓰고 싶었다.

혼자 먹으며 생각하는 것도 나쁘진 않아 은근슬쩍 저녁 먹는 자리에서 빠져볼까 했더니,

어딜 빠져나갈쏘냐.

황마리가 잡았다.


“도민준 작가님. 시간 촉박한 건 알지만 진짜 밥만 먹고 가요. 아마 초고만 완성되면 프리 프로덕션 기간동안 디테일한 부분은 합 맞추면서 수정 가능할 거예요.”

“아...”

“밥 먹으러 가요?”

“네. 가겠습니다.”


도민준의 긍정적 응답에 황마리는 신난 아이처럼 손을 들었다.


“도민준 작가님 참석요~”


그러자 구태윤이 간만에 소고기를 조장했다.


“오늘 저녁 한우 가버리나요?”

“가버려요. 우리 나름 큰 회사 다니잖아요. 한우 눈치봐야할 정도 아니잖아~”

“아니죠. 옆 팀은 매번 소고기 먹다가 질린다고 돼지고기 먹는대요.”


평소 과묵한 구태윤과 높은 텐션이 더 올라간 황마리의 합이 척척 맞았다.

송창한이 발끈했다.


“걔네는 사비야! 식신 들린 패거리들이라고! 피디 그만두면 먹방 한다는 징한 놈들...”


식당을 정한 이들은 유리문을 열고 나섰다.

도민준 옆에 선 송창한이 나지막이 말했다.


“왜 노인을 주제로 해야하는지 생각해봤구나?”

“네.”

“고심이 담겨있더라고. 좋았어.”


송창한은 만족스럽게 미소를 흘렸다.


가끔 너무 바쁘면 핵심을 놓치고 자꾸만 곁다리를 생각하게 된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이 뭔지를 항상 인지해야 한다.


‘왜 노인인가. 우리는 그의 삶에서 무엇을 느끼길 원하는가.’


핵심을 파악해 의도와 방향을 단숨에 잡는 것.

그것이 작품의 핵심이었다.



* * *



커피 CF 촬영장의 배우 대기실.


화장대 위, 반이나 남긴 샐러드가 에어컨 바람에 메말라간다.

거금을 받고 모델로 발탁된 여배우 나보영은 계속해서 박종찬 작가의 작품을 돌려 보고 있는 중이었다.

화면에 눈을 박고 코까지 박을 기세로 집중하고 있었다.


매니저가 옆에서 장난스레 말을 붙였다.


“아주 빠져 들어가시겠어요. 본 걸 또 보는데 안 질려요?”

“응. 오히려 더 좋아.”

“오늘같은 날까지 시나리오 산더미로 쌓아 본다고 하셨으면 제 어깨가 나갔을 거예요, 누나.”

“그래. 내가 널 생각해서 오늘은 테블릿 하나만 챙기자고 했어.”

“웬일이래요.”


지친 일과 속, 명작 감상은 그녀에게 활력이 된다.


보고, 여운을 느끼고 있으면 선천적으로 타고난 거친 성격이 누그러진다.

이야기를 볼 때 느끼는 감동 때문이었다.

나보영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즐기기도 했다.

이 가슴 떨림은 그녀가 좋은 사람이 되어간다는 증명 같달까.


자기 위안 같기도 하지만 뭐 어떠랴.

자기객관화가 말고 자기주관화는 자유인걸.


연기를 시작하고, 톱배우에 오르며 사회 인간들에게 인간 취급을 받기 시작했으니.

작품에 집착하는 건 그녀에게 당연한 사정이었다.


‘나도 이런 작품을 하고 싶다고. 배우가 뛰어놀 수 있는 매력적인 작품. 이런 인물을 분석하고 연기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얼마나 더 빛나 보일까.’


나보영은 크레딧을 쭉 훑었다.

박종찬의 보조작가 이름을 연속해서 찾고 또 찾았다.


“도민준, 여기도 도민준, 또 도민준...”


분명 도민준이 보조로 붙은 <달의 도둑>부터 박종찬 작품의 톤이 달라졌다.

박종찬의 보조작가가 고급 엔진이라는 것은 기정사실인 추론.


저런 글을 쓰려면 연륜이 필요할 텐데...

캐릭터는 어떻게 잡은 거지?

나도 저 역할 해보고 싶은데. 저 배우 표정 저기서 조금 더 틀면 좋았을걸.

만나보고 싶다. 도민준 작가.


몇 번이고 재탕해 본 작품을 또 보며 푹 빠져있는데, 경쾌한 벨소리가 울렸다.

매니저가 전화를 받고는 내용을 나보영에게 전달했다.


“누나, 알아봤는데요. 그 도민준이라는 작가요.”

“어어! 뭐래?”


...


“박종찬 작가님이 쫓아낸 게 아니라 제 발로 나갔다고? 그럼 설마, 자기 작품을 쓰려는 건가?”


매니저는 도민준의 번호까지는 못 알아냈다고 한다.

나보영은 콩트를 하듯 두 손을 뒤로 넘기듯이 들었다.


“으악! 왜 이렇게 접촉하기 힘든 건데!”

“누나, 의자! 의자 넘어가요!”


쿠당탕 -


“의상, 의상 조심하세요!!!!”

“그건 둘째치고 너 괜찮아?”


나보영이 앉은 의자가 뒤로 발라당 넘어가고 매니저가 얼른 등으로 그녀를 시지프스 바위 들 듯 받쳤다.

한바탕 소란이었다.


“크윽... 누나, 괜찮으니까 제발 빨리 내려가 주세요. 너무 무거워요.”

“뭐? 샐러드도 반의반만 처먹는데 내가 무거워어? 이 자식이...”


우당탕거리는 대기실 때문에 바깥의 CF 연출팀이 중얼거렸다.


“나 배우님 뭔 일 났대?”

“또 몸 푼다고 매니저랑 무술 격투기 시뮬레이션 이런 거 하고 있겠죠.”

“으휴... 못 말리신다, 정말.”



* * *



‘잘하고 있나.’


문을 살짝 열어 정황을 살피려다가, 텅 빈 3팀에 혼자 덩그러니 서게 된 젤 바른 머리의 한 남자.


“이렇게 빨리 퇴근을 했다고? 바쁘다더니, 흐음.”


‘좋은 손 스튜디오’ 고진감 대표였다.

탁자에는 기획안이 올려져 있었다.

도민준이 정한 임시 제목은 <올드 비즈니스>.


“이게 새로 들인 작가가 쓴 건가?”


전직 보조작가라고 하여 만나보지도 않고 송창한에게 맡겨놨었다.

송창한에게 미안한 감도 있었다.

동생 같은 피디에게 꽤나 까다로운 건을 맡겨서.


다른 더 중요한 프로그램들을 맡느라, 작가 섭외도 신경을 못 쓰고 있는 게 여간 걸리는 게 아니었다.


섭외에 있어선 송창한이 당당, 우쭐함을 과시하듯 어깨 쫙 피던데.

그 실력 한번 보자.

기획안을 한 장, 한 장 넘겼다.


“보편적인 감성으로 갔네. 그래, 이렇게 가야지.”


몇 장만 읽고 파악만 하고 돌아가려고 했다.

바쁜 와중에 글자들을 하나하나 맛만 보려는데,

곧이어 음미하듯 빠져들었다.



이 작가... 보통 아닌데?


단막극 판 조금 더 키워도 되겠어.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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