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출 거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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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은변명
작품등록일 :
2024.09.07 22:50
최근연재일 :
2024.09.16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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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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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출 거부자

DUMMY

서한율은 정사각형 유리 상자 안에서 의식을 되찾았습니다. 골목에서 좀비에게 물린 지 3일의 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최초 신고자는 창문 커튼 뒤에 숨어 좀비에게 물리는 서한율을 숨죽여 지켜본 다세대 주택 2층에 사는 청년이었습니다. 신고를 접수한 군인들은 현장으로 출동해 바닥에 피 흘리며 죽어 있는 서한율의 이마에 총알을 박아 넣고 무전을 통해 사체 처리팀에게 그를 인계했습니다.


곧 도착한 사체 처리팀은 그를 바디백에 담아 화장터로 이송했고, 그곳에 도착했을 때, 서한율은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한 상태였습니다. 착오가 있었는지, 상부에서는 사체 처리팀의 바디캠을 분석했습니다. 영상 속 사체 처리팀은 서한율의 확실한 사망을 확인한 후에 일을 처리했습니다. 하지만, 단 몇 시간 만에 그는 의식은 없었지만 살아 있었습니다.


국가는 좀비 바이러스를 정복할 수 있는 비밀이 그의 몸에 숨겨져 있다는 희망을 품고 실험을 위해 유리 상자 안에 가두었습니다.


깨어난 그는 오랜 잠에서 일어난 듯 머릿속이 텅 빈 듯했습니다. 좀비에게 물린 순간과 그동안의 삶이 모두 긴 꿈이었을까? 하고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손목과 발목에 채워진 쇳덩이의 차가움이 그를 완전히 깨웠습니다. 그는 족쇄가 채워져 침대에 결박된 채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건 꿈이야.’ 이제는 현실이 꿈이길 바랐습니다.


그의 간절한 외침은 두꺼운 유리벽에 부딪히며 힘없이 흩어졌고, 그 너머에 의료 가운과 두건, 마스크를 쓴 사람들은 깨어난 그를 살피며 깊은 무력감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좀비에 물려 변이 상태에 빠진 그를 신체 해부도처럼 수술대 위에 펼쳐 놓고 핀셋과 메스로 헤집으며 좀비로 발현하지 않는 그의 비밀을 풀어내려 했지만 실패한 것입니다.


이제, 실험체가 의식까지 되찾았으니 윤리적 죄책감을 평생 지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직감한 그들은 힘없이 고개를 떨궜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겐 더 큰 괴로움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신뢰해온 학문이 뿌리째 뽑혀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듯한 공허함에 사로잡혔습니다.


해체된 서한율의 신체는 재조립되었습니다. 신경줄기들이 서로를 끌어당기며 이어지고, 붙고, 찢어진 조직과 근육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며 다시 그를 완성했습니다.


서한율은 진화와 퇴화의 경계에 서 있었습니다. 필멸의 굴레를 벗어난 진화이자, 인간다움을 잃어버린 퇴화였습니다. 그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지식은 덧없는 것이 되었고 인생의 의미가 붕괴되었습니다. '우린 지금 돋보기로 우주를 가늠하려는 것이다,' 하고 누군가 생각했습니다.


서한율이 유리 상자 안에 갇힌 지 2개월이 지났을 무렵, 그들은 결국 피로 물든 수술 장갑을 벗고 빈손으로 실패의 무게에 짓눌린 어깨를 늘어뜨리며 하나둘 실험실을 떠나갔습니다. 그들 중 한 명은 잠에 든 서한율의 곁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두 손을 꼭 모으고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습니다.


“당신에게 이런 짓을 하다니··· 우리의 지식이··· 우리를 눈멀게 했어요.”


그는 눈물을 흘리며 살아 있는 생명체를 해부한 잘못을 고백했습니다. 눈물방울이 서한율의 침대 위에 떨어져 작은 얼룩을 만들었습니다.


그 울음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서한율은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언제나 수면 가스로 자신을 재운 뒤에 들어오던 그를 이렇게 선명하게 보는 것이 또 다른 꿈처럼 느껴졌습니다.


서한율은 그의 눈에 비친 후회와 고통을 알 것 같았습니다. 그는 천천히 손을 뻗어 그의 어깨에 부드럽게 얹었습니다.


“괜찮아요.”


서한율이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그의 말은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 담긴 위로는 단단했습니다.


“저, 되게 잘 참아요.”


그의 말 속에는 자신이 견디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제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는 더욱 고개를 숙였고, 어깨를 떨며 흐느꼈습니다. 그들은 개인이 아닌 인류로서 실패로 돌아간 백신 실험의 고통을 나누었습니다.


며칠 뒤, 국회의원 배지를 단 양복 무리들이 유리벽 너머에서 서한율을 배경으로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플래시가 터질 때마다 그는 자신이 마치 전시된 물건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들은 한마디 인사도 없이 촬영을 마치고 나갔습니다. 그들의 발소리가 사라지고 서한율은 침묵 속에 남겨졌습니다.


곧이어, 낯선 남자가 유리벽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서한율은 그에게 경계의 눈빛을 보냈지만, 그 남자는 여유롭게 의자에 앉아 그 시선을 고스란히 마주했습니다.


“어때? 특이 변이 상태자가 된 기분이?”


특이 변이 상태자. 죽지 않는 인간. 좀비가 되지 않는 인간. 좀비 바이러스를 지닌 인간. 어쩌면 더 이상 인간이라고 불릴 수 없는 존재가 된 기분이 어떤지 남자는 물었습니다.


“···누구시죠?”


그는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았고 남자에게 답할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나?”


남자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습니다.


“네 동아줄이지.”


동아줄···. 하고 서한율은 되뇌었습니다.


“좀비가 창궐하고 3개월. 지금 밖에 상황이 어떻게 된지 알고 있어?”


서한율은 그제야 정말로 좀비가 세상에 존재한다고 확신했습니다. 남자는 다른 이들과 다르게 공포에 질리지 않은 얼굴로 명확한 사실을 전달한다고 느꼈습니다. 그것을 신뢰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정보는 사실일 것입니다.


“우리는 동물원이라고 불러. 그래, 지금 봉쇄 지역은 동물원이야. 국가가 좀비를 가두고 울타리를 쳤거든.”


“강···. 강북을 말하는 거죠.”


서한율은 유리 상자 안에서 들려온 단편적인 정보들을 하나씩 맞춰나갔습니다. 공중에 떠돌던 단어들이 점차 형태를 갖추며 그의 머릿속에서 내려진 결론입니다.


좀비가 종로에 창궐하자, 국가는 내부순환로를 폭파하여 강북을 봉쇄했다.


그가 내린 결론이 맞다는 듯, 남자는 입술을 동그랗게 오므렸습니다.


“그럼, 내가 찾아온 이유도 대충 짐작이 가나?”


“저를 살려 보내지는 않겠죠···.”


하고 서한율은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습니다. 특이 변이 상태자인 그의 몸에는 좀비 바이러스가 존재했습니다. 그는 인간이면서 좀비였습니다. 그렇기에 유리 상자 밖의 세상이 두려웠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직접 입 밖으로 그 말을 뱉고 나니,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자신은 실험이 실패한 것을 인류의 편에서 공감한 것이 아니라, 쓰임이 다했을 때 버려질까 봐 두려워했던 것은 아닐까. 하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남자는 자신을 동아줄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는 섣부른 판단을 멈추고 남자를 깊게 응시하며 말을 잇기를 기다렸습니다.


“네가 가진 바이러스는 전염되지 않아.”


남자는 마치 서한율의 고민을 꿰뚫어 보는 듯 말을 이었습니다.


“전문가들은 그걸 ‘눈꽃송이’라고 부르더군. 플라스크에 옮겨두면 눈 녹듯이 사라져버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야. 그러니까, 넌 바이러스를 지니고 있는 보균자일 뿐, 다른 이에게 옮길 수 있는 매개체는 아니라는 거지.”


“그···. 그 말은···.”


서한율이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넌 안전해. 그러니 감사해야 해. 네가 안전한 인간이라는 걸 입증하기 위해 국가가 이렇게나 노력을 했으니 말이야.”


그야말로 궤변이었지만, 그 속에 담긴 비밀스러운 제안을 서한율은 놓칠 수 없었습니다. 이곳에서 행해진 인체 실험에 대한 비밀을 지키면 살려주겠다는 무언의 약속. 그것이 그가 반드시 쥐어야 할 동아줄이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고 서한율이 메마른 목소리로 답하자, 남자는 대답이 만족스러운 듯 의자 등받이에 깊숙이 기대며 넥타이를 매만졌습니다.


“다른 다섯 명보다는 똑똑하군, 자네.”


남자의 말을 들은 서한율은 그가 왜 찾아왔는지 어렴풋이 깨달았습니다. 그의 말투는 얼핏 칭찬처럼 들렸지만, 그 속엔 또 다른 정보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나 같은 인간이 다섯이 더 있다는 걸 말해주는 건, 지금 이 순간이 면접이라는 뜻일까? 그렇다면, 탈락도 있는 걸까?’


남자의 의도를 파악하려 애쓰는 그의 머릿속은 점점 더 복잡해졌습니다. 생각이 실타래처럼 얽혀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이 분위기가 낯설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공기를 짓누르는 무거운 침묵, 자신을 조각하는 날카로운 눈빛, 상대를 헤아려보려는 조급한 마음. 딱, 군대였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자, 서한율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직감했습니다. ‘칭찬은 칭찬일 뿐이야.’


“감사합니다.”


허리를 세우고 자세를 바로잡아 이등병처럼, 모든 것을 감내할 준비를 마친 모습으로 그는 답했습니다. 그는 복잡한 생각을 접어두고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보이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남자는 마음에 드는 듯, 얕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 또한 국가를 대신해 자네의 헌신과 희생에 감사를 표하네.”


서한율은 깊게 턱을 당기며 답했습니다. 그 절도 있는 자세는 완벽한 군인이었습니다.


남자는 그의 태도를 가늠하듯 잠시 침묵을 유지했습니다. 그러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을 이었습니다.


“만약, 다시 한번 국가가 자네를 필요로 한다면 어떤가?”


서한율은 그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직감했습니다. 국가의 부름이라는 명목하에 자신에게 또 다른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망설임이 피어올랐지만, 그것을 금세 떨쳐냈습니다.


“국가의 부름이라면,”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습니다.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좋다. 그 용기가 지금 필요하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그의 그림자가 서한율의 얼굴에 드리웠습니다.


“자네는 봉쇄된 강북으로 투입되어 구출 거부자들의 생존을 돕고, 좀비를 통제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될 걸세. 또한, 구출 거부자들을 설득해 강북에서 벗어나게 하고 치안과 질서를 유지하며 봉쇄 지역 내에 안전을 책임져야 하네.”


남자의 말에는 어떠한 감정도 섞여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명령이었습니다. 그는 그 권력을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아주 익숙하게 서한율에게 내렸습니다.


서한율은 그 명령을 이해하기 위해 집중했습니다. 단순히 단어를 해석하는 것을 넘어 작전의 목표를 파악하려면 질문을 던져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두렵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후임병의 질문은 선임병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구출 거부자는 통제 불응자 아닙니까?”


서한율의 질문에 남자는 그가 마음에 드는 것을 더 이상 감출 수 없었습니다. 작전에 관심을 보이며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것보다 명령 하달자를 기쁘게 하는 것은 없었으니까요. 그의 입가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습니다.


“그곳은 버려진 땅이 아니네. 여전히 대한민국의 영토이고, 정부의 관리와 보호를 받는 지역이야. 그들은 통제 불응자가 맞지만 동시에 우리가 지켜야 할 국민이라네.”


남자의 미소를 보며 서한율은 알 수 있었습니다. 자신은 썩은 동아줄을 잡은 호랑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희망이 떠난 곳에 자신들을 묶어둔 사람들. 그들을 구출 거부자라고 부르네.”


하고 남자는 말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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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한율 24.09.14 12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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