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의 정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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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8.29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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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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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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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 챔피언

DUMMY

하늘에서 태양을 뺏어오기라도 한 듯. 두 눈을 멀게 할 것 같은 강렬한 라이트가 옥타곤을 비추고 있다.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은 옥타곤 속의 두 마리 맹수에게 집중하며 열렬한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와아아아아!!!


- 느껴지십니까! 이곳의 열기가! 이곳, LA의 현지 시각은 20시! 아시아 최초로 WFC 챔피언이 탄생할지도 모르는 순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현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이 먼 곳까지 찾아온 한국 팬들도 많이 보이고 있는데요~


사회자가 흥분에 차올라 빠르게 멘트를 뱉고 있는 와중에도 두 사람의 공방은 치열했다. 서로 조금만 빈틈을 보인다면 둘 중 하나는 차가운 바닥에 머리를 처박게 될 것이다.


-오오!! 말씀드리는 순간 마르크를 구석에 몰아넣은 김현! 마르크의 복부에 리버블로가 제대로 꽂혔는데요!! 드디어 철벽같던 마르크의 가드가 내려갑니다!!


"꺄악! 김현 오빠 너무 멋져 사랑해요!"


"너 때문에 티켓 끊었다!! 그대로 몰아붙여!! 챔피언 가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매섭게 꽂히는 김현의 라이트훅! 그리고 이어서 레프트훅! 마지막 마무리로 트레이드 마크인 스트레이트가 안면에 정확하게 꽂힙니다!! 김현표 불주먹 콤보정식에 마르크는 더 이상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습니다! 오오!! 곧바로 다가오는 레프리! 레프리!! 양팔을 교차합니다!! 경기 종료!!!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아들! 조선의 최종병기! 코리안 워리어! 김현 선수가 미들급의 수문장 마르크를 쓰러트리고 한국인, 아니! 아시아 최초로 WFC 미들급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하는 순간입니다!!!


삑-


띠리리리.


"키야~ 내가 봐도 멋있단 말이지? 아주 명장면이야 명장면 하하하"


기계음과 함께 벽면을 뒤덮은 블라인드가 올라가자. 빨래를 해도 될 것 같은 완벽한 복근을 가진 남자가 호탕한 웃음을 보이며 서 있었다.


그는 바로 방금까지 나온 하이라이트 영상의 주인공인 김현.

자신이 챔피언 타이틀을 따낸 경기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몇번씩이나 돌려보며 자아에 도취하는 중이었다.


잠깐의 자아도취가 끝나고.

김현은 터벅터벅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축구를 해도 될 것 같은 광활한 거실을 지나쳐 서울의 야경과 한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뷰 앞에서 멈춰선 김현은 무언가 생각에 잠겼다.


"생각보다 더 빨리 왔어."


학창시절에 왕따를 당하고나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시작한 복싱. 그리고 복싱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빠지게 된 격투기. 격투기를 제대로 해보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김현의 목표는 오로지 세계 최고인 챔피언의 자리였다.


사실 그말고도 격투기를 하는 모든 사람이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그 자리에 가는 사람은 극소수뿐.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면서 올라온 그였기에 지난날을 돌아보자 지금까지의 기억들로 머릿속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억들이 점점 차올라 곧이어 기억의 바닷속에 빠지며 한시도 잊은 적 없는 가장 소중한 얼굴이 떠올랐다.


"옥자씨···."


그의 할머니인 김옥자.

그녀는 김현의 친할머니는 아니었다. 하지만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를 만큼 갓난아기 시절에 버려진 그를 환경미화원이던 그녀가 처음 발견했다.


옥자씨는 김현만의 애칭으로, 김옥자가 어렸을 적부터 엄마라고 부르면 다른 사람들이 흉본다며 항상 자신을 할머니라고 부르라고 했던 그녀를 할머니 대신해서 부르던 말이었다.


그녀는 처음 길에 버려진 김현을 보았을 때 너무 예쁜 모습에 반해 아기를 데려가 키우고 싶었지만, 결혼도 하지 않아 혼자였던 그녀가 일을 하며 아기를 돌볼 수 없기에 결국 구청에 신고하며 보호소에 맡기게 된다.


그 후에도 그녀는 보호소에 매일같이 김현을 보러 가며 정성을 쏟았고 자신이 모은 재산으로 김밥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김현을 데려오겠다는 의지 하나로 열심히 살았던 그녀는 얼마 후 넉넉지는 않지만 둘이서 어느 정도 먹고살 수 있는 경제적인 여유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매일같이 아기에게 정성을 쏟으며 보러오는 것을 알던 구청 직원들과 보호소 사람들이 아이를 입양할 수 있게 힘써주었고 김현이 4살이 되었을 때 그녀의 품으로 갈 수 있었다.


그다음부터는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둘이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런데··· 하늘은 그들의 행복을 응원하지 않았던 건지, 김현이 고등학교에 올라가며 장사도 잘 안되기 시작해 금전적으로 어려워졌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해에 할머니는 결국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그때부터 김현은 미치도록 밀려오는 그 슬픔을 이기기 위해 자신이 좋아하던 운동으로 풀기 시작했다. 슬픔 속에서 좌절하고 폐인처럼 지내는 것을 알게 되면 자신의 유일한 가족인 할머니가 너무 슬퍼할 테니까.


삼시세끼 먹는 시간 이외에 오로지 운동에만 몰두한 김현은 결국 프로 격투기 선수가 되어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버는 돈의 상당한 부분들을 자신처럼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를 위해 기부를 아끼지 않았고 나중에는 재단을 설립하여 운영했다.


김현은 그렇게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면서 30살이된 지금 자신의 목표였던 챔피언이라는 곳에 다다른 것이다.


"크윽···"


갑자기 자신의 삶이 주마등처럼 스치자 김현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어릴 적 자주 울던 그에게 "사내는 울면 안된다"며 말하고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이 없다고 울지 않기로 약속하자던 할머니와의 약속 때문에.


"보고 싶어 할미···"


김현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보였지만 애써 참으며 마음을 다잡고 걸음을 옮겼다.


'후··· 눈물 버튼이 또 눌러졌어 기분전환이라도 해야겠네'


드레스룸에서 대충 맨투맨에 슬랙스를 챙겨 입은 그는 자신의 애마가 있는 지하로 향했다.


삐빅.


부웅웅- 웅-웅-


시동을 걸자 빨간색 스포츠카는 엠블럼에 달려있는 말이 당장이라도 뛰쳐 나갈 듯이 엔진음을 내기 시작했다.


"간만에 좀 달려볼까."


자신의 애마에 탑승한 그는 금세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와 한강 대로변을 달리기 시작했다.


부아아앙-


오늘따라 막힘없이 뚫린 한강대로를 지나 순식간에 대교에 진입한 김현은 서울을 벗어나기 위해 외곽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대교에 진입하자 곧 눈앞에서 서울의 멋진 야경들이 펼쳐졌다.


"좋다 좋아~ 이맛이지!"


부아아앙-


계속해서 속도를 내며 드라이브를 맘껏 즐기는 김현.


"어···?"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광경이 보였다. 마치, 저 멀리서 큰 화물트럭이 비틀거리며 오는듯한 모습. 이 큰 대로에서 비틀대면서 다가오다니 말이 안 되지 않는가? 마치 역주행이라도 하는 것처럼···


"설마··· 역주행?! 뭐야 저거, 음주운전이야? 왜 저러는 거야"


자세히 보니 화물트럭은 진짜로 역주행하며 김현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뭐야! 진짜 역주행 맞잖아! 미친 새끼!"


어느덧 김현의 앞까지 다가오는 화물트럭.

2차로에 있던 그는 마주 오는 화물트럭과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으려면 급히 핸들을 오른쪽으로 틀어야 화물트럭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미친 새끼! 술을 처먹었으면 운전대를 잡지 말아야지! 이러다 부딪힌다··· 빨리 피해야 돼!!'


트럭은 점점 더 가까워졌고 김현은 즉시 핸들을 오른쪽으로 틀었다. 그리고 화물트럭은 김현의 스포츠카와 몇미터 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까지 다가왔다. 그래도 다행히 이 정도 각도면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꺅! 한율아! 빨리와 거기 있으면 안돼!"


누군가 상황을 억지로 짜깁기 하기라도 한 듯.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놓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방에서 엄마의 손을 놓친 한 어린아이가 도로에 튀어나와 무언가 줍고 있었다.


'미친!! 이건 또 무슨 상황이야 하 돌겠네... 이런...'


그 모습을 보자 김현은 더 이상 핸들을 꺾을 수 없었다. 이대로 꺾는다면 아이는 자신의 차에 부딪힐 것이고 지금 속도로는 저 아이는 분명 그 자리에서 죽을 테니까.

망설이던 그는 결국 핸들을 틀지 못했다.


그리고 그 순간···.


빨간색의 스포츠카가 마주 오는 화물트럭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쾅!!!



***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디 선가 김현의 귓가에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 목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고 자신에게 무언가를 계속해서 소리치고 있었다.


"빨리#@!"


"빨리 일어나라고!"


"헉!"


차가운 도로에 누워있던 김현은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누구지? 처음 보는 얼굴인데'


처음 보는 얼굴에 아래위를 샅샅이 훑어가며 보았지만 특이한 것은 없었다. 하나 있다면 너무 섹시한 금발의 여성이라는 것. 그 여성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드디어 깨어났네. 네가 김현이구나"


"제 이름은 어떻게···? 아니, 그보다 빨리 119 좀 불러주세요 제가 지금 교통사고가···!"


그녀는 허둥지둥하는 김현의 말을 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럴 필요 없어 넌 이미 죽었으니까."


"네? 그게 무슨 소리···"


"아 내소개를 안 했구나 나는 사신이야. 지금부터 너의 환생을 도와줄 거고. 그리고 지금 하나도 안 아프지? 그렇게 큰 사고가 났는데 몸에 피 한 방울 안 묻어 있잖아 자세히 살펴봐 봐"


자칭 사신의 말에 김현은 자기 몸을 이리저리 만져보며 살폈다.


'어? 진짜 아프지도 않고 피도 안 나네?'


생각해보니 그렇게 크게 사고가 났지만, 몸에 아픈 곳은 없었다. 시선을 내려 몸 구석구석 살폈지만, 상처가 있거나 피가 묻은 곳 또한 하나도 없었다.


주변 둘러보니 자동차 부속품들과 파편들만 널브러져 있고 자신의 차는 온데간데없었다. 죽었다는 말이 아무래도 진짜인 듯 했다.


"이 나이에 죽다니 하하··· 이제 30살인데 이렇게 빨리 죽을 줄은 몰랐네 옥자씨가 알면 엄청 화낼 텐데···"


"갑작스럽지 죽음은 누구에게나 그래. 그런데 미안하지만 지금 죽음을 마주할 시간이 별로 없어. 너 지금 당장 환생해야 하거든 이대로 있으면 아주 거지 같은 집안에 태어나 평생 개고생만 할 팔자로 환생할 거야. 그러니까 널 담당하는 사신이 오기 전에 빨리 환생을 시작하자고."


그녀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하기 힘든 말만 하기에 김현은 당황스러웠다. 대충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결정적으로 신뢰가 가지 않았다.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바라보았을 때  평범하기보다는 못생긴 외모에 가깝다고 생각했던 그는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예쁜여자가 말을 걸때는 무언가 의도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인지 더욱 신뢰가 가지않았다.


김현은 누가 봐도 못 믿겠다는 표정을 잔뜩 보이며 그녀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잠깐만, 급한 건 알겠는데 왜 자꾸 당장 환생을 하라는 거죠? 환생이면 다시 태어난다는 건데. 무슨 영화나 만화도 아니고 살면서 그런게 있다는건 처음들어봤어요.


그리고 제가 거지 같은 집안에 태어나는 건 어떻게 알고 날 담당하는 사신은 또 무슨 소리인지. 결정적으로 지금 당신이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 어떻게 믿구요"


"김옥자."


"에?"


"너네 할머니 김옥자 말이야. 나는 너네 할머니가 부탁해서 온 거야. 그녀가 소멸할뻔한 날 구해줬거든. 그래서 은혜를 갚기로 했어. 그녀는 지금 사신 수업을 받는 중이라 올 수없어서 나에게 널 꼭 부탁한다고 얘기했어.


나도 지금 명계에서 징계 받을거 각오하고 하는 짓이야. 난 무엇이든 받고서는 못사는 성격이라서 말이야 아, 이미 죽었지만. 아무튼 은혜를 갚으려는 까치같은 나의 순수한 의도를 알아줬으면 좋겠네. 음···내가 백 번 얘기하는 것보다 네가 보는게 빠르겠다."


그녀가 말을 마치는 순간.

원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아주 익숙한 모습이 김현의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너무도 보고 싶었고 그리워했던 그 모습.


"옥···자씨?"


그토록 보고 싶던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자 김현의 눈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듯 빨갛게 달아올랐다.


"현아 할미다. 내가 있는 곳으로 현이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어. 부디 너는 천천히 이곳에 오길 바랐는데···이미 일어난 일은 되돌릴 수 없지만 다음 생만큼은 꼭 현이가 좋은 부모를 만나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할미가 죽기 전에 약속한 거 기억나지? 이번 생은 못난 부모 만나서 고생만 실컷 해서 미안하다고··· 다음 생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좋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게 해주겠다고. 할미가 약속 지키러 왔어. 다음에는 이렇게 일찍 오면 안된다?!


꼭 하고 싶은 거 다하면서 재밌게 살고 나중에 천천히 할미 만나러 와 알겠지? 사랑한다 우리 예쁜 강아지"


어떻게 믿지 않을 수 있을까?

그녀가 할머니의 모습을 하고 자신과 할머니 만 알고 있는 말을 전하자.


김현은 결국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감정이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그는 지금까지 살면서 본 드라마 속 비련의 주인공들보다도 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옥자씨··· 흐어어엉···!!우어억억···끄어억!!"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사신이 김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자, 이제 알겠지? 난 할머니 부탁으로 온 거야 그러니까 믿고 빨리 환생하자"


"아··· 알겠어요. 환생할게요···."


"좋아 그럼 바로 한다!"


그녀의 손이 김현의 머리를 감싸자 순수한 노란빛이 흘러나와 전신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은 점점 강해지며 전신을 모두 감쌌고, 하나의 별이 된 것처럼 밤하늘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하~ 끝났다. 시간 맞춰서 다행이야. 아 참, 생각해보니 급해서 기억을 못 지웠네···. 아~ 몰라! 어차피 징계 먹을 거! 이걸로 빚은 다 갚은 거야"


그녀는 잠시 찝찝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곧 개운하다는 듯이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경쾌한 구두 소리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또각- 또각-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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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1. 챔피언 24.08.29 28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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