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고인물이 메이저리그를 깨부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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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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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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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5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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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디스 이즈 코리안 캬라멜

DUMMY

10. 디스 이즈 코리안 캬라멜




#


메이저리거와 마이너리거의 차이는 크다.

단순히 10배에 달하는 최저연봉 차이뿐만이 아니라, 그 외의 모든 것도.


“이게 앞으로 네가 쓸 침대야.”

“으음.”


끼익-


“끔찍하지? 그래도 이 정도면 시즌 때 원정 숙소보다는 좀 나은 편이야.”


당장 내가 마이너리그 캠프에서 쓰게 된 숙소도 마찬가지였다.


1인 1실의 메이저리그 숙소와는 달리 2인 1실을 쓰게 됐으니까.


비록 그전에 쓰던 숙소도 ‘진짜’ 메이저리거들이 묵는 호텔이 아닌 초청 선수용 호텔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이곳에 비하면 그곳은 말 그대로 호텔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나마 척과 한방을 쓸 수 있어서 다행인가?’


오늘 하루 이곳까지 오며 날 흔들리게 한 그 체취···의 주인공들과 한방을 쓰게 됐다면, 어쩌면 굉장히 힘든 2주가 됐을 수도 있겠지.


그래도 나름 각오를 하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정리는 다, 뭐해?”

“명상.”

“오. 메디테이션. 동양의 신비.”


그렇게 대충 가져온 트렁크를 옷장에 쑤셔 넣은 뒤, 명상을 위해 침대 위에 앉자마자 등장한 척.


날 안내해 주고 씻기라도 했는지, 커다란 타올로 하체만 가린 채 등장하는 그 모습이 몹시도 끔찍했다.


“인종차별주의자 같으니.”

“아, 아니. 내가 왜?”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게 만들고 싶을 정도로.


“헤이, 초이.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지? 난 진짜 그냥 궁금해서···”


하지만 그게 가능한가는 별개로 굳이 관계를 어그러트릴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에, 난 뭔가 주절거리는 척을 무시한 채 눈을 감고 명상에 빠져들었다.


어쩌면 척의 지금 꼬락서니보다 더 끔찍할 수도 있는 내 내면을 향해.


#


누가 뭐라 해도 명상은 마음을 다스리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도 그러했지만, 나처럼 끔찍한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후우우···”


오감을 최대한 닫고, 가만히 내 몸에서 울려 퍼지는 심장 소리에 집중하고 있노라면 천천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감정들.


분노, 우울, 귀찮음, 불안, 죄책감, 자기혐오, 원망, 후회, 질투, 외로운, 실의, 슬픔···


내 안을 잠식하고 있는 감정들은 그렇게 명상을 시작하자마자 고삐를 푼 망아지처럼 마구 날뛰었다.


마치 그동안 갇혀 있었던 답답함을 풀기라도 하듯.


‘어딜.’


그러니 나에게 있어 명상이란, 그렇게 미친 듯이 날뛰는 감정들을 하나하나 다시 잡아 마음속 작은 상자에 넣는 작업이라 할 수 있었다.


한껏 뛰어놀았으니, 이제 다시 얌전하게 구석에 처박혀 가만히 있으라는 의지와 함께.


“후우우우···”


지금이야 능숙하게 이런 감정들을 컨트롤하는 편이지만, 더 어렸을 땐 이들을 컨트롤하기보다 오히려 내가 휘둘리는 경우가 잦았다.


그때의 나는 별것 아닌 일에도 화를 냈고, 예민했으며, 직전 타석의 결과에 따라 우울해졌다, 또 기뻐하기를 반복했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나 말고 이런 상황에 부닥친 사람이 있다면 공감하겠지만··· 이건 일종의 직업병에 가까운 거니까.


어쩌면 구장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플레이가 각종 지표로 계산되는 야구처럼, 나도 야구가 되어가고 있다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쨌든.


그 시절에는 그래서 나라는 사람이 꽤 많이 엇나가고 있었기도 했었다.


비유하자면···, 그래. 마치 스피드런을 전문으로 하는 유튜버와 같이.


가장 완벽한 동선을 연구하고, 또 그 동선을 실제로 해내기 위해 피나는 연습을 하면서도 실전에서 발생하는 변수로 인해 아주 약간의 어긋남이라도 발생한다면 그 ‘약간’을 못 참고 다시 시작하는 그런 행동들.


그와 같이 그때의 나는 1분 전에 ‘절대 포기하지 말자.’라고 중얼거리다가 또 1분 뒤에는 포기를 결정하곤 했었지.


당연히 지금도 마찬가지고.


그러니까 지금 이 명상이니 하는 행동들은 일종의 내가 나를 다독이는 절차에 가까웠다.


한 번만 더, 내일 한 번만 더 해보고 생각을 해 보자고.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해서 뭐라도 얻어낸 뒤에 포기하자고.


이게 맞는 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난 내가 제련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이 더 걸릴지도 모르는 이 과정에서, 마지막에 있는 결과를 얻기 전에 나라는 사람을 유지하기 위한 그런 제련.


“후우우우우우···”


그래서 난, 오늘도 마지막 숨을 내뱉으며 눈을 떴다.


지금의 이 시간이 헛되지 않은 시간이라는 걸 증명하고, 또 인정받기 위해.


“오오. 초이. 이 땀 좀 봐. 이게 그 메디테이션의 힘이야?”


“어? 소를 본다고(See we bull)? 표현이 조금 어색한데? 그럴 땐 ‘Let’s see the bull’이라고 해야지. 고맙다고? 천만에.”


인정이고 자시고.

얜 대체 옷을 언제 입는 거지?


#


약간의 시각적인 오염이 있긴 했지만, 명상을 마친 뒤 깨끗한 마음으로 새로운 하루를 맞이해서일까.


쾅!


“여긴 내 라커야. 꺼져.”

“저기요 크리스. 당신은 이미 안쪽 라커를 쓰잖아요?”

“그래서? 불만이야 척? 왜, 같은 포수라 이거야?”


나는 노골적이다 못해 척의 알몸처럼 흉한 텃세질을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색다른 기분이 들어 즐거웠다고 해야 할까.


‘KBO에서 이런 취급을 당해본 게 대체 언제 적이지?’


보통 내 ‘루틴’을 소화하고 구단에 입단하는 순간, 웬만큼 깡이 좋지 않고서야 날 건드는 선배들은 없었으니까.


이번 회차처럼 굳이 소란스럽게 일이 진행되지 않더라도 알음알음 퍼지는 소문이라는 게 있으니.


‘내가 그렇게 만들기도 했고.’


아무리 사람이 마음에 안 들어도, 프로 생활을 걸면서까지 괴롭히는 경우는 드물었으니까.


왜, 똥은 무서워서가 아닌 더러워서 피한다는 말처럼.


게다가 그리 밉상인 후배가 프로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1군이건 2군이건 가리지 않고 폭격하면서 코칭스텝의 신뢰까지 받는다면, 사실상 지금과 같은 텃세를 부릴 수가 없었다.


그러니 지금 이 상황이 신기할 수밖에.


“됐어. 척. 가자.”

“아니, 초이.”

“놔둬.”


아니···

뭐, 어쩌면 이 상황이 재미있다고 느낄 수도 있었고.


‘분명 캠프에서 봤던 놈인데.’


저런 성격을 메이저리그 캠프에서는 어떻게 숨기고 있었지?


#


그렇게 대충 복도 끝 쪽에 짐을 풀어놓은 뒤 맞이한 마이너리그 캠프의 첫 훈련.


“보이지?”

“보이네.”

“저쪽이 히스패닉 파벌, 저쪽은 보너스 베이비들, 저쪽은 AAA에서 온 꼰대들, 저쪽은··· 그냥 모여있는 거야.”


마이너리그 캠프라 말하긴 해도 사실상 루키리그부터 AAA까지 다섯 개 구단 선수들이 모인만큼 확연하게 파벌이 갈려 있는 게 보였다.


“방금 전에 시비를 건 놈은 크리스 도슨. 놈은···”

“AAA 쪽 파벌이네. 메이저리그 캠프에서도 뭉쳐 다녔던 거 같은데.”

“맞아. 마일스 해리슨 때문에 메이저에 올라가지 못하는 거지 실력 하나는 괜찮은 놈이야. 40인 로스터에도 포함되어 있고, 작년에는 확장 로스터 때 덴버에 다녀오기도 했지.”


그 사이에서 내게 시비를 건 크리스란 놈이 희희낙락 하고 있는 모습 역시 보였고.


“이번 시즌에도 작년처럼 성적이 안 좋으면 마일스를 트레이드하고 크리스를 올릴 거란 소문이 많아. 마일스의 서비스 타임이 얼마 안 남았거든. 크리스도 올 시즌이 마지막 마이너 옵션이고.”

“아하. 그래서 저런다?”

“그렇지.”


KBO와는 다른, 약간 복잡한 메이저리그식 계산이 끼어있긴 했지만 결국 척의 말을 요약하자면 단순했다.


‘이제 시작 지점에 서놓고 자기가 성공한 줄 아는 타입이군.’


아무리 근처에 호랑이가 없다고 해도 자기가 여우인 걸 알면서도 왕 노릇을 자처한다는 건 그만큼 멍청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거니까.


“그러면 보너스 베이비들하고는 사이가 안 좋겠네.”

“오. 어떻게 알았어?”

“경험이 있으니까.”

“경험?”


게다가 호랑이는 아니어도 늑대쯤은 되는 이들이 이렇게 많은 곳에서 말이지.


뭐, 사실 멍청하다고 표현하긴 했지만, 대충 저러는 이유도 알 것 같긴 했다.


‘그렇게 부러웠나? 내가?’


그 호랑이들이 늑대도 아니고 토끼를 붙잡고 이뻐해 주는 모습이 보기에 안 좋으셨나 보지.


“일단 조금만 참아. 어차피 네 실력이면 곧 저러지도 못할 테니까.”

“그렇긴 하겠지. 근데 척.”

“왜?”

“너는 걱정 안 돼? 내가 왔는데?”

“···Fuck. 내 자리는 절대 못 줘.”


그렇게 대충 척을 놀리며 몸을 푸는 와중에도 내 머릿속에서는 수도 없이 많은 방법이 떠올랐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아주 여러 가지 옵션들이.


그중에는 당연히 흉악한, 그러니까 야구는 물론이고 개인 생활에까지 영향이 가는 몇몇 가지 방법들도 있었고.


‘여기가 미국인 게 아쉽네.’


비록 그 방법 중 대부분은 한국에 쌓아놓은 여러 인맥을 통해야 했기에 당장 실현 가능성이 작긴 했지만.


혹은 그게 아니더라도 이번 회차를 조금 힘들게 만들 수도 있는 방법들 역시.


뭐··· 운이 좋으면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몸에 살짝 열기가 도는 게 느껴졌을 때쯤.


“다들 모여!”


마이너리그 캠프에 처음 왔을 때 본, 캠프 총괄 감독이라는 사람이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오늘부터 프리시즌이 시작됐다. 저기 옆 동네와 달리 빌어먹게 덥고 외로운 경기지만, 그래도 너희의 가능성을 보여줄 거라 믿는다. 스쿼드 A와 B 명단을 지금 붙여놓을 테니 원정인 스쿼드 B팀은 30분 뒤까지 지정된 버스 앞에 모이도록! 이상!”


그리고.


“히언. 네가 스쿼드 A야? 제길.”


척과 함께 덕아웃 바깥벽에 붙은 라인업을 확인한 순간.


“그래. 내가 스쿼드 A네.”


내 안에 작은 아이가 날 향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수가 사고를 치면 노래로 보답을 하고.

배우가 사고를 치면 작품으로 보답을 하듯.


야구선수는 야구를 통해 자신이 한 행동의 대가를 치르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그리고 마침 난 놈과 함께 스쿼드 A의 선발 라인업에 포함되어 있었고, 난 포수였다.


그래, 포수.

그것도 꽤 오래 묵은 나머지 삭아가고 있는.


“안녕. 난 트래비스야. 트래비스 워커.”

“호현 최. 발음이 어려우면 초이라고 불러.”

“좋아, 초이. 상대 타자 분석은?”

“대충 한번 보긴 했는데, 의미가 있을까?”

“나도 동의해. 내가 좋아하는 구종을 말해줄까?”

“도움이 많이 될 거야. 아마도.”


그리고 마스크를 나 정도로 오래 쓴 포수들은, 때론 경기에서 마법과도 같은 장면을 연출할 수 있었다.


“좋아. 항상 하는 말이지만, 난 너희들의 팀을 결정할 권한이 없다. 다만, 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내 말을 참고하는 경우가 많지. 시범경기가 시작한 이상 저번 주처럼 정신을 놓고 플레이하는 경우가 없길 바란다. 그럼, 이상.”


그렇게 시작된 경기.


홈경기였기에 미리 장비를 찬 뒤 대기를 하고 있던 나는 곧 피치컴의 주파수를 한번 확인한 뒤 포수석으로 향했다.


퍼엉-


그리고 이어진 연습 투구.

직전 시즌에 하이 싱글 A에서 뛰었다는 좌완 선발은 분명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나지 않는 이름만큼 특색 없는 투구를 하고 있었다.


‘자신만만한 것 치고는 제구가.’


경기 전 연습 투구인데도 불구하고 불펜에서와 같이 이리저리 제구가 날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으니.


‘수직 무브먼트 자체는 괜찮은 것 같은데.’


그래도 구속이 대충 91마일 정도는 나오는 것도 그렇고, 공 끝 자체도 날리는 것 치고는 나쁘지 않았지만.


표현하자면 전형적인 좌완 파워 피쳐 스타일이라고 할까.


하지만.


“쓰읍. 후.”


마운드 위의 투수는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는지 연습 투구를 하는 도중에도 자꾸 고개를 흔들며 호흡을 골랐다.


‘피곤한 타입이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굳이 물어보지 않더라도 내게는 훤히 보였다.


아마 겨우내 날리는 제구를 잡기 위해 무언가 노력을 했을 것이고, 그런데도 잡히지 않는 제구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거겠지.


시범경기가 시작된 이상 결과를 보여줘야 더 높은 곳을 향해 갈 수 있을 텐데, 하면서.


애초에 제구가 잡힐 수 없는 폼으로 던지고 있으면서 말이지.


사실, 저런 타입들이 제일 피곤하긴 했다.

차라리 머리를 비우고 가운데만 보고 던지면 상관이 없겠지만, 보통 저런 타입들은 굳이 장점을 살리기보단 어떻게든 자기가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싶어 하거든.


퍼엉-


“볼.”


바로 지금처럼.


초구, 한가운데로 스트라이크를 잡으며 기세 좋게 시작한 것도 잠시.


마운드 위의 투수는 곧바로 존 상단 한참 위로 날리는 패스트볼을 두 개 연속으로 던진 뒤, 방금 전에는 되지도 않는 체인지업 사인과 함께 초등학생을 데려다 놔도 속지 않을 멍청한 공을 던졌다.


“타임. 약간만 시간을 주실 수 있을까요?”

“···경기 시작한 지 5분도 안 지났어.”

“아무래도 지금 계속하다가는 경기 시간이 두 배는 늘어날 것 같아서요.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크흠.”


이미 불펜 투구를 할 때부터 감은 잡고 있었지만, 그런 나조차 참지 못하고 바로 세워놨던 작전을 시작해야 할 정도로.


“왜 나온 거야? 체인지업을 던졌으니까 이제 패스트볼이 다시 가라앉을 거라고. 경기 전에 내가 말했잖아.”


그렇게 내가 마운드 근처에 다가가자마자 까칠한 말투로 앵앵거리는 투수.


···분명 말을 하긴 했었다.

패스트볼이 위로 날리면 체인지업 싸인을 내달라고, 그럼 힘이 빠져서 다시 제구가 돌아올 때가 많다고.


“하.”


만약 이 소리를 한창 예민하던 50대에 들었다면 어땠을까.


글쎄.

모르긴 몰라도 유격수 자리에서 실실 웃고 있는 저 새끼보다 먼저 이놈의 턱에 한방을 갈겼겠지.


하지만 난 이미 그런 질풍노도의 시기를 모두 지나왔고, 따라서 아주 우아한 말투로 놈을 달랠 수 있었다.


“헛소리하지 말고 내 미트만 보고 던져.”


그렇게 마운드에서 발을 툭, 툭 구르며 말하자 갑자기 표정이 변하는 놈.


“···그게 안 된다고.”

“어려우니까 말하지. 쉬운 걸 굳이 말할 필요가 있나?”

“···”

“난 오늘 땀 좀 흘리고 내일 다른 투수의 공을 받으면 그만이지만 넌 아니니까 최대한 집중하라고, 내 미트만 보고 던져. 쓸데없이 생각 따위 하지 말고.”


저런 타입에는 쓸데없이 관계 형성이니 하면서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었다.


나를 과녁으로 보고 던지는 놈에겐 나 역시 놈을 피칭머신쯤으로 보고 있다고 알려주면 될 일이니까.


결국 손해를 보는 건 투수라는 것 역시도.


“감사합니다.”


그렇게 이른 타이밍의 타임을 받아준 구심에게 슬쩍 인사를 한 뒤 다시 않은 포수석.


- 패스트볼.


나는 타석의 타자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피치컴을 조작해 패스트볼 싸인을 냈다.


- 숏, 세컨. 패턴 4.


시프트 싸인 역시도.


그러자 내 말을 듣고 오른쪽으로 두어 발짝 움직이는 2루수와 달리 콧방귀를 뀌며 제 자리에서 미적대며 대충 움직이는 척 시늉만 하는 크리스 도슨.


‘이럴 줄 알았지.’


유격수와 포수, 투수만 착용하던 과거 구형 피치컴과 달리, 피치컴 2세대부터는 모든 선수가 착용이 의무화됐다.


그와 더불어 벤치에서 직접 싸인을 보내는 기능 역시 추가되었고.


벤치에서 낸 싸인과 포수인 내가 낸 싸인의 목소리는 확연하게 구분이 되기에 크리스 저놈이 저런 태도를 보이는 거고.


스윽-


하지만, 난 그런 놈의 유사 태업 따위는 신경 쓰지 않은 채 슬쩍 발바닥을 비비며 타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바깥쪽으로 한 발짝 정도 위치를 옮겼다.


들고 있는 미트는 존의 한가운데를 유지하면서.


“후우.”


그런 내 모습을 붉어진 얼굴로 바라보다 곧 투구를 시작하는 투수.


“흡.”


하지만 놈은 들어 올린 오른발을 땅에 내딛자마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내가 놈의 디딤발이 놓이는 위치에 흙을 뭉쳐 다져놨으니까.


불과 1cm 남짓 될법한 차이였지만, 몸의 모든 부위를 사용해 던지는 투구라는 행위에서는 때론 그 1cm가 모든 걸 바꿀 수 있었다.


예상보다 먼저 지면에 접촉된 발 덕분에 기존보다 한 템포 빠르게 시작된 골반 회전.


하지만 아직 그 상황을 모르는 상체는 아직 1루를 바라보며 머물러 있었고, 당연히 자연스럽게 기존보다 훨씬 더 큰 꼬임각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3볼에서 보크를 줄 수 없다는 마음에서인지, 어찌어찌 그런 가운데서도 투구폼을 최대한 유지하며 던져진 공은···


쌔애애애액-


도저히 같은 투수가 던진 공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위협적인 구위를 가지고 내 미트를 향해 뻗어왔다.


하지만.


따악!


3-1, 타자의 타이밍에 던질 공이라고는 패스트볼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당황하면서도 어떻게 어떻게 컨택에 성공한 타자.


하지만 바깥쪽 공을 억지로 당겨친 공은 뜨지 못하고 투수 옆을 스치며 2루 베이스 위를 향했고.


촤아아악-


내 시프트 사인으로 인해 1루 쪽으로 향해 있던 2루수가 잡을 수 없는 코스에, 크리스 놈은 결국 다이빙을 해야만 했다.


툭, 투둑.


“좋아!”

“굿 배팅! 휘이익-”


그렇다고 옮기는 척 은근슬쩍 자리를 지키고 있던 놈의 글러브 안으로 타구가 들어가는 일은 없었지만.


‘운동능력은 좋네.’


나름 저렇게 뻗대는 이유가 있긴 한 건지, 확실히 탄력 자체는 확실해 보이는 크리스.


만약 놈이 내 시프트 지시를 들었다면 아슬하게나마 잡을 수 있었을 거다.


결국 그러지 못했지만.


“후우우우우···”


난 그런 놈의 모습을 보며 일부러 한숨을 크게 한번 쉰 뒤, 고개를 가로저으며 포수석에 앉았다.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본 놈의 얼굴은 당연히 터질 것처럼 붉어졌고.


음, 근데 이제 시작인데 어쩌지?


“뭘 어쩌겠어. 야구로 보답해야지.”

“What?”

“아, 죄송합니다. 답답해서 한국어가 나왔네요.”


대부분이 일회성이긴 하지만, 아직 놈에게 먹일 엿이 내게는 아주 많이 남아있었거든.


디스 이즈 코리안 캬라멜이다.

한번 질릴때까지 먹어 보든가.


작가의말

독자님들께서 성원을 보내주신 덕분에 비교적 빠른 회차에 투베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런 독자님들께 경애와 사랑을 담아, 고봉밥처럼 분량을 가득 담은 연참을 드립니다.

(밥만 담아서 1.5배지, 여기에 야채와 고기를 넣고 볶았으면 2배 가까이 됐을 분량입니다 ㅎㅎ)

부디 즐거우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내일(8/26, 월) 부터는 저녁 11시 20분으로 연재 시간을 고정하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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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 아니. 나도 잡혀왔어. +4 24.08.25 6,063 127 15쪽
8 8. 포수란 그런 존재지 +7 24.08.24 6,420 118 14쪽
7 7. 결국 +5 24.08.23 6,458 137 11쪽
6 6. 욕구불만 +4 24.08.22 6,767 134 11쪽
5 5. 애리조나 +7 24.08.21 7,029 138 13쪽
4 4. 진출 +13 24.08.20 7,252 146 11쪽
3 3. 루틴 +16 24.08.19 7,402 159 15쪽
2 2. 그럼 한국에서 야구 안하면 되겠네요 +11 24.08.19 7,988 140 13쪽
1 1. 홈런 못 치면 죽음 +14 24.08.19 9,595 13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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