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뜨니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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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올
그림/삽화
리스트(1811~1886)
작품등록일 :
2024.08.23 14:31
최근연재일 :
2024.09.17 07:46
연재수 :
7 회
조회수 :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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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글자수 :
43,683

작성
24.09.15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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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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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3쪽

눈을 뜨다(1)

DUMMY

“······콜록!”


회고록을 작성하던 도중, 쇠약한 기침이 사이를 비집고 터져나왔다.

얘기가 끊긴 김에 창밖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솨아아-


쏟아내리는 빗줄기.

창밖 너머로 젖은 바이마르 거리가 일렁이고 있었다.

오랜 연주자 생활을 청산하고서, 정착한 독일 튀링겐의 작은 도시.


공기 좋은 이곳에서, 교육자로 활동하며 지내다 보면 몸이 호전될까 싶었지만.

폐렴 증세는 나날이 악화되어가고만 있었다.

거기다 이제는 합병증까지 생겨 병상에서 한걸음 벗어나는 것조차 힘에 겨웠다.


“······.”


조용히, 그리고 가만히.

창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솨아아-


굵은 빗소리에서 어떠한 소리가 연상되었다.

눈을 감고서 듣고 있자니, 알 거 같았다.


내게는 더없이 익숙했던, 하지만 이제는 들을 수 없게 된.


‘Unzähliger Applaus.’


피아노 의자에서 일어났을 때, 내게로 향하던 무수한 박수갈채다.

나는 눈을 반개하며 씁쓸히 웃었다.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었지?”


간병인 의자에는 리나 라만이 앉아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내 전기를 작성하는 작가였는데, 요근래 상태가 부쩍 안 좋아졌단 소식을 듣고 급히 방문한 것이었다.


“고작 8살의 나이에 빈에서 연주회를 열었고, 그곳에서 루트비히 선생을 만났다고 하셨어요.”

“아, ···그랬었지.”


방금 전에 내가 했던 말이 무엇인지도 가물가물하다, 이젠.

그럼에도 그날의 장면만큼은 머릿속에서 선명히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루트비히 판 베트호펜.

악성(樂聖)인 그와의 첫 만남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래서, 연주를 들은 베트호펜 선생의 반응은 어땠나요?”


그 물음에, 나는 기력이 없는 와중에도 씨익- 웃음을 흘렸다.


“예상대로 피아노에서 일어났을 땐 모두가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 있었지. 하지만 베트호펜 선생만큼은 아니었어.”

“아?”


리나 라만은 예상치 못한 답변이라는 듯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내가 이어 말했다.


“그 대신, 오직 그만이 무대 위로 성큼성큼 올라오더니 다짜고짜 내 이마에 키스를 냅다 갈겼지.”

“······.”

“그러면서 말하길, ‘대담하고도 대단한 헝가리 소년이구나’라고.”

“와아···.”


리나 라만은 본분을 잊은 채 턱을 벌리고 있었다.

잠시 저러고 있도록 내버려 뒀다.

창밖은 여전히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다음은···.”


이야기가 쭉쭉 진행되었다.

귀족들에게 후원을 받아 빈에 정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부터, 머지않아 아버지 아담과 함께 유럽 전역을 순회공연 돌았다는 것까지.


“마치, 볼프강 모차르트가 레오폴트 모차르트와 함께 연주여행을 다녔던 것처럼.”

“좋은 추억이셨나요?”

“음.”


나는 침묵했다.


그리고 휴양차 들린 볼로뉴 지방의 온천에서 아버지께서 장티푸스에 감염되어 죽었다는 얘기가 나왔을 적에는, 리나 라만이 울적한 표정이 되어 깃펜을 끄적였다.

내가 16살 때의 일이다.


“···많이 비통하셨겠어요.”


또 다시 침묵했다.

연속된 두 번의 침묵에 그제야 리나 라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이가 안 좋으셨나요?”


좋다고는 표현할 수 없었다.

정처 없이 수년간 지속되던 순회공연에 심신이 닳을 대로 닳아있었고, 그 시기의 난 꼭 서커스의 동물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더랬지.


굳이 이 부분은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먼훗날, 이 회고록이 후대로 전해진다면 상세히 기재될 필요가 없는 내용이다.


“순회공연 기간에 아버지와의 깊은 불화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

“?”


···어찌되었든, 그 이후론 방랑자 같은 삶을 청산하고 파리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다양한 음악가들과 교류를 했는데, 본격적인 내 비르투오소 시기를 맞이한 때이기도 했다.


“하하, 맞는 말이죠.”


내 스스로에게 비르투오소라 칭한 걸 듣고는 웃음을 터뜨린 리나 라만이었다.


“그간의 업적을 생각해보면 결코 오만하게 들리지가 않네요. 실제로 19세기 낭만주의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가로 손에 꼽히셨으니까요.”


비르투오소.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한 기교를 구사하는 음악가에게 붙는 칭호.

그에 가장 걸맞는 게 나였기에, 여상히 어깨를 으쓱였다.


“암, 후대에도 분명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위대한 음악가로 널리 알려져있겠지.”

“그럼요.”


리나 라만은 이견이 없다는 듯 고개를 무겁게 주억이고선 얘기를 이어나갔다.

이따금씩 흘끔흘끔 쳐다보는 것이 내 표정까지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럼, 파리에서 교류했던 음악가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누구였나요?”

“쇼팽.”


나는 한치의 고민없이 답했다.


“프레데리크, 쇼팽.”


이내 쇼팽과의 첫 만남을 회고했다.

파리 데뷔 연주회에서 그를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첫 인상은 말수가 적고 수줍음이 많았다고.

쇼팽 특유의 시적인 표현과 애수적인 선율은 그런 섬세한 성격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리라고.

우리는 덧없는 벗이자 첨예한 라이벌이었지만, 항상 같은 곳을 바라보았노라고.

고작 38세의 나이에 요절한 네가 이 순간에도 그립노라고.


“······그렇군요.”


그 뒤로도 시대의 획을 함께한 여러 음악가들이 거론되었다.

멘델스 존, 생상스, 베를리오즈, 라흐마니노프, 슈만, 바그너, 파가···.


“···쿨럭!”


···니니. 그래, 파가니니.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기침이 기어코 회고를 방해했다.

옆에 두었던 캐모마일 차를 홀짝였다.

이제는 식어 미적지근했다.


“그리고 나선, 다시 유럽 전 지역을 대상으로 연주 순회 공연을 돌았어. 이번엔 내 자의였지.”

“연주회는 언제나 만석이었다고 들었어요.”

“그걸로도 모자라, 귀족들끼리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었지. 각국의 왕들은 내 연주를 실제로 한번 들어보고 싶어서 수도 없는 초청장을 보내왔었고.”


얘기를 풀다 보니, 문득 연주자로 활동하던 시절의 광경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가득 메운 관객들의 숨죽인 표정.

연주 중 건반을 향해 떨어지던 땀방울들.

마지막 음을 음미하며 느꼈던 그 짜릿한 전율.


그런 다음 이어지는 건 역시-.

열광. 환호. 함성. 연호.

그리고···.


솨아아-


···빗소리를 연상케 하는 기립 박수.

창밖 너머론 비가 아까보다 더욱 격하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 간망에 화답을 보내듯.

그 순간, 나는 참지 못해 기어코 속내를 밝히고 말았다.


“다시 한번 연주가 하고싶군. ···이 쇠약한 몸으로는 손가락 하나 드는 것조차 힘이 들겠지만 말이야.”


깃털펜의 사각이던 소리가 멈추었다.

펜을 노트 사이에 꽂아넣은 리나 라만이 물끄러미 나를 응시했다.


아아, 그녀 또한 회상하고 있는 거겠지.

찬란하게 연주하는 장면들이 그녀의 동공 위에서 희미한 잔상으로 맴돌고 있는 듯했으니.


그러길 잠시.

리나 라만이 진중한 어조로 물었다.


“다시 연주가 하고 싶으시다고요?”

“그래, 리나.”

“그러면···.”


이내 싱그러운 미소가 내게 닿았다.


“눈을 뜨세요.”


느닷없이 눈을 뜨라니.

황당함이 기침과 함께 섞여 터져나왔다.


“지금 이렇게 눈을 뜨고 있는데, 그게 무슨 말이지?”


리나 라만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또 한번 황당해졌다.


“그럼 내가 지금 눈을 감고 있기라도 하단 말인가?”

“네, 그러니까···.”


이어진 건, 짐짓 단호한 말투였다.

약간 소름이 돋을 정도로.


“눈을 뜨세요.”


그 순간, 삐이이-

귓속에서 이명이 울렸다.


그 이명은 크레센도가 되어 나의 모든 감각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무얼까, 이 상황은.

시야가 겉잡을 수 없이 밝아진다.

단순히 눈이 부신 정도가 아니었다.

시끄럽게 울리던 이명은 이내 어떠한 소리가 되어 반복적으로···.


“환자 바이탈 사인 차트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뇌파도 변하기 시작했어요!”

“유, 유혜성 환자가 지, 지금 눈을 떴습니다!”

“의사 불러와, 빨리!”

“쌤, 빨리 와주세요! 빨리요!”


···아. 기억났다.

내가 누구였는지.


사고를 당해 코마 상태에 빠져있던 나는 그렇게 눈을 떴다.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내 전생의 기억을 안은 채로.



* * *



아아. 기억났다.


나는 한국이란 나라에서 태어났고.

10살 무렵에 사고가 나 코마(혼수상태)에 빠져있었다.

그 기간이, 기간이···.


‘얼마나일까. 몸이 좀 뻐근하긴 한데.’


그에 대한 답은 다급히 방문한 의사 덕에 명쾌하게 알 수 있었다.


“···눈을 떴다고요? 3년만에?”

“사, 상태를 체크하고 있는 와중에 가, 갑자기 눈을 번쩍 뜨는 거예요.”

“허, 일단 알겠습니다. 우선 GCS 점수를 측정하고 자율신경계 반응도 체크하겠습니다. 그리고 인지 기능 평가를 위한 간이 정신 상태 검사도 준비해주세요.”

“네, 넵!”

“아, 그리고 가족분들한테도 연락 돌리세요.”


그래, 3년이라고 하니까 지금은 13살의 나이겠군.


병실 창밖을 바라봤다.

비가 내리지 않고 있었다.

나무들이 잎새를 모두 떨궈내고 앙상한 가지만 남겨놓은 걸 보아하니 겨울인 듯했다.


그러고 보니 내 이름이···.


“혜성 학생.”


혜성. 우혜성.


“유혜성 학생? 지금 상태가 좀 어때요?”


아. 유혜성.


아무래도 프란츠 리스트로 살다가 돌아왔으니, 기억이 가물가물할 수밖에 없었다.


“몸이 좀 뻐근한 거 같기는 하네요.”


그나마 다행이라면, 유혜성의 기억을 흐릿하게나마 갖고 있었기에 빠르게 상황파악을 마칠 수 있었다.

만약 프란츠 리스트의 시선으로 눈앞의 광경을 보았다면, 하나부터 열까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 투성이었을 테지.


“자, 일단 가벼운 평가부터 실시할게요.”


현대의 의료 환경에서 의식이 돌아온 환자를 평가할 때 필히 거쳐야한다는 테스트가 있다고 한다.


아, 그전에.


“프란츠 리스트.”

“응?”

“제 전생은 프란츠 리스틉니다.”

“오, 그래요?”


반색하던 의사는 등을 돌리더니 심각하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간호사에게 지시를 내리는데, 상태가 온전치 않은 거 같으니 더욱 정밀한 검사가 필요하겠다고···.


턱-!


수북한 평가지가 오버베드 테이블에 놓였다.

···후회했다.

굳이 숨길 필요가 있나 싶어서 말한 거였는데.


볼펜으로 머리를 긁적이곤 평가를 시행했다.

방금까진 깃펜을 쓰고 있었는데, 지금은 플라스틱의 볼펜을 쥐고 있다니.

조금 기분이 묘했다.


하지만 역시, 이해가 어렵진 않았다.


‘음.’


무의식적으로 술술 쓰고 있는 한글이 그에 대한 방증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코마 상태에서 프란츠 리스트가 된 꿈을 꾼 건 아니었을까?


이내 고개를 저었다.

평가지 끄트머리에 자그맣게 적은 언어들.

독어, 헝가리어, 불어, 등등.

유럽 각국의 언어가 실시간으로 쓰여지고 있었다.


“···낙서?”

“집중을 못하고 있는 거 같은데요.”

“일단은 계속 지켜보죠.”


문제는 이 어린손이 아직은 적응이 되지 않아, 얼핏 보기엔 낙서처럼 보인다는 것이지만.


차츰 감각이 동화되며 수월하게 평가지를 채워가던 때쯤, 또 다른 평가가 시행되었다.


“자, 여기.”


의사는 내 양쪽 귀에 보드라운 무언가를 씌워주었다.

이걸 보고 헤드폰이라고, 했었지.


“지금부터 음악 인지 능력 평가를 시행할 거야. 별로 어려운 건 없고, 음악을 감상하기만 하면 돼.”


음, 감상만 하는 것이 테스트인가.

무슨 테스트가 이렇지.

내 궁금증이 얼굴에도 드러났는지, 의사가 나긋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음악 자극에 대한 뇌 활성화 패턴을 분석하는 거거든.”


그렇군.

사실 제대로 이해하진 못했지만, 그냥저냥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되었든 듣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니.


곧이어, 관자놀이를 비롯해 머리 곳곳에 무언가가 부착되었다.

이걸로 뇌파를 감지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연주가 시작되었다.


‘···오.’


이것은 운명의 장난인 것일까.

아니면, 종전에 내 전생이 ‘프란츠 리스트’라고 고백한 것에 대한 의사의 배려인 걸까.


내 귀를 감싼 음악은, 다름 아닌 내가 작곡한 곡.


‘Liebestraum, No.3 Love Dream.’


사랑의 꿈, 3번이었다.

하지만 반가움은 딱 거기까지였다.


나는 이것이 인내심 테스트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 곡을 연주 녹음한 현대의 피아니스트에게서 다소 아쉬운 부분이 많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는 거 아닌데.’


이 곡은 단순한 기교의 과시가 아니다.

연주자는 ‘노래하는 듯한’ 선율을 표현해야 한다.


작곡 당시에 피아노로 성악의 표현력을 구현하고자 한 만큼, 오른손은 소프라노가 되고, 왼손은 바리톤이 되어 연주를 하는 것이다.

열 손가락이 열의 목소리가 되어 노래를 하는 것이다.


분명, 그래야 하거늘.

누군지 모를, 현대의 이 연주자는 단순히 기술적 기교에만 매몰되어 있다.


“······뭐지?”


한창 신명나게 속으로 비판을 하고 있는데, 눈앞의 의사가 고개를 기울였다.


“이거, 음악에 대한 자극 반응이 왜 이러지? 지금껏 이런 모양을 그린 적이 있었나?”


무언가,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듯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 작성자
    Lv.68 메핑
    작성일
    24.09.15 08:28
    No. 1

    뜯어 고치시는건가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3 뮤올
    작성일
    24.09.16 08:38
    No. 2

    우선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가족 이야기가 뒤로 미루어진 점, 초반부 중간중간에 혜성이 이야기에 집중된 점, 그 두가지 이외엔 스토리적으로 달라진 점은 하나도 없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2 정2
    작성일
    24.09.17 11:48
    No. 3

    오... 앞에 길었던 전생부분을 많이 줄이셨네요. 다시 시작해 보겠습니다. 이번엔 완결내주셔요 ㅠ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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