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의 정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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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9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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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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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 금기(3)

DUMMY

다음날.


새벽까지 집중해서 책을 읽은 여파로 해가 중천에 뜨고나서야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라피엘은 일어나서 곧바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었지만 그래도 개운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자꾸만 어제의 책 내용이 떠올라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안되겠어 나가서 머리좀 식히고 오자'


알면 안되는 사실을 알아서 일까. 라피엘은 어제 그책을 읽은것에대해 조금은 후회했다.


자신 스스로 관심을 가지고 무언가에 꽂히면 엄청나게 집착하고 몰두하는것을 잘알기에. 잊고싶지만 자꾸 떠오르는 그생각들을 지우고 싶었다.


'이럴때는 역시'


역시 이럴때는 달리기가 최고였다.

라피엘은 이렇게 무언가에 사로잡힐때 마다 전생의 습관인 운동을 통해 마음을 비우곤 했다.


"어디 가니 라피엘!"


"답답해서 좀 뛰고오려구요! 저녁까지 돌아올게요"


밖을 나서자 선선한 바람이 라피엘을 마중나왔다. 오늘따라 화창함이 절정에 달했고 봄날씨의 끝판왕을 보여주는 듯 했다.


"오오 좋아 날씨도 환상이네~!"


라피엘은 무작정 달리기시작했다. 조깅하듯 마을의 풍경들을 감상하며 달리다가는 자꾸만 생각들이 떠오를것 같았다. 그래서 앞만보고 거침없이 달렸다.


비탈길을 지나고, 작은 숲을 통과해 언덕을 넘었다.그렇게 한참을 달리고나서야 멈춰서 숨을 헐떡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헉헉. 어디까지 온 거지 일단 좀 쉴까."


주변은 온통 초록색으로 물들어있었다.

라피엘은 그대로 발라당 누워 잔디밭에 대자로 뻗었다. 하늘은 구름 한점없이 맑아 햇살로 눈이 부셨다. 깔고 누운 잔디는 푹신한 침대가 따로 없었고 귓가에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기분 좋게 들렸다. 주변의 울창한 나무들이 바람길을 만들어주어 시원한 바람이 머릿결을 넘겨주었다.


"좋다~ 좋아"


오늘따라 유난히 자연이 자신을 반겨주는 듯 기분 좋은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눈을 감고 누워있으니 자연스럽게 잡생각들이 모여 어느순간 하나의 생각으로 이어졌다.


'자연··· 정령··· 정령사···'


또 시작이었다. 잊으려 했지만 자꾸 떠오르는 책의 내용들. 다른 생각으로 덮으려 했지만 덮어지진 않았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생각으로 덮는 대신 몸이 나른해지며 동시에 몰려오는 졸음에 불가항력으로 눈이 스르르 감기고 말았다.



***



"······ 부름에 답해주소서!"


1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앳된 모습의 소년이 허공에 무언가를 외치자 세찬 바람이 소년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람들은 곧이어 소년 앞에 모이더니 어떠한 형태를 만들어냈다.


"우와! 드디어 성공했다!!"


기쁨을 성토하는 소년앞에는 사람머리정도 밖에 되지않은 작은 몸집에, 뾰족한 귀와 마치 요정처럼 날개를 가진 귀여운 소녀가 꺄르르 거리며 날고 있었다.


"안녕? 네가 바람의 하급정령 실프구나. 나는 베트리 라고해! 앞으로 잘부탁 해!"


자신 앞의 물체를 실프라고 부른 소년은 그녀의 작은 손을 조심스럽게 잡아올렸다.


그리고 잠깐의 첫인사를 마치고 실프와 함께 곧장 집으로 달려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베트리는 신이나서 자신의 부모님에게 이사실을 알렸다.


"축하한다 우리 아들. 이제 어엿한 정령사가 되었구나. 앞으로 항상 정령들을 네 몸처럼 소중히 아껴야한다 알겠지?"


"헤헤~ 네! 소중히 할게요!"


칭찬을 받아 얼굴이 발그레진 베트리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대답했다.


베트리는 이후 실프이외에도 물,불,대지의 하급정령과 모두 계약에 성공했다.

그 후에는 매일같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정령들과 함께 수련하고 정령술을 갈고 닦았다.


그러던 어느날.


빗소리가 점점 거세지고 유난히도 천둥이 많이내리치던날이었다.


"베트리! 빨리 일어나렴!"


베트리는 자신을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눈을 비비며 앞에서 소리치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건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였다.


그런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디서 크게 다쳤는지 온몸에 피가 여기저기 묻어 있었다. 아버지는 다리를 많이 다친듯 어머니가 부축인 상태로 겨우 서있는듯 했다.


"어머니! 아버지! 대체 무슨일이··· 허억!! 아버지 피가···!"


"크윽··· 갑자기 마탑의··· 마법사들이 들이닥쳐서 마을의 정령사들을 전부··· 잡아가고 있어··· 크으윽··· 베트리!! 시간이 없다! 어서 어머니와 함께 도망치거라!"


그는 당장이라도 쓰러질것 처럼 보였지만 이를 꽉깨물고 정신력으로 버티며 그녀를 베트리 쪽으로 밀었다.


"흐윽··· 흑···여보···"


"크윽···나는 이미글렀어··· 부디 베트리와 살아남아줘···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 내가시간을벌게!"


"흐어억··· 아버지···안돼요 아버지!"


베트리의 어머니는 눈물을 닦으며 펑펑 우는 베트리의 손을 잡고 뒷문으로 향해 달렸다. 집을 빠져나오자 마자 폭발음이 크게 들렸고 강력한 마법과 마법이 충돌하는 듯 섬광이 일었다.


쾅! 콰과과광!


베트리와 어머니는 그렇게 마을을 빠져나와 숲속에 도착했다.

주변을 살펴본 베트리는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헐떡거리는 숨을 고르시작했다.


"허억! 헉!"


그런데 그때. 


"크크큭 죽어라 도망쳤나 보구나 꼬마야. 그런데 어떡하지? 너희가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다"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마탑의 문양이 그려진 마법사들이 나타났다.


베트리는 순간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어머니는 베트리를 끌어당겨 자신의 뒤로 숨겼다. 그리고 마법사들과 대치하며 싸울 준비를 했다.


"운디나이! 샐러맨더! 실피드! 언노움!"


그녀가 외치자 순서대로 물,불,바람,대지의 중급정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든속성의 정령을 불러들인 그녀는 뒤돌아서 베트리를 따뜻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다음 작게 귓가에 속삭였다.


"말 잘 듣는 우리 착한 아들 이번에도 엄마말 들어줄래? 내가 공격을 시작하면 앞만 보고 달리는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뒤돌아보면 안돼 알겠지? 꼭 살아야한다 베트리···우리 아들···. 엄마아빠가 많이 사랑해."


"흐윽···어머니···흐으윽···."


베트리는 어머니에게 무언가 대답하고 싶었지만 계속 터져 나오는 울음에 말을 잇지 못하는 듯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대장격의 마법사가 비아냥 대며 말했다.


"정령들의 형태를 보아하니 네년은 중급정령사 인가 보구나. 하지만 이곳에 있는 마법사들은 모두 5클래스의 상급 마법사이다. 그리고 나는 얼마전 상급중의 상급인 6클래스의 경지에 올랐지 크크큭. 너는 우리의 상대가 되지않는다. 그러니 저항하지 말고 얌전히 투항해라. 저항하지 않는다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입술을 굳게 다문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공격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언노움. 저들을 모두 묶어줘."


쿠우웅- 쿵- 쿵-


땅에서부터 흙과 돌로 이루어진 손이 나타나 마법사들의 팔과 다리를 붙잡았다. 방심했던 그들은 꼼짝없이 모두 움직일 수 없게되었다.


그녀는 베트리를 향해 말했다.


"베트리! 지금이야!"


베트리는 눈물이 앞을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말대로 앞만 보고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년이!! 모두 저 꼬마를 잡아라! 정령사의 자식이다! 남겨두면 분명 후환이 될것이다!" 


"예! 라트리히님!"


마법사 중 대장이었던 라트리히가 제일 먼저 언노움의 속박을 풀고 캐스팅을 시전했다. 그리고 하나둘 씩 속박을 해제 하며 캐스팅을 하기 시작했다.


"파이어볼."


"매직 미사일."


커다란 화구가 베트리를 향해 날아가고 빛의 무리들이 쏟아졌다.


"운디나이. 베트리를 지켜주렴."


순식간의 물의 장벽이 만들어졌고 베트리를 향해 쏟아지던 마법들이 장벽에 막히면서 모두 사라져갔다.


"당장 쫒아라!!"


"실피드. 지금부터 그 누구도 베트리를 쫒지 못하게 해"


허공에서 거센 돌풍이 만들어지더니 마법사 무리를 강타했다. 마법사들은 제대로 서있지도 못하게 하는 돌풍에 로브가 찢겨져 나가고 각자 실드 마법을 캐스팅하며 몸이 날아가지 않게 버틸 수밖에 없었다.


"크윽! 네년이 정말 죽고 싶구나?! 네년을 여기서 먼저 찢어 죽이고 애새끼도 죽여 둘 다 몬스터들의 먹이로 던져주마!"


순식간에 정령들이 대규모 스킬을 쏟아내자 한번에 너무도 많은 마나를 사용한 그녀의 입에서는 어느새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베트리를 위해 멈출 생각이 없었다. 자신의 모든 마나를 쏟아내 이곳에서 쓰러져 죽는다고 해도 마법사들 중 그누구도 이곳에서 보내지 않을 것이다.


콰과과앙! 쾅!


폭발음을 뒤로하며 베트리는 귀를 막고 혼자 어두운 숲속을 있는 힘껏 달렸다. 어두운데다 눈물이 앞을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나무에 부딪히고 가지에 걸려 넘어져 살갗이 벗겨지고 피가 났지만 그저 앞을향해 달렸다.


"흐으윽! 흐윽!"


눈이 떠지며 벌떡 일어난 라피엘의 시야에는 평온했던 풀숲의 모습이 보였다.


'뭐야 대체 이건 무슨 꿈이지'


짧은 시간에 아주 긴 꿈을 꾸었다. 라피엘은 꿈속에서 베트리라는 소년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눈가를 만져보니 눈에는 아직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아이는 분명 정령사였어. 부모도 마찬가지로 정령사였고 마법사들이 갑자기 쳐들어와서···. 잠깐만! 이거 내가 책에서 본 내용이랑······.'


방금 전까지 꾸었던 생생한 꿈. 그건 분명 어제 책에서 본 내용이랑 관련이 있었다.

아니 마치 내가 책 속에서 나온 역사 속에 들어가 있는 듯했다.


그 꿈은 무엇일까? 정말 베트리라는 소년이 겪은 일일까? 아니면 그냥 혼자만의 상상으로 이루어진 개꿈일까? 환생도 한 마당에 누군가의 인생을 꿈으로 본다는 것도 믿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꿈이 너무 생생했던 기억 때문인지 몰라도 꿈의 내용이 자꾸만 사실일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것들을 곰곰이 생각하던 라피엘은 이것이 마냥 쓸데없는 개꿈은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라피엘은 무언가 떠오른 듯 갑자기 서서 눈을 감았다. 자연을 몸소 느끼는 듯 양팔을 들어 올렸다. 그다음 미친 사람처럼 허공에 대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바람의 정령이여 모습을 드러내라!! 그대와 계약하고 싶다!"


힘껏 소리친 뒤에 눈을뜨고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예의 없이 반말을 해서 그런가? 존댓말을 해야하나?'


버릇없이 정령을 불러 반응이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한 라필엘은 다시 한번 허공에 소리쳤다.


"존귀하신 바람의 정령님 혹시 듣고 있으신가요?! 저랑 계약하시죠! 제 앞에 나타나 주세요!"


두번째 시도 역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것도 아니고···. 진짜 마지막으로 한번만더···.'


라피엘은 마지막으로 방금 꾸었던 꿈을 떠올렸다. 자신이 베트리라는 정령사 소년이 되었던 순간을. 그리고 소년이 처음으로 정령과 계약하던 순간을.


"태초부터 존재하며 자연에 깃든 고귀한 존재여. 만물의 모든 것을 감싸며 보살피는 바람의 정령이여. 미약한 내가 그대와의 계약을 원하니 부디 부름에 답해주소서."


나지막이 읊조리고 눈을 떴으나. 이번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에휴 그래. 역시 그런 거지? 그렇지? 애초에 말도 안 되는 거였어. 하하하 대체 여기서 나 뭐하고있냐 바보같이. '


그런데 그 순간.


순식간에 바람이 자신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한차례 몸을 감싼 바람들은 라피엘의 눈앞에서 무언가의 형상을 만들었고, 곧이어 처음 보지만 익숙한 생명체가 나타났다.


"오씨! 깜짝이야!"


그것은 꿈에서 보았던 실프라는 바람의 하급정령이었다.


-꺄르륵 꺄르륵 너 진짜 재밌는 아이구나.


라피엘은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으며 자신 앞에서 웃고 있는 실프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에?!! 이게 진짜 된다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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