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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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rebov
작품등록일 :
2024.08.13 23:02
최근연재일 :
2024.08.2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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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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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 신입

DUMMY

김포대교가 한눈에 보이는 거대한 아웃렛. 주말을 맞아 쇼핑을 나온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뤘어야 할 장소는 마치 군부대를 방불케 하는 모습이었다. 오다니는 사람들이 죄다 총을 한 자루씩 가지고 있었으니, 이곳이 미국 텍사스인지 한국인지 구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정규군 같은 모습이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가진 총은 그 종류가 통일되지 않고 너무나도 다양하였으며, 복식도 군복이 아니라 제각각이었다. 반바지에 반팔을 입은 사람도 있었고, 레인코트같이 온몸을 덮는 복장을 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공통점이라면 있었다. 떡진 머리와 기름진 얼굴, 역겨운 땀내가 날 것같이 너저분한 모습은 그들 모두의 공통분모였다.


그 사이를 헤집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한 남자가 있었다. 잘 쳐줘 봐야 갓 스물을 넘긴 것같이 앳된 얼굴의 사내는 누가 봐도 그곳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눈을 흘기며 한 남자가 다가왔다.


“꼬맹아.”

“저요?”

“그래 너.”

“왜 그러세요?”

“너 여기가 어딘지 알고 온 거냐?”

“네.”

“허. 겁대가리를 상실했나. 얌전히 집에 돌아가서 엄마 젖이나 더 먹어라. 너 같은 애가 올 곳이 아니야.”


젊은 남자는 딱히 모욕당했다고 느끼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시종일관 편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한민국 성인이면 누구나 ‘조사단’에 들어갈 수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쯧. 이래서 어린놈들이란.”

“예?”

“너, 총 쏴본 적은 있냐?”

“아뇨. 미필인데요.”

“그럼 뭘 죽여본 적은?”

“...... 모기라면 죽여봤습니다만.”

“푸하하하!”


남자가 주변이 떠나가라 웃기 시작하자 주변의 시선이 조금씩 모이기 시작했다. 별 관심 없이 지나가던 사람들도 그들을 흘깃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근 몇 년 동안 최고로 크게 웃었네... 하...”

“......”

“그래. 모기는 죽여봤고, 그럼 사람이 죽는 건 본 적 있냐? 눈앞에서 사람 내장이 쏟아지는 건?”

“없어요.”

“그럼 얌전히 돌아서 왔던 길로 돌아가. 먹고 살기 어려운 건 알겠는데 다른 일 찾아봐라.”

“...... 지금 걱정해주시는 건가요?”

“하! 걱정을 개뿔. 네놈이 산채로 뜯어먹히면서 지를 비명이 듣기 싫어서다. 그게 얼마나 소름 끼치는 지 알아?”


남자는 마치 환청이라도 듣는 마냥 몸서리치며 말했다.


“충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일을 해야 돼요.”

“뭐? 이게 어른이 진심 어린 충고를 해줘도...”

“여기 등록소가 어디 있는 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만.”

“이 새끼가...”


남자가 대답 없이 눈을 부라리고 있기만 하자, 옆에서 다른 목소리가 대신 답해왔다.


“왼쪽 건물 2층. 제일 안쪽으로 들어가.”

“아, 감사합니다.”


젊은 남자는 살짝 고개를 꾸벅하고는 발걸음을 옮기다가 불현듯 뒤돌아 말했다.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오라고 하셨잖아요?”

“뭐?”

“일 년 전 그날에 죽어서 없거든요.”

“......”

“아무튼, 충고는 감사합니다.”


그러더니 다시 쓱 돌아 뚜벅뚜벅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잠깐의 소란이 마무리되자 주변의 사람들은 다시 관심을 끄고 자기 할 일로 돌아갔다. 남아있는 남자는 미간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더니, 품에서 담배를 꺼내 꼬나물고는 거칠게 불을 붙였다.


***



“김민준. 93년생... 생일은 지났구만.”

“조건은 문제없죠?”

“음...”


눈 앞의 젊은 남자를 바라보며 서류에 볼펜을 쿡쿡 찍던 최민규는 입맛이 썼다. 아무리 한국이 무정부상태에 완전히 망했다 하여도, 이런 젖비린내 나는 애들까지 이 일에 접근하는 건 어른으로서 영 뒤가 구린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도의적이고 개인적인 판단이다. 미합중국에서 제시한 조건에는 모두 부합했다. 그 사실이 최민규의 죄책감을 덜어주었다.


“그래. 통과.”


최민규는 서랍에서 도장을 꺼내 서류에 쿵 하고 찍었다. 도장을 들어내자 ‘Approved(승인됨)’라고 빨간 글씨가 큼지막하게 남아있었다. 최민규는 옆에서 빨간 플라스틱 커버의 두툼한 파일철을 꺼내 서류를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다시 서류 몇장을 집어들어 김민준에게 건네주었다.


“조사단으로 활동하면서 반드시 알아야 할 규칙이 적힌 종이다. 거기 있는 건 전부 외워둬.”

“네.”

“나가서 여기 라인 말고 반대쪽 라인 제일 안쪽에 가면 보급고가 나올 건데, 거기 그 종이 보여주면서 신규보급이라고 말하면 알아먹을 거다.”


김민준은 금세 일어나 보급고를 향해 떠났다. 보급고는 그리 멀지 않았다. 양쪽 라인을 공중에서 이어주는 다리를 건너고 나니 금세 도착할 수 있었다.


보급고는 나름 보안이 철저해 보였다. 상점 여러 개의 벽을 허물고 하나로 이은 모양인지 내부가 상당히 넓어 보였으며, 일반적인 상점용 셔터가 아니라 전면을 전부 이중 철창으로 빽빽하게 막아놨다. 창구로 보이는 작은 구멍을 빼고는 외부에서 들어갈 수 있는 수단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마 뒷문이 있는 모양이었다.


김민준은 창구 앞에 섰다.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지기는 하는데 김민준이 온 걸 모르고 있는 듯했다.


“안에 계시나요.”


그러자 누군가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거구의 사내가 철창 앞으로 와서 섰다. 키가 190cm는 가뿐히 넘어 보였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김민준을 내려다보았다.


“여긴 미아센터가 아니야. 길 잃은 거면 다른 데로 가라.”

“신규보급 받으러 왔습니다.”

“뭐?”


김민준이 들고 있던 서류를 창구로 넘기자 그가 들으라는 듯이 크게 혀를 찼다.


“쯧쯧쯧. 이 나라도 진짜 끝장이구만.”


그는 “말세야 말세”라고 궁시렁거리며 서류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안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자의 목소리였다.


“누가 왔어?”

“어. 신입 하나 들어왔어.”

“뭐, 신입?”


슬리퍼를 질질 끄는 소리가 들리더니 하얀 가운을 입은 중년의 여자가 나타나 김민준에게 다가왔다.


“하, 진짜 맨날 우리나라 좆됐다 좆됐다 말은 했지만, 진짜 좆된게 실감이 가네. 너 몇 살이니?”


빨간 안경테가 눈에 띄는 그녀는 드센 인상의 여자였다. 아주머니보단 마담이라고 불러야 할 것만 같았다.


“스무 살이요.”

“아이고... 내 말을 말아야지.”


그녀는 뭐라 중얼거리며 다시 슬리퍼를 끌며 뒤로 사라졌다. 그 사이 남자가 서류 준비가 끝났는지 김민준에게 코팅된 종이 하나를 내밀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손을 오갔는지 손때가 타서 코팅 끝 부분이 새카맣게 변해있었다.


“여기에서 300만원 내로 골라서 말해. 돈 남긴다고 현금으로 주는거 아니니까 최대한 300만원에 맞춰.”


그가 내민 종이는 온갖 보급품이 적힌 일종의 카탈로그였다. 거기에는 총기, 탄약, 의약품, 군용 보존식등 각종 물품이 엑셀파일처럼 정리되어 있었고, 그 옆에는 가격도 적혀 있었다.


총기는 FPS 게임을 해봤기에 대충 생각해둔 게 있었지만, 의약품이나 나머지 물품은 어떻게 해야할 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도움을 구하기로 마음먹었다.


“M870 샷건. 탄은 슬러그 2박스 벅샷 4박스 주시고요.”

“또?”

“의약품이랑 생필품을 골라야 하는데 사실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어서요. 사람들이 많이 골라가는 거 추천해주실 수 있을까요?”

“붕대, 항생제, 진통제, 지혈대. 없으면 살 것도 죽을 거다. 다용도 칼이랑 파이어스틱도 챙기는 게 좋을 거야.”

“그럼 그렇게 주세요.”


안에서 주섬주섬 챙기는 소리가 들려오는 중, 창구를 통해 총이 먼저 건네졌다. 검은 플라스틱 소재가 인상적인 M870 샷건이 김민준의 손에 들렸다. 쇳덩이가 주는 묵직한 무게감이 이것이 장난감이 아닌 진짜 총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사람한테 겨누지 말고, 필드에 나가기 전엔 항상 안전장치 걸어두고. 하 씨발, 내가 이딴 설명을 해야 하다니.”

“하하, 친절하시네요.”

“쯧... 실수라도 사람을 쏘지 마라. 어떤 헌터라도 너를 알아보는 순간 머리에 바람구멍을 낼 거니까.”

“명심할게요.”


그가 못 미더운 눈초리로 김민준을 쳐다보는 동안 중년의 여자가 약 봉투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자 여기. 쓰는 일이 없길 바랄게.”

“감사합니다.”

“위험한 짓 하지 말라는 말은 못하겠고, 죽지만 마.”

“걱정 마세요. 죽고 싶어서 온 거 아니니까요.”


김민준은 그 말을 뒤로 점점 멀어져 갔다. 여자는 김민준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 등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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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 신입(2) 24.08.20 14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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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비일상적 일상 24.08.13 29 2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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