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명보트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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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재
작품등록일 :
2024.09.02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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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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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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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보 전진 1보 후퇴

DUMMY

바다 한가운데, 외로운 보트 위에서 들려오던 그녀의 절규는 몇 시간이 더 지나고, 해가 다 져갈 때가 되어서야 잦아들었다. 진정되었다기보단 실신한 것에 가까웠다. 차게 식은 아들의 더는 움직이지 않는 몸을 껴안고 울부짖으며 몸에 남은 에너지를 바닥까지 써 버린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도 보트는 계속 나아갔고, 누군가는 보트를 돌리고 싶었지만 지금 당장 입 밖으로 내기엔 너무나 반인륜적인 제안 같아 감히 입을 열지 못한 채 침묵하고 있었다. 


은정이 힘없이 보트 바닥에 엎어져 눈을 감고 침음하다가, 반쯤 잠든 상태가 되었다. 그렇게 어떻게든, 하루가 끝끝내 마무리되기는 했다. 침울한 밤이 내리앉은 보트에서 다섯 사람은 가까스로 눈을 붙였다. 

몇 시간 뒤. 

아이가 죽은 세상에서도, 무심하게도 태양은 떠올랐다. 은정을 제외한 모두가 하나둘 다시 일어나, 남은 비상식량을 소분해 나눠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자신의 몫을 앞에 두고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던 길현이 운을 똈다.

“이렇게 된 거, 그냥 민희 씨 구하러 돌아가죠.”


지금 상황에서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 길현이었지만, 어째서인지 다들 동의하는 눈빛은 아니었다. 

“그게 무슨 소리죠?” 진혁이 마치 이상한 소리라도 들은 양 되물었다. 

“아니, 당연한 거 아니에요? 하루밖에 안 됐으니 아직 살아있을 수도 있잖아요.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최대한 다 살려야 하는 거 아닌가? 다들 그렇게 생각 안 해요?”


“그래서, 살았을지 죽었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구하러, 이틀을 더 쓰자고? 우리의 생존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애초에 밤을 버텨냈을 리 없어. 어제 밤에 날씨 봤잖아. 무조건 동사했을 거라고. 여긴 태평양 한가운데인데, 어떻게 찾을 것이며, 찾아봤자 늦었을 텐데 시신 한 구 더 수습하기라도 하려고?” 재혁이 약간은 격양된 어조로 쏘아붙였다. 

“이럴 때일수록 감정적이면 안 되죠.” 형남이 끼어들었다. “지후는···이미 하나님 곁으로 갔지 않습니까. 그건 더 이상 우리가 어찌 할 수 없는 일이에요. 다들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었고, 이 또한 신의 뜻이에요. 해석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비극이지만, 어쩌겠습니까.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따져 봐야죠. 아직 살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더더욱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뇨, 안 됩니다. 돌아가는 건 리스크도 너무 크고, 확실한 것도 아니잖아요. 연료가 부족할 겁니다. 지금 목적지까지 가는 것도 간당간당해요. 돌아간다는 선택지는 없습니다.” 진혁이 모터에 손을 얹으며 선언했다. 의견은 반반으로 갈린 듯했다. 

“그리고, 애초에 돌아간다 한들 어떻게 살릴 건데? 우리가 뭐 무게가 줄어든 것도 아니고, 돌아가 봤자 결국 원점인 거 아냐? 살아 있는 걸 확인한다 해도 무거워서 못 태우면 그게 무슨 소용인데?”

재혁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길현은 은정과 지후 쪽을 스윽 바라봤다. 은정은 이제는 싸늘해진 지후의 몸을 껴안은 채 바닥에 누워 죽은 듯 잠들어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시신보다는···살아 있는 사람을 태워야 하지 않나?


“너 이 새끼, 설마···” 재혁도 뒤늦게 그 눈길의 의미를 깨닫고 말했다. 


“왜요? 너무 반인륜적인가요? 인간으로서, 어른으로서 할 짓이 아닌가요? 어린 아이의 시신을 바다에 버리고, 그 대신 살아있는 사람을 태운다는 발상이, 너무나도 끔찍한가요? 근데요, 냉정하게 생각하면 이게 맞죠. 죽은 사람보다는 아직 살아있는 사람을 태우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지후를 위해서도 이게 맞지 않아요? 민희 씨도 죽게 놔두는 건 지후의 죽음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 뿐인데.” 길현이 열분을 토했다. 


어린 아이의 자진적인 희생. 그것은 어른들에게 있어 죽기보다도 부끄러운 것이었다. 지후는 보트에서 뛰어내리기 직전 ‘제가 죽을게요’ 라고 했었고, 결국 정말 그렇게 되었다. 남은 어른들이 고개를 들고 남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길현은 그럴 자신이 없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민희만큼은 살려야 했다. 그것이 옳았다. 

소년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는, 이제는 오롯이 남겨진 어른들의 몫이었다. 수평선 위로 고개를 내민 태양이 그들을 뜨겁게 내리쬐었지만 보트 위의 공기는 차갑기만 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어린 애를···” 재혁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뒤를 진혁이 이었다. “아니, 그런 걸 따져 봐야 아무 의미 없다니까요? 연료랑 식량이 부족하다고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미 결론이 다 났는데, 왜 이걸로 왈가왈부 하는지 모르겠네. 도덕이고 나발이고, 물리적인 문제라니까요? 저희한테는요, 선택지가 없다고요, 이제.” 


“연료 다 떨어지면, 손으로 노를 저어서라도 가면 되죠. 그쪽도, 말도 안 되는 거짓말로 한 명 제껴 놓고 했으면, 어떻게든 그 짐을 다같이 이고 가야 참회가 되지 않겠어요? 이제서라도 바로 잡아야죠. 다 같이 살아나갈 방법이 있다면, 힘들더라도 그 방법부터 해 봐야죠. 아니에요?” 길현의 꽉 쥔 두 주먹이 미세하게 떨렸다. 힘을 어찌나 쎄게 줬는지 하얗게 될 지경이었다. 

“아니면 그냥, 배가 침몰했던 지점으로 돌아가는 건 어떨까요?” 형남이 제안했다. “어차피 이쯤 되면 구조대도 올만한 것 같은데, 가는 길에 민희 씨 찾으면 태우고, 침몰 지점으로 돌아가서 구조대를 기다리면 연료 걱정도 없고, 생존 확률도 제일 높지 않나?”


“그래, 그러면 되겠네. 목사님, 말 잘 했어요. 나도 생각 못 했던 건데, 일리가 있네. 그렇게 합시다.” 길현이 맞장구쳤다. 진혁은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딱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입에서는 그저 ‘아니···’와 같은 탄식만이 옅게 흘러나왔다. 진혁은 도움을 구하는 눈치로 재혁에게 눈을 돌렸다. 하지만 재혁은 이미 깨달은 듯한 눈치였다. 저 논리와 도덕을 이겨낼 방법은 없다는 것을. 그 정당하고 이상적이며 일리도 있는 방안을 반대할 만한 대안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재혁은 침묵했다. 


구조대. 그것만큼은 피해야 했다. 진혁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구조되는 것만은 막아야 했다. 구조된다는 것에는 신원 확인과 본국 귀환이 동봉된다. 둘 모두 피해야만 했다. 애초부터 도망칠 생각으로 보트를 끌고 여기까지 온 것 아니었는가. 아직 누구에게도 말 못한 그의 짤막한 과거가 거대한 그림자 괴물로 불어나 그의 등을 떠밀고 있었다. 절대 잡히면 안 돼. 그냥···밀고 나가야 해. 


곁눈질로 주변을 살피던 그의 눈이 어느 지점에서 멈춰 섰다. 보트 바닥에 늘어진 은정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다른 남자들이 보트를 돌리기 위해 모터를 조작하려 하는 동안, 그는 모르는 척 은정을 툭툭 쳤다. 그녀가 깨어나는지 살피며 뜸을 들이다가, 눈을 뜨는 걸 확인한 후 목소리를 다시금 키웠다. 

“그래서, 결론이 그겁니까?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는 사람 하나 구하기 위해 우리 목숨을 전부 다 확률에 내맡기고, 지후는 태평양 한가운데에 수장시키자고요? 어른이 되어서, 부끄럽지도 않나요. 네?”


“그···그게 무슨 말이죠.” 잠에서 막 깬 은정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 진혁의 계획대로였다. 나머지 남자들이 당황하며 은정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엎드렸 있던 자세에서 상체만 일으켜 세운 채, 얼굴은 다 붓고 머리는 산발이 된 그녀가 잔뜩 찡그린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말이죠. 저희,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민희 씨를 구하고 구조대를 기다리러요.” 길현이 어렵게 말을 뗐다. 어떻게 말해야 은정이 충격을 덜 받을까, 쉽게 설득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단어 하나하나를 고심해 가며 천천히 말을 짚어 나갔다. 


“돌아가다뇨? 아니···아직 꿈인 건가. 갑자기 왜 돌아가요.” 은정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물은 뒤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다. 

“그···아무래도, 아직 살아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돌아가서 구하고, 구조대를 기다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네요.”

“무거워서 안 된다는 거 아니었어요? 죄송해요. 지금 대화를 도저히 못 따라 가겠네.” 말을 하던 은정은 슬쩍 자신의 품을 내려다봤다. 그러고는 이제는 피부가 전부 하얗게 질린, 핏기 없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지후, 많이 졸렸구나? 하긴, 보트에 꼬박 하루가 넘게 타 있었으니 피곤할 만 하지. 음, 저는 잘 모르겠으니까 알아서들 해 주세요. 이러다 지후 깰라.”


얼어붙은 네 남자가 일제히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건 진혁도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은정은 자신의 외투를 벗어 지후의 몸을 감싸 안고, 조심스레 옆에 눕혔다. 그러고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아들을 빤히 내려다봤다. 잘 자는 아들이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소중하다는 어머니의 눈빛에는 언제 떴는지 모를 달빛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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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8] 서서히 다가오는 NEW 6시간 전 2 0 9쪽
17 [17] 구조대 24.09.13 2 0 8쪽
16 [16] 비극 앞에서 인간은 24.09.12 9 0 9쪽
15 [15] 두 개의 이름 24.09.11 8 0 10쪽
14 [14] 주마등 24.09.10 10 0 8쪽
13 [13] 비장의 한 수 24.09.09 10 0 8쪽
12 [12] 일촉즉발 24.09.06 7 0 8쪽
11 [11] 미싱 링크 24.09.06 7 0 9쪽
10 [10] 모성애 24.09.06 6 0 10쪽
» [9] 1보 전진 1보 후퇴 24.09.06 8 0 10쪽
8 [8] 투쟁 그 끝에는 24.09.05 9 0 10쪽
7 [7] 선의의 거짓말 24.09.05 9 0 10쪽
6 [6] 자기희생 24.09.04 10 0 10쪽
5 [5] 생존 본능 24.09.04 9 0 10쪽
4 [4] 궤변 그리고 분열 24.09.03 10 0 9쪽
3 [3] 살인자의 회고록 24.09.03 7 0 9쪽
2 [2] 살아야 하는 이유 24.09.02 13 0 9쪽
1 [1] 침몰 24.09.02 25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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