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해병으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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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랑괴행
작품등록일 :
2024.09.09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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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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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고라스.

DUMMY

4. 고라스.


헬멧 저편으로 흠뻑 젖은 붉은 머리칼의 여인과 눈을 마주했다.


스틸 아머 등이 안정적인 환경을 구축한들 격렬한 움직임으로 인한 생체 반응까지 전부 커버할 정도는 아니었다.


엘리 슈미트의 초록색 눈동자를 마주한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엘리는 지체하지 않고 소형 드론을 허공으로 사출시켰다.


우우웅! 수웅!


미세한 소음과 함께 엘리의 등 뒤에서 사출된 거뭇한 물체들이 어둠 저편으로 흩어졌다.


폭발물 전문가인 마르코 페레즈와 기술 전문가인 엘리 슈미트는 이번 임무의 핵심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길을 탐색하고 목적지까지 이끄는 역할이라면 중기관총의 타이론과 저격수 라나는 분대를 호위하는 역할.


마르코는 응당 지뢰를 매설하는 임무를, 마지막으로 엘리는 비스트의 진격을 더욱 지연시키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하지만 5명밖에 되지 않는 분대.


각자의 주 임무가 그러할 뿐 상황에 따라 그 역할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었다.


다만 숙련도 등의 차이가 있는 건 당연했기에 수월한 임무 성공을 위해 우선 보호해야 할 두 사람이 바로 마르코와 엘리였다.


마르코가 지뢰를 설치하는 와중 엘리는 주변의 환경을 파악하여 비스트의 생체감각을 교란할 장치를 조정하고 있었다.


방금 사출한 소형 드론은 놈들의 생체감각을 흐트러뜨릴 방아쇠인 셈.


엘리가 해당 설정을 분대 모니터에 동기화했기에 나는 물론 모든 분대원이 실시간으로 드론의 이동 경로와 범위 등을 HUD로 확인할 수 있었다.


아직 모든 지뢰를 매설하진 않았다.


고로 잠시 갈라져야 할 시점.


남은 지뢰는 10개 정도.


정확한 위치, 즉 놈들이 감지하지도 생각지도 못한 곳에 매설해야만 가장 효율적으로 적의 진격을 분쇄할 수 있었다.


최하급 비스트는 본능으로만 움직이는 괴수에 불과하나 무시할 계제가 아닌 건 그 본능이 인간의 이성보다 탁월할 때가 많기 때문.


방금의 폭발은 선발대 중에서도 척후대가 밟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직접 보지 않아도 초인적인 감각 덕분에 전부 감지되었다.


놈들의 공격본능을 자극하여 선발대 본대를 지뢰밭 깊숙이 이끌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첫 번째 지뢰는 미끼였다.


지금부터가 중요했다.


분대 모니터로 최적화된 지점을 표기한 뒤 라나와 마르코에게 손짓했다.


마르코는 응당 지뢰 매설을 목적으로 라나는 척후 역할과 혹시 모를 비스트를 저지하기 위한 호위로 붙인 것.


라나와 마르코는 지체하지 않고 내가 설정한 목표를 향해 움직였다.


*


지뢰 매설 지점을 확인한 마르코 페레즈는 살짝 의구심을 품었다.


아무리 봐도 지정된 지점이 화력이 극대화되는 위치가 아니었기 때문.


서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것을 떠나 아예 경로에서 벗어난 곳에 표시된 지점도 다수였다.


그러나 의구심을 표출하기엔 앞서 보여준 모습이 너무 압도적이었다.


게다가 의아함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이곳까지 침투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경로로 움직이는 걸 여러 차례 겪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때마다 반드시 이유가 있었다.


무사히 임무 지역까지 도착한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일.


지금도 그 지시가 이해되진 않으나 어떤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결정한 것일 터.


무엇보다 일분일초가 아쉬운 시점이었다.


마르코는 그 모든 의구심을 뒤로 하고 쏜살같이 내달리는 라나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


핏빛처럼 새겨진 광기 어린 눈동자.


거대한 암석처럼 솟아오른 육체.


거친 검은 무늬가 돋보이는 두꺼운 가죽은 어떤 무기로도 관통되지 않을 정도로 질겨 보였다.


강력한 다리와 넓은 면적을 지닌 거대한 발바닥은 지면을 으스러뜨릴 듯 움켜쥐었다.


사지에 달린 갈고리 같은 발톱은 꽝꽝 얼어붙은 땅조차 단숨에 갈라버렸다.


뼈와 각질로 뒤덮인 머리는 삐죽삐죽 튀어나온 돌기들이 위협적으로 솟아있었다.


전신에 도드라진 근육과 힘줄은 놈들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방증했고 거대한 입에 자리한 무수한 이빨은 무엇이든 찢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로워 보였다.


전체적인 외형은 사족보행의 동물에 가까웠으나 그 어떤 맹수도 비교할 수 없는 흉포함과 잔인함이 몸 전체에 새겨져 있었다.


바로 ‘고라스’라고 부르는 개체.


심지어 고라스는 비스트 가운데 최하급 개체에 불과했다.


쿠우웅! 콰드득!


전장을 뒤흔드는 진동이 공기를 찢으며 울려 퍼졌다.


거대한 고라스들이 빙하를 가르며 질주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숨 막히는 긴장감을 선사했다.


이들의 앞발이 땅을 내리치는 순간 굉음과 함께 눈과 얼음이 튀어 올랐다.


콰직! 콰아앙!


땅이 울리고 얼음이 갈라지며 폭발적인 파편들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발톱이 얼음을 긁는 소리는 금속을 베는 듯 차갑고 날카로웠고 놈들의 발걸음은 투박하고 무거운 철제 망치로 땅을 내리치는 듯한 충격을 선사했다.


공중에 흩뿌려지는 허연 숨결.


간헐적으로 몸 곳곳에 튀어 오르는 새파란 불빛.


초자연적인 힘을 내포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광경들.


돌연 선두에서 내달리던 고라스가 하늘을 바라보며 길게 울부짖었다.


우우우웅!


인간의 시야론 감지조차 되지 않은 작은 물체들이었으나 고라스의 눈동자에는 선명하게 새겨졌다.


거뭇거뭇한 다수의 물체가 어둠 속에서 빠르게 쇄도하고 있었다.


바로 엘리 슈미트가 사출한 소형 드론이었다.


*


드론이 전송해온 고라스의 모습을 확인한 엘리는 마른침을 삼켰다.


막연한 두려움이 구체화 되면 둘 중 하나다.


감당할 수 있거나 없거나.


전자라면 덜 두려울 것이고 후자라면 더 큰 두려움에 휩싸이는 게 일반적.


이번엔 불행히도 후자에 가까웠다.


통계나 계산에 능숙할 수밖에 없는 특성상 엘리 슈미트는 구체적인 정보를 확인하는 순간 바로 알아차렸다.


모든 지뢰를 성공적으로 폭파한다고 해도 짓쳐 드는 선발대의 절반도 처리할 수 없을 거라는 걸.


자연히 이곳까지 분대를 이끈 분대장을 바라봤다.


귀기가 어린 것처럼 서늘하게 빛나는 보랏빛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기이하게도 터질 것처럼 요동치던 두려움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같은 광경을 바라봤고 같은 상황에 놓여 있음에도 그 어떤 요동도 느낄 수 없었다.


급히 마음을 다잡은 엘리는 침착하게 실행 버튼을 눌렀다.


*


소형 드론들은 불규칙한 궤적을 그리며 허공을 쇄도했다.


거대한 고라스 무리 위에 다다른 드론들은 일제히 강력한 초음파와 전자기파를 발생시켰다.


츠으으으!


전부 불가청 영역에 자리한 파장들.


사람에게는 그러했으나 민감한 생체감각을 지닌 고라스에겐 그야말로 끔찍한 고통을 선사했다.


퍽퍽!


괴물 같은 몸집의 고라스 한 마리가 갑자기 방향을 잃고 옆으로 비틀거렸다.


이 거대한 생물이 휘청거리며 다른 고라스와 충돌하자 둘은 중력에 못 이겨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그 충돌의 충격으로 얼음이 쩌렁쩌렁 울리며 균열까지 발생했다.


넘어진 고라스들이 일어나려고 발버둥 쳤으나 발바닥 아래 얼음이 산산이 부서졌다.


결국 무게중심을 잡지 못하고 다시금 넘어지면서 다른 고라스까지 덩달아 넘어트렸다.


그 충격파가 이어지면서 무리 속에서 연쇄 반응이 일어났다.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고라스 무리.


혼란 속에서도 고라스들은 본능적으로 생존을 위해 허둥대며 서로를 밀쳐내고 다시 일어서려 애썼으나 다시금 발생한 강력한 전자기파는 놈들의 생체감각을 더욱 심각하게 망가뜨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드론의 공격 파장에서 영향을 덜 받은 고라스들이 머리를 세차게 흔들더니 쓰러진 동료들의 등과 머리를 밟고 올라섰다.


콰직! 콰직!


거대한 몸무게로 인해 밟힌 고라스들이 괴성과 함께 더욱 깊이 바닥으로 처박혔다.


밟고 올라선 놈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동료의 몸을 박차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가히 엄청난 도약력.


공중에 높이 떠오른 고라스들은 날렵하게 몸을 돌리며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민첩한 움직임으로 소형 드론들을 향해 발톱을 휘둘렀다.


파직! 파직!


발톱에서 불꽃 같은 빛이 튀었고 놀랍게도 공중에 떠 있는 드론 몇 대가 강력한 발톱에 의해 찢기며 스파크를 내며 파괴되었다.


그야말로 원시 본능과 첨단기술의 격돌.


비스트는 본래 생체병기로 이용되기 위해 만들어진 놈들이었으니 첨단기술과 첨단기술의 격돌이라 봐야 할지도.


여하튼 드론들은 고라스의 예상치 못한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급히 높이를 조정하고 회피 기동을 취했지만, 놈들의 발톱과 몸짓은 너무도 빠르고 정확했다.


결국 드론들은 별똥별처럼 불꽃을 흩뿌리며 추락했다.


*


모든 드론이 거의 삽시간에 파괴되었지만 이건 이미 예상했던 결과였다.


중요한 건 놈들의 진격 속도를 조금이나마 늦췄다는 것.


비스트의 민감한 감각은 이미 분대의 위치를 특정했을 터.


하지만 고작 5명의 인간을 사냥하기 위해 선발대 전원이 달려들 리가 없다.


먹잇감을 사냥하는 늑대 무리만 보더라도 전략과 전술이 그 본능 속에 철저하게 녹아있다.


게다가 비스트는 태생이 생체병기.


놈들의 본능은 어지간한 전술과 전략보다 탁월했다.


드론이 마주한 선발대에서 다시 분리된 별동대가 우리를 사냥하고자 움직였겠지.


이동하던 것을 잠시 멈추고 방어 진형을 구축한 이유였다.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각 장소의 장단점을 계산하고 비교해 최적의 방어 위치를 찾아냈다.


내가 선택한 장소는 구릉지의 봉우리로 주변을 광범위하게 내다볼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


구릉의 경사는 비탈진 측면을 가지고 있어 불규칙한 바위와 울퉁불퉁한 지면이 자연스러운 방어벽 역할을 했다.


뾰족하게 솟은 암석들과 느슨한 흙으로 이루어진 지형은 비스트의 돌격을 차단하기에 수월했다.


암석들 사이로는 좁은 통로가 여러 개 있었는데 이는 비스트의 이동 경로를 제한할 뿐만 아니라 분대원의 사격을 최적화할 수 있을 터.


봉우리 꼭대기는 평탄한 바위로 되어 있어 중기관총을 안정적으로 배치하기 좋았다.


주변을 360도로 감시할 수 있는 완벽한 시야를 제공했고 이는 공격이 예상되는 여러 방향에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철컥!


HMG-9 중기관총을 적당한 위치에 거치한 타이론 벨은 놈들의 예상 진입 경로로 총구를 두고 언제든 사격할 수 있도록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있었다.


엘리는 곳곳에 펼쳐둔 전자 장비의 상태를 검토하며 놓친 것이 없는지 연신 확인했다.


그러나 준비를 완벽히 마치기도 전에 들이닥치는 불길한 소리.


투투투둑!


우리를 사냥하기 위해 출발한 놈들의 별동대가 분명했다.


그 순간.


저 멀리서 울려 퍼진 총성 한 발.


타아앙!


마르코를 호위하기 위해 앞서 이동하던 라나의 총구에서 뿜어져 나온 굉음이었다.


과연 뛰어난 저격수답게 라나가 발사한 총알은 정확히 고라스 한 놈의 눈을 관통해서 그대로 뒤통수를 꿰뚫고 지나갔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날아온 공격에 선두에서 내달리던 동료가 죽음을 맞이하자 고라스 무리는 미세하게나마 혼란에 휩싸였다.


우연이 아니다.


라나의 갑작스러운 사격도.


놈들의 혼란까지도.


전부 철저한 계산 아래 발생한 결과들.


엘리를 바라봤다.


내 눈을 마주한 엘리는 즉각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다.


주변에 펼쳐둔 교란 장치를 일제히 발동시킨 것.


드론이 사출하던 것과 비슷한 파장을 내뿜는 장치였다.


혼란 위에 고통에 더해지며 짓쳐 들던 고라스의 진형이 와해되듯이 무너졌다.


*


고라스 무리가 갑작스레 와해 되며 널브러지는 모습에 타이론 벨은 등 뒤로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분대 모니터로 지시한 내용 그대로가 아닌가?


실로 괴물 같은 통찰력을 지닌 사내였다


그러나 지금은 경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타이론 벨은 손가락을 냅다 잡아당기며 그간 응축해둔 두려움과 흥분을 총구 저편으로 모조리 토해냈다.


두두두두두!


HMG-9 중기관총의 총구에서 뜨거운 불꽃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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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고라스. +1 24.09.10 548 21 12쪽
3 3. 임무. +4 24.09.09 607 23 12쪽
2 2. 리덴. +1 24.09.09 654 22 12쪽
1 1. Start. +3 24.09.09 900 2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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