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하는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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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正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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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시작.(1)

DUMMY

옆구리가 길게 베인 마물의 그곳에서 피가 철철 흘러넘쳤다.

역겨운 내장까지 함께 쏟아졌다.

커다란 마물은 콰앙 쓰러지며 흙먼지를 날리더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눈을 부릅뜬 기사가 중얼거리듯 말을 흘렸다.


“저, 저게···. 바, 봤어?”

“거, 거짓말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거짓말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심증은 충분히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정말 눈앞에서 거짓말 같은 광경을 목격했다.

다른 이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면 거짓말이라고 치부해 버릴 것이다.

그런데 진짜다.


서 있는 채로 사라졌다가, 마물의 머리 위에서 나타나는가 하면, 오러를 뿜어내더니 옆구리를 갈라 버렸다.


이걸 누가 믿겠는가?

12기사 단장의 한츠 님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 같은 오러.

대신관께서 모셔 왔다는 인물.

마법사라고 하지 않았던가?


“어서 가서 알려야겠어.”


둘이 사라진 뒤, 라온은 성문으로 고개를 비스듬하게 틀고 있었다.


철컹!

끼기기기긱.


닫혀 있던 성문이 듣기 거북한 소리를 내며 열리고 있었다.

안은 컴컴해서 잘 보이지 않았다.


‘들어오라는 건가?’


잠깐 성문을 쳐다보던 라온은 마물의 시체에 다가갔다.

불타오르던 갈기는 어느새 꺼졌고, 박혀 있던 수정도 검게 변색되었다.


이놈은 문지기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라온은 역한 피비린내를 참아가며 한 손 검으로 마물의 심장 부분을 해체했다.

곧 마정석을 얻을 수 있었고, 마정석을 손으로 부숴버렸다.

마정석에 갇혀 있던 마나가 라온을 관찰하듯 주변을 돌더니, 몸에 스르륵 스며들었다.


라온은 성 입구로 다가갔다.

쩌억 입을 벌린 컴컴한 아가리가, 어서 들어오라는 듯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입장하려던 라온은 생각을 바꿨다.

조금 전의 마정석이 꽤나 많은 양의 마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라온은 집중도를 끌어 올려 발밑에서 파문을 일으켰다.


20m의 거리에도, 30m의 거리에도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좋아.’


인근에서 폭발에 휘말릴 사람은 없었다.

라온은 성 입구로 손을 들어 올렸다.

라온의 의지와 함께, 뻗은 손으로 대량의 'O' 원자들이 빠르게 손아귀로 휘몰아쳐 들어왔다.

그 원자들은 O=O의 결합을 이루며 분자 O₂로 변환됐다.

동일한 방식으로 H₂도 빠르게 생성됐다.

라온은 그 즉시 H₂와 O₂를 결합시켜 연소 반응을 유도했고.


‘내가 잠자코 들어갈 것 같지? 네 놈들이 기어 나와 모습을 보이든지.’


2H₂ + O₂ → 2H₂O.


라온의 손에서 눈이 부신 빛이 일어나는 순간.


‘아니면 성안에서 다 뒈지든지.’


콰앙!


엄청난 수소 폭발이 일어났다.


* * *


한츠와 아델리아는 기사의 이야기를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오러도 발현했습니다.”

“잘못 본 게 아니더냐?”


한츠의 말에 두 기사가 나란히 고개를 저었다.


“진짜 오러였습니다. 과거 고대 마법사가 사용했다는 텔레포트처럼···.”


아델리아가 빠르게 물었다.


“지금 텔레포트라고 했어요?”

“예. 움직임을 눈으로 좆을 수 없었습니다.”


아델리아의 눈과 입이 벌어졌다.


“그럴 리가···.”


한츠도 마찬가지였다.

오러를 뿜어냈다고 했으니까.

기사의 길이나 마법사 길은 한 가지만 파고들어도 대성하기가 어렵다.

수만 명이 어렸을 적부터 체계적인 가르침을 받았어도 단 한 명이 오러를 피어낼까 말까다.

마법사도 5써클의 경지는 그저 벽이었다.


순간, 천둥처럼 울리는 굉음에 모두의 시선이 검은 성으로 돌아갔다.


콰아아아앙!


눈이 부신 광체가 성에서 폭발하고 있었다.

다들 입을 다물지 못하는 광경에 한츠가 소리쳤다.


“있을지 모르는 습격에 대비하라!”


처음 겪는 던전에 무슨 일이 날지도 몰랐다.

그때, 거대한 폭발을 등진 라온이 저벅저벅 걸어오는 게 보였다.


한츠와 아델리아가 입을 열려던 찰나, 그들은 빛무리와 함께 던전 아닌 밖으로 이동해 있었다.


* * *


라온은 던전 입구를 쳐다보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X라는 등급이 사라진 것을 보니 던전은 닫힌 것 같았다.

반면 용병들과 마법사, 그리고 기사들은 얼떨떨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성이 터져 버리며 던전이 닫혔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도···.


“이야!”

“살았어!”


용병들이 병장기를 들어 올리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 함성을 뒤로한 한츠가 라온에게 다가왔다.


“라온 님.”


라온이 몸을 돌려 한츠를 바라봤다.

그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는데,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라온이 말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더 다친 사람 없이 던전을 닫게 돼서 다행이네요.”


한츠는 지금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의 머릿속엔 온통 폭발했던 성과 라온만이 들어차 있을 뿐이었다.


“혹시 라온 님께서 성을 무너트리신 겁니까?”


설마···.

라온은 쓰게 웃으며 볼을 긁적였다.


“위험해 보이는 것 같아 그랬습니다.”


보물 상자 같은 곳에서도 마물이 튀어나왔다.

그러한 함정 같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들어가, 마물들을 하나하나 상대할 필요는 없었다.


“어떻게 그런···.”

“라온 님!”


아델리아가 목소리를 높이며 다가왔다.


“설마, 성을 라온 님이 어떻게 하신 건가요?”


라온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연기했다.

계속 반복되는 똑같은 질문.

이러다가 앵무새가 될지도 모르겠다.


“예. 마나를 너무 소비했더니 두통이, 좀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마나를 쥐어 짠 건 사실이었다.

아델리아가 급하게 입을 열려다가, 아쉬운 표정으로 마무리했다.

몸 상태가 저렇다는데 질문을 던진다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었으니까.


그렇게 라온은 산맥을 같이 내려가는 척하며, 도망치듯 마차를 타고 프렌시아를 떠났다.

귀족은 라온에게 까다롭고 피곤한 작자들이었다.

어느새 에듀르 남작의 영지에 도착한 라온은.


“왜 이렇게 빨리 오셨습니까?”


훈련장에서 땀을 한 바가지나 흘린 그릭은, 라온을 신기하게 쳐다보며 물었다.

프렌시아로 향하는데 이틀, 그리고 오는데도 이틀이 걸린다.

그런데 라온은 4일 만에 돌아왔다.

던전을 하루, 아니 몇 시간 만에 닫아 버렸다는 것인데.


“운이 좋았습니다.”

“오빠!”


에렌이 달려오자 라온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맺혔다.

사람들은 잘 모른다.

돌아왔을 때 이렇게 반겨주는 사람이 있는 건, 가슴속 한구석을 뭔가가 채워주는 느낌을 받게 한다.

사람들은 그걸 아주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나에겐 특별하다.


에렌이 라온을 와락 끌어안았다.


“음~ 오빠 냄새, 좋다.”


나 씻지도 않고 바로 달려온 길인데.


“라온 님!”


세리나도 치맛자락을 잡으며 달려왔다.


“어찌 이렇게 빠르게···.”


라온이 슬쩍 웃으며 물었다.


“제가 알려 드렸던 건 외우셨습니까?”


원소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세리나는 라온을 반기면서도 눈빛이 흔들렸다.


“아직 60개 밖에···.”


던전에서 라온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라온에게 축복을 바라는 기도를 올리는 중에서도 외웠는데, 정말 이렇게 빨리 올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많이 외우셨네요. 장하십니다.”


생소했을 텐데 절반이나 외웠다면 칭찬해 줘야 했다.


그렇게 5일이라는 시간이 지났을 때,

에듀르 남작의 대저택으로 마차 행렬이 들어섰다.


상급 아티팩트 수십 개는 물론이고, 금으로 이루어진 온갖 장신구를 실은 마차였다.

물론 어른 키만 한 상자 속에도 금화가 가득했다.

라온에게 약속했던 보상이었다.

라온은 에듀르 남작과 함께 접객실에서 부신관 스피오를 맞이했다.


마차를 이끌고 온 스피오가 고개를 깊게 숙였다.


“대신관님께서 오시는 게 맞습니다만, 바쁜 용무가 있어 대신 제가 왔습니다.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는 전보다 상당히 공손한 모습이었다.

라온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라온 님, 왕께서 전령을 내리셨습니다.”


본래 라온이 직접 왕성에 방문해야 했지만, 대신관과 부신관이 의견을 달리했다.


‘던전을 닫자마자 바로 영지로 돌아간 걸 보면, 얽매이는 것을 상당히 싫어하는 성격일 수 있습니다.’

‘왕께서 라온이라는 인물을 궁금하실 수 있다고는 하나, 일단 전령을 보내시어 치하하시는 게 어떠시겠습니까.’


라온의 속내를 몰라 여차해서 본국을 떠나버리면, 던전을 닫을 수 있는 핵심 인물 하나가 사라지는 셈이었다.

그것은 곧 국력에 크나큰 영형을 끼치게 된다.


스피오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라온을 바라봤다.


“작위를 내리셨습니다.”

‘오!’


돈과 아티팩트도 그렇지만, 작위가 필요로 했다.

이 귀족 새끼들은 귀족이 아니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재산으로 생각하거나 물건 취급했다.

아닌가?

밤엔 도적떼로 변하는 농노와 평민, 소매치기를 하며 서로 나눴으니 오히려 피해자에게 신의 축복이 있을 거라는 개소리를 해대는 놈들 등등.

똑같은 놈들인가?

아무튼 작위가 없는 것보단, 가지고 있는 게 여러모로 편리했다.


스피오가 고급 양피지를 펼치며 왕의 전령을 읽기 시작했다.

아니 다시 라온을 힐끗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라온 님, 무릎을···.”

“아, 예.”


멀뚱하니 서 있던 라온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스피오가 다시 양피지를 쳐다봤다.


“그대의 용감함과 희생정신에 짐은 감복하였다. 또한···”


라온은 얼떨떨하니 부신관 스피오를 쳐다봤다.

진짜 작위를 받긴 받는구나.

어떤 작위를 줄까?


[그리하여 백작의 작위를 하사하노라.]


라온은 눈을 깜빡거렸다.

내가 지금 남작령에 있는데 백작이 된다고?


“이건 왕께서 직접 하사하신, 라온 님의 가문의 깃발입니다.”


스피오가 커다란 액자 같은 목곽을 조심히 내밀었다.

두 손으로 받아들인 라온이 목관을 열었다.

깃대가 없는 붉은색 깃발이었다.

장인이 정성 들여 바느질한 것 같은 황금색 불사조가 인상적이었다.


* * *


바렌시아 왕국과 맞닿은 아크릴리아 왕국.

붉은 의자에 앉은 왕의 분위기는, 전장을 휩쓸어 다닌 자의 분위기처럼 가히 압도적이었다.

얼굴엔 검흔이, 턱을 괸 커다란 손은 굳은살이 박혀있었다.

바렌시아 왕국 곳곳에 첩자를 심어 두었는데, 그중 하나가 정보를 알려왔다.

고대 마법을 부리고, 마족을 죽이는 자가 나타났다고.

그뿐인가?

며칠 전 바렌시아 왕국이 X 급 던전을 닫아버렸다.


왕이 고위 귀족 중 하나를 내려다봤다.


“자네의 생각도 그러한가?”

“필시 라온이라는 자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바렌시아 왕국이 본국에게 도움을 청한 적이 있사옵죠.”


Ⅸ 급 던전을 닫기 위해 바렌시아 왕국은 거액의 재물을 제안하며 파병을 요청해 왔다.

하지만 거절했다.


“Ⅸ 급 던전을 가까스로 닫은 놈들입니다.”


그에 국력이 많이 쇠퇴한 바렌시아 왕국이었다.


“그런데 X 급 던전을 닫았다니요. 고대 마법을 쓴다는 라온이라는 자가 협력한 것이 확실한 것 같습니다.”


본국에서도 X 급 던전이 나타났지만, 아무리 원정대를 보내도 실패를 거듭하고 있었다.

바렌시아 왕국이 던전의 공략법이라도 공개하면 좋으련만, 정보가 새어 들어오지 않는 걸 보면 공략법을 꽁꽁 감추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제 던전이 재앙으로 치닫게 될 시간은 고작 이주.

게다가 던전은 왕성 근처에서 생겨났다.


“그자의 파병 요청은 힘들 것 같습니다.”


전에 본국이 파병 요청을 거절한 선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왕성에서 몸을 피하신 뒤···.”


왕이 팔 받침대를 쾅! 내려찍었다.


“누가? 이 짐이? 본국을 버리라는 뜻인가!”


잡아먹을 듯 귀족들을 쳐다보던 왕이 다시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라온이라는 자를 본국으로 데리고 와. 원하는 게 있다면 무엇이든 들어주게. 그게 안 되면 납치를 하거나 인질을 잡아서라도 데려 와.”


작가의말

qoochang1님! 소중한 후원금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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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별의별 것들을 내가 다 본다.(2) +7 24.09.03 6,712 228 15쪽
12 별의별 것들을 내가 다 본다.(1) +16 24.09.02 7,067 221 14쪽
11 이렇게 된 거, 다 같이 갑시다.(3) +9 24.08.31 7,210 227 10쪽
10 이렇게 된 거, 다 같이 갑시다.(2) +14 24.08.29 7,488 223 11쪽
9 이렇게 된 거, 다 같이 갑시다.(1) +18 24.08.28 7,869 242 7쪽
8 인연인가 악연인가(4) +6 24.08.27 7,988 250 9쪽
7 인연인가 악연인가(3) +20 24.08.26 8,195 257 13쪽
6 인연인가 악연인가(2) +19 24.08.25 8,703 258 16쪽
5 인연인가 악연인가(1) +10 24.08.24 9,326 262 10쪽
4 각방 쓰셔야합니다. +11 24.08.22 9,861 298 13쪽
3 분해. +18 24.08.21 10,130 301 14쪽
2 재밌는 현상. +17 24.08.20 11,031 319 14쪽
1 마법의 물약이 아니라, 그냥 H₂O라고... +21 24.08.19 13,569 30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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