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 고블린 주술사(1)
‘가닌다, 이거···?’
-이거라면 마력을 축적하는 마도서를 만들어낼 수 있겠어.
훅! 빠져나가는 마력.
2써클 구축 마도서를 만들 때보다 마력 소모가 더 많았다.
심지어 급히 마력 포션을 들이켜는 와중 실시간으로 마력이 빠져나갔다.
만전 상태일 때 마력량보다, 지금 소요되는 마력량이 크다.
심지어 마시던 마력 포션 하나를 다 비웠다. 이윽고 빛이 잦아들고.
【 원류-스파이럴 마나축기 수련법 】
표지에 적힌 마도서 제목을 보자 크리스는 흠칫 놀랐다.
스파이럴식 마나축기법은···크리스도 아는 것이었다.
300년 전 큰 전쟁이 있었을 당시, 종군 마법사로 전장을 휩쓸었던 워록 욤 켄튼.
그는 마력 감각은 형편이 없었지만 괴물 같은 마력량으로 유명했고.
실제로 그걸로 자신보다 고써클의 마법사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제압했다고 전해졌다.
그 원류가 자신의 손에 들어오게 되다니.
그야말로 천운!
“좋았어. 그럼 이거 바로 마도서를 보지 않을 수 없지.”
-진정해. 너 그러다가 또······.
가닌다가 말렸지만 도저히 크리스는 멈출 수가 없었다.
-하 놔······.
그리고 어김없이, 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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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이 풍부한 곳이라 기절 시간은 짧았다.
포션으로 마력을 충전한 뒤 배고파질 쯤 여관에 돌아왔다.
따로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이상, 제공되는 건 멀건 수프와 딱딱한 빵이었다.
‘먹을만한데. 마탑에서 먹던 빵과 별다를 것도 없네. 식사는 이걸로 하고 돈 아끼자.
앞으로 수련에 들어갈 마력 포션을 감안하면 지금 가진 돈으로는 택도 없다.
돈을 더 벌어야 한다.
저절로 여관 벽 한쪽에 붙은 의뢰서 같은 것에 눈이 갔다.
‘나도 할만한 의뢰가 있는지 틈틈히 살펴봐야지.’
오늘은 별 게 없었다. 점심 먹은 뒤.
오후에는 경비소로 갔다.
“오, 크리스 왔구먼. 자네도 합류해서 같이 훈련해.”
“넵!”
“크리스, 이쪽으로 와.”
혼자 창을 휘두르는 것보다 경비병들과 대련은 실전적으로 도움이 됐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이 흐르고.
일주일 후.
그날이 왔다. 토벌 작전에 참가하는 날.
“토벌이라고는 해도 몬스터 나오는 일은 거의 없으니 전혀 겁 먹을 거 없어.”
엘론드에는 성벽을 따라 경비대가 십여 개소나 있었다.
그 중 크리스가 합류한 북서쪽은 경비소장 밀스가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고 있던 놀 무리를 몰아냈다고.
“···렇게 됐거든.”
같은 조가 된 빌로우라는 경비병이 설명해줬다.
“그쯤 해둬, 빌로우. 너무 자랑하다 부정 탈라. 게다가 이 너머부터는 슬슬 북쪽숲의 고블린 서식지와 경계잖아.”
존스가 핀잔을 줬다.
“옙, 그러면 일단 먼저 정찰 나가신 레일리 모험가님을 기다릴까요?”
“난 이미 도착했다네. 앞에 이상은 없어.”
소리 죽인 발걸음으로 숲 사이에서 나타난 노인.
레인저 출신 실버 등급의 모험가라고 했다.
그렇게 반나절 동안 구역을 돌아봤는데.
“이상 없군.”
과연 앞서 들은대로 말이 토벌이었지, 실상 정찰 임무. 것도 별 건 없었다.
“그만 돌아가지.”
살짝 아쉬운 마음도 드는 크리스였다.
왜 꿀자리라 그러는지 알 듯 싶었다.
존스가 자신을 신경써줬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이후에도 크리스는 평소에는 돈을 아껴서 마력 포션을 사고, 수련을 하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토벌대···아니, 정찰 임무에 참가했다.
여전히 실전은 없다. 하지만 성과는 있었다.
전투 경험은 아니지만, 숲을 타는 경험을 했다.
“그러고 보니 크리스 자네 독도법은 좀 아나?”
“지도 보는 법이요? 아뇨, 잘 모르는데요.”
“나가는 길에 알려주지. 알아둬서 나쁠 건 없잖나.”
같은 조가 된 빌로우나 레일리에게 독도법이나 여러 가지를 배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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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정도가 됐을 무렵에 크리스도 숲에 익숙해졌다.
곳곳에 빛도 보였다. 빛은 생각보다 많았다.
그렇지만 그걸 마도서로 만들지는 않았다.
2써클 구축 마법서에 스파이럴식 마나축기법에 란나찰 마도서까지.
마력 부족. 선택과 집중, 지금으로서는 그게 중요했다.
-이 녀석아, 다른 마법 아티팩트는 아직도 못 구한 거냐? 2써클은 언제 되려고? 엉?
‘안 그래도 나도 알아. 너무 닦달하지 말라고.’
-저기 널린 빛들이 아깝다! 마도서를 만들어봤자 마력만 낭비하는 꼴이라니, 쯧!
‘잠깐 마력 연결 끊을게.’
마력이 늘어서 전에 비해 여유가 생겼지만.
역시 이럴 때는 가닌다와 연결을 잠시 끊어두는 것이 좋다.
자신도 알고 있다. 여전히 1써클 상태.
직감적으로 2써클 구축의 목전이라는 것이 느껴지는데 거기 다다르려면.
2써클 구축 마도서에 몇 페이지가 더해져야 했다.
‘가장 확실한 길은 그거지.’
던전에 가면 마법 무구가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개죽음 안 당하려면 파티에 속해야 하는데 실력을 입증해야 한다. 크리스도 시도해봤으나 돌아온 답은 경력을 쌓고 오라는 것.
‘젠장! 던전 파티에 들려니 모험가나 용병이 되라 하는데, 모험가나 용병에 되려면 경력을 쌓으라 하고. 경력을 쌓으려면 모험가나 용병이 되야 하고 뭐 이딴 식이냐고!’
딱 2써클만 되도 어떻게든 비벼볼 수 있었다.
더구나 머리로는 알았는데 건드릴 수 없던 여러 마법들도 2써클이 되면 해볼 수 있다.
‘으아아아, 2써클 되고 싶다. 나도 2써클 좀 돼보자!’
그래서 혹여 뭐라도 나올까 싶어 크리스는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녔다.
“크리스가 수색을 정말 열심히 하는군.”
“그러게요. 아무래도 이게 천직인 듯 싶습니다.”
그걸 모르는 존스, 빌로우, 레일리는 크리스가 수색을 열심히 한다고 흐뭇하게 여길 뿐.
“그럼 나는 앞서 가서 늘 하듯이 정찰하고 오겠네.”
모험가 레일리가 앞서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건 설마···마력 반응?!’
크리스가 멈칫했다. 잘못 느낀 것이 아니었다.
감각을 돋우어 흔적을 쫓은 곳에는, 짐승의 손톱 조각 같은 것이 있었다.
조악한 솜씨였지만 다듬어서 마력회로를 각인해둔 아티팩트 파편이 틀림없었다.
다만 빛이 일지 않는다. 가닌다가 스캔해도 소용은 없다는 뜻이었다.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김이 빠졌지만 한편으로 좀 이상했다.
이건 전에 없던 물건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마력 있는 물건이 전에 있었다면 자신이 알아챘을 터.
‘생각났다. 이거 그거잖아.’
그때 존스와 빌로우가 다가왔다. 들짐승의 흔적이겠거니 여기는 표정.
크리스는 굳은 표정으로 손톱조각을 보여줬다.
“뭘 찾았기에 그러나?”
“음, 이거···마탑에서 본 적 있거든요. 고블린 주술사 장신구 조각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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