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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正龍)
작품등록일 :
2024.09.10 17:13
최근연재일 :
2024.09.13 20:26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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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78

작성
24.09.1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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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리셋의 시작.

DUMMY

* * *


시간은 유수와 같다고 했던가?


수혁은 벌써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그동안 부모의 속을 썩이지 않고 잘 생활했다.

그것을 더해 초등학교 때에는 공부로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수혁은 애초에 집요한 구석이 있었다.

드래곤을 죽이기 위해서도 그랬다.

집에서도 당연히 좋아했다.

역시 아들은 남다르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수혁은 그런 부모님을 보며 더욱 공부를 열심히 했다.


엄마아빠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것은 자신의 행복이었다.

무조건 적인 사랑.

이 세계인들은 왜 그걸 모를까?

가만히 있어도 부모님이 밥을 차려주며, 자식을 먹이기 위해 일터로 나가 열심히 일한다.

청소도 마찬가지였다.


‘노크 하고 열라고!’

‘안 먹는다고!’

‘엄마아빠가 뭘 알아!?’

‘엄마는 몰라.’

‘아빠는 몰라.’

‘옛날이랑은 다르다구!’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부모님의 집인데 들어오지 말라고 큰 소리 치고, 밥과 청소를 해 주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집에선 까닥 안하는 그들은, 본인들이 교제하는 여자친구나 남자친구들에겐 서로 뭘 해주려고 안달이다.


이 세계 사람들은 그게 당연한 건가, 아니면 내가 이상한 건가.

나는 부모님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마치 멜로디처럼 달콤하기만 했다.


새싹이 돋아나는 봄날도, 시원한 파도가 몰아치는 여름도, 그리고 가을, 함박눈을 뿌려 주는 겨울은 마치 축복을 내려 주는 것만 같았다.


더없이 행복하고 좋았다. 숨을 쉰다는 것조차 즐거웠다.


하지만 조금 불안한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이렇게 따뜻한 나날들이 한순간에 깨어져 버리지는 않을지 걱정이 들었다.


‘나만 잘하면 돼.’


착실하게 생활하고 공부만 열심히 한다면 부모님들의 웃는 얼굴을 볼 수 있다.

당신들의 행복은 곧 나의 행복이나 마찬가지였다.

부모님이 나를 보며 웃는다.

누군가는 그냥 쉽게 지나쳤을지 모르는 것이었지만, 나는 좀 의미가 달랐다.

행복했다.

사랑받는 다는 것이.


***


중학교 교복을 차려입은 소년이 강당에서 두 줄에 맞추어 서 있었다.

피부가 어찌나 좋은지 투명하게까지 보였다.

뿐만이 아니라 커다란 눈망울은 결점 하나 없이 깨끗하다.

다름 아닌 바로 정수혁이었다.


지금은 중학교 입학식이 진행되는 중이다.


단상에서 교장의 연설이 시작되고, 긴장한 아이들이 주변 여기저기로 눈을 굴렸다.


수혁 또한 비슷한 기분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느끼지 못했던 소속감이란 것이 들었다.

통일된 교복을 입고 있기 때문일까?

하지만 기대감이 부풀어 오른다.

거지였던 시절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모두 누리고 있다는 게, 사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이 모두 다 부모님 덕택이었다.

아빠는 밤낮없이 일하시고 엄마는 학원에서 시간강사를 뛰신다.


자식 하나를 바라보며 뒷바라지를 힘들게 하시는 거다.


내가 뭐라고.


늦은 밤, 침대에 누워 잠이 들기 전 거실에서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분명 집에는 빚이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는 거다. 그저 웃으며 바라보실 뿐이었다.


‘1등이다.’


수혁은 속으로 다짐했다.

꼭 성적 1등으로 보답해 드려야한다.

그러지 못하더라도 꼭 상위권에 머물러야 했다.


“다시 한 번 우리 정일 중학교에 입학하신 것을 축하드리며, 이상 마치겠습니다.”


교장의 연설이 끝나자 조용했던 강당이 시끌벅적거렸다. 학생들은 배정받은 반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1학년 3반.


수혁은 배정받은 교실로 들어가 안을 살펴보았다.

초등학교 시절과 별다를 바가 없는 환경이다.

그냥 교실이 조금 큰 정도? 그게 전부였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뒤에서 수혁을 툭 밀쳤다.


주춤 앞으로 밀려 나갔던 수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뒤를 돌아봤다.


170센티미터쯤으로 보이는 녀석이었다. 다른 또래들보다 훨씬 더 키가 커 보였다.

강건우. 명찰에 녀석의 이름이 보였다.


“사람 지나가는데 좀 비켜라.”


자신은 그저 잠깐 서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충분히 지나갈 공간이 있었다.


수혁이 강건우를 말없이 잠깐 쳐다봤다.


“왜? 불만 있냐?”

“아니.”


수혁은 강건우의 시선을 피하며 몸을 돌렸다. 불필요한 마찰은 의미 없는 소모전이다.


“븅신.”


뒤에서 들리는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를 수혁은 무시했다.

어느새 담임이 들어와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반갑다.”


그러면서 칠판에 글귀를 적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자신의 이름이었다.


[김길동]


“보다시피 내 이름이다. 미우나 고우나 1년 동안 너희와 함께할 담임이다···.”


잠깐 동안 설교가 이어졌다.


“질문 있는 사람?”


담임의 말에 손을 들어 궁금함을 드러내는 학생은 없었다.

조용할 뿐이었다.


“나는 왕따나 학교 폭력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 사람이다. 되도록 분란을 일으키지 말기를 바란다······.”


담임의 말은 줄줄이 이어졌고 이내 마침표를 찍었다.


“준비물이 있으니 받아 적고 꼭 가져오도록.”


담임이 분필을 들어 칠판에 목록을 적었다.


청소에 필요한 물품들이었다.

수혁은 가방에서 스프링이 달린 노트와 필통을 꺼내 받아 적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불렀다.


“야.”


짤막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뒷자리에는 자신을 밀쳤던 강건우가 앉아 있었다.

양아치끼가 다분하게 보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혁이 뒤돌아 그에게 시선을 주었다.


“어, 왜?”

“나 펜 좀 빌려 줘라.”


이놈은 입학 첫날부터 가방 하나 들고 오지 않았다.

수혁은 순순히 펜 하나를 건네주었다.

녀석 눈빛이 아주 지저분했다.

빌려주지 않는다면 꼬투리를 잡아, 나를 본보기로 위협해 자신이 얼마나 센지 주위 아이들에게 알릴 심산인 것 같았다.

거지 삶으로 수도 없이 경험해 봤다.

안 봐도 녀석의 행동거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여기.”

“노트도 좀 빌려줘라.”


수혁은 종이 한 장을 찢어 그에게 넘겨줬다.

미간을 찌푸리던 강건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고맙다?”


빈정거리는 말투를 한 귀로 흘린 수혁이 준비물을 다시 적기 시작했다.


“준비물 다들 꼭 챙겨 오고. 그럼 이상 종례를 마친다.”


담임이 나가고 학생들이 자리에서 하나둘씩 일어섰다. 그건 수혁도 마찬가지였다.

뒤를 돌아 강건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펜 좀 줄래?”


부모님이 사 주신 물건이었다.


“아, 시발. 누가 이딴 거 훔쳐 간대?”


미간을 찌푸린 그가 신경질적으로 펜을 내던졌다.

순간 수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표정 뭐냐? 잘하면 한 대 치겠다?”

“어. 치려고.”


수혁이 강건우의 머리채를 붙잡았다.

무슨 힘이 이렇게 센지 딸려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강건우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이 미친 새끼가!”


짜악!


수혁의 손이 녀석의 귀싸대기를 후려쳤다.

흑마법의 힘이 깃든 힘이었기에 녀석은 감당하지 못하고 털썩 쓰러졌다.

녀석은 기절한 듯 움직임이 없었다.


수혁은 바닥에 펜을 잡아 교복에 슥슥 문질렀다.


“아, 스크레치 생겼네.”


수혁은 모두의 시선을 뒤로 한 채 가방을 매고 교실을 빠져나갔다.


* * *



학교를 빠져나온 수혁은 걷고 있었다.

저 멀리서 경찰들이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는 게 보였다.

온갖 괴물들이 득실거리고 있다는 게이트 열린 것 같았다.

헌터가 아닌 이상에야 들어갈 수도 없는 곳이었다.


선택된 자들만 출입이 허가된 곳.

어느 날 상태창이 뜨면서 각성을 이루게 되면 헌터 관리청에 가서 심사를 받고, 게이트에 출입을 허가 받을 수가 있었다.


수혁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자신도 각성을 이루면 게이트에 들어가 부모님의 짐을 덜어 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삐비빅. 삐비빅.


기계음에 수혁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언제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던 것일까?

신호등은 파란불에서 빨간불로 바뀌고 있었다. 수혁은 발을 재촉했다.


그때였다.


빠앙!


커다란 클랙슨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집채만 한 덤프트럭 한 대가 빠르게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흑마력을 일으키기도 전에.


쾅!


***


화들짝 놀란 수혁은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한 번 더 놀라야 했다.

바로 눈앞에서 하얀 가루가 흩어지고 있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검붉은 로브가 펄럭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많이 보았던 장면.

절대로 잊을 수 없었던 자신의 변곡점.

수혁이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있는 숲 한가운데 자신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말도 안 돼···.”


몇 번이나 눈을 비비고 감았다 떠 보았다. 하지만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떻게 된 거야···.”


수혁은 땅에 떨어진 로브를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바로 리치를 만났던 그때, 그날로 돌아온 것이었다.


“이건 꿈이다.”


찰싹!


볼을 때려봤다, 아프다.


감각이 정확하게 전달되었다.


“아니야. 꿈이야.”


찰싹!


“말도 안 돼!”


수혁의 외침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멀어져 갔다.

커다란 나무에 힘없이 기대어 앉아 있는 수혁은 넋이 나가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꿈이라기엔 너무도 생생했다.

금방이라도 집으로 돌아가 문을 연다면 맛있는 음식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고, 엄마가 입학식은 어땠냐며 이것저것 물어 오실 것만 같았다.

꿈이라면 영원히 꾸고 싶었다.


망할 리치 놈이 나에게 환상을 보여 준 것일까? 그런 것일까?

문득 블랙 드래곤에게 찾아가 죽고 또 죽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그것도 환상이었나?

그렇기엔 머릿속에 고군분투했던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도대체 뭐가 뭔지 머릿속이 터질 것같이 복잡했다.

그 와중에도 부모님의 얼굴은 계속해서 아련하게 떠올랐다.


한동안 수혁은 그 자리 그곳에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해가 기울고 어둠이 찾아올 때까지 말이다.


이윽고 밤하늘에 서늘한 달이 떠올랐다.


부엉- 부엉-


숲에서 산새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것을 신호로 받기라도 한 듯 수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단을 내렸다.

수혁은 막힘없이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한 절벽에 다다를 수 있었다.

낭떠러지로 다가간 수혁은 눈을 감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심산인 것이다.

어차피 이 망할 삶엔 미련이 없었다.

죽거나, 아니면 산다.


부모님이 계신 세상으로 넘어갈지도 몰랐다.

수혁은 그 점을 가장 크게 바라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 꿈이 아니었다. 이렇게 생생한데 꿈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몸을 던지는 동시에 그대로 죽는다면?


별 상관없다.

이곳의 삶은 지긋지긋했으니까.

그렇게 수혁은 한 점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떨어트렸다.


***


“수혁아, 빨리 일어나서 밥 먹고 입학식 가야지?”


침대에 누워 있던 수혁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리고 빠르게 주위에 시선을 뿌렸다.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자신의 방 안이었다.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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