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화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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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작품등록일 :
2024.09.08 23:21
최근연재일 :
2024.09.19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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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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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고하고 아름답게(4)

DUMMY

드르륵.

"드, 들어오세요."

우리를 안내해준 금사과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마치, 오래된 고택처럼 생긴 건물.

내부는 깨끗한 벽지로 깔끔하게 도배되어 있지만, 건물 자체의 오래된 나무 냄새는 고스란히 머물고 있었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기분이 드는 곳이었다.

늦어진 밤공기에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고즈넉한 풍경들.

산 머리 구름 사이에 가린 달이 희미하게 마당을 비추고 있었다.

열린 장지문 너머 마다 반듯하게 정리된 방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곳이.

삼매원 정정진숙사.

"학생들은 여기에서 생활을 하는 거야?"

금사과의 뒤를 따라 걸으며 물어본 질문에.

대답이 들려온건 청매화로 부터였다.

"맞아, 1학년 때에 온 적이 있는데, 취향이어서 기억하고 있거든."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는 뒷뜰로 향하는 창문을 열었다.

"과거엔 불야성의 기숙사라 불렸는데."

청매화의 시선을 따라 바라본 창문 너머엔.

"...!"

첩첩산중과 같이 펼쳐진 고성과 같은 저택들이 손에 꼽을 수 없이 하늘 높이 세워져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마천루를 보는 것만 같았다.

"저 건물들이 전부..."

정정진숙사.

단지.

그 어느 곳에 조차 불이 켜져 있지 않은, 어둠 속에 잠들어 있을 뿐이었지만.

처음 정류장에 내려 발견한 불빛은.

우리가 있는 한 채의 건물에서 흘러나온 것 뿐이었다.

어두운 밤에 잠겨 그 뒷편의 모습은 전혀 보이질 않았다.

"여긴, 입구일 뿐이야."

청매화는 불빛이 사라진 정정진숙사의 건물들을 바라보며 중얼였다.

"남은 학생은 두 명 뿐이야."

"두 명..."

1학년인 금사과와, 아직 얼굴을 보지 못한 선배 한 명.

"그 조차도 금사과가 전학오지 않았으면 한 명 뿐이지."

"...어째서 그렇게 된 거야?"

"그건..."

금사과가 막 입을 열려는 찰나.

덜컹!

입구의 문이 열리고, 붉은 머리의 학생이 들어왔다.

"...어?"

뺨에 반창고가 붙어있고, 제복 곳곳이 칼에 베인 듯 갈라져 속옷이 드러나 보이는 소녀의 고개가 우리를 향하고.

그리고 고개를 들어올려, 나를 바라보았다.

"...?!"

그 순간.

팟!

자신의 갈라진 제복을 두 팔로 움켜쥔 소녀는, 부릅! 눈을 치켜뜨며 나를 노려봤다.

"선배!"

금사과가 만신창이가 된 소녀를 발견하곤 급히 달려가며 외쳤다.

"이, 이, 이 녀석들은 누구야?!"

하지만 소녀는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 철컥! 한 손으로 허리춤의 검집을 쥐었다.

"외부인은 기숙사 출입 금지야!"

스르릉.

서서히 검을 뽑아내며 말하는 소녀의 모습에, 금사과가 다급히 말했다.

"총본산에서 와주신 제자님과 호위학생이에요!"

멈칫.

"제자님? 이 녀석이...?"

"맞아, 상담 요청을 받고 도와주러 온 거야!"

"...제자님, 텐션 왜이렇게 높아?"

눈을 좁혀 뜨며 말하는 청매화의 말을 물려둔 채.

나는 눈앞의 쪼그만 소녀를 향해 말했다.

"도와주러...?"

"물론!"

소녀는 그제서야 경계를 낮추며 입술을 달싹였다.

"뭘... 도와주러 온 건데?"

"...환복?"

검집이 통채로 내 머리로 날아들었다.


***


"당장 꺼져, 이 변태!"

"서, 선배!"

날 밖으로 집어 던지려는 소녀를 금사과가 매달려서 막아서고 있었다.

"진정해주세요!"

"번뇌로 가득한 이 녀석이 무슨 제자님이야!"

호위로 곁에 머물러 있는 청매화는 오히려 물러서서 관망하고 있었다.

"음... 자업자득까지 막아주기는 좀..."

황당하다는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아이스... 브레이킹... 였습니다..."

"하아, 제자님은 내가 나중에 혼내줄 테니까, 진정해줘."

청매화는 자신의 학생증을 보여주며 말했다.

"반야원 정견학사 선도부장 청매화야."

털썩.

날 바닥에 집어던진 소녀는, 팔짱을 끼고서 말했다.

"왜 여기에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와줄 일 같은 건 없으니 돌아가."

"그래...?"

청매화는 고개를 돌려.

금사과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정식 상담 요청으로 방문한건 사실이고, 대상자는 이쪽의 금사과 양인걸."

"금사과가...?"

소녀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금사과는 쭈볏거리며 답했다.

"마, 맞아요..."

"그리고 이 시간에 돌아갈수도 없잖아?"

청매화가 창 밖의 어두컴컴한 하늘을 가리켰다.

"삼매원 정정진숙사는 이렇게 늦은 시간에 손님을 매몰차게 내쫒는 곳은 아닐것 같은데..."

"큭..."

소녀는 고개를 흔들며 답했다.

"마음대로 쉬고 가. 방이라면... 많이 있으니까."

"와, 정말? 고마워."

빙긋 웃으며 청매화가 답했다.

"나 여기 참 좋아하거든."

"...흐응."

그녀의 이야기에, 소녀가 조금 의기양양하게 답했다.

"정정진숙사는 숙박시설을 이용해서 만들어진 기숙사거든. 다른 곳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걸."

"그러고 보니."

어딘가 익숙한 인테리어 이기는 했다.

기숙사라기 보단.

고급 여관과 같은 분위기.

이곳은 숙박시설이 원형이었구나.

"안내는... 금사과가 해줘. 난 조금 쉴 거니까."

"아, 선배...!"

우리들을 내버려둔 채, 소녀는 안쪽의 방으로 들어 가 버렸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금사과는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 안내를 계속 해 드릴게요. 필요한게 있으시면 말씀 해 주시구요."

어쩌지 못하는 듯한 애처로운 표정이, 그녀의 얼굴에 피어난 것을 보았다.


***


워낙 방이 많아서 호화스러운 시설을 각자 한 명씩 사용할 수 있었다.

청매화가 취침 중 호위를 위해 같은 방으로 들어오려 하는 것을, 금사과가 벌개진 얼굴로 필사적으로 뜯어말리는 과정이 있었긴 하지만...

덕분에 족히 한 가족은 쓸 수 있을 법한 넓은 방을 혼자서 이용하게 되었다.

엄청난 사치를 부리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기는 한데.

문득, '입구'에 해당하는 이 곳이 이 정도의 시설이라면, 본격적으로 내부에 위치한 정정진숙사의 본관은 얼마나 화려한 것일까 의문이 들 정도였다.

"불야성의 기숙사..."

새벽에 깨어난 발걸음을 향해 어제 밤 안내받았던 시설 내부를 천천히 걸어보고 있었다.

아직, 금사과로부터 상담의 내용을 듣진 못했다.

너무 늦은 시간이었기도 하고.

무엇보다...

"선배... 라."

후욱. 후욱.

문득.

명쾌한 바람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걸 알아차렸다.

비록 본관은 마천루와 같은 어마어마한 규모지만.

입구에 해당하는 이 곳은 저택 즈음이나 되는 소규모 숙박시설의 형태를 띠고 있었기에.

방음이 되는 방 안이 아니라면, 밖에서의 소리는 쉽사리 들려오는 편이었다.

저벅, 저벅.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걸음을 향하자.

"하아! 후우... 하앗!"

부우웅! 부웅!

파리한 햇살속에 힘차게 검을 휘두르는 붉은 머리의 소녀가 있었다.

한 겹으로 몸을 감싼 여관의 급사 차림을 한 채로, 물결치는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어 목을 정돈하고서, 가벼운 땀을 이슬처럼 떨어뜨렸다.

어제 마주쳤던 정정진숙사의 소녀였다.

"큭..."

문득, 검을 멈춘 소녀는 신음을 흘리며 어깨를 움켜쥐었다.

"다쳤니?"

장지문 너머 툇마루로 향하며 물어보자, 소녀는 화들짝 놀라며 쳐다보았다.

"훔쳐보다니, 취미가 나쁘네."

"평소대로 일어난 거 뿐인데?"

웃으며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무슨 짓이야!"

홰액! 팔을 휘둘러 손을 뿌리친 소녀는.

멈칫, 몸을 멈추고는.

자신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무슨 짓을 한 거야?"

나는 두 손바닥을 들어올렸다.

"너, 어제부터 수상하게 감을 눈을 하고선...!"

"...눈은 원래 이런건데."

"책에서 봤다고! 그 눈, 배신하는 녀석이라고!"

맹렬히 오해하고 있는 소녀로 부터, 걸음을 물려 툇마루에 걸터앉고는 빤히 바라봤다.

"뭐, 뭔데..."

"검 수련을 더 보여주지 않을까 해서 기다리는 중."

"내... 내가 왜 널 위해서 검술을 보여줘야 하는건데!"

소녀는 철컥, 검을 납도하고는 화를 내며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어디 가?"

"너가 깼으니까 밥 지으러 간다!"

성실하게 대답해준 소녀는.

툇마루에 올라온 걸음을 멈추곤, 작게 중얼였다.

"...칸나야."

"응?"

"내 이름! 어젠... 자기소개도 안 했으니까!"

저벅 저벅 저벅.

붉은 머리의 소녀는 허둥지둥 안쪽으로 걸어 가 버렸다.

흩어진 새벽 공기 속에.

어렴풋한 레몬의 향기가 코끝을 두드리다 사라졌다.


***


"으아아, 죄송해요!"

퉁탕퉁탕.

다급한 목소리와 발소리에 이어 뻗친 머리와 주름이 구겨진 급사복을 입은 금사과의 모습이 나타났다.

급히 묶은 머리카락이 어깨 너머로 두 갈래가 흔들린다.

"늦어."

말끔한 옷으로 갈아입은 칸나가, 조리실로 들어오는 금사과를 향해 눈매를 좁혔다.

"느, 늦잠을 자버렸어요..."

허리를 숙이며 고개를 굽히는 금사과를 바라보던 칸나는.

매서운 눈길로 말했다.

"손님의 식사를 기다리게 하다니, 벌이 필요하겠네."

"히익."

칸나는 금사과에게 다가가.

한 손으로 볼을 살짝 꼬집었다.

"으븝."

"식사는 준비해뒀으니까, 옮기는것만 도와줘."

그녀의 말마따나.

조리실엔 네 명 분의 식사가 가지런히 접시에 담겨 나오고 있었다.

모두가 따끈따끈한 김이 오르는 걸 보아선.

모든 종류의 요리를 완성되는 시간을 맞추어 조리했다는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대, 대단해요!"

"흐응... 너도 배우면 할 수 있어."

칸나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은 옷 부터 단정하게 입고. 머리도 정리하고 와."

"아, 네, 넷!"

칸나는 금사과의 등을 돌려 준비실로 보냈다.

"혹시 도와줄 거 있어?"

허둥지둥 달려가는 금사과를 지나치며 조리실에 걸음을 향해 물었다.

"외부인은 접근 금지야!"

번뜩, 식칵을 세우며 말하는 칸나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집어넣었다.

"손님은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손님을 대하는게 맞는건가..."

"부탁할 게... 없지는 않은데."

조리실 밖에서 작게 들려오는 칸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첫 실습이니까, 이 참에 잔뜩 대접하게 도와줘."

"실습?"

"금사과."

칸나의 목소리가 살짝 흔들린 기분이 들었다.

"알겠어."

그녀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이해가 되었다.

두 명 밖에 없는 기숙사 학생.

그 동안에 손님이 오지 않았을 것은 명백히 알 수 있는 사실이었고.

전학으로 오게 된 후배는, 아직 단 한 번도 정정진숙사 학생으로서 손님을 받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녀에게 있어선.

이 곳에 전학 온 이후,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준비 다 끝났어요!"

위풍당당히 걸어오던 금사과는.

자신의 치맛자락을 밟고, 정면으로 바닥과 충돌 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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