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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청(卍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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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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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보이차(普洱茶) (2)

DUMMY

02.





“레몬이 없어서 그런가. 제대로 맛이 안 나는데?”


백서군은 아침 일찍 만든 아이스티를 시음해보는 중이었다.

다관은 카페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카페에서 일했던 전적이 있으므로 어떻게든 그쪽의 메뉴를 재현해보려고 노력 중이라고 할까.

물론 어디까지나 취미의 영역이다. 다관에서 이걸 메뉴로 팔 생각은,


‘···없진 않지.’


물론 괜히 입소문을 탔다간 피곤해질 게 뻔했기 때문에 지금은 단순히 현대의 음료를 중원식으로 어떻게 재해석해야 하나 고민하는 단계다. 사실 차별화되는 메뉴가 있으면 가게의 규모가 크든 작든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기 마련이니.

지금도 먹고 사는 데는 큰 지장이 없지만, 그래도 현대의 음료가 그리운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차(茶)는 화려한 맛보다는 담백한 맛이 주가 되기 때문에, 현대의 맛에 절여지다시피 한 백서군의 입맛을 완벽하게 충족시키기엔 다소 부족한 감이 있다.

백서군은 떫은맛이 강하게 나는 아이스티를 내려놓았다.


“음, 이거 시럽을 잘못 만들었나? 제대로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서민들도 설탕을 사서 먹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당대의 중원에는 설탕이 흔한 편이다. 시럽 자체는 물과 설탕만 있으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으니 제조가 어려운 편도 아니다.

물과 설탕을 졸인 다음, 적당한 과일의 과즙을 넣으면 간단하게 시럽이 완성된다.


“배합을 잘못했나. 시럽은 다시 만들어야겠는데. ”


백서군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레몬즙이 없어서 그런가?”


레몬이란 게 원래 원나라 때 중원으로 유입된 물건이지만, 이걸 키우는 지역은 한정적이다.

사천에서도 레몬을 주력으로 키우는 농가는 없다.

현대에는 사천성 안악(安岳) 지방에서 레몬을 재배하고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의 사천에는 대규모 레몬 농가가 없다.

당연한 일이다. 가끔 황제에게 진미과(眞味果)라면서 진상되기는 하는 모양이지만, 애초에 레몬만 전문으로 키우는 농가는 없을 터다.

레몬을 구하기 힘든 이유다.


“그렇다고 히말라야까지 다녀올 수도 없는데.”


원산지가 그나마 가까운 인도, 즉 천축(天竺)의 히말라야 산맥이라고 하는 모양이지만. 거기까지 맨몸으로 갔다가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 모른다.

애초에 백서군은 무공과는 인연이 없는 인간이었으니까.


“그래도 제대로 된 아이스티를 만들고 싶으면 레몬즙이 필요한데 말이지.”


백서군은 턱을 매만졌다.

일단 오늘 만든 건 실패작이다. 약식으로 만든다면 레몬이 없어도 가능하지만, 완벽하고 싶은 고집이라고 해야 할까.


‘역시 좀 제대로 만들고 싶단 말이지.’


하지만 상황이 여의찮다면 간단하게 복숭아와 설탕으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기는 하다. 단지, 백서군이 그럴 마음이 없다는 것 정도.


“너무 욕심인가?”


사실 티백도 없는 세상에서 완벽하게 현대의 차를 구현하는 건 무리다. 다구 같은 물건들은 그대로지만, 티백 같은 간편하게 사용하기 쉬운 것들을 만드는 것도 일이니까.

물론 백서군의 다관이 어마어마하게 커져서 공장을 돌릴 수 있게 된다면 또 모를 일이지만.

혀를 찬 백서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인장! 있는가!”


실패작을 갖다버리고 오는 길, 밖에서 그를 찾는 소리가 났다.

손의 물기를 닦으며 나온 백서군의 표정이 굳었다.

백운관의 앞에 서 있는 단규를 확인한 백서군의 시선이 그의 앞에 서 있는 녹색 무복의 여인을 향했다.

녹색 옷을 걸친 여인의 외양에서 백서군이 가장 처음 느낀 것은 당혹감이었다.


‘녹색 옷? 당가?’


뱀이 마치 휘감은 것처럼 희미한 백색으로 수놓아져 있는 옷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간다.

백서군도 알고 있는 옷이었다.


‘사문녹린포(蛇紋綠鱗布)?’


흔히, 당가를 상징하는 색이라고 하면 독과 가까운 녹색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사천에서 녹색 옷을 입고 다니는 건 사천당가 무인들, 그것도 당가에 직접 속해 있는 ‘당씨’ 성을 쓰는 무인들뿐이다.

저 옷에서 뱀무늬가 없는 것을 흔히 녹사의(綠絲衣)라고 부르고, 뱀무늬가 있는 것을 사문녹린포라고 부른다.

그건 즉, 백서군의 앞에 서 있는 여인이 당가의 직계 혈족이란 소리였다.


‘당가가 왜···?’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단 하나의 의문.

왜 당가에서 나왔지?

단규가 차를 사서 돌아간 게 얼마 전인데,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따로 없다.


“당소군이라고 해요.”


백서군의 상념을 박살내는 당찬 목소리였다.

어쩌다 이런 대형 재앙이 눈앞에 날벼락처럼 떨어진 걸까, 라고 생각하며 백서군은 당소군의 선을 슬쩍 피해 고개를 내렸다.

괜히 정면으로 마주보다가 기분 나쁘다고 뺨을 후려갈길 수도 있는 노릇이다. 무림인이란 것들이 워낙 상식이 통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처세술이었다.

백서군이 예의를 갖추었다.


“···백서군이라 합니다.”

“이미 소개했지만, 당소군이에요.”

‘미친···.’


고개를 숙인 백서군의 턱밑에 땀이 맺혔다.


‘나찰독녀(羅刹毒女)잖아···!’


나찰독녀 당소군.

무림과는 최대한 연을 끊고 살려 노력한 백서군조차도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한 고수다.

한 번 손을 쓰면 상대의 사지 중 하나가 날아가던가, 목숨을 잃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지독한 손속을 지녀서 사천에서도 공포로 군림하는 이름이다.

고작해야 이제 스물을 좀 넘겼을 뿐인데도 그런 흉흉한 무명(武名)이 따라붙은 것은, 그녀가 사천에 가끔씩 대가리를 들이미는 흑도들을 토벌할 때 보여준 살벌한 모습 때문.

백서군도 성도에서 날뛰던 흑도 놈들이 말 그대로 곤죽이 되는 걸 실시간으로 관람한 적이 있다.


‘하필···.’


암독화(暗毒花), 달리 나찰독녀라 불리는 고수.

달리 사천제일화(四川第一花)다.

사천당가의 대공녀, 그리고 사천 무림을 대표하는 미인. 그 미명(美名)과 무명이 드높지만, 백서군 입장에선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단규에게 들었어요. 운남에서 들어온 흑차. 당신이 팔았다고.”

“아, 예. 그렇습니다만. 무언가 문제라도···.”


백서군의 표정에서 당소군은 필요 이상의 불안감을 읽었다.


‘이 사람, 날 두려워하고 있어?’


두려워한다.

아니, 그 이상의 감정이 백서군의 얼굴에서 읽혔다.

딱히 해를 끼치러 온 건 아니다. 그런데도 두려워한다는 건, 무림인들에게 호되게 당한 기억이 있다는 것이다.

당소군은 씁쓸함이 치미는 것을 억눌렀다.

무림인이 아닌 사람이 무림인에게 보내는 시선을 보는 기분이 과히 좋지는 않았다.


“그 흑차, 어디서 구했는지 알고 싶은데. 알려줄 수 있는지.”

“보이차를 말씀하시는지.”

“처음 듣는 이름이군요.”


그럴 것이다.

애초에 보이차가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청나라 시기다.

옹정제가 통치하던 시절에 황실에 진상품으로 올라가면서 황제가 마시는 차로 유명해졌지만, 몰락 이후엔 그저 그런 차로 몰락했던 일이 있다.


‘프랑스로 팔려나간 보이차의 효능에 대한 논문이 아니었으면 보이차가 알려지는 일도 없었겠지.’


그러니 명나라 대인 지금, 보이차는 없는 이름이다.

오죽하면 운남에서 나는 검은 찻물이 특징인 ‘차’라고 해서 운남흑차라고 부를까. 사실 흑차라는 건 찻잎의 색으로 따진다기 보다는 후발효차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말이다.

다만 당소군은 보이(普洱)가 아니라 다른 뜻으로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보이(補利)라. 도와[補] 이롭게 한다[利]는 뜻인가요?”

‘보이차의 이름을 저런 식으로도 해석할 수 있구나?’


생각도 못했다.

백서군의 발음이 부정확했다거나 한 것도 아니다.

하기야, 지금 시기에 차마고도(茶馬古道) 서쌍판랍(西双版納)의 보이현(普洱顯)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당장 백서군도 알고만 있지, 차마 직접 가보지는 못한 곳이다.


“그렇게 볼 수도 있지요.”


백서군의 애매한 대답에도 당소군은 불쾌해하기는커녕, 오히려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좋은 이름이네요. 보이차라··· 그 이름값을 하는 차더군요?”


이게 무슨 소리일까.

백서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당소군은 이렇다 할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찍 여는 모양인데, 차 한 잔 정도는 달여줄 수 있겠죠? 물론 값은 치를 겁니다.”

“안으로 드시죠.”


오늘의 첫 손님이 무림인이라는 건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지만, 상대는 당가의 대공녀다. 괜히 뻗대봐야 좋을 게 없다는 걸 알기에 백서군은 과할 정도로 허리를 굽혀 보였다.



***



‘···작아.’


성도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의 명해루(明海樓)를 가본 적이 있기에, 당소군은 확실히 백운관의 규모가 작다는 생각을 했다.

명해루는 성도에서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다루(茶樓)다.

단순히 차만 파는 게 아니라 주루도 겸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 해서 그 규모가 퇴색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백운관은 정반대다.

다탁 간의 거리가 넓은 건 물론이고, 아예 다탁이 있는 공간을 별개의 방으로 구분해두었다.


‘신기한 구조.’


보통 다루든 주루든 기본적인 구조는 비슷한 편이다.

특히나 손님을 많이 받기 위해서 다루든 다관이든 간단한 식사거리 정도도 같이 팔곤 했으니, 다탁이 많다는 건 그만큼 손님을 많이 받아 회전율을 높이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주루까지 겸하는 경우에는 1층은 주루로, 그 위의 상층부는 조용하게 차를 즐기고 싶은 이들을 위한 다루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명해루가 그런 구조다.


“구조가 신기하군요.”

“차는 어떤 걸로 드릴지.”

“추천할 만한 게 있나요?”

“당 소저께서 어떤 차를 좋아하시는지 모르기에 섣불리 추천해드리기가 어렵습니다만···.”


백운관은 다양한 찻잎을 갖추고 있는 편이다.

항주 서호에서 나기에 흔히 서호용정(西湖龍井)이라 불리는 용정차라거나, 안휘성 제운산에서 나는 육안과편(六安瓜片) 같은 유명한 차도 소량이지만 있다.

물론 백운관을 찾는 이들은 그런 이름난 명차들보다는 엽차나 향차 같이 값싼 차를 찾는 사람들이지만, 높으신 분들이 안 찾는 건 아니다.

명해루 같은 번잡한 곳을 피해 백운관을 찾는 이들도 종종 있으니까.


“혹, 좋아하시는 차가 있으신지.”

“흑차··· 보이차라고 했지요? 한 번 마셔보고 싶은데. 가능할지?”

“보이차··· 알겠습니다. 혹, 다과가 필요하신지.”

“다과는 사양하겠습니다.”


당소군은 별 걸 다 묻는다는 눈치였다.

다과(茶菓)는 그 이름대로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다. 다(茶)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과(菓)가 따라오는 법이다.

그게 기본적이다. 다관에서도 그렇게 내오고 있으니까.

그렇기에 백서군처럼 묻는 사람은 없다.


“···기이하네.”


주방으로 사라지는 백서군의 뒷모습을 보며, 당소군은 그에게서 강한 흥미를 느꼈다.


“아가씨. 굳이 차를 드실 것까진.”

“마시고 싶은 기분이야. 내가 차를 마시는 것까지 통제하고 싶어?”

“···송구합니다!”


단규가 무릎을 꿇었다.

당소군이 혀를 찼다.


“그리고 단규.”

“예.”

“앞으로 차 타는 거, 하지 마.”

“예? 하지만···.”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단규는 입을 다물었다.

당소군의 성격상, 하지 말라는 걸 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 신기하기도 했다.

그녀가 백서군을 상대로 반말을 하지 않은 것도, 최대한 그를 신경써주는 것 또한 그러했다.

적어도 단규가 보기에는 그러했다.


‘성격이 장난 아닌가 본데.’


백서군이 본 단규도 얼굴만 보면 어디 가서 무릎을 꿇는다거나 할 성격으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당가의 대공녀는 뭐가 달라도 다른 모양이다.

애초에 자신이 모시는 주인의 심기를 거스르는 호위무사 따윈 즉시처분이 가능한 살벌한 세상이 무림이니 그럴지도 모르지만.

백서군은 팔팔 끓는 물이 든 도자기로 만든 주전자를 들었다.

흔히 자사호(紫沙壺)라 하는 물건이다.

찻주전자에 찻잎을 넣고 팔팔 끓는 물을 부어 한 번 차를 씻어내는 세차(洗茶)를 한 번 거치면, 차가 더 잘 우러나게 되면서 동시에 먼지나 필요 없는 성분을 제거할 수 있다.


‘사실 제대로 된 향미를 느끼고 싶으면 개완(蓋椀)을 쓰는 게 낫지만.’


중국 드라마에서 나오는 뚜껑이 있는 컵처럼 생긴 게 개완이다.

하지만 개완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건 명나라 후기, 청나라 초기다. 지금 당장은 없는 물건이란 뜻이다.

차 문화 역시 계속 발달과 발전을 거쳤으니까.


“나중에 만들어보면 좋을지도.”


물론 그 형태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없으니 도자기 장인을 찾는다거나 해야 할 것이다.

백서군은 초탕(初湯)을 거친 차를 한 모금 마셔보곤, 잔을 내려놓았다.

나쁘지 않았다.

이대로 내어가면 될 것 같았다.


“···차 나왔습니다.”


오늘의 첫 손님, 당가의 대공녀를 위한 보이차의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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