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공 학우위원장 김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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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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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0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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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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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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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DUMMY

‘서울여자공업고등학교’는 ‘앞산’이라고 불리는 안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대로에서부터 이어진 오르막길 끝에 학교가 있다 보니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시야가 매력적이었지만, 초여름부터 늦가을까지 학생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매일 아침 등산하듯 등교해야만 했다.


그래도 이번 교정 재정비 사태에 학교 뒤편에 큰 산이 있다는 점은 공사비용과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요소로 작용했다.


기계과 학생들은 한쪽에 굴삭기를 세워두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점심이라고 해봐야 김과 소금이 섞인 허연 쌀밥 덩어리가 전부였다.


“에이 씨, 무슨 전쟁 났어? 지금 6.25야?”


주먹밥을 집어 던지며 한 기계과 학생이 벌컥 화를 냈다. 점심을 담은 큰 배낭을 둘러메고 있던 급양국 소속 1학년 학생은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때 기계과장이 투덜거리는 학생의 뒤통수를 세게 갈기며 말했다.


“여기까지 힘들게 배달 온 급양국 생각은 안 하냐? 다들 조금씩 참고 양보하고 있잖아. 그러니 예의 없이 굴지 마라.”


기계과장의 훈계에 학생은 입을 삐쭉 내밀었지만, 난감한 기색을 보이는 급양국 학생에게 꾸벅 고개 숙여 사과했다.


아직 3월이 지나지도 않았지만 따사롭기만 했던 태양이 서울여공 학생들의 마음을 이글이글 불태우고 있었다.


서울여공 학우 식당 앞에서는 조경과장이 목이 터지라 소리치며 현장을 관리, 감독했다. 3일 안에 공사를 끝내겠다고 학과장이 선언한 뒤로 조경학과 학생들은 그녀의 지시 아래 철야 작업마저 마다 않고 조기 완공을 목표로 피땀을 쏟았다.


학우 식당 안 지정석에 앉아 멸균 팩에 든 음료를 빨대로 쪽쪽 빨아 먹고 있던 양춘은 골골거리는 소리를 내며 음료수가 다 떨어지자, 팩을 홱 집어던지며 혀를 끌끌 찼다.


아침까지만 해도 흐뭇하게 현장을 바라보던 양춘이 갑자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모습을 보고 수현은 알 수 없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그런데 한창 진행 중인 공사를 주의 깊게 지켜보는 사람은 양춘만이 아니었다. 현재는 창고로 사용 중인 구교사에 모인 과거 일진 무리도 이번 사태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쟤네들 페이스가 장난 아니야. 이대로라면 늦어도 모레 오전 중에는 공사가 끝나겠는데?”


일진 무리 중 한 명이 우두머리로 보이는 여학생에게 다가가 보고 했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지. 김양춘, 이 씹어 먹을 년. 두고 보라고.”


양춘에게 악감정이 많아 보이는 우두머리 여학생은 이를 부득부득 갈며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학생들이 대부분 하교한 학교는 철야 작업을 위해 켜놓은 조명을 제외하곤 산바람이 몰고 온 어둠에 휩싸여 서늘한 동굴 속처럼 느껴졌다.


하루 종일 큰소리로 학생들을 진두지휘한 탓에 목이 다 쉬어버린 조경과장은 근처 화단에 아무렇게나 퍼질러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뭘 이렇게까지 죽어라 충성하냐?”


환하게 빛나는 조명에 가려진 그림자 속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조경과장이 화들짝 놀라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봤다.


“누구냐?”


“벌써 나를 잊은 거야? 나 지금 엄청 서운해지려고 해.”


양지와 음지의 경계를 뚫고 나온 목소리의 주인공은 조금 전 구교사에서 상황을 염탐하던 우두머리 여학생이었다.


“길소민 선배.”


조경과장이 소민을 보고 벌떡 일어나 경계 태세를 갖췄다. 그러자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조경과장을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마, 아무 짓도 안 할 거니까.”


“그럼, 여기까지 무슨 일입니까. 위원장 명령으로 구교사 밖으로는 나오지 못할 텐데요.”


날이 바짝 선 조경과장의 말투에 소민은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조경과장이 이렇게까지 소민을 경계하는 이유는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그녀는 서울여공의 일진 무리를 이끄는 리더로 학교 폭력에 중심에 선 자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학생회조차도 건들지 못할 만큼 강한 힘을 지녔던 그녀였기에 비록 지금은 양춘에 의해 구교사에 유배를 당한 신세였지만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현재로선 조경과장이 그녀를 막아설 방법이 없었다.


“넌 작년보다 지금이 더 낫다고 확신할 수 있냐?”


소민이 조경과장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그녀와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조경과장은 그녀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한 발짝씩 뒷걸음질 쳤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


“아니, 너희에게 내가 좋은 선배가 아니었던 건 명백한 사실이니까 인정할게. 그런데 김양춘이 나보다 더 괜찮은 리더라고 넌 생각하느냔 말이야. 매일 같이 이 난리를 쳐대는 미친 꼬맹이가 진짜 너희가 원했던 학생회장이 맞느냐고.”


정곡을 찌르는 소민의 질문에 조경과장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네, 적어도 김양춘은 규정과 절차를 존중하니까요.”


“홍율!”


원하던 대답을 듣지 못한 소민이 격분하며 소리쳤다. 그 순간 울은 다리가 굳어버려 더 이상 뒷걸음질 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예나 지금이나 넌 입에 발린 거짓말은 못 하는구나. 그래서 나한테 많이 맞았지.”


율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진절머리 난다는 기색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소민을 지켜보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언제 주먹이 날아와도 이상할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됐어. 김양춘을 어떻게 평가하든 그건 니 선택이니까. 그래도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봐라. 이게 정녕 모두에게 최선인지.”


소민은 대답을 들을 생각이 없는지 홱 돌아서서 조명을 등진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율은 한동안 우두커니 서서 그녀를 숨긴 어둠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


이른 아침, 양춘이 버스 정류장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그때, 양춘의 등 뒤로 온몸이 근육으로 둘러싸인 거구의 여학생과 예쁘장하게 생겼지만, 안면 근육이 거의 움직이지 않는 여학생이 나타났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를 지닌, 키가 큰 여학생은 예쁘다기보다 잘 생겼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여학생은 일행과 대화에 집중한 나머지 양춘을 발견하지 못하고 팔꿈치로 그녀의 뒤통수를 살짝 치고 지나갔다.


양춘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듯 단전에서부터 분노가 차올랐다.


“아, 미안해. 내가 또 못 보고 지나쳤어. 괜찮니? 다치지 않았어?”


잘생긴 여학생이 허리를 숙여 잔뜩 열 받은 양춘에게 사과했다. 그러고는 어린아이 대하듯이 활짝 웃으며 양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순간 이성을 잃은 양춘이 오른발을 뒤로 빼서 감히 자신의 머리에 손을 댄 이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의 해골을 부숴버릴 하이 킥을 셋업 하려는 순간, 자동차의 경적이 울렸다.


양춘이 돌아보면 검은색 고급 세단이 버스 정류장 앞에 정차했다. 그리고 모든 빛을 반사해 버릴 듯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도록 진하게 선팅된 창문이 부드럽게 내려가고 뒷좌석에 앉은 수현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양춘아, 여기서 뭐 해? 얼른 타, 같이 학교 가자.”


수현이 차 문을 열어주고는 양춘이 탈 수 있게 안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양춘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여학생을 흘끗 째려보고는 차에 올라탔다.


“양춘······.”


멀어져 가는 양춘을 보며 잘생긴 여학생이 중얼거렸다. 표정 없는 여학생도 무언가 생각이 난 듯 고개를 돌려 이제 막 우회전을 하며 사라지는 자동차를 빤히 쳐다봤다.


“서울여농 얘들이랑 무슨 일 있었어?”


옆자리에 앉은 수현이 아직도 씩씩거리고 있는 양춘에게 물었다.


“전마들이 서울여농 아들이가?”


아무것도 모르는 양춘이 수현에게 되물었다.


“키 큰 여학생이 ‘서울여자농업고등학교’ 학생장 김희진이잖아. 그 옆에 서 있던 여자애는 정나영 안보실장이구.”


처음 듣는다는 얼굴로 양춘이 희진의 이름을 되뇌었다.


“김희진 학생장은 ‘서울고등연합학생위원회’ 위원장도 겸하고 있구.”


“그래? 전마 좀 치나?”


다른 학교에 관해서는 관심이 전무한 양춘을 보고 수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공식적으로는 서울 내에서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지. 범위를 전국으로 넓힌다 해도 평가가 크게 뒤바뀔 것 같지도 않구.”


수현이 말에 양춘이 콧방귀를 끼며 팔짱을 낀 채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우리 학교는 ‘서울고등연합학생위원회’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니, 김희진이 진정한 최강자라고 판단하기엔 섣부르지. 양춘이가 아직 공식 무대에 데뷔하지 않았을 때 얘기니까.”


수현의 말에 금세 기분이 풀린 양춘이 의기양양하게 턱주가리를 쳐들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수현이 양춘의 한쪽 볼을 살며시 꼬집었다.


그러자 양춘이 헛기침을 하며 부끄러워했다. 수현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양춘에게 와락 달려들어 그녀의 양 볼을 만져댔다.


부상자 17명, 사망자 0명.


다행히 학우 식당 앞 교정 재정비 공사는 무사히 완료되었다.


조경과장이 식사를 마친 양춘에게 공사 결과를 보고했다. 수현과 태형은 이례적인 공사 기간 단축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양춘은 조경과장의 안내를 받아 두 심복과 함께 새롭게 정비된 교정을 시찰했다.


교정은 울창한 나무들과 화려한 꽃들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또한, 인테리어과장이 혼을 담아 제작한 고풍스러운 벤치는 주위 식물들과 조화를 이루며 마치 숲속 요정이 잠시 쉬어갈 법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다시.”


교정에 대한 양춘의 짧은 감상에 수현과 태형은 물론 조경과장도 충격을 받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위원장, 조경에 문외한인 내가 봐도 이보다 더 우리 학우와 학교에 영광스러울 교정은 존재할 수 없어.”


태형이 양춘을 달래기 위해 애를 써보았지만, 양춘은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다시 하라고! 이게 뭐고? 인력 낭비에 예산 낭비, 이따구로 해놓고 뭘 보라고 오라 가라 케샀노.”


양춘이 홱 돌아서서 앞으로 걸어가자, 수현과 태형이 얼른 뒤따르며 그녀를 달래기 위해 노력했다.


조경과장은 그런 양춘의 뒷모습을 보며 그동안에 참아왔던 분노가 일순간 머릿속을 집어삼켰다.


교정 주위에는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목숨 바쳐 일하다 다친 학생들이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참혹한 모습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이게 정녕 모두에게 최선인지······.’


율은 어젯밤 소민이 한 말이 떠올랐다.


결과가 궁금해서 찾아온 학과장들은 부들거리는 조경과장의 주먹을 보고 모두 할 말을 잃었다.


본관 건물 앞에는 양춘의 동상이 제작 중이었다. 머리 위로 풍성하게 올라간 똥 머리가 인상적이었다.


“뭘 할라카면 이 정도는 돼야지.”


과격할 정도로 왜곡된 모습을 한, 자신을 닮은 아름다운 동상을 올려다보며 양춘이 투덜거렸다.


“양춘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3일 내내 고생한 조경과장한테 수고했다 한마디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잖아.”


수현이 나무라듯 말하자 양춘이 듣기 싫다는 기색으로 대꾸했다.


“최고의 결과를 내지 못하면 과정 따위 듣고 싶지도 않다.”


그렇게 말하며 양춘이 본관 건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당황한 수현과 태형이 그녀를 쫓아 현관으로 향했다.


“이래도 규정과 절차 타령이나 할 거냐?”


어느샌가 나타난 소민이 조경과장에게 물었다. 그녀 뒤로는 과거 일진 패거리였던 학생들이 무리 지어 서 있었다.


“뭡니까, 구교사 밖으로는 나올 수 없는······.”


“혁명이다.”


소민에게 따져 묻는 기계과장의 말을 막고 조경과장이 나지막하지만, 결의한 찬 말투로 선언했다. 그 말을 들은 모든 사람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모두 망치를 들고 발목의 족쇄를 풀어라.”


양춘을 뚫어버릴 듯 강렬한 눈빛을 쏘아대며 각성해 버린 홍율을 그 누구도 섣불리 말리지 못했다.


“혁명이다.”


작가의말

이 무심한 꼬맹이, 양춘에 대한 분노가 폭발해 버린 조경과장 홍율!

과연 너무 귀여워서 죽여 버리고 싶은 독재자, 학우위원장 김양춘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4화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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