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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正龍)
작품등록일 :
2024.09.10 17:13
최근연재일 :
2024.09.13 20:26
연재수 :
6 회
조회수 :
513
추천수 :
26
글자수 :
33,978

작성
24.09.10 19:30
조회
80
추천
3
글자
10쪽

가족을 떠올려 본적이 있는가?

DUMMY

택시를 타고 도착한 곳은 총 4층으로 이루어진 복도식 아파트였다.

완공이 얼마나 지난 것인지 곳곳엔 페인트가 벗겨지고 작은 균열까지 보였다.


그녀의 품에 안겨 있는 수혁은 주위를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오는 길에 좋아 보이는 건물들이 상당했다.

그 많은 건물들 중 눈에 잘 띄지도 않는 낡은 집.


뉘엿뉘엿 해가 기울어지고 있기 때문일까?

음침하게까지 보였다.


하지만 훌륭한 집이었다.

바닥에 웅크리고 잠을 청했던 거지 시절, 드래곤을 때려잡기 위해 산속에 지었던 볼품없던 오두막집.

그것에 비하면 나무랄 데가 없었다.


수혁은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곳이 앞으로 자신이 살아가야 할 집이라는 것을 말이다.


“수혁이 춥지? 어서 들어가자.”


벌써 11월이라 날씨가 쌀쌀하다.

조금 더 날이 지나면 예쁜 함박눈이 쏟아질 것이었다.

그녀는 곧장 계단을 올라 3층으로 향했다. 오래된 아파트답게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이내 좁은 복도를 지나 제일 끄트머리에 도착한 그녀가 주머니 속에서 열쇠를 꺼내었다.


덜컥.


키를 머금은 문이 열림과 동시에 안의 풍경이 고스란히 보였다.

그녀의 고운 이마가 살짝 찌푸려진다.

거실에선 퀴퀴한 냄새가 감돌고 있었다. 집을 며칠이나 비웠다고 곰팡이가 다시금 올라온 것이다.

이놈의 곰팡이는 닦고 없애도 소용이 없었다.


아예 이사를 가야지 않는 이상에야.

통장에 있는 잔고가 턱없이 부족했다.

집 안으로 들어간 그녀는 아기를 소파에 조심스럽게 눕혔다.


그리고 팔을 걷었다.


나쁜 세균들이 아이에게 해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산후 조리?


사치다. 남편은 타국에서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어떻게 쉴 수 있으랴?


“우리 왕자님, 여기 잠깐만 누워 있으세요?”


아기를 웃으며 바라본 그녀가 곰팡이와의 전쟁을 벌이기 위해 등을 돌렸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액정을 확인해 보니 미소 짓게 만드는 글자가 표기되어 있었다.


<내편>


그녀의 남편 정지훈이었다.


“아빠가 우리 아들 보고 싶어서 전화했나 보네?”


재빠르게 아기의 옆으로 다가간 그녀가 자신과 아들이 카메라 렌즈에 잘 담기도록 휴대폰을 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이내 화면에 남자의 얼굴이 비쳤다.


20대 후반으로 꽤 호남형인 얼굴이었다.


-벌써 집에 돌아온 거야?


그녀가 배시시 웃는다.


“우리 아들 예쁘지? 그새 더 자란 것 같아.”


사진으로나마 갓 태어난 아들을 보았던 그였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작은 중소기업의 사원으로 사우디로 출장을 간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회사에 전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묵묵부답.

그것은 계속해서 일하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출산도 혼자 하고 퇴원도 마찬가지.


고아로 자란 자신은 그렇다 치더라도 가족이 있는 그녀에겐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과 결혼한 것이 화근이 되어 버렸다.

의사 집안의 귀한 셋째 딸로 태어난 김하나.


예쁘게 키운 딸자식이 족보도, 비전도 없는 가난한 청년을 집에 데려왔을 땐 못마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집안에선 강하게 반대했고, 외출까지 금지 시켰다.


하지만 그녀를 막을 수는 없었다. 집에서 몰래 빠져나온 그녀는 결국 사랑을 택했다.

그리고 둘만의 결혼식을 올렸다.


그녀의 가족은 모두 등을 돌렸다.

심지어 호적에서 이름을 지우겠다고 으름장까지 놓았다.


-미안해.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남편의 목소리에 그녀가 더욱 웃어 보였다.


“미안하긴 뭐가?”


- 그냥, 다.


그녀가 빙긋 웃었다.


“신파는 그만~!나 괜찮아.”

- 수혁이랑 산후 조리원에 가서 며칠 쉬었다가 나오면 안 돼?

“나 정말 괜찮다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근데 지금 점심시간 아니야? 밥은 먹었어?”


한국과 사우디의 시차는 대략 6시간.

지금은 오후 6시다.

그렇다면 남편이 있는 나라는 오후 12시.

그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금강산도 식후경! 빨리 드세요!”


그러면서 수혁의 작은 손을 들어 남편이 잘 보이도록 흔들어 보였다.


“아빠, 내일 또 영상 통화해요. 바이 바이!”


수혁은 화면이 꺼졌음에도 불구하고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어이구, 우리 아들 신기해요?”


수혁이 자그마한 손을 들어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낯선 사내의 얼굴이었지만 이상하게 한 번 더 보고 싶어진다.


‘아빠··· 아빠···.’


수혁은 그렇게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


5개월이 조금 지나지 않았다.

그동안 수마와 전쟁 선포를 하고 싸웠다.

무거운 눈꺼풀을 감지 않으려 최대한 애를 쓰며 언어부터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다른 세상의 언어를 습득했다.

심장에 잠든 흑마법이 조금씩 녹아, 감각을 극도로 일깨워준 덕분이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운을 끌어 올려 보려 노력했지만, 단단한 수정이라도 된 것처럼 마음대로 따라주진 않았다.

뭐 천천히 알아보면 되겠지.


그렇게 이 세상에 대해 정보를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물론 뜻대로 돌아다닌다거나 원하는 것을 집중적으로 알아볼 수는 없었다.


그러기엔 몸이 따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기의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저 손과 발을 이용해 기어 다니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주 많았다.


바로 TV라는 네모난 상자.


거기서 나오는 사람들의 대화와 행동들, 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의 정보가 고스란히 흘러나왔다.


이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먹으며 어떻게 살아가는 것 까지.


- 헌터 관리청은 이번 게이트 사건에 이상훈 헌터가 큰 공헌을 세웠다며···.


전에 살고 있던 세상과는 판이하게 다른 곳이었다.


“그렇게 재밌어?”


그녀가 품에 안겨있는 수혁을 내려다보았다.

TV 내용을 아는지 모르는지 빤히 쳐다본다.

수혁이 고개를 비스듬히 들어 올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엄마의 미소.

가족이 있는 모두가 이러한 감정들을 느끼고 살겠지?

언제 보아도 보고 싶고, 또 보고 싶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


“내일 아빠 오시는 날이네?”


내일은 사우디에 있는 남편이 일을 끝마치고 귀국하는 날이었다.


수혁은 그녀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말을 하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이놈의 주둥이는 아직 옹알이밖에 나오지가 않았다.

그래도 시도는 많이 하고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엄브아, 엄브아.”


젠장, 침은 왜 자꾸 흘러나오는지 모르겠다.


딩동-


갑자기 울린 초인종 소리에 그녀가 현관으로 다가갔다.

늦은 저녁이었다.

평소 찾아올 사람이 없는 시간이다. 아니, 옆집 아주머니일 수도.


항상 먹을 것을 소소하게 만들어 접시에 담아 나눠 주시는 아주 고마운, 김치 부침개를 아주 잘하는 분이다.


“아주머니세요?”


으레 짐작한 그녀가 문을 열었다.


덜컥.


문이 열리자 그녀의 눈이 커다래졌다.

예쁜 장미꽃을 다발로 들고 있는 사내.

바로 김하나의 남편 정지훈이었다.


“당신이 왜··· 아니, 내일 온다고···.”


말을 다 잇지 못한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동안 누르고 눌렀던 서러움이 갑자기 밀려왔다.

정지훈이 그녀를 살포시 안았다.


“힘들게 마중 올까 봐 착한 거짓말 좀 했지. 힘들었지? 고생했어.”

“힘들었긴······. 오빠가 더운 데서 더 고생 많이 했지.”


그 둘은 잠시간 몸을 포개어 서로의 온기를 느꼈다.

그때 남편의 입에서 기침 소리가 튀어나왔다.


“에취!”

“감기 들었어?”

“더운 데서 왔더니 한국이 왜 이렇게 추운지 몰라.”


땀이 뻘뻘 흘리는 국가에 있다가 찬바람을 만나니 감기가 올 수밖에 없었다.

그란데 남편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보고 싶었던 아들이 두 발을 딛고 정면에 서 있었던 것이다.


생후 5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일어서다니, 듣도 보도 못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수혁은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안간힘으로 붙잡고 있었다.


아빠의 목소리에 자신도 엄마와 같이 마중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엄마가 음식을 만들거나 청소를 하고 있을 때, 서기 도전을 틈틈이 실행했다. 그때마다 실패를 거듭했다.


하지만 실패는 성공의 엄마라고, 오늘 그 노력의 대가가 결실을 맺고 있었다.

중심을 잡고 두 다리에 힘을 준다.

아빠가 오셨으니 대견함을 보여야 한다.

타국에서 돈을 버시느라고 얼마나 힘이 드셨는지,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빠의 얼굴이 홀쭉하다.


걸어야 한다.

아들이 얼마나 아빠를 기다렸는지 보여 주어야 한다.

젠장, 그런데 이 망할 놈의 침은 더럽게 왜 자꾸 흘러나오는 거냐.

수혁은 걷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라고 판단을 내렸다.

그때, 심장에 굳어 있던 흑마법의 기운이 스르르 녹아 전신을 지탱해주는 느낌을 주었다.


“엄쁘아! 아쁘아!”


터벅, 터벅.


수혁은 엄마아빠에게 걷기 시작했다.

근육이 잘 발달이 되지 않아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지만 분명히 걷고 있었다.


부부의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걷고 있었다.


“엄쁘아, 아쁘아!”


아빠가 놀라며 손가락으로 수혁을 가리켰다.

고작 5개월이 된 아이다.

근데 걷고 있다.


아빠가 재빨리 신발을 벗으며 아들을 번쩍 들어 올렸다.

든든아 아빠의 손길이 느껴졌다.


“아쁘아!? 하하하! 하나야 들었어!? 나보고 아빠래! 걷기까지 하고.”

“세상에···.”


놀란 건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재회와 흥분 섞인 감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아빠는 수혁을 보며 다짐했다.

벌써부터 이러는데 뒷바라지만 열심히 한다면 남다른 인물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선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학원비와 과외비 등, 결코 적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뼈가 으스러지게 일해서라도 그렇게 해 줄 것이다.

내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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