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후 위대한 천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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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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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8.23 14:31
최근연재일 :
2024.09.19 07:49
연재수 :
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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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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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5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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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눈을 뜨다(2)

DUMMY

“이거, 음악에 대한 자극 반응이 왜 이러지? 지금껏 이런 모양을 그린 적이 있었나?”


의문을 표하던 의사는 이내 주위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이걸 어떻게 해석하면 될까?”


모니터를 검지로 가리키는 의사에게서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다.

봐도 모르겠다는 눈치다.


“이런 그림은 나도 처음이라···.”

“음악에 대한 귀가 예민한 거 아닐까요?”

“그것도 그렇지만, 단순히 예민하다고 하기에는 이 부분이 설명이 안 되는데?”


그렇다고 한다.

나도 봐도 모르겠는 건 매한가지였기에, 기지개나 켰다.


“···아.”


조심스럽게 켜기로 했다.

오랜만에 움직이는 육신이라 그런지, 조금만 팔을 꺾었는데도 곳곳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두두두둑-


이 소리 말이다.

그럼에도 하나 확실한 건, 병상에 누워있을 때와 비교하자면 몸이 훨씬 가볍다.

손가락 드는 감각이 조금 어색할 뿐, 힘에 겹지는 않았다.


자연스레 머릿속으로 한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마지막 순간마저도, 그토록 바랐던 것.

연주다.


그를 방증하듯, 어느새 열 손가락은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오버베드 테이블을 건반삼아 톡톡톡- 두드리고 있는 것이었다.


하나씩 짚을 때마다.

해당하는 위치의 건반이 소리내어 부름에 응하는 듯하다.


들린다, 소리가.

그것도 꽤 선명히.


‘오.’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익숙한 세 명의 얼굴이 병실을 방문했다.

지금은 기억을 되짚을 필요도 없었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누나, 아버지, 어머니다.

어떻게 보면 수십년만의 상봉인가.

반가운 마음에 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유, 유혜성···!”


누나가 와락- 안기며,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뒤에선 어머니와 아버지가 붉어진 눈시울을 하고 있었는데, 곧 그들도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혜성아.”

“···드, 드디어.”


그럼 나는 여기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히죽, 웃었다.


“다녀왔어요.”


안고 있던 누나의 떨림이 격해졌다.

촉촉하던 등도 이제는 흥건해졌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보겠어?”


양어깨를 붙잡은 채 눈을 마주친 누나가 울먹이며 물었다.

분명 익숙한 얼굴이지만, 왜인지 표정은 익숙치가 않았다.


“응, 당연히 알아보지.”

“그래, 누나야. 누나···. 흐어어엉···.”


아마 한살 차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름은.


“유봉재.”

“···어?”

“누나 이름 아냐?”

“···유채아, 인데.”


아아.

얼굴과는 달리 이름까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현실의 시간은 3년이 흘렀을지라도 내게는 수십년이었다.

그 끝에 이곳에 돌아온 거였다.


“하긴, 그런 촌스러운 이름일 리가 없지.”


그럼 이건 어디서 나온 걸지 의문이 들던 찰나였다.


“···그건 내 이름이란다.”

“······.”

“···촌스러웠구나.”


음, 그렇군.

눈을 피했다.

유채아가 여전히 젖은 눈으로 빤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엄마는? 엄마 이름은 기억 나?”


어머니는 살짝 긴장한 듯한 자세를 하고 있었다.

당연히 아까처럼 촌스럽다고 할까봐서는 아닐 테고, 당신의 아들이 기억 상태가 온전한지 걱정하고 있는 거겠지.


“혜성아, 힌트 줄게. 엄마 이름은 네 아빠랑 다르게 촌스럽지가 않아.”


아닌가. 그것도 포함인가.


“뭐, 뭐야? 연애할 때는 이름이 너무 귀엽다며!”

“촌스러운 걸 좋게 표현한 거지.”


어찌되었든 엄마는 지금도 감격에 젖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우리가 화기애애한 가족이란 것은 기억에도 선명히 남아있었다.


“배명선.”

“···!”

“그리고 지금은 모르겠지만 3년 전까지는 피아노 교습소를 운영하고 있었죠. 교습소 이름은 명피아노, 였었나.”

“···!!”


음, 이번엔 내 기억이 틀리지 않은 듯했다.



* * *



내가 병실에서 퇴원한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뒤였다.


“뇌 CT와 MRI 결과에서 이상 소견이 없고, 글래스고(GCS) 혼수 척도에서도 15점 만점을 기록했습니다. ···기적이죠, 네.”


의사는 고맙게도 소견 이외에도 한 가지 첨언했다.


“···인상적인 것은 인지 기능 평가에서 유혜성 학생이 같은 연령대와 비교했을 때 훨씬 우수한 결과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어진 말은 그다지 고맙지 않았다.


“아마, 공부를 시키면 엄청 잘할 거 같군요.”


공부? 수능? 대학? 취업?

아니다.


음악이다. 연주다. 대중들의 뜨거운 열광이다.

그게, 내가 그토록 원했던 것들이다.


‘뭐, 크게 어려울 거 같지도 않고.’


찬란한 재능이 시대를 가리는 것은 아닐 테니.


“아, 그리고 이건 이해하기 힘든 현상인데···.”


말끝을 흐리는 의사에게, 가족들의 걱정스런 시선이 모였다.

의사는 멋쩍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음악 자극에 대한 인지 능력 평가에선, 같은 연령대를 넘어 성인, 그것도 음악을 전공하는 성인들보다도 훨씬···.”

“···훨씬?”

“아무튼 뭔가 특별한 거 같습니다. 사실 이게 전문적인 음악적 능력을 평가하는 게 아니다 보니, 표현을 이렇게밖에 할 수가 없네요.”


어머니께서 ‘그게 뭐야’라는 표정을 짓고선,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께서도 마음을 한시름 놓았는지, 뒤에서 내 어깨를 주물거리셨다.


만일 그 평가가 제대로 된 음악적 능력을 가늠하는 거였다면, 의사가 공부로 운을 떼진 않았을 테지만.


뭐, 굳이 아쉽지는 않았다.

어차피 내가 가진 이 재능을 현대의 잣대로는 감히 재단할 수 없을 뿐더러.

음악가로서의 진정한 가치는 평가 점수표가 아닌, 청중의 반응에서 찾을 수 있는 법이니.


음, 근데 방금은 누가 생각한 거지?

유혜성? 프란츠 리스트?

전생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바람에 이런 점은 조금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곧 적응되겠지.

둘 다 나인데, 딱히 분리할 필요도 없는 거고.


병원 건물을 나서려던 무렵, 유채아가 미리 챙겨온 두툼한 패딩을 어깨에 걸쳐주었다.


“지퍼도 끝까지 올려.”

“갑갑할 거 같은데.”

“올리라면 올려, 확.”

“······.”

“끝까지 확 올리라고.”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방금은 유혜성이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정문을 나선 우리 가족은 이내 차를 타고 식당을 향했다.

꽤나 고급진 인테리어를 자랑했는데, 그래서 조금 헷갈리는 부분이 있었다.


‘우리집이 잘살았었나?’


이 또한 가물가물했다.

우선 어머니는 피아노 교습소를 운영하셨고, 아버지는 뭘 했더라···.


때마침, 아버지가 맞은편에서 입을 열었다.


“혜성이도 퇴원했고, 이제 일 그만둬도 되겠지?”

“그래, 그동안 몸도 많이 상했을 테니까 내일부턴 집에서 푹 쉬어.”

“···여보가 그래도 고맙네. 그렇게 말해주니.”

“집안일 따박따박 잘하라고.”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몸이 상하는 일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코마 상태에 빠져있는 동안 병원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착잡했다.

하지만 이것은 해결할 수 있는 착잡함이었다.

이제부턴 내가 그에게 여유를 선물하면 되는 거니까.


꽤나 익숙한 일이기도 했다.

내 첫번째 아버지, 아담 리스트가 에스테르하지 공작 가문의 집사를 그만뒀을 때 내가 연주회로 그 구멍을 채웠듯이.


‘그런 거라면, 그다지 여유롭지 못한 상황인데도 여기를 온 거네.’


이유야, 뭐···.


“많이 먹어라, 혜성아.”


나겠지.

3년 동안 병원에서 의식없이 지내다가 이제서야 밖에 나올 수 있게 된 것이니.


“아, 근데 뒷끝이 있는 건 아니고, 그래도 네 이름은 촌스럽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래서 더 예쁘게 지으려고 노력했던 거 같기도 하고.”


그렇군.

일주일이 지나도록 마음에 담아두셨나보군.

유채아가 혀를 끌끌 찼다.


“아빠 진짜 유치하다.”

“네 아빠 유치한 걸 이제 알았니?”

“또 둘이서 나만 갈군다. 그래도 이제 혜성이는 내 편이지?”

“유치해요.”

“······.”


아버지는 시무룩하게 접시에 코를 박았다.

그 상태로 말을 해서 목소리가 울렸다.


“···이상하네. 원래 혜성이라면 여기서 내 편을 들어줬을 텐데.”


아, 그랬나?

프란츠 리스트가 전생이라 한들, 성격까지 같지는 않았을 터였다.

원래 성격이 어땠는지에 대해 고민하던 때였다.


“아냐, 저거 뻥이야. 어디 세뇌하려고.”

“진짜 못됐다, 못됐어.”

“······.”


음, 그런 거면 다행이고.

문득 궁금한 게 떠올라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피아노 교습소는 잘돼요?”


13살의 겨울.

아직 치기 어린 나이지만, 나는 의젓했다.

이런 현실적인 부분이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명피아노 학원? 음···.”


어머니가 아버지를 보며 되레 물었다.


“잘되는 건가?”

“그 정도면 잘되고 있는 거지. 학원생 수가 정체된 게 문제긴 하지만.”

“요즘은 피아노과 출신이 기본이라 그런지, 홍보도 잘 안 먹히니까.”

“나름 좋은 대학 피아노과 나왔는데도 말야.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폭탄처리과를 다녔었지.”

“···뒤, 아니, 죽을래?”


뭔 대환지는 잘 모르겠는데.

답은 뭐, 나온 거 같다.


“나도 거기 다녔었어요?”

“명피아노?”

“폭탄처리과?”


입술을 때린 어머니가 회상하듯 허공에 시선을 그었다.


“다녔었지 그럼? 연주도 얼마나 깔끔하게 잘했던지. 오래 다니진 않았어서 그 재능의 크기를 잴 순 없었지만.”

“왜 오래 안 다녔어요? 싫증?”

“네가 그 시기에 사고가··· 응, 그래. 그래도 얼마 안 다닌 것 치고 감각이 있는지 한번 들으면 바로 연주하고 그랬다니까.”

“아아-.”

“근데 그건 갑자기 왜? 그리고 왜 웃어? 설마 안 믿는 거야? 엄마가 너 재능 있다면서 억지로 명피아노에 다니라고 할까봐?”

“믿어요.”


반대로, 내가 당신에게 묻고 싶었다.

내 전생을 기억하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당신께서 말한 그 재능의 크기를 두눈으로 확인했을 때, 믿을 수 있는지.



* * *



집에 도착했다.


3년만이었다.

아니지. 정확힌 수십년만인가. 어쨌든.


예상한 대로 고급진 가게와는 달리, 집은 평수가 작았다.

그게 어느 정도냐면···.


“이제 둘이서 같이 쓰게 됐네. 그래도 나름 혼자서 깔끔하게 썼지?”


누나와 같은 방을 쓸 만큼.


“응, 깔끔하네.”


이것은 결단코, 종전에 유채아가 강압적으로 지퍼를 채우던 모습이 떠올라서 긍정한 게 아니었다.


“침대는 1층 쓸래, 2층 쓸래? 아무래도 아직은 편하게 오고 다닐 수 있는 1층이 낫겠지?”

“응, 1층.”


이것도 마찬가지다.

난 1층이 좋았다.

정말이다.


“난 2층에서 유튜브 좀 보고 있을 테니까, 너도 편안하게 쉬고 있어~”


유채아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1층 침대에 걸터앉은 나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방을 둘러보았다.


두리번거리는 움직임이 그다지 크지 않았는데도, 내 시야에 방이 다 들어왔다.

그만큼 좁단 뜻이었다.


‘내 집무실이랑 비교하면, 화장실 크기 정도 될 거 같군.’


이게 원래 집이었나?

아님 이사한 건가?


모를 일이다.

기억이 나지 않아 갑갑할 따름이다.


그러나, 이 가난이 마냥 어색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13살인 이맘때쯤엔, 프란츠 리스트였던 나도 찢어지게 가난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당시 빈에서 가장 저명한 교육자이자, 베트호펜을 사사한 걸로 널리 알려진 카를 체르니에게 단 1굴덴을 지불할 돈도 없었겠는가.


‘물론, 내 연주를 듣곤 단번에 무상으로 교육을 해주기로 했지만.’


그때였다.

위에서 긴 머리카락이 쏟겨져 내려왔다.

반대로 뒤집힌 얼굴은 덤이었다.


“뭘 그렇게 놀라?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


정신과는 다르게 몸은 13살이 맞는 모양이었다.

또 한번 움찔하고 말았다.

그래, 몸만 그렇다는 거고, 실제론 전혀 놀라지 않은 나였다.


“그러고 보니 너는 이 집이 처음이겠다. 우리 3년 전쯤에 여기로 이사왔거든.”

“왜 이사했는데?”


유채아가 어색하게 웃었다.


“···어, 그냥? 좋은 공기 마시고 싶어서?”


아까 아버지의 일도 그렇지만, 이사한 시기와 현재 유채아의 반응을 비춰보아하니.

내가 의식을 잃은 이후로 급격히 형편이 어려워진 게 확실했다.


“어우, 머리에 피 쏠려.”


유채아가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


“야, 유튜버가 돈을 그렇게 많이 번다더라.”


그러더니, 내 옆에 털썩 앉아 유튜브가 띄워진 화면을 엄지로 내리기 시작했다.


“여기 조회수 보이지. 이게 전부 돈이야. 나도 이 참에 유튜버나 될까?”


유튜브.

기억 속에 있는 정보였다.

새삼 놀랄 이유가 없었다.


“잠시만.”


내려가는 화면을 보던 와중, 익숙한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건반 위에 올려진 손가락이었는데, 느낌상 교육 영상인 듯했다.


클릭해보니, 확실히 그랬다.


그러나, 교육자의 시범연주를 듣고는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바이마르에서 마스터 클래스를 운영하던 내가 보기엔 터무니가 없는 실력의 교육자였다.


“이건 좀 아닌데.”


차라리 내가 두 손가락을 접고 연주하는 게 이것보단 훨씬 나을 것 같았다.

두 손가락 장애가 있는 루트비히 뵈너를 위해, 내가 두 손가락을 접고 바흐의 푸가를 연주했던 것처럼.


“이런 어줍짢은 실력으로 교육을?”


감정이 조금 격해진 거 같기도 했다.

마스터 클래스를 맡았던 만큼 교육자의 소양에 대한 허들이 높았으니.


“아, 유튜브 돈 잘번다고 했었지. 그럼 내가 내일 직접 연주하···.”

“···이거 명피아노 홍보 계정인데. 그리고 이건 엄마가 연주하는 거고.”


아. 이런.

본의 아니게 폐륜을 저질러 버렸군.


“음, 다시 보니까 괜찮네.”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하던 얘길 마저 이었다.


“내가 직접 연주할게. 그 계정에서.”


하지만, 그때였다.

조금 놀랄 일이 벌어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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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노들섬(2) +1 24.09.15 263 7 13쪽
3 노들섬(1) +1 24.09.15 306 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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