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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수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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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3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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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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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야채볶음밥 한 숟갈에 추억 하나

DUMMY


“뭐라고···? 하!”


드루이드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군. 난 제자를 받지 않는다고 말했을 텐데? 그것도 인간을 제자로 들인다니! ···차라리 오늘 저녁을 굶고 말겠다.”

“정말로요?”

“그래!”

“그럼 그냥 볶음밥만 드셔도 되고요. 아무튼 오늘 하루 묵고 가게 허락해주셨으니까, 그 보답으로요.”

“······.”

“그것도 안 되나요?”

“···아니.”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드루이드.


“그 정도는··· 괜찮다.”

“알겠습니다!”


난 빠르게 조리도구를 세팅했다.

주방이 모두 불탄 것은 아니어서, 석재 화로는 아직 쓸 수 있었다.


인간이라서 제자로 받아주지 않겠다니, 이 드루이드는 인간을 싫어하나?

그런 꽉 막힌 마음을 녹이는 데는 특효약이 있다.


“그럼, 요리하겠습니다!”


최고의 요리를 만드는 거다.



* * *



드루이드, 에일린 아스타리아는 완고한 엘프였다.


‘난 한 번 결정한 일은 바꾸지 않는다.’


에일린이 제자를 받지 않는다고 하면, 받지 않는 거다.

소년이 뭘 하든 그 결심은 변하지 않는다.


물론 놀라긴 했다.

에일린의 오두막은 수준 높은 결계로 둘러싸여 있다.

마법을 모르는 사람이 다가오면 불안함을 느끼고 되돌아가게 되어 있는데, 저 소년은 그걸 뚫고 여기까지 왔다.

확실히 마법에 재능이 있는 거다.


‘하지만 그런 건 상관 없어. 난 인간을 제자로 들이지 않아.’


게다가 야채볶음밥이 맛있으면 제자로 받아달라니?


‘누군가를 제자로 들이는 건 요리 한 그릇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라고.’


됐다.

볶음밥이 어쨌건, 에일린은 내일 아침해가 뜨는 대로 소년을 오두막에서 쫓아낼 것이다.

두 번 다시 이 소년을 볼 일은 없으리라.


그런데···.


‘···냄새가 좋긴 하군’


보글보글!

밥 짓는 냄새가 솔솔 올라온다.


갓 지어지고 있는 쌀밥의 냄새는 그 어떤 식재료와도 느낌이 다르다.

고소하고 군침이 도는 냄새.

에일린은 300년이 넘도록 이 냄새를 맡지 못했었다.


“아직 덜 됐느냐? 불을 좀 더 세게 하면···.”

“안 돼요. 여기선 약불로 끓여야 밥이 안 타요.”

“감질나는군.”

“조금만 기다리세요.”


작물은 주문 한 번이면 순식간에 자라는데, 요리는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영 어려웠다.

그래서 에일린이 항상 불조절을 실패하는 건지도.


꼬르르륵.

밥 짓는 냄새를 맡으니 배가 더 고파졌다.


‘언제쯤 되려나.’


꿀꺽.

에일린은 자기도 모르게 냄비를 빤히 바라보며 군침을 삼켰다.



* * *



밥 짓는 법은 간단하다.


적당한 쌀, 적당한 물, 적당한 화력과 시간.

과하거나 모자라지 않은 중립중용.

처음에는 센불, 그다음엔 중불과 약불로 끓여준다.


달칵!

정확한 시간에 냄비 뚜껑을 열자, 고슬고슬한 밥이 그 윤기나는 자태를 드러냈다.


“오···!”

“이게 진짜 쌀밥이죠.”

“그렇구나. 옛날에 봤던 쌀밥과 똑같아. 바로 이거였어.”


내가 만든 쌀밥이 신기한지 옆에서 구경하며 감탄하는 드루이드.


‘인간을 싫어하는 게 아니었나?’


싫어한다기엔 서스럼없는 모습이다.

뭐, 지금 중요한 건 맛있는 야채볶음밥을 만드는 것.

딱 적당하게 완성된 밥을 잠시 다른 곳에 놓으려던 그때였다.


“잠깐! 그 숟가락은 뭐죠?”

“음? 밥은 다 되지 않았느냐. 너는 너대로 채소 손질을 해라. 난 쌀밥이 어떤 맛인지 궁금하니까 한 입만 먹어봐야겠다.”

“어허, 안 됩니다.”

“···안 된다고?”

“요리가 다 되기 전에 재료를 막 집어먹으면 안 되죠.”

“···알겠다.”


단호하게 막자 아쉬워하면서 숟가락을 내려놓는 드루이드.

사실 나도 중간에 집어먹는 걸 좋아하지만, 이번만큼은 다 완성한 요리를 제대로 내어놓고 싶다.

오래 기다릴 것도 없다. 내 손질은 미스티아 대륙 최고 수준이니까.


사사사삭!

순식간에 썰려나가는 채소들.

양파, 피망 반쪽, 당근 2/3개, 식용버섯 몇 개.

적당히 남은 채소를 가져온 것처럼 보인다면 그게 맞다. 야채볶음밥의 본질은 애매하게 남은 채소를 한 방에 처리하는 데 있다.


“근데 이 버섯 먹어도 되는 거 맞죠?”


좀 의심스럽다.

모든 버섯은 먹을 수 있지만, 어떤 버섯은 딱 한 번만 먹을 수 있다. 두 번 먹기 전에 죽으니까.

드루이드가 걱정 말라는 투로 말했다.


“그건 독이 없는 버섯이다. 내가 먹어서 확인해봤으니 확실하다.”

“···독이 있으면 어쩌려고 그랬는데요?”

“오래 산 드루이드는 식물독과 버섯독에 내성이 있어서 괜찮다.”


독버섯도 먹으면서 대충 살아왔다는 뜻.


‘역시 미스티아 대륙 사람이 맞아.’


아무튼 식용 버섯이라면 괜찮겠지.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을 불에 달구고, 여기에 내가 가지고 있던 파를 조금 썰어 볶아 파기름을 낸다.


‘마늘기름도 좋지만, 삼삼한 야채볶음밥에는 파기름이 잘 어울리지.’


치이이익!

향긋한 파기름 냄새가 솔솔 올라온다.

프라이팬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드루이드.

파가 노릇노릇해지면 작게 썰어 놓은 야채들을 넣어 함께 볶는다.


“혹시 고기도 드시나요?”

“당연하지. 자연에서 나는 건 모두 먹을 수 있다.”


그렇다니 보따리에서 재빨리 닭가슴살을 꺼낸다.

드루이드가 의아해하며 말했다.


“닭고기를 손질하는 동안 채소가 타지 않겠나?”

“괜찮습니다. 채소는 물기가 있어서 쉽게 타지 않거든요. 게다가 이 정도는-“


샤샥!

말하는 사이 모두 손질된 닭고기.


“금방 자를 수 있으니까요.”

“허, 손재주가 대단하군.”

“과찬이십니다.”


벌써 12가 된 손재주 스탯.

게다가 요리lv2 스킬 덕분에 칼질이 더 능숙해졌다.


치이이익-

야채와 닭고기를 볶는 동안 따로 작은 프라이팬을 꺼내 달걀을 두 개 풀고,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듯이 섞어가며 익혀준다.

그러다 적당한 시점에 큰 프라이팬으로 옮겨 밥과 함께 모든 재료를 볶는다. 부족한 간은 소금으로 맞춘다.


탁!

완벽한 순간에 완성되었다.


“파기름에 볶은 야채볶음밥, 다 됐습니다!”

“호오···!”


밥알마다 코팅된 윤기나는 파기름.

솔솔 올라오는 하얀 김이 야채볶음밥을 한층 더 먹음직스러워 보이게 한다.


‘자, 맛은 어떨까?’


과연 저 드루이드를 설득할 만큼 맛있을까?


달칵.

숟가락이 들어올려졌다.

그대로 한 입.


“음···!”


드루이드가 덜컥 굳었다.


“맛이 어떤가요?”

“맛이···.”


맛이?

좋은가? 별로인가?

대답이 없으니까 긴장된다.


그때였다.


주르륵!

드루이드가 울기 시작했다.



* * *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일을, 사소한 계기로 하나부터 열까지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지금의 에일린이 그랬다.


오래 전, 에일린에겐 제자가 있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그 제자는 죽었다.


사고도, 재해도 아니었다.

에일린의 제자는 수명이 다해서 죽었다.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엘프에 비해 인간은 너무나 짧은 수명을 가졌다.

미스티아 대륙의 인간 평균 수명은 지구보다 짧다.

반면 엘프는 천 년을 넘게 살아간다.


120세.

엘프로 치면 어린아이인 나이에 제자는 죽었다.

인간 치고는 오래 살았지만, 에일린의 바람보다는 짧게 살았다.


에일린은 첫 번째 제자를 가족처럼 아꼈다.

그래서 상처받고 말았다.


‘다시는 인간을 제자로 들이지 않겠다!’


제자가 스승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다니, 이 무슨 무례인가.

제자의 장례를 치르는 경험은 한 번으로 족했다.


‘다시는 인간과 엮이지 않겠다.’


에일린은 자신보다 빨리 떠나가는 이들을 곁에 두고 싶지 않아졌다.

그래서 깊은 숲 속에 결계를 치고 은둔하며 살았다.


300년이 넘는 긴 세월이었다.

에일린은 드루이드라 자급자족이 가능했고, 친구인 요정 아트로포스가 인간들을 막아주기도 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에일린은 지금 인간 소년이 만들어준 야채볶음밥을 먹고 있었다.


고슬고슬한 밥알과 계란조각, 살짝 아삭한 식감이 남아 있는 야채가 일품이다.

은은하게 올라오는 파기름 향이 무척 좋았다.


‘···맛있군.’


문득, 에일린은 자신의 제자가 야채볶음밥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그 요리 실력이 형편없었다는 것도.


에일린 혼자서는 먹지도 않을 쌀.

그걸 항상 보관해두던 이유가 뭐였던가.


‘잊으려고 했는데.’


달칵.

에일린은 야채볶음밥을 다시 한 입 먹었다.


슬프게도, 정말로 맛있는 야채볶음밥이었다.

먹을수록 마음이 풀어지는 듯했다.

그래서일까. 평소였다면 하지 않았을 생각을 했다.


‘나도 참 어리석군.’


300년도 더 지난 일을 지금까지 끌어안고 있었다니.

고집을 부렸던 거다.

야채볶음밥을 우물거리고 있자니 지나간 일을 곱씹는 게 더 미련하게 느껴졌다.


방황은 이쯤 하면 됐다.

에일린이 이렇게 은둔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동이었다. 떠난 제자에게도, 에일린에게도.


‘그리고 이 녀석에게도 예의가 아니겠지.’


에일린은 자신의 앞에 앉은 소년을 바라봤다.

어쩐지 눈이 트인 기분이다.


생각을 바꿨다.



* * *



드루이드가 운다.


왜지?

역시 아까 볶음밥에 넣은 버섯이 독버섯이었나?

맛이 별로인가?


“드루이드님, 괜찮으세요?”


조심스럽게 묻자 드루이드가 고개를 저었다.


‘안 괜찮구나.’


나도 드루이드가 되고 싶었는데.

이젠 정말로 새벽장미 수도원에 가는 수밖에 없나···.

그렇게 생각한 때였다.


“드루이드가 아니라, 에일린이다.”

“네?”

”내 이름 말이다.”

“아, 네! 에일린.”

“이 야채볶음밥은···.”


에일린이 살짝 웃었다.


“정말 맛있구나.”

“···그렇죠?”

“그래. 상상도 못했어. 이렇게 맛있는 요리를 먹게 될 줄이야.”


에일린이 야채볶음밥을 천천히 먹었다.

고슬고슬한 야채볶음밥을 먹을 때마다 에일린의 표정이 부드럽게 풀렸다.

다행히 입맛에 맞았던 듯하다.


‘그럼... 나도 먹어볼까?’


야채볶음밥을 한 입 떠서 입에 넣었다.

아삭한 채소와 적당한 소금간이 어우러져 좋은 풍미를 냈다.

이따금 씹히는 계란 조각과 닭고기가 담백한 감칠맛을 선사했다.

내가 만들었지만 정말 잘 만들었다.


「훌륭한 요리를 만들었습니다!」

「요리lv2가 요리lv3이 되었습니다!」


요리 스킬도 올랐다.

잠시 후, 에일린이 말했다.


“너도 알겠지만, 네 제안은 좀 무리한 제안이었다.”

“엇.”

“볶음밥 한 그릇으로 내 제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게냐? 그렇다면 넌 터무니없는 바보다.”


바보라니.

하긴 스테이터스에 지능 스탯이 없긴 했다.


“하지만.”


하지만?


“그 당돌함, 마음에 들었다.”

“그럼···?”

“앞으로 스승님이라고 부르도록.”

“···!”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널 제자로 받아주겠다.”


벌떡!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큰절을 올렸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오냐.”


생각이 바뀐 에일린 스승님.

내가 만든 요리가 마음에 든 덕분일까?

그것뿐만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계기는 된 것 같았다.


“마저 먹자. 볶음밥이 식는다.”

“네!”


왠지 아까 먹을 때보다 야채볶음밥이 더 맛있게 느껴진다.


짭짤하고 담백한 야채볶음밥.

별점 10점 만점에 10점.

다음에 또 해먹어야지.



* * *



다음날 아침.


“네게 첫 번째 과제를 주겠다.”


척!

에일린 스승님이 텃밭을 가리켰다.

빼꼼히 올라온 연두색 새싹들이 귀엽다.


“이 녀석들을 설득해서 자라게 해라.”


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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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채볶음밥 한 숟갈에 추억 하나 +2 24.09.11 603 2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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