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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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노동생
작품등록일 :
2024.08.29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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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2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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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1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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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그랬지? (1)

DUMMY

아아, 나의 마지막 숨은 온통 후회뿐이었습니다.

본디 삶에는 정답이 없는 걸 알면서도 내가 걷는 길을 의심했습니다.


과연 구원이란 존재하는 것일까요?

만약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 이 한 몸 바쳐서라도 그 길을 걷고싶습니다. 그 길의 끝에 있을 구원을 바라면서.


***


밝고 눈부신 빛이 나의 몸을 온통 덮친 후, 내 눈앞엔 온통 어둠뿐이였다.


온통 암흑뿐인 세계에서 보이는 한 줄기 빛을 따라가보니, 그 끝엔 검은 정장의 한 남자가 있었다. 눈 밑엔 다크서클이 가득해 초췌한 안색의 한 남자. 그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이마를 짚다가, 나를 보고는 곧장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쳤다.


이상하게도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너무나도 머리가 아팠다. 깨질 듯이 울리는 머리와 숨가쁘게도 조여오는 가슴. 남자도 같은 것을 느꼈는지 금세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렇게 서로를 가만히 쳐다만 보다가,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온경유. 2024년 9월 1일 오후 4시 34분. 횡단보도에서 오는 트럭에 치여 사고. 맞나?"


사무적이게 나의 정보를 줄줄 읊는 것을 본 경유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눈앞의 이 남자는 저승사자라고.


'내가 결국 죽었구나.'


오히려 좋을 수도 있다. 4년 전 사고로 떠난 친구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니까.


"저는 죽은 건가요? 그렇다면 제 친구를 볼 수 있게 해주세요. 제발요."


남자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표정한 얼굴의 남자가 한숨을 쉬니 무서운 기운이 풍겼다. 그것을 느낀 경유가 슬쩍 뒷걸음질을 쳤다.


"너는 죽지 않았다. 너의 몸은 현재 혼수상태이고, 3년 뒤 깨어날 것이야."


죽지 않았다는 말. 3년 뒤 깨어날 것이라는 말. 다른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 말을 듣고 기뻐하겠지만, 경유는 이 말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


'더 살아가야 하는구나.. 그렇구나...'


경유에게 있어 불행은 지긋지긋했다. 그녀에게 욕을 먹고, 눈물을 흘리는 일은 이제 예삿일이었다.


'드디어 죽어서 유소도 만나고 나의 긴 고통도 구원받는 줄 알았는데, 결국 이런 식이야.'


남자는 울상으로 있는 경유를 힐끔 보고는 나지막이 말했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경유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경유의 머릿속에 이상하게도 생각보다 다정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섰다.


"네!! 4년 전 사고로 세상을 떠난 친구를 보고 싶어요. 아니면 잘 살고 있는지만이라도 알 수는 없을까요?"


남자의 입이 우물쭈물 움직이다 결국 입 안에 머금은 말을 뱉었다.


"정 그렇다면 방법이 하나 존재한다."


"무엇인가요?!! 뭐는 할게요, 그러니 제발..!!"


"자칫하면 네가 환생도 못하고 영원히 저승에서 고통받는다 하더라도?"


경유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남자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뒤돌아 명부를 넘겼다.


'늘 이런 사람이 가득하지. 호기롭게 도전하다 나가 떨어지는.'


이 여자도 마찬가지이고.


남자가 뭐라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던 그때, 뒤에서 경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관 없습니다."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았다. 뒤에는 작고 힘없던 평범한 여자가 아닌, 그 누구보다 확고한 눈빛의 한 여자가 있었다.


"제게 있어 죽음은 육체의 죽음이 아닌 도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이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야겠습니다."


남자는 여자의 말을 듣자 여자의 얼굴에 누군가가 겹쳐보였다. 처음 보는 여자와 남자의 두 얼굴. 보고만 있어도 그리우며 미웠으며 선명하다가도 흐릿해보이는, 이상한 감정이였다.


머뭇거리던 것도 잠시, 남자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경유에게 말했다.


"따라오거라. 마침 문지기도 없으니 잘됐군."


'요즘 시대가 어느 땐데 문지기..?'


남자의 말은 의문투성이였다. 그러나 왜인지는 몰라도 믿음직하고 포근한 분위기였다. 말하고 싶은 말이 입가를 맴돌다 삼켜질 정도로.


경유는 군말 없이 남자의 뒤를 따랐다. 뒷모습을 보며 그가 가는 길을 따라 걷자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영겁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탄 듯이.


어둠 속 빛 한 줄기를 따라가보니 두 개의 문의 형상이 보였다. 왼쪽의 문은 그 어떤 어둠도 밝혀줄 것처럼 밝게 빛나는 하얀 문이었고, 오른쪽의 문은 보기만 해도 빨려들어갈 것 같은 푸른색의 문이였다. 남자는 익숙하게 오른쪽 푸른 문으로 들어가고는 경유를 잡아 끌었다.


***

'방금 무슨 일이..?'


분명 늪에 빠진 듯 답답했는데, 눈을 감았다 뜨니 넓은 방 안이였다.


경유는 방 안을 이리저리 살펴보다 한 곳에 시선이 멈췄다. 으리으리한 방 안보다 눈에 띈 것은, 높은 의자에 앉아 있는 한 여자였다. 남자는 익숙하다는 듯 여자의 앞으로 걸어갔다.


"길을 걷고 싶어하는 자입니다."


그 말을 들은 여자는 픽 웃으며 말했다.


"문지기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아무나 데려오다니, 발칙하구나. 원래라면 이 여자가 길을 걸을 자격이 있는지부터 따져야 하거늘"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조그맣게 말했다.


"이상하게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남자야말로 이상한 일 투성이였다. 그가 저승사자로 일한지도 몇백 년이 훌쩍 넘었거늘, 이렇게 이상한 기분을 느낀 것은 정말이지 처음이였다. 가끔씩 느끼는 불안한 느낌이라기엔 지나치게 편안했고, 느껴본 적 없는 행복이라는 감정이기엔 지나치게 가슴이 저렸다. 저승사자가 돼고 행복을 느껴본 적은당연히 없으나, 적어도 이런 절망적이고 복잡한 감정이 행복한 감정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것만 같았다.


남자의 중얼거림을 들은 여자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경유에게로 다가왔다. 넓은 방 안에서 하이힐 소리만이 울려퍼졌다. 어느새 경유의 앞까지 온 여자는, 경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온경유. 2024년 9월 1일 오후 4시 34분 트럭에 치여 혼수상태. 맞니?"


"네? 네.. 혹시 저승사자신가요..?"


여자는 경유의 말을 듣고 멈칫하더니 별안간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하하하하하!!"


영문을 모르는 경유를 뒤로하고 숨이 넘어가라 웃던 여자는 잠시 뒤 웃음이 잦아들자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저승사자같니? 아쉽지만 아니란다."


"그럼 혹시.."


"흐음, 이승 사람들도 내 존재는 알고 있던데. 뭐, 이제라도 알면 됐지. 나는 옥황상제란다."


경유의 눈이 커지다 이내 얼굴에 당황스러운 표정이 스쳤다.


경유 역시 당연히 옥황상제의 존재를 알았다. 다만 경유의 상상 속 옥황상제와 지금 경유의 눈앞의 옥황상제의 모습은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다. 하얗고 긴 머리카락과 노란 눈동자를 가진 여자는 신비로운 분위기에 누가 봐도 예쁘다고 할 법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젊어 보이는데 옥황상제라니..'


옥황상제 역시 그런 반응이 익숙한 듯했다.


"음, 내 모습에 놀란 것 같은데. 하긴 내 모습이 좀 젊어 보이지? 아무튼 담소는 넣어두고, 이곳에 온 이유부터 얘기하자꾸나. 그래, 길을 걷고싶다고?"


"길..이요?"


"아, 이리 말하면 모르겠구나. 너처럼 고통을 감수하고 구원을 얻기 위해 내 앞에 선 자를, 저승에선 '길을 걷는 자'라고 칭한단다. 뭐, 실제로도 길을 걷는 건 매한가지니."


"아.. 맞습니다. 꼭 되살리고 싶은 이가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부디 길을 걸을 수 있게 해주세요..!!"


옥황상제의 입이 열리기도 전에, 방에 있는 문이 거세게 열렸다. 급하게 문이 열리고 한 은발의 남자가 들어와 경유와 눈이 마주쳤다. 경유는 또 알 수 없는 두통을 느꼈다. 마치 아까 저승사자를 마주한 뒤 느낀 두통과 비슷했다.


그러나, 비슷한 듯 하면서도 묘하게 다른 분위기가 풍겨왔다.


세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문을 열고 들어온 은발의 남자를 향했다. 남자는 살포시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노크 없이 들어온 점 죄송합니다. 급히 고할 일이 있어 그만."


그러자 옥황상제가 남자를 빤히 보고는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아주 잠깐이였으나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본 경유는 머릿속에 하나의 물음만이 가득 찼다.


'이게 무슨..?'


옥황상제는 다시 고개를 돌려 경유를 보고는 말했다.


"이제보니 너는 길을 걸을 수 없겠구나. 미안하지만 돌아가거라."


그 말을 들은 경유의 얼굴엔 당혹스러움만이 묻어나왔다.


"갑자기요..? 제가 뭘 잘못했나요..?"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옥황상제의 입에서 의미심장한 말이 흘러나왔다.


"어쩐지.... 그래, 그날로부터 세월이 오래도 지났으니."


"그게 무슨.."


"셋, 아니 다섯 명 모두가 기구한 운명을 가지고 있구나.."


"네..? 운명이요..?"


"아니, 아니다. 너, 살리고 싶은 사람이 있는 거지?"


"네.."


"너는 원래라면 10년 전의 오늘 죽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날 같이 사고를 당한 네 친구가 길을 걸어서 너를 살렸지. 이미 한번 살아난 이는 다시 길을 걸을 수 없다. 이만 돌아가서 깨어나는 걸 기다리도록 해."


"네..?!"


경유는 결국 바닥에주저앉았다. 이제야 구원의 길이 보이나 싶었는데, 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경유는 마치 늪에 빠진 기분이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빠져나갈 수 없는 현실은 경유에게 늪과 다를 바 없었다.


그때 이 모든 것을 듣고 있던 은발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제가 잘 찾아온 것 같네요. 마침 제 볼일과 같은 목적인지라."


남자는 옥황상제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경유와 저승사자 역시 그쪽으로 귀를 기울여 뭐라 말하는지 들으려 애썼다.


"제...싸워..."


"저....영혼...고..."


'영혼..?'


그러나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들리는 건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들뿐이였다.


얘기를 가만히 듣던 옥황상제는 다급히 남자를 말렸다.


"이 아인 이제 아무것도 모른다. 드디어 마음을 잡고 살아갈 수 있는데. 헌데 왜..!!"


남자는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이였다. 그는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옥황상제는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좋다. 내가 말릴 수도 없으니. 경유야?"


"네, 네..?"


잠자코 있던 경유가 화들짝 놀라며 답했다. 그러나 뒤이어 나올 말은 경유와 저승사자까지 더욱 놀라게 했다.


"이 아이가 너와 싸워보고 싶다는구나. 만약 이 아이와 싸워서 이긴다면 너 역시도 길을 걷게 해주마."


놀란 표정의 둘과 달리 은발의 남자는 생글생글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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