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하는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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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正龍)
작품등록일 :
2024.08.19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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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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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인가 악연인가(1)

DUMMY

“각방?”

“예, 각방.”


로데일이 골똘히 생각하듯 미간을 모았다.

하지만 곧 이내 헛웃음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다짜고짜 얘기하고 싶다며 찾아왔고, 돈으로 꾀려 하고 있었으니까.

라온이 자신을 수상쩍은, 혹은 변태 성욕자라 생각할 만도 했다.

그런데 이 베르노 로데일이 누군가?

몰락 귀족의 출신이었지만, 어떤 의뢰도 홀로 해내는 자신이었다.


여러 길드에선 자신을 ‘보이지 않는 사자’라고 불렀다.

하지만 의뢰인과 직접적으로 의뢰를 체결하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정체를 잘 알 수도 없었다.

한때 자신의 의뢰를 뒤로 가로채려 했던 한 길드를 지워 버린 적도 있고.


그런 자신이 지금 이런 취급을 받고 있었다.


“흘흘흘, 날 이상한 노인으로 보는 건 이해하겠지만, 지내보면 알게 될 게다.”


하지만 라온은 완고했다.


“각방 쓰셔야 합니다.”

“이거 참, 그렇게 하마. 금화는 나와 며칠을 보낸 뒤에 그때 주지.”


이렇게 자신을 대하는 사람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렇게 식사를 끝낸 라온 일행은 밖으로 나왔다.

배를 든든히 채우니 좀 살 것 같았다.

반면 로데일이라는 노인은 음식엔 손도 대지 않고, 입술만 적시듯 물 잔만 입가로 가져갔을 뿐이었다.


로데일이 에렌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피곤한 것 같은데, 방부터 잡아주마.”


라온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순간적으로 방에 갇혀 일진들에게 얻어맞았던 기억이 스쳐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어렸을 적 일진에게 끌려 다니고, 유랑단에 끌려 다니는 몸에 빙의하고.

이젠 위험할지 모르는 낯선 노인이 내민 돈에 끌려 다닐 판이다.

노인이 내민 돈도 그랬지만, 사실 지팡이에 감도는 마나 때문에 호기심이 동해 응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제 그러지 말자. 그러지 말자고.

언제까지 끌려 다닐 거냐, 언제까지.

나혼자도 아닌 에렌도 있다.

라온은 이내 고개를 들어 말했다.

이젠 내갈 길 가자.

어디로 가든지 말이다.


“어르신 죄송한데 도저히 안 될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희가 갈 길이 멀어서 빨리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로데일의 눈동자가 경직됐다. 곧 그의 눈빛에 아쉬움으로 물들었다.


“그게 어딘가? 내가 편하게 데려다 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개인 사정이 있어서 말입니다.”


로데일이 눈을 깜빡였다.

아깐 갈 곳이 딱히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죄송합니다. 오늘 덕분에 감사했습니다.”

“사실 내가 네 능력을 개화시켜···.”


라온은 그의 말을 듣지도 않은 채 에렌과 몸을 돌려 걸어갔다.

데일리의 손이 붙잡을 듯 올라갔지만, 라온과 에렌은 이미 저만치 멀리 떨어져가고 있었다.


* * *


라온은 일단 옷 가게에 들러 로브를 두 개를 샀다.

이유는 비나 체온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 생각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불로도 사용가능했다.

라온은 바로 후드를 뒤집어썼다.

며칠 사람들 앞에서 불 쇼와 물 쇼를 벌이다 보니,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하고 어색했다.

이렇게 인싸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에렌, 이제 도시로 가자.”


도시로 향하는 마차를 이용할 것이었다.

그곳에 가서 상인이 꿈인 에렌에게 기회가 쥐어질 수도 있고, 나에게도 어떤 기회가 찾아올지 모른다.

자세한건 가서 생각할 계획이었다.

라온은 일단 식량을 구비하기 위해 움직였다.

육포나 딱딱한 빵 정도랄까.


그렇게 걸어가는데···.


“라온! 에렌!”


앞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엔 아렉과 피셔가 서 있었다.

정말 상거지 꼴이 따로 없었다.

라온은 미간을 찌푸렸다.

로브까지 쓰고 있었는데 잘도 알아봤고, 용케도 살아 있었다.

피셔가 금세 다가왔다.


“살아 있었어? 그 보다···, 로브는 어디서 놨어? 새것 같은데?”


라온은 담담하게 말했다.


“샀지. 돈으로.”


에렌과 나는 이제 더 이상 그들의 노예가 아니었다.

거짓말 할 것 없이 스스로 당당해질 필요가 있었다.


“이 새끼가 반말을···.”


피셔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다 필요 없고 로브 벗어. 그리고 가진 돈 있으면 다 내놔봐.”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이 새끼 봐라?”


그가 허리춤에서 단도를 불쑥 뽑아냈다.


“지금 죽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 응?”


라온은 자신만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집중도를 올리며 말했다.


“피셔야, 이 무식한 새끼야. 너 뉴턴의 제 3법칙 작용과 반작용이라고 들어봤냐?”

“뭔 개소리를···.”


피셔가 저도 모르게 주춤거리며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라온의 손이 단도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순간.


채채챙!


단도가 파편을 튀기며 박살이 나버렸다.

라온이 금속 내부의 수소 취성을 유도하고, 화합물 형성을 통해 강도를 급격하게 약화시킨 것이었다.


라온이 경악하고 있는 피셔에게 말했다.


“네가 자꾸 이렇게 나에게 작용하면.”


라온의 주먹이 피셔의 턱주가리를 돌렸다.


뻐억!


“내가 너한테 이렇게 반작용되게 된다는 거야.”

“컥!”


피셔는 실 끊긴 인형처럼 털썩 쓰러졌다.

뇌가 흔들리는지 바로 일어나진 못했다.

라온이 말했다.


“다시 따라오기만 해? 응? 저 단검처럼 부숴줄 테니까. 아주 자잘하게 말이지.”


사람을 처음 때려봤지만 속이다 후련했다.

라온은 미련 없이 몸을 틀었다.


“이노오오옴!”


뒤에서 피셔의 아버지, 아렉의 분노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온은 한숨을 내쉬며 뒤돌아봤다.

그때.


퍼석!


검은 물체가 빛살처럼 하강하며 아렉의 머리로 떨어졌다.

자세히 보니 그건 까마귀였고, 부리가 아렉의 머리에 박혀 있었다.


털썩.


단말마 없이 아렉이 쓰러졌고.


“아버지!”


놀란 피셔가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퍼석!


또 한 마리의 까마귀가 피셔의 목에 박혀 들어갔다.


“커억!”


나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뭐야!?

까마귀가 사람을 죽인다고?

대체 이 미친 세상은···.


“가자 에렌.”


라온은 에렌과 함께 자리를 빠르게 떠났다.


그런 라온과 에렌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로데일이었는데, 조금 전 까마귀를 정신 지배해 부자를 죽인 그였다.


“온정이 너무 많아.”


상대가 칼을 겨눈다면 무조건 죽여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또한 자신의 제자가 될지도 모르는 라온에겐 더욱.

그나저나···.


로데일은 라온이 관객 앞에서 마법을 펼쳤을 때를 떠올렸다.


‘수헬리베붕탄질산.’


마법사들은 마법을 발현할 때 영창을 읊조리는데.

라온이 외운 것들은 처음 들어보는 주문이었다.

조금 전 단검을 박살냈을 때도 그랬다.


‘뉴턴의 제 3법칙이라···.’


스스로 어떠한 법칙을 만들어낸 것일까?

로데일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어렸다.


역시 더 탐이 나는 녀석이었다.

평범한 녀석이었다면 어디 가둬놓고 제자로 삼았을 텐데, 텔레포트를 사용하며 오크를 손만 대고 죽인 녀석이었다.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기엔 자신에게 위험했고, 다른 방법으로 생각해야 했다.


* * *


말린 음식을 산 라온은 이내 이동 마차가 줄진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행상인이나 마부들이 소리치고 있었다.


“캘리비언 마을까지 갑니다!”

“동화 세 냥에 테에론 마을로 갑니다! 테에론! 세 냥!”


라온은 조금 더 둘러봤다.

그때 얼굴에 수염이 덥수룩한 행상인이 외쳤다.


“국왕 직할령 프렌시아 도시로 갑니다! 동화 일곱 냥!”


라온이 그에게 다가가기 전 에렌에게 물었다.


“에렌, 두 명이면 얼마나 필요하지? 7 더하기 7.”

“동화 14냥. 맞지?”

“그렇지.”


에렌이 뿌듯하게 웃자, 라온도 뿌듯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에렌에게 틈날 때마다 산수를 가르쳐 주니 실력이 일취월장으로 올라갔다.

에렌의 가치가 조금씩 더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라온이 행상인에게 다가갔다.


“도시로 갑니까?”

“프렌시아로 가는 마차야.”

“얼마나 걸립니까?”

“3일 정도 걸리겠지?”

“두 명입니다.”


라온이 동화를 내밀자 그가 받아 세기 시작했다.


“마차에 사람이 다 차면 출발할 거야. 일단 타.”

“감사합니다.”


라온은 에렌과 함께 마차에 올랐다.

천막으로 지붕을 만든 마차에 올랐다.

뭘 싣고 날랐던 것인지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지리도 모르고 다른 이동 경로도 없으니 참아야만 했다.


금세 밖에서 마차를 이용하려는 사람의 소리가 들렸다.


“얼마라고?”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마차에 오르자 라온은 적잖게 당황했다.


“어르신?”


로데일이었다.


“어? 이런 우연이 다 있을까? 너도 프렌시아로 가는 게야?”


과연 저 말이 진실일까?


“네, 그렇긴 한데···.”

“허허허! 가는데 심심하진 않겠구나.”


따라온 것 같긴 한데, 심증만 있고 물증이었으니 참 그랬다.

이렇게 또다시 보게 되니 긴장감이 자라났다.

좋은 소리만 살살 하는 노인네가 저 지팡이로 뭐를 할지도 모르고.


그렇게 허리나 등에 병장기를 찬 용병들도 마차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차에 오르려는 두 사람 때문이었다.


그릭이 세리나에게 말했다.


“다들 내리라 이를까요?”

“그냥 조용히 가죠.”

“알겠습니다.”


그릭이 먼저 마차 안으로 들어와 빈자리에 로브를 깔았다.

그리곤 세리나가 그 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몸에선 아직도 마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역시 둘 다 살아 있었다.


“불편해도 참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릭의 말에 세리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라온의 시선에 그릭이 고개를 돌렸다.


“용케 살았군.”


라온은 공손히 답했다.

그들은 심기를 건드려선 안 될 귀족이었으니까.


“이렇게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라온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했다.

나에게 돌아가라 말하던 그릭의 살기 어린 눈을 말이다.

기사는 사람을 베는데 주저함이 없다지?

로데일도 그렇지만 세리나와 그릭도 신경써야할 대상이었다.

도시로 가는 3일 동안, 아주 고된 역경이 주를 이을 것만 같았다.


한편, 로데일은 세리나를 잠깐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몬스터를 이용해 그녀를 납치하려 했었다.

하지만 얼굴에 철면피를 깔았는지, 전혀 내색하지 않고 잔잔한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마차는 출발하기 시작했다.


덜컹! 덜컹!


맥주를 채운 물주머니를 꿀꺽꿀꺽 마시던 용병이 하늘을 보며 말을 지껄였다.


“날씨 한 번 개 같고 좋네.”


우중충한 하늘에 구름이 갈기갈기 찢겨져 흘러가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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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이렇게 된 거, 다 같이 갑시다.(2) +14 24.08.29 7,491 223 11쪽
9 이렇게 된 거, 다 같이 갑시다.(1) +18 24.08.28 7,869 24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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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인연인가 악연인가(3) +20 24.08.26 8,196 257 13쪽
6 인연인가 악연인가(2) +19 24.08.25 8,705 259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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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재밌는 현상. +17 24.08.20 11,033 319 14쪽
1 마법의 물약이 아니라, 그냥 H₂O라고... +21 24.08.19 13,570 30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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