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들이 나를 신성하게 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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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타자기
작품등록일 :
2024.09.0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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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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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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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라고요?

DUMMY

“이건··· 나야?”

“예. 어떠십니까? 마음에 드시나요?”


그림을 받아들고 멍하니 응시하던 레나는 웃었다.


“응. 마음에 드네. 네 상상이겠지만.”


마음같아서는 상상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지금 당장에라도 저 종이를 찢어버리고 싶었다. 나였다면 레나를 아카데미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무법지대에 던져놓았을 테니까.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원숭이의 약지는 여전히 작동 중이었고, 나는 어딘지 모를 장소에, 의자에 앉아서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런데 왜 분위기를 이렇게 음산하게 그린 거야?”


레나의 말에 모니터 오른쪽 상단에 떠 있던 그림을 보았다.

그림에서 따듯한 계열의 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위험해 보인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야 당연히 미래에 있을 일이니까.’


게임에서 이미 벌어졌던 일이니까.


하지만 이 정보를 말할 수는 없었다. 이걸 말하게 되면 직접적으로 미래를 예고하는 것일뿐더러, 지금 이 몸뚱어리를 차지하고 있는 건 내가 아닌 스킬이었으니까.


“글쎄요. 자매님과 이 그림을 보니까 저절로 떠올랐다고 해야 할까요?”


펀 쿠르샤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이걸 해석하는 건 네 자유라는 듯이 대답했다. 내 의도와는 다르게.


그리고 펀 쿠르샤시의 대답을 들은 레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유는 모르겠다. 저걸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지 가늠조차 가지 않았으니까.


“···저기. 이 그림은 내가 가져가 봐도 될까?”

“물론이죠. 자매님을 위해 그렸던 것이니 이 그림으로 무엇을 하셔도 상관없습니다.”


그제야 굳은 표정을 풀고 다시 나른해진 레나.


“그럼 나중에 또 봐.”


레나는 그 말을 하곤 내 방을 나갔다. 아마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으리라. 과연 레나는 그림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정말 궁금했다. 마음 같아서는 그 자리에서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물을 수 없었다. 레나의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까지 이 빌어먹을 스킬은 해제되지 않았으니까.


[목표 달성! 스킬을 비활성화합니다.]


퍼어억!


베개가 허공을 날았다.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 베개는 옆구리가 살짝 뜯어져 있었다.


‘···시발.’


미래가 틀어졌다.

이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레나의 인생 자체가 바뀔 거라는 소리였으니까.


“—!”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없이, 나는 소리쳤다. 차마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원숭이의 손 설화에서 기반을 둔 스킬이니만큼 이럴 것 또한 예측했어야 하는데.


한동안 나는 차오르는 분노에 몸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능력을 사용할 거면 이곳의 하인을 대상으로 써야 했다. 스토리에 큰 영향을 끼칠 레나가 아니라!

정말 바보 같은 실수였다. 내 능력을 알아보는 것이 급해 이 경우를 생각조차 못하다니.


원숭이의 손이 뭔가? 기본적으로 소원을 이루어주는 물건임은 틀림없으나, 그걸 이뤄주는 과정이 올바르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원숭이의 손이다.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


“···후우.”


한창 분노를 토해낸 후, 어느 정도 진정된 마음으로 눈앞에 있는 베개를 바라보았다.


“···”


내 주먹질을 못 이기고 터져 안에 있던 솜이 튀어나온 베개. 한숨을 내쉬곤 예술과 모방 스킬을 사용해 바느질을 시작했다. 동시에 이 일로 인해 벌어질 일을 정리했다.


‘가만.’


생각을 이어가던 찰나, 나는 떠오른 진실에 실수로 손을 찔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을 신경 쓸 틈은 없었다.


‘···마왕의 딸. 그 녀석도 아카데미 출신 아니었나?’


이거,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릴지도 모르겠다. 만약 예상한 대로 일이 흘러간다면 꽤 많은 수의 보스들이 아카데미에 모일 테니.


애초에 강자사냥을 하며 돌아다니던 보스는 드문 편이었다. 이곳도 하나의 문명을 이룬 만큼 대부분은 아카데미를 다니면 다녔지, 굳이 강자사냥을 하러 다니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레나는 공작의 딸. 그런만큼 레나가 아카데미에 입학한다는 사실은 큰 파장을 불러오리라.


근거가 없는 추측이 아니었다. 인간계 또한 어떤 캐릭터가 입학한다고 했을 때, 꽤 많은 소문이 돌았으니까. 그리고 그런 소문은 다양한 이가 아카데미에 가입하게 되는 계기 중 하나였다. 대부분 귀족이었지.


그것처럼 공작의 딸인 레나가 입학한다면···


‘평소보다 사람이 몰리겠지.’


이 경우에는 조금 다르긴 하다. 사람이 모이는 이유가 레나와 싸워보기 위해서일 테니까.


‘하지만 나쁘지 않아.’


오히려 그렇기에 보스들이 모일 가능성이 높았다.


“으음.”


거기까지 도달한 뒤, 얼굴을 풀었다. 이득이라는 결론이 났기에.

심지어 조건으로 나와 레나의 생존을 걸었으니 죽을 걱정도 없었다.


‘좋아. 일단 아카데미에 가입하는 걸 목표로 해볼까.’


물론 그 전에.


“···”


다시 새로운 그림판을 설치하고 붓을 들었다.


“후우.”


스킬을 발동하고 붓을 그림판에 가져가니 알아서 움직이는 손.하지만 내가 지금 떠올리고 있는 건 없는데, 대체 스킬은 뭘 그리고 있는 걸까.


‘···시발.’


그렇게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나는 욕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 그림은 내가 단 한 번도 고려하지 않은 가능성이었으니까.



***



-레나


신기했다. 자신이 가족을 제외하고 이렇게 많은 말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게다가 그 사람이 어제 처음 만난 사람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혼자 수련을 반복했었던 나에게는 너무 신비로운 느낌이었다.


‘그런데 왜 어머니는 저 사람을 데리고 온 거지?’


사실 자신의 어머니, 수에게는 펀을 데려올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영지 내에서 살게 해주는 것만으로 고마워해야 할 처지였을 텐데.


그냥 생각만이 아니다. 펀의 과거를 무리아토에게 전해 들었을 때도 그렇게 생각했다. 어머니가 펀을 데려올 이유는 없었다고.


하지만 어머니는 펀을 데려왔다. 그것도 말을 안 하는 테크네의 사제를.


“으음.”


특별한 면이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머니는 내가 모르는 펀의 비밀을 알고 있는 걸까.


‘잘 모르겠어.’


그가 신기한 면모를 가진 건 맞다. 하지만 그게 왜 본가에까지 초대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심지어 델포이 교단의 추기경과 무어 가주님까지 왔었다고 하던데··· 혹시 그게 펀과 관련이 있는 걸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펀 한 명을 위해 모일 인원이 아니었다. 합당한 대가가 필요했다. 그들이 자원봉사를 하려고 이 저택에 왔던 건 아닐 테니까.


그래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자신보다도 약한 테크네 신도가 뭐라고 그들이 지금까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인지.


“응?”


그러다 펀에게서 받아온 그림의 한구석에 숫자가 하나 새겨져 있는 것을 알아챘다.


“···1?”


아까 보았을 땐 있는지도 몰랐던 숫자. 하지만 명확하게 새겨져 있는 그 숫자에 의아함을 가진 채로 바라보았다.


‘이것도 내가 해석해야 하는 건가?’


이 1이라는 숫자에도 무슨 정보가 들어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그저 넘버링인 걸까.

이게 뭔지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애초에 왜 있는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그림은 분명 자신의 꿈에서 나오던 미래의 자신이었다.


“···”


펀이 어떻게 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는지. 왜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그가 내가 꿨던 꿈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아가씨. 부르셨습니까?”

“아. 무리아토.”


아까 펀의 방에서 출발할 때 불러둔 무리아토가 도착했다.


“무리아토는 쿠르샤시에 대해 얼마나 알아?”

“펀 형제님 말이지요?”


무리아토가 묘한 표정을 짓는 게 보였다. 웃는 것도 아니고 감동한 것도 아니고. 놀란 것 같기도 하고.

저게 대체 무슨 표정일까 하고 고민할 때쯤, 무리아토가 입을 열었다.


“신기한 분이시지요.”

“신기하다고?”

“예. 제가 이 저택에서 손님을 맞이하면서 보았던 분 중, 가장 신기하고 특이한 분이십니다.”

“왜?”


무리아토는 젊어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이 저택에서 10년 넘게 근무한 사제였다. 그만큼 수많은 손님을 만났고 그 중에는 뛰어난 존재들이 수두룩했다.


“자매님도 펀 형제님이 그리 강한 건 아니라는 건 느끼셨겠지요.”

“응. 나보다 약해.”

“그럼에도 함부로 대할 수가 없죠?”


그 말에 나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평민에 불과한 펀. 하지만 그는 마치 귀족들처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럼 아가씨는 펀 형제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리아토의 말에 펀이 그려주었던 그림을 바라보았다.

펀은 왜 그런 그림이 그려졌는지 모르겠다고 했으나, 분명 저 모습은 미래의 자신이었다. 그것도 내가 모르는 미래의 나.


“특이한 사람.”


그는 알까. 이 그림 속의 나는 내 꿈에서의 상대와 매우 똑같이 생겼다는 걸.

팔에 새겨진 흉터. 갑옷에 난 흠집. 더 나아가 권태로워 보이는 저 표정 뒤에 숨겨진 두려움까지.

펀은 그게 마치 우연이라는 듯이 말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특이한 사람이요?”

“응. 그리고 이상해.”

“이상하다라. 왜 그렇게 생각하셨나요?”


의아하다는 무리아토의 말.

그 말에 그의 눈빛을 떠올렸다.


‘마치 나를 알고 있는 것 같았어.’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미래의 나를.

펀은 내가 미래의 내가 되길 바라는 걸까.


‘그런데 아닌 것 같았지.’


왜 그렇게 느낀 걸까. 분명 그는 나에게 미래의 나를 투영하고 있던 것 같았는데.


‘이상한 사람.’


그래. 이상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엔 그랬다.

그렇기에 무리아토를 바라보았다. 펀이 이 집에 오고 나서 계속 그의 곁에 머물렀던 사람.


“무리아토.”

“네.”

“그 사람에 대해 알려줘.”


궁금했다. 무리아토가 보았던 펀은 어땠고, 그는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그 테크네와는 어울리지 않던 그 분위기가 어디서 나온 건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내가 계속 꿈에 대해 말해도 될지. 아직 판단이 안 섰기에.



***



-펀 쿠르샤시



똑똑


그때, 무리아토가 찾아왔다.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도 못한 채로.


“어쩐 일이십니까?”

“가주님이 뵙자고 하십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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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상담과 필연 24.09.12 7 0 10쪽
10 상담과 필연 24.09.11 9 0 10쪽
9 상담과 필연 24.09.10 9 0 10쪽
8 기도 그리고 저주 24.09.09 8 0 9쪽
7 기도 그리고 저주 24.09.08 9 0 10쪽
6 기도 그리고 저주 24.09.06 10 0 10쪽
5 대화를 할 수 있는 방법 24.09.06 13 0 9쪽
4 대화를 할 수 있는 방법 24.09.04 12 0 9쪽
3 좆같은 룰렛 24.09.03 15 0 10쪽
2 좆같은 룰렛 24.09.03 17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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