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에서 최종보스는 잡화점을 운영합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인프피아재
작품등록일 :
2024.08.14 15:09
최근연재일 :
2024.08.19 20:39
연재수 :
4 회
조회수 :
152
추천수 :
2
글자수 :
20,596

작성
24.08.14 15:09
조회
72
추천
1
글자
12쪽

잡화점

DUMMY

오래된 참나무로 지어진 잡화점.


그곳에는 창문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출입구 옆에 있었는데, 고개를 빼꼼히 내밀면 그곳을 찾는 이들의 얼굴이 보였다.


또 하나는 종류가 다양한 장신구가 정리된 뒤편에 있었다. 그리고 그 작은 창 너머로는 온종일 은은한 빛을 발현하는 푸른 기둥이 보였다.


그 오묘한 빛은 리스폰(Respawn) 구역.


수많은 몬스터가 오늘도 그 빛으로 스며들어, 하늘에 맞닿은 아니무스 탑으로 향했다.


그리고 누구라도 잠시나마, 그 잡화점에 들러 필요한 물건을 샀다.


“참나. 아프면 병원에 가야지···. 왜 잡화점에 오나? 쯧.”


주인 라울은 쓴웃음을 짓더니, 수북한 연갈색 턱수염을 매만졌다.


“그 정도는 아니다. 오도독.”


그리고 계산대 앞에서 왼발을 쩔뚝이며 서 있는 해골 창병.


그는 밤새도록 연마한 찌르기 기술을 써보다가, 발목을 겹질렸다며 두개골을 긁적였다. 라울은 아프면 병원에 가라며 미간을 찌푸렸지만, 해골 창병은 그 정도는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자네가 의사인가? 참나.”


지난 과거를 되짚자니, 인간이던 라울도 마찬가지였다.


한번은 귓속이 따끔거려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며칠 후 미열에 상당한 통증이 느껴졌다. 곧장 가까운 이비인후과에 가니, 하얀 가운을 걸치고 마스크를 쓴 의사가 그를 탐탁지 않게 쳐다봤다.


“왜 환자가 진단합니까? 의사예요?”


라울은 그 기억을 떠올리며, 창을 든 해골을 한동안 닦달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두개골을 긁적이며 병원에 가겠다고 말했으나, 예의상 하는 말일뿐 갈 마음은 없었다.


어쨌든. 잡화점에 간단한 상비약이나 응급처치 도구는 있었지만, 애초에 병원은 아니었다.


그러나 몬스터들은 어딘가 부러지거나 찢어진 게 아니라면, 슬그머니 잡화점에 들어와 라울을 난처하게 했다. 스스로 병을 키우는 건, 몬스터나 인간이나 마찬가지였다.


“우선 이거라도 발목에 감아보라고, 가능하면 전투는 피해. 그리고 반드시 병원에 가! 어?”


그의 굳은살이 가득한 손바닥 위에 흑마력이 깃든 압박 붕대가 놓여있었다.


그것은 과거 라울이 직접 만든 것으로 진통 효과가 강력했다. 일종의 파스. 그러니 잠시나마 고통은 낮췄지만, 겹질린 부위를 치유하는 게 아니었다.


“역시 라울이야. 고맙다고. 오도독.”


라울은 등허리에 창을 채우고는 다리를 쩔뚝이며 해골 창병 뒷모습을 바라보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벽면에 걸린 고풍스러운 고동색 추시계를 바라봤다.


“허. 3초라···.”


굵은 시침은 2.

그것보다 얇고 긴 분침은 31.

바늘처럼 가느다란 시침은 5.


시계는 2시 31분 5초를 가리키고 있었다.


라울은 투박한 손으로 턱을 괴고는 그 시계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휴. 정말 시간 안 가는군······.”


.

.

.



‘가상현실 게임 아니무스’


그 세상은 게임이라 하기에 형태와 구조가 복잡했다.


그러나 인간의 면모를 드러나게 하던가, 그들이 실제로 엮어가는 사회적 관계. 무엇보다 게임에서 획득한 재화를 현실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점.


그것은 인간에게 두 번째로 부여된 삶이나 다름없었다.


「 오래된 세계 경제 불황으로 많은 사람이 아니무스라는 가상의 공간으로 도망치고······. 」


언제부터인가 모든 뉴스와 언론 기사 1면은 아니무스 게임으로 도배됐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느슨하고 지루한 일상을 스스로 끊어내고, 아니무스 세상으로 마음과 두뇌를 연결했다. 작년 자료를 빌리자면 인류의 70% 그 세상으로 접속했다.


“얘야···. 너도 그냥 아니무스나 해보는 게 어떻겠니?”


그의 어머니는 낡고 빛바랜 식탁 위에 한 손에 올리더니, 혹여나 그가 상처받을까 조심스레 입을 뗐다.


“······. 한 번만 더 해보고요.”


사실은 그도 알고 있었다. 한 번만 더 해본다는 말은 가장 쉽게 고를 수 있는 변명이란 것을.


2124년 대한민국. 아니 지구라는 작은 행성이 그랬다.


부단히 움직이는 인간의 손과 발은 기계가 대신했고, 희로애락과 같은 인간의 감정은 컴퓨터로 대체됐다.


때문에, 국가에서 소수로 만든 공직을 제외하면, 마땅한 일자리가 없었다.


그저 작은 부품이 되어 컴퓨터와 기계의 노예가 될 뿐.


그나마 굶어 죽지 않고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아니무스 세상으로 접속하는 게 유일했다.


5년이란 긴 시간.


홀어머니에게 반드시 공직에 붙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애석하게도 그럴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살기 위해.


아니. 살아 남기 위해, 그는 아니무스에 접속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이유로 가상의 공간을 정처 없이 떠돌고 있었다.


처음에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한 마법사로.


그다음에는 탑의 가장 높은 곳에서 인간을 기다리던, 나이트메어 드래곤으로.


그리고 지금은.


아니무스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가 차원을 넘나드는 길목인 리스폰(Respawn) 구역.


그 푸른빛을 뿜어내는 입구에서 잡화점을 운영한다.


그것도 모든 능력과 기억을 붙잡은 채로.



.

.

.



“저기 보이는 시계로 정확히 12시. 그러면 현생으로 돌아갈 수 있으세요.”


언제나 단호한 말투의 리헬.


그녀는 아니무스 탑과 영혼의 차원을 오고 다니는 일꾼이며, 온몸이 연보라색을 띠고 날카로운 꼬리가 달린 서큐버스다.


그곳에서 생명력이 다하는 것은 현생에서도 죽음을 의미했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그는 회귀하여 아니무스에서 세 번째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도대체 내가 왜 이따위 잡화점이나 보고 있어야 하지?”


그렇게 라울이 된 그는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는 리헬을 닦달했다. 그러자 그녀는 얼굴에 걸친 뿔테를 만지작거리더니,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그거야 저도 모르죠? 그리고 애초에 당신에게 선택권은 없잖아요. 그렇죠?”


리헬은 대답에 언제나 빈틈이 없었다. 때문에, 라울은 이번에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 나도 이제는 이 세상에 지쳤다고.”


그도 그럴 것이.


현실과 시간 개념은 다르지만, 하얀 로브를 걸친 마법사로서 20년, 검푸른 눈을 가진 악몽의 용으로 지낸 지 30년이 지난 뒤였다.


리헬은 그의 볼멘소리에 별다른 반응 없이, 손에 든 종이 몇 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뭐. 그럴 만하시겠죠. 그리고 듣자 하니······.”


리헬은 언제나 말끝을 흐리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옅은 한숨을 내쉬더니, 라울에게 말을 이어갔다.


“현생에 홀로 사시는 어머니가 계시잖아요.”


라울은 손가락으로 미간을 짚더니,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리헬의 요구를 수락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리헬의 요구는 그랬다.


다시 아니무스 탑으로 향하는 몬스터를 돕고, 각종 버그를 찾아내라.


그리고 그 선행은 시간으로 나타날 것이니, 12시가 된다면 현생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약속은 확실하지?”


라울의 물음에 리헬은 주저함이 없었다. 좀처럼 표정 변화 없던 그녀는 옅은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동안 아니무스에서 손에 넣은 재화와 공직. 그 두 가지는 약속해요.”


라울은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두며,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녀석들을 어떻게 도우라는 거지? 잡화점에 뭐가 있는데?”


리헬은 그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긴요. 그동안 당신이 모으고 제작한 아이템이죠. 그리고 나이트메어의 힘은 그대로 드릴 테니, 참고하세요.”




.

.

.



그게 라울이 잡화점 사장이 된 이유였다.


그리고.


“약이. 필요. 하다. 라울.”


그는 고개를 가만히 둔 채, 눈동자만 슬쩍 왼쪽으로 돌리더니 벽면에 걸린 고동빛 추시계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견고한 참나무로 만들어진 계산대 아래로 고개를 슬쩍 내밀었다.


붉은색 융으로 짜인 원형 카페트.


그 위에는 온몸이 개구리처럼 녹색을 띤 작은 존재가 서 있었다. 그 녀석은 시퍼렇게 날이 선 단검과 이곳저곳 흠집이 새겨진 커다란 방패를 들고 있었다.


녀석은 고블린.


그리고 초침이 12시를 지난 지금. 벌써 10분째, 라울에게 약을 달라며 시위하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작은 존재들에게 상냥했지만, 작은 단검으로 계산대를 툭툭 찌르며, 흠집을 새기는 녀석에게 짜증을 숨기기는 어려웠다.


“휴···. 그러니까 말했잖냐. 이 빨간 물약을 가져가라고. 너희들은 레벨이 낮으니 이것밖에 사용하지 못한다고 몇 번이나 말하지?”


좀처럼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그였다. 그렇기에 고블린은 주눅들만 했으나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단검을 쥔 네 개의 작은 손가락은 더욱 힘이 실렸다.


「 툭. 툭. 」


“이 녀석이! 그거 하지 말라니깐?”


라울은 걸치고 있는 검은색 망토의 목덜미를 한 손으로 쥐더니, 급히 계산대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양팔을 벌려 고블린을 막아섰다.


“정말 말귀를 못 알아먹네, 도대체 가정 교육이 어떻게 된 거야?”


아니무스에 존재하는 생명체들은 그 작은 잡화점을 지키고 있는 라울에게 보통은 예를 갖췄다. 그래야만 손쉽게 필요한 아이템이나 물약 따위를 사 갈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은 고블린의 일탈은 라울에게 고역이었다.


애초에 이 작은 잡화점을 지킨 것도 이틀하고도 반나절밖에 되지 않았기에, 이런 생떼를 포함한 각종 민원을 상대하는 법은 지금부터 익히고 배워야 했다.


“이런 꼬맹이한테···. 휴. 내가 어쩌다가 이런······. 쯧.”


라울은 손가락으로 미간을 짚었다.


그는 불과 3일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세계의 최강자 나이트메어 드래곤이었다.

아니무스 탑의 가장 높은 곳에서 언제나 나약한 인간들을 기다렸고, 거역할 수 없는 막강한 힘의 차이로 그들을 무참히 살육했다.


초월적이면서도 무한한 힘을 움켜쥐던 그였다. 그러나 기민하고 영악하게 경험치를 쌓은 인간들은 결국에 그를 쓰러트렸다.


그랬던 그가 리스폰 구역의 작은 잡화점에서 개념 없는 고블린이나 상대하니, 이만저만 자존심이 상하는 게 아니었다.


“약. 약. 약을 달라. 라울. 약 말이다. 약.”


과거에 머물러 있던 영광스러운 기억을 되새기며 입꼬리를 슬쩍 올리고 있자니, 고블린은 다시 약을 달라며, 손에 쥔 단검으로 그의 허벅지를 찔러댔다.


“윽.”


그의 몸에는 나이트메어의 특성이나 능력이 스며있었지만, 발현시키지 않으면 소용없었다. 그러니 고작 1레벨 고블린이 휘두르는 검에도 제법 그럴싸한 고통을 느꼈다.


그러나 상대는 그 작은 고블린.


라울은 오른손 검지와 엄지로 날이 시퍼렇게 서 있지만, 유약한 칼날 끝을 잡고는 들어 올렸다. 그러자 이를 움켜쥐고 있던 고블린은 그의 눈높이까지 올라왔다.


“몇 번이나 말하지? 이 빨간 물약이나 마시면 된다니까!


그가 한껏 얼굴을 구기며 고블린을 노려보자, 녀석의 기다란 코끝이 움찔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라울만 겨우 들릴법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소용. 없다. 소용. 없어.”


라울은 녀석을 얼굴 앞에 둔 채로 눈을 찡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애초에 레벨에 맞는 아이템만 사용할 수 있는 세계관이다. 그러니 소용없다는 투정거리는 작은 고블린의 말은 모순된 것이 분명했다.


“소용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애초에 너흰 이 물약만 사용할 수 있는데 말이야.”


“안다.”


그의 물음에 고블린은 밥이라도 며칠 굶은 듯, 맥없는 목소리도 답했다. 그리고 커다란 눈을 글썽이며 말을 이어갔다.


“엄마. 아빠. 둘 다. 일어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탑에서 최종보스는 잡화점을 운영합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 서큐버스 24.08.19 16 0 11쪽
3 인간 24.08.16 29 1 11쪽
2 고블린 24.08.16 35 0 11쪽
» 잡화점 24.08.14 73 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