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좌의 그림자: 불멸의 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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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보다
그림/삽화
리치웨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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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31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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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9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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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1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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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월은 피고...

DUMMY

새벽까지 술을 마신 왕전은 환관들의 부축을 받으며 자신의 침소로 향했다. 왕좌에 앉은 지 반세기, 수많은 음모와 전장을 헤쳐 온 그였지만, 이제는 마치 생명력마저 천천히 빠져나가는 것 같은 고통스러운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예전 같지 않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고, 그 소문은 더 이상 허상에 그치지 않았다. 왕권을 되찾고 강화를 이루기 위해 평생을 바쳐온 왕전에게 이는 무엇보다도 무서운 현실이었다.

50년 전, 왕전은 겨우 15살의 나이에 무너진 왕좌를 이어받았다. 철의 의지와 냉혹한 결단력으로 그는 권신들을 제거하고, 호족들의 야망을 꺾으며 왕권을 되살렸다. 그러나 그의 위대한 통치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비극은 자식 복이 없다는 것이었다. 첫 아들은 원인 모를 병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그 충격으로 황후 또한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두 번째 부인에게서 얻은 아들들은 전장에서 모두 전사했다. 이제 그의 나이 60, 마침내 얻은 늦둥이 아들은 겨우 1살에 불과했고, 그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뛰어난 재능과 미모를 갖춘 공주 화영뿐이었다. 그러나 여자이기에 그녀는 후계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왕전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기 시작했다. 붉은 달이 뜨는 밤,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는 불길한 예언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둠 속에서 피어오르는 불안감은 늘 그를 괴롭혔다. 만약 자신이 죽는다면, 평생을 바쳐 일궈낸 왕국과 권력이 한순간에 무너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그를 사로잡았기 때문이었다.

침소에 도착했으나, 그의 마음은 여전히 고요를 찾지 못했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불안이 그를 잠들지 못하게 했고, 그는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화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을밤의 차가운 공기는 마치 얼어붙은 듯 맑았고, 국화꽃은 은은한 향기를 뿜어내며 고요한 밤을 채우고 있었다. 바람에 살며시 흔들리는 꽃잎은 달빛 아래서 춤을 추듯 우아했다. 왕전은 잠시 동안 모든 걱정을 잊고 자연 속에 몸을 맡겼다.

그러다 문득,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 떠오른 붉은 달은, 마치 불에 타듯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예언이 떠올랐지만, 왕전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허튼소리···" 스스로에게 속삭였지만, 가슴 한 켠에 스며드는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생애를 걸쳐 수많은 역경을 겪어온 그에게, 달 하나가 그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 순간, 그를 덮친 것은 예언이 아닌 현실이었다. 머리가 어지럽고, 가슴이 찌르는 듯이 아파왔다. 시야가 흐려지며, 땅이 무너져 내리듯 그의 발 밑에서 사라지는 듯했다. 그는 몸을 가누려 애썼으나, 몸은 이미 그를 배신하고 있었다. 왕전은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고,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주마등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치열했지만, 무료하지는 않은 인생이었다. 남겨진 자식들이 눈에 밟혔지만, 이제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황제는 이렇게 차가운 대지 위에 쓰러져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붉은 달빛이 그의 무거운 눈꺼풀 위로 차갑게 내려앉았다.

다음 날 아침, 화영은 아버지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침소가 비어 있음을 발견했다. 불길한 예감이 가슴을 조여오자, 그녀는 왕궁을 샅샅이 뒤졌고, 마침내 화원에서 아버지의 시신을 발견했다. 붉은 달의 예언이 실현된 순간이었다. 눈앞의 광경에 화영은 눈물조차 흘리지 못했다. 제국의 미래가 한 눈에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

“붉은 달이 하늘을 물들일 때, 용의 심장은 멈추리라. 서쪽에서 일어난 백호가 어린 용의 숨통을 죄고, 주작과 현무가 만나 태어난 자만이 이 어지러운 세상에 평화를 안기리라.” 라는 예언은 들불처럼 빠르게 항간으로 퍼져 나갔다.

“서쪽에서 일어난 백호가 어린 용의 숨통을 죈다.”

이 불길한 예언의 구절에 대해 사람들은 곧바로 서북의 강력한 귀족, 김씨 일가를 떠올렸다. 백호의 상징이 그들을 가리키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했다. 제국 내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하는 김씨 일가의 문장이 백호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 집안의 공주인 김소월은 왕전의 유일한 아들 왕기의 어머니였으니, 그 신빙성은 더욱 커져갔다.

이러한 해석에 대해 황궁과 김씨 일가 모두는 이를 유언비어라 일축했다. 서로 다른 이유였지만, 인정하는 순간 모두에게 치명적인 곤란이 따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황궁에서는 겨우 1살에 불과한 황제가 등극한 이후, 섭정의 자리를 두고 귀족들 사이에서 치열한 정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황궁의 복도는 은밀한 밀담과 치열한 논쟁으로 가득 찼고, 그 속에서 황제의 누이인 화영과 태후가 된 김소월 또한 자기 몫을 주장하며 각축을 벌였다. 내부의 혼란이 이미 극에 달한 상황에서, 외부에서도 불안이 증폭된다면 그 결과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할 것이었다.

김씨 일가 역시 예언 속의 ‘백호’로 지목되는 것을 결코 인정할 수 없었다.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제국 내의 다른 세력들은 즉시 적대적인 자세로 돌아설 것이고, 연합하여 자신을 칠 명분으로 삼을 것이 너무나 뻔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제국 제일의 군사력을 지닌 가문이라고 해도 제국 5대 가문이라 불리는 이,박,최,왕씨 가문들과의 전면전에서는 승산이 없었다.

특히 끝없는 평야와 비옥한 토지를 가지고 있는 남부의 박씨 일가는 제국내 가장 부유한 가문이었으며, 무지막지한 재력으로 다른 가문들을 포섭하여 김씨 가문을 공격해 온다면 가문이 끝장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동부의 “그 남자”가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면 김씨 가문도 모든 것을 걸고 싸워야 했다.

···

아직 섭정이 정해지지 않은 혼란 속에서, 태후 김소월은 자연스레 황궁을 이끄는 대행자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황실의 일원으로서 맡아야 할 책임이었고, 의무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권력의 중심에 서 있는 경험은, 그녀의 마음 깊은 곳을 서서히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권력의 정점에 서는 것이 얼마나 고독한 것인지, 그 무게가 얼마나 크고도 고통스러운지 김소월은 잘 알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는 모든 것을 희생해야 했고, 무엇보다 자신 마저도 잃어버릴 각오를 해야 했다. 죽기 전 황제 왕전의 삶이 그랬다. 매정하고, 왕좌를 지킬 생각밖에 없는 남편을 두었던 그녀는 황제라는 권력과 그것을 상징하는 옥좌를 혐오했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김소월은 권력이 주는 묘한 감각에 서서히 매료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쩔 수없이 떠맡았던 그 자리가 이제는 깊은 유혹으로 그녀를 끌어당겼다. 권력은 예상 밖으로 달콤했으며 짜릿했다. 만인의 위에 서서 제국을 주무를 수 있는 그 강렬한 감각은 그녀의 마음과 가치관을 바꿔놓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왜, 왕전이 모든 것을 걸고 권좌에 집착했는지, 왜 그가 죽기 직전까지도 그 자리를 놓지 않았는지를··· 권력의 자리에서 느낀 그 전율은 마치 세상을 품 안에 안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만 같고, 무엇이든 가질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

김소월은 "사람을 얻으면 천하를 얻는다"는 진리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배신과 음모가 가득한 황궁에서 자신을 지켜줄 강력한 검이 필요했고, 그 검이 될 인물로 김석주를 지목했다. 김석주는 어릴 적부터 기마술과 창술이 뛰어나 무재로 불렸지만, 서자라는 이유로 김씨 가문 내에서 끊임없이 멸시를 받았다. 모두가 그를 괴롭혔을 때, 김소월만큼은 그를 괴롭히지도, 경멸의 눈길을 주지도 않았다. 김소월의 이런 태도는 결코 훌륭한 심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무신경했을 뿐, 세상에는 그녀를 더 흥미롭게 하는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김석주가 필요해졌다. 김소월은 그를 손에 넣기 위해 자신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를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그녀의 무신경함은 마치 마법처럼 친절함으로 변했고, 그 친절은 더욱 치밀하고 전략적인 행동으로 이어졌다.

그녀는 김석주가 근위대장이면서도 다른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황제의 침소 경비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때를 노려 김석주를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왕기가 아직 갓난아기였기에 김소월의 곁에 있어야 했고, 김석주는 그 방을 지켜야만 했다.

김석주가 침소로 들어섰을 때, 그는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허둥댔다. 방 안은 은은한 달빛에 잠겨 있었고, 그 빛은 마치 부드러운 실크처럼 방을 감싸고 있었다. 김소월은 창가에 서서 달빛을 등지고 있었다. 그녀의 얇은 속치마는 빛을 받아 그녀의 실루엣을 더욱 부드럽고 은은하게 드러냈다. 김석주는 순간적으로 시선을 둘 곳을 잃고, 당황한 나머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김소월은 그의 당황스러운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따뜻함과 거리감이 동시에 담긴, 속내를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부드럽게, 그러나 확실히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려 했다.

"근위대장께서 직접 내 곁을 지키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든든합니다." 김소월의 목소리는 달빛처럼 부드럽게 울려 퍼졌다.

김석주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말했다. "황후마마, 소신은 그저 제 본분을 다할 뿐입니다."

김소월은 천천히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녀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달빛을 가르며, 방 안에 가벼운 파동을 일으켰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자, 김석주는 그녀의 향기와 체온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심장은 점점 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

"근위대장님, 당신의 황실에 대한 충성이 저에게 큰 힘이 된다는 걸 알고 있나요?" 그녀는 그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는 당신이 왕실이 아니라, 저에게 충성하기를 바래요. 욕심일까요?”

김석주는 여전히 시선을 바닥에 고정한 채,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혼란과 갈등이 끓어오르고 있었지만, 김소월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그를 더욱 깊은 혼돈 속으로 끌어당겼다. 그는 김소월에게 충성심 이상으로 무언가 더 깊은 것을 바치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황후마마, 소신은 그저 명을 따르겠습니다. 무엇을 원하시든, 그저 말씀만 하십시오." 그의 목소리는 긴장과 결심이 섞인 채로 떨렸다.

김소월은 그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 말을 믿어도 될까요?”

김석주는 마침내 고개를 들어 김소월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가득했지만, 그 안에는 이미 결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왕실과 황궁을 지키는 근위대장이지만, 이제는 한 여인을 위해 모든 것을 걸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그의 결단을 눈치채고, 부드럽게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잡았다. "평생을 제 곁에서 저를 지켜주실거죠? 저에게는 당신이 필요해요."

김석주는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황후마마, 소신은 항상 마마의 곁에 있겠습니다."

김소월은 석주의 눈빛에서 강렬한 의지와 확실함을 느끼고, 승리감과 안도감이 공존하는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손길은 마치 부드러운 비단이 살갗을 스치는 듯 섬세했고, 그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천천히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들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김석주는 그녀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다가왔다.

"석주··· 오늘밤 달구경은 당신과 함께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그녀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그 의미는 석주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김석주는 거의 안기다시피 몸을 기대고 있는 소월의 눈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김소월은 그를 가볍게 끌어안았다. 그녀의 입술이 그의 귓가에 살짝 닿으며, 한 마디를 더 속삭였다. "갑옷은 여인의 방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에요.”

그녀의 목소리는 달콤하면서도 강렬한 힘을 품고 있었다. 김석주는 그 속삭임에 온몸이 전율하는 것을 느꼈다. 그 전율은 그를 더 깊이 끌어당겼고, 그의 마음 속에 있던 모든 상념을 날려 버렸다.

김소월은 살짝 뒤로 물러서며 석주의 손을 잡아 끌었다. 가냘픈 여인의 부드럽고, 가벼운 손길에 제국최고의 무사라 일컫는 석주도 속절없이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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