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고인물이 메이저리그를 깨부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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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으로
작품등록일 :
2024.08.16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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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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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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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2. 그럼 한국에서 야구 안하면 되겠네요

DUMMY

2. 그럼 한국에서 야구 안하면 되겠네요




#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병원이 아닌 고등학교 시절의 내 방 안에 있었다.

2060년이 아닌, 2044년의.


“하. 진짜.”


그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동시에 날 덮치는 좌절감.


띠링-


하지만 내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맑은 종소리는 내가 우울과 자기학대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이름 : 최호현(13회차)

나이 : 19(131)세

포지션 : 포수

평가 단계 : 0

(성장 가속 : 10%, 부상 방지 : 10%)

평가 기준(▽)

・포수 수비 이닝(0.0)

・워크에씩(0.0)

・인사이드워크(0.0)

・팬서비스(0.0)

・팀워크(0.0)(NEW!)

목표 : 20년/50홈런(0/0)]


그딴 걸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듯, 질리도록 본 나머지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는 글자들을 띄울 뿐.


#


대체 왜 내가 이런 반복 속에 갇혔는지는 모르겠다.


- 곽진철이 친 타구가 저 뒤로! 뒤로! 우측 담장을! 넘깁니다! 신인으로써 3번째이자 전반기에 20-20을 달성한 다섯 번째 타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깁니다!


“와···”


난 그저 드래프트에서 같이 뽑힌 동기의 역사적인 기록에 감탄했을 뿐이고, 그 동기에게 환호하는 팬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홈런이나 뻥뻥 치면서.’ 라는 생각을 했을 뿐인데.


[알겠다.]


그런 내 생각을 들은 누군가, 아니 그 새끼는 정말 소원을 이뤄줬다.


띠링-


“···이게, 뭐야?”


타격에 대한 재능이 눈곱만큼도 없던 내가 1군에서 홈런을 펑펑 날릴 수 있는, 그런 힘을.


[목표 : 20년/50홈런(0/0)]


지나치게 구체적인 목표까지 제시하면서.


처음엔 좋았다.

그 초능력과 같은 힘은 내 노력 여하에 따라 내가 가진 재능 그 이상으로 내 몸을 더 강하게 만들어 줬고, 운동선수라면 피할 수 없는 부상 역시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있게 만들어 줬으니까.


하지만.

결국 그 힘의 본질은 영화 속 히어로들의 슈퍼파워 같은 게 아니었다.


아무리 성장을 한다 해도 매 시즌 50홈런을 친다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고, 훈련으로 근력이 성장할 때마다 그런 내 몸에 최적화된 훈련을 찾기 전까지는 성장 또한 정체됐으니까.


“커흑.”

“야, 야! 호현아! 구급차! 구급차!”


바로 그때.

이 힘이 가진 가장 무서운 점이 드러났다.

그놈이 준 이 힘은, 내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때마다 ‘그렇게 홈런을 칠 수 있는’ 사람이 될 때까지 무한히 시간을 되돌려 버렸으니.


“···난, 분명···”


처음 과거로 돌아갔을 때의 그 허무함이란.


게다가.

말했듯 목표 자체도 문제였다.


20년 연속 50홈런.

정확히 목표만 채워도 커리어 1000홈런을 기록할 수 있는 정신 나간 수치였다.


내가 아직 데뷔하지 않은 현재 기준으로 KBO 통산 홈런 1위 기록은 532개.


심지어 KBO보다 훨씬 역사가 긴 MLB에서도 통산 홈런 기록 1위는 762홈런에 불과했으니.


즉, 내가 지난 생, 그러니까 12번째 삶에서 기록한 799홈런은 적어도 MLB, KBO의 홈런 기록은 넘어섰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난 그런데도 놈이 제시한 목표를 채우지 못했고, 다시 죽어 돌아왔다.


바로 이곳으로.

지금처럼.


그래, 말하자면 이건 어떤 초능력이라기보다는 저주에 가까웠다.


아주 진득하고 더러운, 그래서 날 계속해서 좀먹는 그런 저주.


“다 죽여버리고 싶다. 진짜로.”


그렇기에 난 또다시 좌절을 넘어 분노하고 있었다.


영원히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이 지옥 같은 반복 속에서 이미 만성이 된 지독한 우울감과 함께.


#


똑똑.


“최호현! 일, 어? 일어났네?”

“어. 된장찌개 간 맞으니까 소금 더 넣지 마.”

“응?”

“나 씻는다.”


나는 간신히 식히는 데 성공한 머리를 몇 번 휘저으며 13번째의 생을 시작했다.


어차피 내가 뭘 하든 나는 저 목표를 달성해야 했으니까.


말 그대로 뭘 하든.

세상 모든 방법을 시도해 본건 아니지만, 적어도 야구를 그만두거나, 그 외에 삶을 포기하는 방법으로는 벗어날 수 없더라고.


“다 씻었어?”

“어.”

“밥 차려 놨으니까 나와.”

“잠깐만.”


사실 몇 번인가의 시도는 있었다.

그리고 그 시도 때마다 그런 날 누구보다 빨리 발견해 패닉상태에 빠져 우는 누나의 모습을 바라보는 게 더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은 결과, 그런 자기 파괴적 행동들을 그만둘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누나는 사실 누나라 부르지만 내게는 엄마 같은 존재였다.


그게 우리 누나가 아닌 누구라도 20살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8살짜리 동생을 혼자 뒷바라지하며 키우면 그런 소리를 들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러니 그 마지막 탈출마저 잃어버린 나는 어떻게 해서든 저번 회차보다 더 나은 점을 찾아가면서 그걸 핑계 삼아 이번 생을 살아가야 했다.


하지만.

저번보다 더?

16년 연속 50홈런이었다.

마지막도 50개에서 단 한 개, 단 한 개가 모자란 시즌이었고.


심지어 그 어떤 때보다 빠르게, 데뷔 2년차부터 풀타임 지명타자로 뛰었을 정도로 부상에 신경쓴 회차이기도 했다.


여기서 어떻게, 뭘 더해야 그보다 더 좋은 기록을 낼 수 있지?


[···

평가 단계 : 0

(성장 가속 : 10%, 부상 방지 : 10%)

평가 기준(▽)

・포수 수비 이닝(0.0)

・워크에씩(0.0)

・인사이드워크(0.0)

・팬서비스(0.0)

・팀워크(0.0)(NEW!)

···]


그런 내 의지를 읽은 건지, 갑자기 눈앞의 거울에 시현되는 상태 창.


그리고, 그 맨 밑에서 미친 듯이 반짝이는 ‘NEW!’라는 글자.


마치 ‘그래도 새로운 게 생겼잖아? 이번엔 할 수 있지 않겠어?’ 라고 말하는 듯 빛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난 생각에 잠겼다.


‘팀워크. 야구 외적인 평가 기준. 괜찮아. 충분히 괜찮은데.’


그간 겪은 바, 바로 저 평가 기준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면 포인트가 오른다.

각자의 평가 기준에 따로 쌓이는 그 포인트가 쌓여 100을 넘기는 순간, 평가 단계가 올랐고.


그리고 그 평가 단계는 내 부족한 피지컬을 채워줄 유일한 방법이었다.


남들보다 더 근육과 인대의 회복이 빠르고, 부상을 덜 당한다는건 그런 의미였으니까.


그러니 평가 기준이 늘어났다는 건, 내가 직전 회차보다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기도 하지.


홈런을 치는 방법?

기술적인 요소?

그건 이미 충분히 익숙했다.

타격 페이스가 떨어지더라도, 한두 번의 타석만 주어지면 나 스스로 조정을 거쳐 다시 내 스윙을 가져갈 수 있을 정도로.


시즌 중, 한창 컨디션이 좋을 땐 타구의 발사각도까지 어느 정도 감안하며 스윙을 가져간 적도 있었으니까.


그러니 그 기술을 받쳐주는 몸 상태만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다면 저 말도 안 되는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었고, 어떻게든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래도 실패했지.”


물론, 추가된 항목이 있으니 지난 회차보다는 더 빨리, 더 오래 그 몸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겠지.


‘팀워크라.’


사실 몇 번째인가 모를 시점부터는 아예 팀원들과의 사적인 관계를 맺지 않았기에 그쪽은 썩 자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야구란 스포츠는 굳이 그런 방식이 아니더라도 팀워크를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이 많은 편이었으니까.


예컨대, 벤치 클리어링 때 아무도 모르게 상대를 쓰러트린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그 과정이 방송 카메라에 잡히는 순간 출장정지를 각오해야 하긴 했지만, 괜찮았다.


카메라에 잡히지 않을 정도의 짧은 순간에 사각에서 정확한 타격을 넣어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방법 정도는 이미 수도 없이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게 의미가 있나?

어쩌면 이 모든 게 다 날 괴롭히기 위한 수작이고, 내가 목표를 눈앞에서 놓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낄낄대며 지켜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내가 샤워기 물을 맞으며 끊임없이 아래로, 아래로 날 내리 끌어가고 있을 때.


쾅쾅!


“야! 찌개 식는다고!”

“나갈게.”


화가 난 누나의 목소리가 화장실 문을 뚫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늘 그렇듯, 언제나.

이번 생의 첫 루틴을 끝낼 때를 알리며.


#


잠시 뒤.


나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누나가 기다리고 있는 식탁으로 향했다.


“야! 너! 내가 아침에 그렇게 샤워 오래 하지···”


후릅-


“맛있네.”

“맨날 먹는 된장찌개면서.”

“그래도 맛있어.”


그래도 다행인 건, 13번, 아니 12번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내면의 우울감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 요령을 깨달았다는 점이었다.


이제는 완전히 내 일부가 되어버린 듯한 그 감정들을 떨쳐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밑도 끝도 없는 그 망망대해 같은 곳에서 허우적 거리느라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단계는 아니라고 해야 할까.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외나무다리를 부러진 두 다리 대신 물구나무를 서서 걸어가는 법을 깨우친 셈이지.


그 과정에서 약간의 시행착오가 있었을지라도.


그러니.


“누나.”

“왜?”

“저기 거실에 부모님 사진 걸어놓은 거 못 흔들거리니까 나가기 전에 떼어놓을게. 내가 학교 다녀와서 다시 박을 테니까 그냥 놔두고.”

“어? 그래?”

“그리고 요새 해킹 메일이 유행이라니까 아무 메일이나 막 열지 말고. 아니면 회사에서 쓰는 자료들은 USB에 백업해 두던가.”

“어?”

“그리고··· 요새 연락하는 그 남자 유부남일걸. 프로필 사진 오른쪽 밑에 확대해 보면 알 거야.”

“네가 그걸 어떻게, 아니. 그 사람 프로필을 어떻게 본 건데?”

“그냥. 우연히.”

“야!”

“나 간다. 누나도 출근 늦지 않으려면 빨리 나가야 하는 거 아냐?”

“너. 다녀와서 보자.”


그 외나무다리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수십, 수백 번 건너가야 하는 사람으로서, 이 정도의 사소한 이득 정도는 당연히 챙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귀찮은데 이번엔 정현실업으로 갈까.”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어쩌면 그냥 습관적인 것일 수도 있고.

흔히 말하는 보상 심리 같은.


돈을 버는 방법이나, 그 액수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도 날 괴롭히고 있는 이 지독한 무력감에서 조금이나마 탈출하려면 어쨌거나 이 감정을 표출할 창구가 필요했고, 돈은 단순히 그 창구를 위한 도구일 뿐이었으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3년? 이제는 더 늘 수도 있겠네.’


나는 마침내 결정했다.

이번 생은 저 빌어먹을 목표를 따라가는 게 아닌 잠시 쉬었다 가는 회차라고 생각하기로.


그리고, 다음 회차부터는 다시 달려 나가자고.


#


하지만.


“그러니까, 결론은 내가 다 덮어쓰라는 거죠?”

“아니, 그게 아니라, 아우. 씨. 솔직히 말해서 네가 뿌린 건 맞잖아? 그거 때문에 지금 나도 그렇고 구단도 난리가 났거든? 솔직히 우리가 뭐 엄청나게 너희를 괴롭힌 것도 아니고, 그냥. 후우. 됐고. 일단 미안하고. 진짜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수습 좀 부탁할게. 혹시라도 뭐가 있어야 마음이 편해진다고 생각하면 그런 것도 그냥 말하기만 하면 내가 최대한···”

“선배.”

“응?”

“잠깐만 조용히. 변호사라고 하셨죠?”

“네. 맞습니다. 만약 최호현 님이 여기 계신 제 의뢰인분과 직접 대화하시는 게 힘드시다면 저를 통해서···”

“의뢰인인 건 맞고?”

“예?”

“아니, 제가 보기에는 이쪽이 의뢰인이 아니라 다른 쪽이 의뢰인 같은데.”

“···그게 무슨 말씀인지.”

“일단 알겠습니다. 이야기는 잘 들었으니 전 가봐도 되죠?”

“아니, 저!”

“왜요?”

“···이건 정말 다른 의미가 아니라 순수하게 조언을 해드리는 겁니다만, 제가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내부고발인이 잘 된 사례를 본 적이 없습니다. 드래프트를 앞둔 고3이시고, 가정형편도 아주 좋지는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는 게 모두에게 좋지 않을까요?”


수십번의 반복을 거치며 어느새 150년에 가까운 삶을 살아오면서 느낀 건데, 내가 바라지 않는다고 해서 어떤 문제들이 내게 덮쳐오지 않는 건 아니었다.


세상에는 언제나 악의를 가진 사람들이 넘쳐났고, 곡예사가 저 높은 곳에 있는 외줄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는 사람은 늘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그래서요?”

“제가 구단들을 대변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이런 경우엔 구단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우가 잦으니까요. 그러니 일단 의뢰인과 이야기를 나누신 뒤 그 힘든 시기에 대한 보상을 챙기시는 게 합리적이다는 이야기입니다. 저희 의뢰인도 충분히 반성하고 있으니···”

“그러니까 한국 야구판에서 먹고 살려면 알아서 기어라, 대충 이런 소리인 거죠?”

“네? 아뇨. 아닙니다. 그런 말이 아니라.”

“그럼 한국에서 야구 안 하면 되겠네요.”

“네?”


그리고.

놀랍게도, 때론 그런 문제들의 틈에서 새로운 관점이 피어날 때 역시 존재했고.


“야구를 할 수 있는 곳이 여기밖에 없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

지금까지 생각해본 적 없었던 그런 시야가.


작가의말

KBO 홈런 기록은 아직도 진행중인지라 현 기록에서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만들었습니다.

MLB 기록은... 그분*의 기록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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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 아니. 나도 잡혀왔어. +4 24.08.25 5,982 125 15쪽
8 8. 포수란 그런 존재지 +7 24.08.24 6,340 116 14쪽
7 7. 결국 +5 24.08.23 6,375 135 11쪽
6 6. 욕구불만 +4 24.08.22 6,682 132 11쪽
5 5. 애리조나 +7 24.08.21 6,942 136 13쪽
4 4. 진출 +13 24.08.20 7,158 145 11쪽
3 3. 루틴 +16 24.08.19 7,309 158 15쪽
» 2. 그럼 한국에서 야구 안하면 되겠네요 +11 24.08.19 7,889 139 13쪽
1 1. 홈런 못 치면 죽음 +14 24.08.19 9,473 13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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