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명보트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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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재
작품등록일 :
2024.09.02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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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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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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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비장의 한 수

DUMMY

 “지금이다!” 형남의 외침 소리에 맞춰 나머지 두 남자가 동시에 진혁에게 달려들었다. 동시에 형남은 은정의 양 어깨를 잡고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어머, 왜 이래요!” 당황한 은정이 그를 뿌리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고, 동시에 길현이 왼손으로는 멱살을, 오른손으로는 진혁의 왼 팔뚝을 잡고 보트 가장자리로 밀어붙였다. 나머지 오른팔과 상체 오른쪽은 재혁이 두 팔과 어깨로 움직이지 못하게 막았다. 


“이런, 씨···” 순간의 기습에 당황한 진혁이 저항하려 들었지만 건장한 성인 남성 둘을 상대로 버틸 수는 없었다. 상체의 근육이 일제히 부풀어 올랐고 십자가처럼 양쪽으로 펼쳐진 두 팔은 힘에 부친 듯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이쯤 하면 됐잖아, 그만 포기해!” 재혁이 외쳤다. “네 사연같은 건 모르겠는데, 그냥 돌아가서 구조대 찾자고. 이쯤 되면 구조대도 올 거 아냐? 사고가 그렇게 크게 났는데.” 


하지만 적당히 제압만 하려는 사람과 분명한 목표와 이유를 업은 채 진심으로 투쟁하는 사람의 간극은 거대한 법이다. 진혁은 더 이상 수단과 방법을 가릴 생각이 없었다. 


그는 대답하는 대신 재혁의 명치에 오른발을 올리고 있는 힘껏 밀어냈다. 순간 재혁의 몸이 뒤로 쭉 밀려나 형남과 은정 앞에 내동댕이쳐졌다. 진혁의 오른손은 풀려남과 동시에 길현의 늑골을 가격했다. 동작들이 마치 하나로 연결된 것 처럼 부드럽게 이어졌다. 


“컥···” 호흡이 가로막힌 길현이 탄식을 내뱉으며 균형을 잃었고, 진혁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자신의 머리를 길현의 명치에 박아넣으며 보트 바깥쪽을 향해 있는 힘껏 밀어냈고, 길현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밀려났다. 그런 그를, 진혁은 보트 밖으로 쭉 밀어냈다. 몸이 붕 떴고, 이내 짠 바닷물이 길현의 얼굴을 강타했다. 허우적대며 그는 조금씩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또다시 보트는 크게 흔들렸고 위태로운 그 위로 파도가 쓸고 들어왔다. 바닥에서 겨우 다시 일어난 재혁이 방어 자세를 취했고, 발치에서는 바닷물이 찰박거렸다. 원래는 힘으로 제압만 할 생각이었지만 이렇게까지 된 이상 물러설 수 없었다. 파도 소리와 두 남자의 거친 숨소리만이 들려왔다. 


“···정말 이래야겠어? 이렇게까지 해야겠냐고.” 형남이 둘에게 말했다. “이러다 우리 다 죽을지도 몰라.” 고무 보트 위는 정말이지 난투극을 벌이기에는 최악의 장소였다. 이러다가 보트가 뒤집히거나 침몰하기라도 하면 전부 바닷속에 수장될 게 뻔했다. 

“그건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제.” 재혁이 진혁을 노려보며 말했다. “절대 좋게는 못 끝내요, 이제.” 


재혁은 싸움에 그렇게까지 자신이 있지는 않았다. 살면서 사람을 때려 본 적도 단 한번 뿐이었다. 물론 그 땐 이성을 잃고 죽을 때까지 패긴 했지만, 또 그럴 자신도 없거니와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보트 반대편에서 숨을 고르는 진혁에게 눈을 고정시킨 재혁의 머릿속은 복잡해서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어떻게 싸워야 하지? 주먹질을 해야 하나? 단번에 돌격해서 보트 밖으로 밀어낼까? 아까 보니 저 녀석, 싸움에는 일가견이 있는 것 같던데, 내가 이길 수 있을까. 

“···할 수 있겠어?” 같은 생각을 하던 형남이 물었다. “안 될 것 같으면 하지 마. 차라리 섬으로 가는 게 나을지도 몰라.” 


“처음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이 어렵습니까?” 재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일종의 자기 최면이기도 했다. 그 말과 동시에 재혁이 진혁을 향해 천천히 다가섰다. 가드 자세를 취한 두 주먹은 살이 하얘질 정도로 힘이 들어가 있었다. 진혁 역시 두 팔로 머리 부분을 가드하며 싸울 태세를 취했다. 


재혁이 먼저 선공을 날렸다. 힘을 잔뜩 실은 오른 주먹이 진혁을 향해 뻗어나갔지만 허공을 갈랐다. 주먹을 간발의 차이로 피해낸 진혁이 역공을 가했고, 그의 주먹이 재혁의 복부에 명중했다. 하지만 동시에 재혁 역시 빗나간 팔의 팔꿈치로 진혁의 머리를 가격하는 데 성공했다. 그 충격에 진혁의 몸이 왼쪽으로 밀려났고, 입술 사이로 핏물이 새어나왔다. 혀라도 씹은 모양이었다. 


입에 고인 피를 퉤, 뱉어낸 진혁이 다시금 달려들었다. 재혁 역시 가격당한 복부가 고통스러웠지만, 아파할 새도 없이 날아드는 다음 주먹을 막아내야 했다. 둘은 그렇게 주먹을 몇 번씩 주고 받으며 비등하게 싸웠다. 서로 자잘한 부상은 입었지만 치명타는 가해지지 않았다. 누가 한 대 맞을 때마다 흔들림은 심해져만 갔고 보트에는 바닷물이 들이차올랐다. 도저히 싸움에 끼어들 팀이 없었기에 형남과 은정은 들이차는 물을 퍼내고 보트의 균형을 잡는 수밖에 없었다. 


재혁은 계속해서 진혁의 얼굴을 노렸고, 진혁은 대부분의 주먹을 노련하게 흘려내며 재혁의 빈 공간을 파고들어 역습을 가했다. 재혁의 복부에 계속해서 데미지가 쌓여 갔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 번씩 진혁의 얼굴에 주먹을 맞췄다. 비록 완전히 명중하지는 못했지만 스치는 것만으로도 진혁의 머리에 가해지는 피해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몇 번의 합이 오고 간 뒤 잠깐의 소강 상태가 이어졌다. 피와 땀 범벅이 된 두 남자는 잠시 숨을 고르며 서로를 노려봤다. 재혁은 슬슬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진혁에게 맞은 데미지가 쌓이고 쌓여 이제는 숨도 간신히 고를 정도였다. 빠르게 끝을 내지 않으면 끝장일 테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진혁 역시 거의 한계인 듯했다. 그의 피투성이 얼굴 이곳저곳에 재혁의 주먹 자국이 남아 있었다. 


“하···이쯤 했으면···포기 좀 하지?” 재혁이 가쁜 숨을 고르며 말했다. “진짜···누구 한 명은 죽어야···그만 둘 셈이냐?” 진혁은 아무런 대답 없이 시뻘겋게 충혈된 두 눈을 부릅뜨고만 있었다. 


그 순간 갑작스레 보트가 진혁 쪽으로 크게 기울어졌다. 바닷속에서부터 뻗어나온 손 하나가 보트 끄트머리를 잡은 채 힘을 꽉 주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지형의 변화에 진혁이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재혁이, 자신 또한 넘어지는 것이었지만 진혁 쪽으로 몸을 날렸다. 재혁의 어깨가 그의 명치 위에 떨어졌다. 


“큭···!” 그 충격에 숨이 넘어가려는 진혁은 빈틈 투성이였고 재혁은 금새 마운트 포지션을 잡았다. 진혁의 허리 부근을 깔고 앉아서, 체중을 실린 주먹을 연속해서 날렸다. 


“포기해, 포기하라고!” 그가 외쳤다. “이쯤 했으면 됐잖아! 뭐가 그렇게 간절한 건데!” 계속해서 날아드는 주먹에도 진혁은 끝까지 저항하며 한번씩 역공을 날렸고, 결국 재혁은 두 손으로 그의 목을 졸랐다. 온 몸의 무게를 실어서, 정말이지 당장이라도 죽여버릴 듯한 기세로. 


진퇴양난. 숨이 쉬어지지 않아 켁켁대는 진혁의 눈에 보트 가장자리에 솟아오른 두 손이 들어왔다. 그 뒤로, 길현의 몸이 바다에서부터 다시 올라오고 있었다. 파래진 입술과 대비되는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이제는 정말이지 선을 넘어야 했다. 


진혁은 길현을 밀어내면서도, 재혁과 싸우면서도 자신이 선을 넘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 지금 누굴 죽인 것도 아니고, 그저 다투는 것 뿐인데 선이고 자시고 할 게 뭐 있겠냐,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 그가 선을 넘는다. 지금. 

푹. 


진혁의 품에서 튀어나온 손이 재혁의 복부를 향했다. 헉 소리와 함께 재혁이 나가떨어졌고, 그의 복부에서 새빨간 피가 쏟아져 나왔다. 은정은 비명을 내질렀고, 켁켁거리며 진혁은 재혁의 복부에서 단검을 뽑아냈다. 


“처음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이··· 어렵겠냐?” 


진혁은 이렇게까지 된 이상, 그 누구도 살려 보낼 수 없었다. 그나마, 그 역시도 사람을 죽여본 것이 처음은 아니었기에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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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8] 서서히 다가오는 NEW 6시간 전 2 0 9쪽
17 [17] 구조대 24.09.13 2 0 8쪽
16 [16] 비극 앞에서 인간은 24.09.12 9 0 9쪽
15 [15] 두 개의 이름 24.09.11 8 0 10쪽
14 [14] 주마등 24.09.10 10 0 8쪽
» [13] 비장의 한 수 24.09.09 10 0 8쪽
12 [12] 일촉즉발 24.09.06 7 0 8쪽
11 [11] 미싱 링크 24.09.06 7 0 9쪽
10 [10] 모성애 24.09.06 6 0 10쪽
9 [9] 1보 전진 1보 후퇴 24.09.06 7 0 10쪽
8 [8] 투쟁 그 끝에는 24.09.05 9 0 10쪽
7 [7] 선의의 거짓말 24.09.05 9 0 10쪽
6 [6] 자기희생 24.09.04 10 0 10쪽
5 [5] 생존 본능 24.09.04 9 0 10쪽
4 [4] 궤변 그리고 분열 24.09.03 10 0 9쪽
3 [3] 살인자의 회고록 24.09.03 7 0 9쪽
2 [2] 살아야 하는 이유 24.09.02 13 0 9쪽
1 [1] 침몰 24.09.02 25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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