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하는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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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正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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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9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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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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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 먹었습니다.(2)

DUMMY

펜던트를 빼내자마자 까마귀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모양의 테두리는 금으로 치장됐고, 가운데엔 붉은 수정이 박혀 있었다.

조금 더 집중해서 바라보자, 수정 안의 마나가 일렁이는 게 보였다.


“······!?”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일렁이는 것이 아니라 마나가 농축된 것처럼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세리나가 줬던 아티팩트와는 차원이 달랐다.


어르신이 나를 지켜보고 있던 것일까?

마나가 딱 떨어졌을 때 때마침 선물을 받았다.

이쯤이면 괜히 미안해질 지경이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내 행동은 빨랐다.

아티팩트를 벽에 찧어 박살냈다.


콰직!


누가 있었다면 경악할 장면이었다.

귀하디귀한 아티팩트를···.

로데일이 봤다면 아마 턱이 빠졌을 것이었다.


찬란한 빛을 발하는 마나는 흩어지지 않고, 내 몸속으로 쑥 들어왔다.

나는 내 몸을 순환하는 마나를 가만히 느껴봤다.


“와···, 우.”


여태껏 느껴보지 못했던 엄청난 양이었다.


나는 손을 들어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노곤했던 몸에 활력이 솟아나고 정신 또한 차분해지는 느낌이었다.

심신까지 안정되는 기분에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젠 마족 몇 명이 튀어나오더라도, 줘 팰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 * *


자리스는 신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족이었습니다.”


모두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뀌었다.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자네가 잘못 본 것이 아닌가!?”


자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소환까지 하는 걸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신관들의 얼굴이 경직됐다.

마족은 그야말로 재난이었다.


“그 마족은 어떻게 됐나?”

“죽었습니다.”

“죽었다?”

“네, 제가 살 수 있었던 이유는···.”


자라스는 그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런!?”

“어찌 그런 인물이 남작령에 머물고 있단 말인가?”


고위 귀족의 옆이나 왕성에 있어야 할 사람이었다.

소환체를 가루로 만들어 버리고, 도망간 마족을 따라 단숨에 죽였다.


“저도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텔레포트도 사용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텔레포트가 맞았습니다.”

“잘못 본 것이 아닌가?”

“확실합니다.”

“텔레포트까지···.”

“이름이 라온이라고 했던가?”

“예, 그렇게 들었습니다.”

“······.”

“대신관님께 알려야 할 상황이야.”


마족이 나타났고 말이다.

또한 인재는 나라의 보물이었다.

제국이 쪼개져 왕국으로 나뉘고 서로를 경계하는 상황.

또한 던전을 공략할 수 있는 기사나 마법사라면 더욱이.

머리가 짧은 신관이 입을 열었다.


“자라스.”

“네. 말씀하십시오.”

“자라스 뿐만이 아니라 오늘 보고 들었던 내용은 절대 밖으로 새어 나가선 아니 된다.”


그렇게 된다면 라온을 차지하기 위해 각 영주들은 전쟁까지 마다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가만두면 재앙을 일으키는 던전을 클리어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짧은 머리의 신관이 말했다.


“내일 아침, 직접 찾아가 보지.”


그 말끝으로 신관들은 자리를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자라스는 은밀히 신전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어둠을 틈타 한 오두막집에 다다를 수 있었다.

자라스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노크를 하자, 한 사내가 문을 열어주었다.

자리스가 안으로 들어가자, 사내가 주변을 훑으며 문을 닫았다.

자라스는 유령처럼 흔들리는 촛불을 보며 얼굴은 덮은 로브를 벗었다.


“에듀르 남작의 저택에 고대 마법을 쓰는 자가 있소. 100년 만에 나타난 마족까지 죽였으니 가서 알리시오.”

“마족이라니? 그게 사실이오?”

“내 눈으로 직접 목격했소.”


짧은 밀담을 나눈 자라스는 로브를 다시 뒤집어쓴 채 밖으로 나갔다.

오두막 위에서 깃털을 고르던 까마귀도,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그렇게 오두막에 남은 사내는 짐을 챙겨 말을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다른 왕국에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날이 갈수록 던전의 난이도가 올라가는 가운데.


‘마족을 죽였다라···.’


포섭 1순위가 될 수밖에 없었다.


* * *


다음 날 아침.

침대에 기대어 앉은 에듀르의 눈은, 전엔 탁했다면 이젠 놀랍도록 맑아져 있었다.

그 옆에 세리나가 말했다.


“아버지, 식사 하셔야죠?”

“생각이 없구나. 그런데 그분은 잘 모셨느냐?”


라온을 말하는 것이었다.

어젯밤에 있었던 일들을 딸에게 들었던 에듀르였다.


“그런 인물이 우리 영지를 방문할 줄이야.”


에듀르는 세리나가 장하다는 듯 쳐다봤다.


에듀르는 부인을 잃고 상심이 컸다.

부인의 사랑이 대단해여 첩도 두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생생한 꿈처럼 부인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 몇 달이 지나도록 자신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어떠한 영적인 존재여도 상관없었다.

내 앞에 있었으니까.


시간이 얼마간 더 흐른 후 영지에 던전 생겨났다.

몇 개월 전에도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여 겨우 닫은 던전이었는데, 또 하나가 나타난 것이었다.


이전 던전에 타격을 많이 입어, 새로운 던전을 닫으려면 영지의 기사와 병사로는 턱이 없이 부족했다.

1급 용병들을 대거 모집하기엔 자금이 부족했고.


다른 영주에게 손을 뻗어 봐도 그들은 거절했다.

당연했다.

거금을 주지 않는 이상에야, 각자 영지의 존폐가 달린 무력을 함부로 빌려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제가 해결해 드릴 수 있어요.’


나의 부인 엘리아나가 제안했다.


‘어찌 당신이···.’


엘리아나는 나의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저와 계약만 하면 된답니다.’


부인과 함께라면 지옥까지 따라갈 수 있었다.

그리고 영지를 지키기 위해선 어떤 것이든.

이까짓 계약쯤이야···.


엘리아나는 금은보화를 선물해 줬다.

그 자금으로 던전을 막을 수 있었다.


과거를 회상하던 에듀르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부인이 아닌 마족이었을 줄이야.

검은 물에서 빠져나온 기분이었다.

마족에게 지배당했다는 부끄러움과 책망할 시간도 없었다.


에듀르가 물었다.


“유랑을 하고 있었다고?”


라온을 말하는 것이었다.


“원래 목적지는 프렌시아였는데···.”


에듀르는 궁금함을 참지 못했다.


“프렌시아에 무슨 용건이?”

“동생이 하나 있는데 이름이 에렌이예요. 상인이 되는 게 꿈이라고 하던데 아마 상인과 접촉하려는 계획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에듀르는 딸을 다시금 바라봤다.

라온을 언급할 때마다 극존칭을 빼지 않았다.

신중한 딸이 사람을 잘못 봤을 리는 없고.

무려 마족을 죽인 자, 다르게는 딸과 스승과 제자의 연을 맺은.


“오늘 저녁은 성대하게 준비하라 이르고, 아는 상인도 소개시켜 줄 테니 그리 전하고.”


지금 당장에 라온을 만나보고 싶었지만, 이제야 정신을 차린 상태였다.

조금 더 정신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었다.


“혹시 상인 말고 원하는 것이 더 있다고 하더냐?”

“어제 아티팩트가 필요하다고 하셨어요.”


당장 필요한 것 같아 하급 악트팩트를 건넨 그녀였다.

에듀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니 당연히 아티팩트 같은 것들이 필요할 터.

아티팩트는 비싸지만 곳간이라도 털어서 선물해 줄 생각이었다.


마족에게서 벗어나게 해주고, 세리나의 고리까지 안정화 시켜주었으니까.

귀인에겐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어야 했다.

만약 라온이 영지에 머물러만 준다면, 내놓을 수 있는 건 모조리 내어줄 수도 있었다.


“정중하게 모셔야 한다. 필요하다는 것은 모두 지원해 주고.”

“네. 저의 스승님이신 걸요.”

“그리고···.”


에듀르는 여윈 얼굴로 미소를 만들어냈다.


“잘 돌아왔다.”


세리나도 빙긋 미소를 지었다.


“네. 아버지.”

“동생들을 불러오너라.”


혹시라도 자식들이 귀인에게 실수할 수도 있어, 주의를 줘야 했다.


* * *


나는 창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따사로운 햇살과 탁 트인 정원을 보고 있자니, 어제 일이 모두 꿈만 같게 느껴졌다.


똑똑똑.


노크 소리에 내가 뒤돌아 말했다.


“누구세요?”


문이 빼꼼히 열리며 에렌이 모습을 드러냈다.

에렌이 나아게 다가왔다.



“오빠.”

“어젠 잘 잤어?”

“긴장돼서 잠이 안 올 줄 알았는데, 나도 모르게 잠들었어. 헤헤.”


에렌의 웃음을 보니, 어제 마족과 지랄했던 게 보상 심리로 돌아오듯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때 또다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안으로 들어온 세리나가 고개를 살포시 숙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몸은 좀 어떠세요?”

“아주 멀쩡합니다.”

“다행이네요. 조금 전 아버지를 뵙고 오는 길인데 편안하게 모시라는 말씀을 전달받았어요. 전에 아버지가 말씀하셨던 건···.”

“마족이 시켰겠죠.”


그녀가 쓰게 웃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아, 세리나가 나를 대하는 격식이 점점 높아져만 간다.

부담스럽기도 했다.


“말 편하게 해주셔도 됩니다. 제가 불편해서요.”

“저는 지금이 편한데, 라온 님은 불편하세요?”

“네.”


잠깐 고민하던 그녀가 이내 미소를 만들었다.


“네. 그럼 조금 편하게 하겠습니다.”


말 잘 듣는 것도 부담스럽고.


“오늘 에렌에게 상인을 소개시켜 줄 거예요. 에렌은 어떠니?”

“상인이요?”

“응, 상인이 되고 싶다고 했지? 국왕 직할령인 프렌시아에서 활동하는 상인을 소개해 줄 거야.”


에렌의 눈망울이 커다랗게 변했다.


“저, 정말이신가요?”

“그럼, 그리고 앞으로 편하게 언니라고 불러.”


에렌이 갑자기 고개를 푹 숙였다.


“누가 들으시려면 어쩌시려고···, 말씀을 거두어 주십시오.”


세리나는 저도 모르게 한숨지었다.

앞으로 더 친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목욕도 자주 하고, 치장도 도와주고.


그때, 밖에서 집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라온 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누구?

어르신인가?


세리나가 물었다.


“손님이요?”

“네, 신전에서 나오셨습니다.”


불쑥 두 사람이 집사의 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한 명은 자라스였고, 또 한 명은 짧은 머리의 신관이었다.

짧은 머리의 신관이 라온을 보며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라스의 말이 있었지만, 젊어도 너무 젊었기 때문이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코넬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라온이라고 합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코넬의 나이는 약 40대로 보였다.

어제 빤스런치려던 자라스는 이십 대 후반.

코넬이 큰 미소를 그리며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신의 은총이 있으시기를, 정말 대단한 일을 하셨습니다. 어떻게 마족을···, 어디 상한 곳은 없으십니까?”

“네, 괜찮습니다.”

“감히 제가 라온 님의 가문을 여쭈어 봐도 괜찮겠습니까?”


아이고야···.

그놈의 출신, 출신.

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었다.


“사고로 과거의 기억을 잃었습니다.”


같은 말을 반복하기도 상당히 귀찮고 번거로웠다.

그냥 이 컨셉을 유지하자.


“신이시여, 어쩌다 그런···.”

코넬이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고, 세리나는 생각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신관들이 라온을 보물 보듯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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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까 먹었습니다.(4) +9 24.09.08 6,036 210 8쪽
16 까 먹었습니다.(3) +13 24.09.07 6,382 219 8쪽
» 까 먹었습니다.(2) +9 24.09.06 6,884 209 11쪽
14 까 먹었습니다.(1) +14 24.09.04 6,910 232 12쪽
13 별의별 것들을 내가 다 본다.(2) +7 24.09.03 6,946 234 15쪽
12 별의별 것들을 내가 다 본다.(1) +16 24.09.02 7,333 22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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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이렇게 된 거, 다 같이 갑시다.(2) +14 24.08.29 7,764 231 11쪽
9 이렇게 된 거, 다 같이 갑시다.(1) +18 24.08.28 8,157 250 7쪽
8 인연인가 악연인가(4) +6 24.08.27 8,278 259 9쪽
7 인연인가 악연인가(3) +20 24.08.26 8,488 268 13쪽
6 인연인가 악연인가(2) +20 24.08.25 9,020 271 16쪽
5 인연인가 악연인가(1) +10 24.08.24 9,675 27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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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분해. +18 24.08.21 10,490 310 14쪽
2 재밌는 현상. +17 24.08.20 11,431 33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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