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보는 재벌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새글

sunwoo3838
작품등록일 :
2024.08.20 20:33
최근연재일 :
2024.09.18 20:00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1,939
추천수 :
33
글자수 :
63,512

작성
24.09.10 20:00
조회
277
추천
4
글자
13쪽

003 안개 정국의 답을 말하다

DUMMY

마침내 퇴원한 나는 곧바로 청소년용 정장을 입은 다음에 차에 태워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완치 기념 연회를 할아버지께서 여신다고 한다.


처음에는 아무리 재벌이라도 너무 과한 건 아닌가 싶었지만,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는 이해가 갔다.


-정우야, 네가 우리 윤가의 하나뿐인 귀한 장손인 건 알지? 사실 대가 끊길 뻔한 것이란다. 그러니깐 다른 이들에게 보여줘야지, 우리 장손이 이렇게 건재하다고 말이다.


한마디로 가문의 뿌리가 튼튼하다는 걸 증명하는 자리이기도 하다는 말이었다.


‘1980년인 지금 시대 정서상으로는 대가 정말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사실 할아버지께서 진심으로 준비하신 연회라면 나에게는 엄청난 기회의 장이 될 수도 있어.’


나는 설렘 반 기대 반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연회장에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끼이익.


차가 멈추었고 곧바로 미리 대기하고 있었던 직원들이 아주 정중하게 차 뒷문을 열어주면서 에스코트를 시작했다.


재계 서열 26위인 서율그룹의 위세를 생각해도 조금 과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도착한 호텔의 이름을 살피자마자 바로 직원들의 태도가 이해되었다.


‘홍련호텔, 우리 외할아버지의 호텔이군.’


1980년 지금 서울 아니 대한민국 전체를 통틀어서 몇 없는 특급 호텔이 바로 홍련호텔이다.


물론 2024년에는 그저 그런 서울에 있는 4성급 호텔로만 남았지만, 확실히 지금 호텔의 모습을 보니 호화스러움이 물씬 느껴진다.


거기다가 호텔의 화려한 외관보다도 나를 더욱 두근거리게 만드는 것들은 이미 로비 근처에 세워진 차들이나 이미 호텔 로비에 있는 사람들의 복장이 모두 예사롭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게 서율그룹의 전성기인가? 잘은 모르겠지만, 여기 온 이들 모두 상류층, 기득권층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인 건 확실하다.’


나는 슬쩍 아버지께 질문을 던졌다.


“아버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연회가 크게 열리는 것 같아요. 이 사람들이 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내 질문에 아버지는 로비로 나와 함께 걸어가시면서 천천히 설명해 주셨다.


“원래 할아버지나 아버지처럼 사업을 크게 하는 사람들은 아는 사람들이 많단다. 다만, 이번에는 할아버지의 친우분들이 많이 오신 것 같구나.”


나는 윤정우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할아버지의 인맥에 대해서 떠올렸다.


‘영남, 즉 경상도 지방에 명문가들이나 유지들이랑 끈끈한 관계가 있으시군. 특히, 본진은 부산인가. 명절마다 영남에서 온 사람들과 선물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던 기억이 있어.’


실제로 아버지와 함께 연회장에 들어가자 사람들이 정말로 넘쳐났다.


어머니는 내 놀란 얼굴을 보시자 살짝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호호, 정우야 너무 놀라지 말렴. 외할아버지께서도 이번에 친구분들을 많이 모신 것 같구나. 잘 모르겠지만, 외할아버지께서는 발이 넓기로 소문이 나신 분이란다.”


내 할아버지인 서율그룹 윤명수 회장의 인맥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는데, 외할아버지의 인맥까지 합쳐지자 군침이 저절로 나올 정도였다.


‘지금 이곳에 있는 이들이 전부 본인들의 자리에서는 힘 좀 쓰는 이들이다.’


나는 먼저 도착해서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으신 할아버지께 단숨에 향했다.


그러자 할아버지께서 곧바로 환하게 웃으신 다음에 대화를 나누던 이들에게 나를 바로 소개하셨다.


“우리 장손 이제 아주 건강해졌구나. 아, 우리 장손인 정우일세. 자자, 이번 연회의 주인공이 바로 우리 장손이니 덕담이라도 좀 던져주게.”


할아버지께서 나름 정중한 말투로 나를 소개하자 나는 정말로 눈앞의 이들이 상당한 실력자들이라고 여겼다.


몇몇은 내가 이미 눈치챌 정도로 유명한 이들도 이미 존재했으니 말이다.


“회장님의 장손이 아프다길래 걱정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허허. 이제는 건강해진 것 같으니 제가 더 마음이 풀리는군요.”


너스레를 떨면서 자연스럽게 내 머리를 쓰다듬는 인물은 1세대 창업주 중 하나이자 화약 산업의 절대자인 대화(대한화약)그룹의 강종현 회장이었다.


“강종현 회장님 감사합니다.”


내가 정확한 이름을 말하자 약간 놀란 얼굴로 강종현 회장이 말했다.


“호오, 어릴 때 한 번 봤던 기억 말고는 없는데, 기억력이 참 좋구나. 윤 회장님께서는 장손이 이렇게 영특하니 참 부럽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기분 좋게 말을 받으셨다.


“우리 장손이 몸이 허약했던 것만 빼면 사실 빠질 게 없었지. 인물 좋지, 총기도 있지, 또 예의까지 바르지 않나? 이제는 몸도 건강하니, 정말 걱정할 게 하나도 없지, 하하하.”


그 외에도 국회의원, 교수, 의사, 기업가, 기자, 경찰, 법조인 등등 수많은 이들이 나에게 덕담을 건네며 할아버지와도 대화를 나누었다.


할아버지의 인맥들을 쭉 보면서 느낀 점은 아버지의 말씀대로 영남에 너무나도 치우쳤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역주의로 엮여서 그런지 정말로 끈끈해 보이는 관계였다.


‘동충의 민우현 회장, 국양의 정안승 회장 모두 부산에서 기업을 일으킨 부산 재벌이다. 거기다가 한국대학교 총장인 공인범 교수에 해동신문의 박중환 회장까지 모두 영남 출신이다.’


옆에서 귀를 기울여서 대화를 들은 나는 할아버지가 영남 출신 인물들에게 지속적인 투자를 해오셨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영남 출신 인물 중에서 싹이 보이는 이들에게 예전부터 계속 도움을 주셨으니 이렇게 끈끈한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거기다가 지금 이들 모두 상당한 권력자들이기도 하지.’


특히 토요일 저녁에 열리는 이 연회를 위해서 전날 밤부터 부산에서 올라온 이들이 아주 많다는 사실 또한 나에게는 놀라운 점이었다.


경찰서장, 은행 지점장, 신문사 국장, 국회의원 등등 부산에서 알아주는 이들이 할아버지의 부름에 곧바로 서울로 올라와서 연회에 참석했다.


‘할아버지의 영향력이 내가 생각했었던 것보다도 훨씬 강대하다는 것이다.’


나는 일단 안면부터 익히자는 생각으로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서 연회장 곳곳을 누볐으며, 그들이 어떤 주제의 대화를 나누는지도 귀를 쫑긋하며 들었다.


-역시 서율의 윤명수 회장님이시군. 영남 출신들은 다 모인 것 같아.


-홍차식 회장님도 만만치 않으시지. 참석하시는 모임 개수만 해도 엄청나시니.


이런 그저 그런 대화도 많았지만, 일부 담화에서는 내 귀가 솔깃해지는 내용도 있었다.


-이봐, 그런데 요즘 시국이 영 흉흉하지 않나?


-그래, 빨리 제대로 된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데 말일세.


정치에 관한 이야기는 물론 어느 자리에서나 항상 나올 정도로 흔한 이야기이지만, 조금 과할 정도로 많이 나왔고 또 은밀하게 차기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때 나는 확실하게 지금 시기인 1980년 1월을 표현하는 단어를 떠올렸다.


-안개 정국.


1979년 12월 12일에 쿠데타가 벌어진 직후 정계는 그야말로 대혼란에 빠졌었다.


지금쯤이면 차기 대통령이 될 인물이 누구인지 열심히 조사하고 뒤에서 줄을 대려고 할 순간이었고 나는 내가 나설 무대가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고 여겼다.


연회 중간부터 기회를 엿보던 나는 할아버지와 나만 식사를 위한 자리에 앉았을 때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연회장을 쭉 둘러보다가 많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궁금한 게 생겼어요.”


그러자 할아버지께서는 온화한 태도로 물으셨다.


“우리 장손이 무슨 이야기를 들었길래?”


“그, 어른들이 모두 하는 이야기가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될 것인지였어요. 그런데 강정후 각하께서 서거하셨지만, 안성수 각하가 지금 대통령이시잖아요?”


할아버지는 나름 민감한 주제에 약간 놀란 기색을 보이셨으나, 곧 충분히 궁금할 수 있는 부분이라 판단하셨는지 기특하다는 얼굴로 말씀하셨다.


“이 할애비도 요즘 고민이 많은 부분이란다. 우리 장손이 이 나이에 벌써 정치에 흥미를 보이니 조금 알려주마.”


내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할아버지를 응시하자 할아버지는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옛날식으로 말하면 대통령이 왕이고 총리는 영의정이지. 지금 안상수는 왕이 급사해서 영의정인데 임의로 왕의 역할을 잠깐 맡는 것이란다. 영의정은 결국에는 정승, 진짜 왕은 아니지.”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호응했다.


“아, 그러면 지금 여기 있으신 분들은 진정한 왕이 될 권력자를 미리 찾으시려고 하는 것이군요. 왕과 친해지면 도움이 많이 되는 것이 당연하니 말이에요.”


“확실히 영특하구나, 우리 장손. 그래, 모두가 차기 대통령을 찾고 있지. 이 할애비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그래, 돌아다니면서 거론된 이름들은 누구누구가 있었니?”


아직은 장손에 대한 호감과 대화를 더 나누자는 느낌의 태도다.


하지만 이 가벼운 대화에서 할아버지를 진심으로 움직이게 만들어야 한다.


“최태산, 김중구, 서표훈, 안성수 이렇게 4명의 이름을 가장 많이 들었어요. 아, 진호석? 누군지 잘 모르겠는데 누가 아주 진지한 어조로 말했었어요.”


이렇게 말하면은 자연스럽게 진호석에 대해서 말하게 되는 흐름이 만들어진다.


내 의도대로 할아버지께서는 진호석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우리 장손이 병원에 계속 있었으니, 아직 진호석이를 잘 모르겠구나. 군바리, 군인인데 뭐 시해 사건 조사도 하고 그러면서 요즘 실세인 사람이지.”


지금도 실세 정도의 취급은 받고 있었군.


‘진호석, 군부 사조직인 일심회를 토대로 일종의 쿠데타에 성공해서 대한민국의 대통령까지 등극하는 인물이지. 일단 할아버지께서 그를 지금과는 다른 시각으로 보게 해야 한다.’


나는 정말로 순수한 어조로 말했다.


“실세라고 한다면은 가장 대통령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말 아닌가요, 할아버지?”


그러자 할아버지께서는 너털웃음을 지으시더니 천천히 알려주시는 것처럼 말씀하셨다.


“나라가 혼란스러우니 갑자기 군인에게 힘이 실리기는 했지만, 결국 나라를 이끄는 건 정치인들이란다. 아마, 최태산, 김중구, 서표훈 중 하나가 될 것이란다.”


여기서는 바로 진호석에 대한 언급을 더 하는 것은 악수다.


“그러면 왜 김중구, 최태산, 서표훈이 유력한 후보들인 건가요?”


“그들은 기반이 각자 있기 때문이란다. 김중구는 호남, 최태산은 영남, 서표훈은 충청이지. 충청이 인구로는 조금 밀리지만, 서표훈은 강정후 정권의 실세라서 아직 여력이 있단다.”


여기서 비범한 질문을 통해서 할아버지의 태도를 진지하게 바꾸겠다고 생각한 나는 승부수를 던졌다.


“할아버지, 결국 그들이 힘을 쓰려면 투표가 실제로 이루어져야 하는 거잖아요? 만약에 강정후 각하께서 집권하시던 시절처럼 흘러가면 어떻게 되나요?”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상징이자 동시에 독재의 상징이기도 한 강정후도 처음에는 쿠데타로 집권한 인물.


그 야만과 폭력의 시대를 온몸으로 겪으신 할아버지께서 내 말은 그저 아이의 말로 치부하고 넘어가실 리가 없었다.


순간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신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우리 장손이 이 할애비 생각보다도 훨씬 영특할지도 모르겠구나. 최근의 뉴스도 보지 못했고 지금 연회에서 들은 이야기만으로 말하는 것이겠지만, 한번 네 생각을 전부 말해주겠니?”


내가 장손이라는 점을 생각해도 확실히 범인의 태도는 아니었다.


‘어린 손자의 말에서 무언가 범상치 않은 느낌을 받고 내 말을 바로 경청하고자 하는 태도. 높은 자리에 있는 인물일수록 때로는 유연하게 여러 의견을 듣는 모습이 필요하기도 하다.’


당연히 할아버지께서 내 말만 듣고 무언가를 결정하시지는 않겠지만, 할아버지가 약간이나마 진지하게 변한 지금 내가 하는 말을 일부는 분명히 무시하지 않으실 것이다.


“고려시대에 무신정변이 있었습니다. 문관들은 본인들이 나라를 이끈다고 생각했지요. 또 왕은 무장들이 무시당해도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역사를 꺼낸 나를 약간은 의아한 눈으로 보시면서도 할아버지는 일단 내 말에 호응하셨다.


“그래, 젊은 문관 한뢰가 대장군 이소응의 뺨을 치고 정중부의 수염을 태웠지.”


“그들이 믿었던 왕은 막상 무관들이 칼을 뽑고 군사를 일으키자 무력했으며, 나라를 지배한다고 자부하던 문관들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고 창과 칼 앞에 굴복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잠깐 숨을 내쉬었다가 가장 중요한 본론을 진지한 어조로 내뱉었다.


“지금 상황과 무엇이 다릅니까? 제가 보기에는 왕이 안상수 대통령이고, 문관들이 서표훈, 김중구, 최태산입니다.”


할아버지의 순간적인 표정을 본 나는 속으로 확신했다.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알린 정답을 절대로 무시하지 않으신다.’


작가의말

열심히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시간을 보는 재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 011 동맹을 활용하는 방법 NEW 10시간 전 18 2 12쪽
10 010 윤명수 회장의 실력 24.09.17 51 2 13쪽
9 009 적의 적은 친구 24.09.16 80 2 13쪽
8 008 로열그룹이라는 난관 24.09.15 106 2 13쪽
7 007 예상치 못한 경쟁자의 등장 24.09.14 139 3 14쪽
6 006 기발한 해결책 워싱턴제과 24.09.13 168 3 12쪽
5 005 서율제과를 구원하라 24.09.12 203 3 12쪽
4 004 황학철과의 만남 24.09.11 237 4 13쪽
» 003 안개 정국의 답을 말하다 24.09.10 278 4 13쪽
2 002 새로운 이름 윤정우 24.09.09 310 4 12쪽
1 001 이야기의 시작 24.09.09 350 4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