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인간일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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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민
작품등록일 :
2024.09.02 19:45
최근연재일 :
2024.09.12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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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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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인간일 뿐인데 (2)

DUMMY

***



“꺄악! 더 빨리요! 더, 더!”

“이게 무슨 장난인 줄 아나보군”

“꺄! 신난다!”


무려 마왕 케인의 품에 안겨 날아가고 있는 여자.

케인은 잔뜩 들뜬 여자를 바라보며 일이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생각했다.


“싫어요! 안 간다니까요!”

“대체 왜 안 가는 거지? 그곳이 너의 고향 아닌가?”

“가기 싫다고요!”


케인이 친히 인간계로 가는 포탈을 열어주었음에도 여자는 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아, 아무래도 지금 이 고집을 꺾기는 힘들겠군.

체념한 케인은 여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소, 손은 왜요?”

“내가 뭐 납치라도 하는 줄 아나 본데. 싫으면 여기서 아까처럼 소리나 지르며 마물의 밥을 자처하던가”

“그건..!“

”기회는 이미 끝났다. 그럼”


케인이 손을 거두며 차갑게 돌아섰다.

케인은 애초에 이 여자에게 흥미가 없었다.

마계가 열려 그 원인을 알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것일뿐.


용사가 나타난 줄 알았는데.

이 인간은 용사라기엔 너무나 약하다.

괜한 걱정이었나.


그런데 힘도 없는 인간이 어떻게 마계의 틈을 연 거지?

돌아가서 조사해봐야겠군.


케인이 다시 마왕 성으로 돌아가려 날개를 펼쳤다.


꼬옥.

어느새 여자가 다가와 케인의 손을 붙잡았다.


“뭐지?”

“가, 같이 가요”

“싫다고 하지 않았나?”

“싫다고는 안 했어요.”

“내가 어디로 가는 줄 알고 같이 간다는 거지?”

“어디든 여기보단 낫겠죠”


그 말은 케인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는 말라 비틀어진 나무들만이 무수히 서 있는 황량한 곳이었으니까.


그리고 다시 현재.


“야호-”

“뭐가 그렇게 재밌지?”

“놀이기구 타는 것 같아서요. 언제 마지막으로 타봤더라? 저 놀이기구 진짜 좋아하거든요!”

“놀이기구? 그게 뭐지?”

“인간들이 타고 노는 기구예요. 보통 이렇게 빠른 속도로 격하게 움직여요”

“인간들은 이상한 취미를 가졌구나”

“근데 아저씨는 누구예요?”

“아저씨라 함은 나를 말하는 건가?”

“여기에 아저씨가 또 있나?”

“당장이라도 떨어지고 싶나 보지?”

“죄송해요”


여자는 아래를 내려다봤다.

여기서 떨어지면 뼈가 부러지다못해 재가 될 게 분명했다.

여자는 더욱 힘을 주어 케인의 팔을 붙잡았다.


“저는 채유라예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왔죠”

“관심 없다”

“나이는 스물둘이구요. mbti는-”

“관심 없다고 했다.”

“치”


채유라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리고는 품에 안긴 채 케인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근데 이 남자, 꽤 잘생겼잖아.

날카로운 턱선과 콧대. 깊은 쌍꺼풀.

백옥 같은 흰 피부.


“뭘 보는 거지?”

시선을 느낀 케인이 아래를 내려다봤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 잘생겼구나 싶어서”

“···?”

“저 원래 아무한테나 칭찬 잘해요. 별 뜻 없습니다! 오해 마세요”

“오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치, 네”


그리고 찾아온 잠깐의 정적.

마왕 성의 형태가 보이기 시작한다.


“설마 우리가 가는 곳이 저기는 아니죠?”

“맞다”

“우와!! 멋있어요! 진짜 성이잖아?”

채유라가 케인의 품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그렇게 떨어지고 싶으면 더 내밀어보는 게 어떤가?”

“너무해.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꽉 잡아라”

“네? 우앗!”


갑자기 케인이 속도를 내는 덕에 채유라는 케인의 팔을 더 강하게 잡았다.



***



“재밌다! 다음에 또 태워주세요!”

마왕 성에 도착해 광장에 착지하자, 채유라가 신난 듯 방방 뛰었다.


“그건 그렇고, 멀리서 봐도 진짜 멋있었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장난 아닌데요?”

채유라가 마왕 성의 외관을 눈으로 천천히 훑었다.


“마계의 내로라하는 건축가들을 모두 모아 만든 건물이니 그래야하는 게 당연하다”

“여기가 어딘데요? 성인 걸 보면 적어도 귀족-”

“마왕님!”

“이 아니라 마왕?”


뒤에서 데스탈리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광장을 깨끗하게 치우고 돌아오던 데스탈리온의 눈동자가 커졌다.


“고생했다, 데스탈리온”

“아닙니다. 근데 이 인간은 대체?”

데스탈리온의 눈이 채유라에게 향했다.


용사인가?

아니, 그렇다기엔 용사의 기운이 없다.

그렇다면 용사 이외의 적?

지금까지 그런 존재는 없었는데-


“안녕하세요! 데스탈리온 씨!”

채유라가 밝게 인사했다.


“넌 뭐냐? 그건 그렇고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지?”

“방금 이분께서 말씀하셨잖아요”

채유라가 케인의 팔을 툭툭 쳤다.


“감히 마왕님의 옥체에 손을 대다니. 용서하지 않겠다”

데스탈리온이 검을 꺼내들었다.

검은 채유라의 손목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그만”

케인의 목소리에 데스탈리온의 검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렇지만 이 인간이 마왕님의 옥체에···”

“됐다. 이만 먼저 들어가지”

케인이 먼저 발을 돌려 성으로 향했다.


“이 여자는 어떡할까요?”

“오늘은 여기서 재우도록 해. 내일 아침이 밝는 대로 인간계로 돌려보낸다”

“존명”


데스탈리온이 고개를 숙이며 마왕에게 인사했다.

그리고는 여자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데.


“저 사람이 진짜 마왕이에요? 아니, 사람이 아닌 거지. 그럼 ···마족? 잠깐만, 마왕이라는 건 마계의 주인인 거잖아! 내가 방금 그런 사람에게.... 아니, 사람이 아니지”

더욱 신난 듯한 채유라의 목소리.


“따라와라”

데스탈리온이 한숨을 내쉬고는 성의 옆에 붙어 있는 별관으로 향했다.


별관의 문이 열리자 퀴퀴한 냄새가 밀려왔다.

보통 손님이 올 때나 사용하던 별관이 열린 것은 최소 백 년 만의 일이었다.

최근 들어 마왕 케인을 찾아오는 손님들은 모두 반란군, 적뿐이었으니까.


“여기서 묵도록. 어차피 하루뿐이니 적당히 치우고 자라. 해가 뜨면 다시 찾아오도록 하지”

데스탈리온이 침실로의 안내를 마치고는 밖으로 나서려 했다.


“자, 잠깐만요!”

“뭐냐?”

“저, 혼자는 못 자요. 잠들 때까지 옆에 있어주시면 안 돼요? 아, 아니에요. 너무 무리한 부탁이겠죠. 혹시 여기 티비 같은 건 없겠죠?”

“여기가 인간계인 줄 아나? 그냥 자도록 해”

“저기요! 제발요! 무섭단 말이에요”


채유라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다시 돌아선 데스탈리온을 붙잡았다.


그래, 이 인간에게 하루쯤은.

다시는 이곳으로 올 일도 없을 터이니 좋은 추억으로 남겨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어차피 인간계로 가기 전에 기억을 지울 것이긴 하지만.


데스탈리온이 마법을 사용해 티비를 꺼냈다.

마계인 만큼 신기하게 생긴 티비였다.


“마계에도 방송이 있나 봐요?”

“아니, 없다. 그건 내가 마법으로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하다. 인간계의 전파와 연결해뒀으니 취향껏 보도록. 그럼, 너무 늦지 않게 자라”

“감사해요!”


채유라가 싱긋 웃었다.



***



“대체 뭡니까? 인간을 다 데려오시고”

마왕 전용 욕실 입구에 선 데스탈리온이 케인에게 물었다.


“피곤해 판단력이 흐려지신 겁니까?”

“그런 것은 아니다”

욕실 안에서 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리 피곤하셨어도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잖습니까”

“어차피 용사도 아닌 약한 인간에, 내일이면 돌려보낼 것 아닌가. 보좌관도 이만 들어가서 쉬지.”

“··· 예. 그럼 내일 오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편한 밤 되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데스탈리온이 사라졌다.


“후, 지치는군”

케인이 따뜻한 물속으로 몸을 더욱 집어넣었다.


그건 그렇고 오랜만에 말을 많이 한 것 같아.

나조차도 스스로 쏟아져 나오는 말들에 당황했을 정도니까.

내가 이렇게나 입을 열게 하다니.


채유라라고 했나, 꽤-


“재밌는 인간이야.”


응?

방금 내가 뭐라고 했지?

재밌다고?


하, 하하.

말도 안 된다.

즐거움 따위의 감정은 이미 내게 사라진 지 오래다.


내게 감정은 사치다.

나는 그 무엇도 느껴서는 안 된다.

지금껏 잘 해왔고, 앞으로도 그 무엇도 느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대체 왜 스스로 이런 말이 내뱉어진 것이지?


저 여자가 내게 감정을 실어주기라도 했다는 건가?

정말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만이 나오는군.


고작 인간일 뿐인데.



***



깊은 밤.

밤에만 돌아다니는, 까마귀를 닮은 마물이 마왕 성 주위를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다.


까아악-

밤공기를 울리는 처절한 울부짖음.

그리고 그 울음소리는 고스란히 채유라의 귀에 들어갔다.


“도저히 못 자겠어”


채유라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섰다.

티비 덕분에 겨우 얻은 귀한 잠은 저 울음소리에 다 도망갔다.


그리고 다시 불안감이 몰려온다.


“아니야. 아니야, 채유라. 넌 아무 잘못 없어. 알잖아, 너도”

스스로 되뇌이며 자기 자신을 위로한다.


까아아아아악-


“꺄악!”

귀를 막아보지만 이미 심장은 거세게 뛰고 있다.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왜”

채유라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내 곁에 있어줘, 제발.



***



“간도 크군. 감히 마왕의 방에 제 발로 들어오다니”


케인이 열린 방문을 응시했다.

열린 문의 틈새로 눈물이 가득 고인 채유라가 보였다.


“밤새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왜 눈물이-”


포옥.

채유라가 마왕의 품에 안겼다.

케인은 왜인지 그런 채유라를 내버려두었다.


아까는 몰랐건만, 인간이라는 건 따스하구나.

차가운 마족의 신체와는 달리.


“무서워요”

채유라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뭐가 무서운 거지?”

“그냥 다”

“일단 진정하고 놓는 게 어떤가?”

“싫어요! 잠깐만 이대로 있어줘요”


케인이 채유라를 떨어뜨리려 하자, 더욱 강하게 안는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떼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하지만 왜일까.

왜 이 여자에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걸까.

굵은 눈물을 보였기 때문일까?


채유라는 추위인지 두려움인지 모를 것에 몸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케인이 손가락을 퉁기자 주위에 따뜻한 온기가 생겨나 채유라를 감쌌다.


“이건?”

“마법이다. 이거라면 춥지 않게 잘 수 있을 거다. 몸이든 마음이든”

“감사해요”


케인이 창문 밖을 바라봤다.

이미 하늘은 밤의 공기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아직 아침이 되려면 멀었군.

근데 내 방을 어떻게 찾은 거지?

설마 마왕 성의 수많은 방의 문을 하나씩 열어본 건가.


“저기, 마왕님. 오늘 여기서 잠자게 해줘요”

채유라가 케인을 놓지 않은 채 말했다.


“그러도록 해라”

케인은 자신의 대답에 스스로 놀랬다.

대답을 하기까지 단 한 순간의 고민도 없었다.


“어차피 내게 잠이라는 것은 필요 없으니 내 침대를 쓰도록 해”

케인이 침대에서 일어서려는 순간.


“가지 마요”

채유라가 케인의 손을 붙잡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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