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연기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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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범호
작품등록일 :
2024.09.10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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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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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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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좋아?

DUMMY

난 연기자가 되고 싶었다.

더 정확히는 배우로 성공하고 싶었다.

하지만 재능이 없었다.


그럼에도 오로지 연기 외길을 걸었다.

보조출연 알바를 하면서도 수도 없이 오디션을 봤다.

그리고 떨어지기를 반복.


벌써 아흔 번이 넘는 실패지만 좋았다.

꿈을 위해서 한 발자국씩 가까워지는 듯 했으나.


“안녕하세요. 연기하세요?”

“네. 보조출연이지만.”

“반갑네요. 식사하셨어요? ”

“아직 안먹었습니다.”

“그럼 같이 먹을까요? 제가 도시락을 좀 많이 싸와서.”


그 말부터 시작이었다.


현장에서 알게 된 배우 지망생

배윤아.


실로 마음에 들었다.

작은 얼굴 눈웃음과 긴 속눈썹.

그리고 웃을 때의 찡긋거리는 코.

자체발광하는 연예인 같은 외모.

아직까지 빛을 발하지 못한 게 신기할 정도였다.


우리는 열렬하게 사랑을 하면서도 서로를 응원하며 오디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짧은 연애를 끝으로 가족들끼리 작게나마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라고 했던가.

나 대신 내 꿈을 묻었다.


아흔 아홉 번째 오디션을 끝으로 연기를 그만뒀다.

딱 100번은 채우지 않았다.

이 길을 계속 그리워 할 수 있게.


“나 이제 연기는 그만하고 서포트할게.”

“서포트? 괜찮겠어? 당신 연기 좋아하잖아.”


연기 아주 좋아한다.

하지만 손가락만 빨고 살 순 없었다.

누군가는 해야했으니.


“난 당신이 더 좋고 중요해.”

“고마워. 나 한 번 잘해볼게.‘


일찌기 부모님도 말리지 못한 열정을 꺼뜨린 건 다름 아닌 사랑,

정확히는 책임이었다.

누군가를 부양해야 한다는 마음. 최선을 다해 살기로 했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어쩌면 날 닮은 자식이 나올 수도 있는 거니까.


그 뒤론 일만 했다.

일 해본 경험이라곤 보조출연이 다라 면접 보는 족족 떨어졌다.

그래도 운 좋게 공장에 들어와 열심히 일했다.

그동안 만져보지도 못한 돈들이 쌓였다.


-띠링

[Web발신]

대한카드 승인

150,000원 체크

뷰티하우스 강남점


그만큼 나가기도 했지만


와이프가 한 시간 이용하는 샵 비용은 나의 열 시간의 노동이었다.

그럼에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을 보니 크게 힘들지는 않았다.


부지런히 돈을 모았다.

운이 따랐다.

소소하게 넣었던 주식들이 나름 올라주면서 작지만 집도 생기고 차도 생겼다.


착착 다음 페이즈로 넘어간다.


“아기를 갖자고? 미쳤어?”

“그래도 결혼한 지도 조금 됐고.”

“우리 사정에 그게 가당키나 해?”

“사정이 뭐 어때서. 열심히 해볼게. 연차도 쌓이고 갈수록 진급도.”

“몰라서 물어? 이런 구축 아파트에 쥐꼬리 같은 월급으로 누굴 키운다는 거야.”


쥐꼬리?

그래도 상여금을 합치면 월 400에 가까운 돈이었다.


“미안하지도 않아?”

“미안하다니 뭐가.”

“태어날 자식한테 가난을 그대로 세습하는 거라고.”


나름 열심히 살아왔건만.


“다 우리들처럼 살아. 더 힘들게 사시는 분들도 있고.”

“아니. 촬영현장만 가도 우리보다 빈곤한 사람들은 없어.”

“그래도 비교 안하고 우리가 행복하게 살면···.”

“행복? 내가 이제 겨우 단역을 벗어나 조연 배우가 됐는데 아기를 갖자고?”

“연기는 계속 하면 되지.”

“양심은 있어? 내 꿈은 어쩌고.”


아 그렇구나.

그제서야 알았다. 우리의 꿈이 아니구나. 내 꿈과 배윤아의 꿈은 달랐구나.


그리고 양심이 뭐가 어쨌단 말인가.

비록 풍족하진 않아도 대출이 많이 끼어있어도.

열심히 일을 해서 만든 보금자리 아파트. 또 중고로 산 SUV까지.


“당신 거울은 봤어? 다크서클이 이만큼 내려왔어. 그래 낳았다고 쳐. 그 애는 과연 좋아할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 거 같은데.”

“남들 눈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데?”

“됐어. 다음에 이야기하고 출근 잘하고. 빨리 자 피곤하겠다.”


오후 두 시.

주야 2교대로 시작한 공장 생활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야간 고정으로 바꿨다.

이름 모를 편두통과 푸석해진 피부.


해결되지 않아 답답하지만 야간근무를 위해서 잠을 자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


“알겠어.”


침대에 누워 배윤아를 바라봤다.

바쁘게 단장을 하는것이 신경쓰였다.


“오늘 어디 가?”

“오디션 있다고 했잖아.”


가방을 챙기고 나갈 채비를 하는 배윤아.


“못 보던 가방이네?”


명품엔 관심이 없었지만 제법 비싸 보인다는 걸 알았다.


“아 그냥 선물 받았어.”


난 가방 선물을 뒤로 숨겼다.

반년 가까이 용돈을 모아 좌판대에서 산 가방이 초라해 보였다.


“오늘 우리 결혼기념일인데.”

“그랬나? 어차피 당신 출근하잖아. 어쨌든 일 잘 다녀오고 먼저 나갈게.”

“그래. 잘 다녀와.”


대답 대신 손을 흔들며 나가는 배윤아.

어쩐지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시간은 더 흘렀다.


“우리 그만하자.”

“그만하다니.”

“알면서 뭘 물어.”

“설마 이혼하자는 거야?”


오랜만에 만나 하는 말이 이혼이라니.

어쩌면 예상하고 했을지도.


“그래. 짐은 곧 뺄거고. 자세한 건 다음에 이야기하자. 촬영가야 돼.”

이와중에 촬영을 간다고?


또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한다.

하지만 잡을 수 없었다.


올해로 5년차 부부.

변호사와 상담해 보니 상대 쪽에서 반반 분할을 요구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아직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다.

자금 대출이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사실혼이었다.

하지만 사실혼 기간에 따라 부부가 이룩한 공동 재산에 대해서는 재산분할청구권이 인정되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난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허울뿐인 관계여도 유지하고 싶었다.


설렘 가득한 사랑은 애당초 없어졌지만 인연이 닿은 부부 아닌가.


“조금 더 생각해보면 안될까?”

“그냥. 쉽게 가자.”

“갑자기 왜 그러는 건데. 내가 더 잘할게.”


배윤아는 옅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혹시 기억해? 내 이상형?”

“존경받을 수 있는 남자?”

“맞아. 당신이 그랬었어.”

“그랬···었어?”

“응 이젠 아니야.”


내가 한 일이라곤 우리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일한 것 뿐이었다.


“재산분할 같은 건 안 해도 되니까 잘 살아. 어차피 당신 돈이잖아.”


어떠한 분쟁 없이 온전히 내게 집을 가지라고 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돼?”

“우린 애초부터 만나지 않았던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법률혼과 다르게 일방적으로 사실혼 관계를 종료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막을 수 없는 이혼은 다가왔고 나는 집을 팔았다.

대출을 상환하고 내게 주어진 돈


5억.


주식과 집값 상승으로 꽤 많은 이득을 봤다.

적지 않은 돈이건만 공허함이 이를 데 없었다.

20대의 청춘을 다 갈아 넣고 어느새 30대가 되었다.


꿈을 찾기엔 조금 늦은 나이지만

다시 시작해보기로 했다.

하고 싶던 연기를.


그렇게 오랜만에 연기 오디션을 준비했다. 공고가 뜨고 한 달 동안 수도 없이 대본을 읽고 또 읽었다.


갈증.

그동안 얼마나 연기를 하고 싶었던지.


오히려 좋아?


마음까지 헷갈리기 까지 했다.


오디션 준비는 수월했다. 가끔 배윤아의 상대 배역을 해주기도 했고

쉬는 날엔 대본집을 읽으며 보낸 시간을 보내며 꿈을 완전히 놓지 않았으니.


심사 받은 쪽대본을 툭 치면 대사가 튀어나올 정도로 외웠다.

그리고 결과는.


“잘 봤습니다. 나가주세요.”


잘봤다는 말에 어쩐지 기대가 됐지만.


오후 다섯 시.

아직까지 연락이 없다.


그때였다.


-띠링


[<결혼지옥> 연출팀입니다. 먼저 귀한 시간 쪼개 우리 영화 오디션에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쉽지만 이번에는 함께하기 어려울 것 같아 연락드렸습니다. 다른 좋은 작품 하실 수 있도록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역시 무리였던 건가.

하긴. 젊어서도 안 된 오디션이 갑자기 될 리가 있나.

그래도 계속 해주마.


[100번째 오디션 탈락을 축하합니다.]


탈락을 축하한다고?

갑자기 뜬 문구.

손으로 휘저어보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지금 헛것을 보는 건가?

그러기엔 환각이 너무나 선명했다.


[불굴의 의지를 보여준 당신에겐 상태창이 활성화 됩니다.]

[슬레이트 스킬을 얻었습니다.]


“상태창이라고? 또 스킬?“


내 말에 감응이라도 한 듯 파란 창은 다른 문구로 바뀌어있었다.


[연기자 ‘공지범’상태창]

-등급: F급 배우

-호칭: 보조출연자

-스킬목록

슬레이트/ 스킬을 얻은 시점 이후로 일주일에 한해서 원하는 결과를 나올 때까지 시간을 돌릴 수 있다.


시간을 돌린다고?

꿈꿔왔던 능력이었다.

한가지 아쉬운 건


‘일주일에 한해서?’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어차피 이혼은 막을 수 없군.’


다시금 씁쓸해졌다.

더 오래 전으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이혼 아니 그보다 훨씬 전으로

처음 만난 날로 돌아가 과거의 나를 쥐어 패서라도 말릴 텐데.


일주일이라.

오늘 있었던 일들을 생각해봤다.

떨어진 오디션.

이유도 모르고 떨어졌다.


밑져야 본전인데.

한 번 더 해봐?


당장 바꿀 수 있는 일이라곤

오늘 있었던 오디션밖에 없는 거 아닌가?


“슬레이트. 오디션 전으로.”


나는 어색하게 말했다.


[슬레이트를 시전합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어느새 오디션 장소 앞에 있었다.


모두가 중얼거리는 소리.

오늘 아침 단역 오디션 시간으로 돌아왔다.


참가자들이 대기하는 대기실.

난 대본을 꺼냈다.

기억난다.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 새벽까지 한 달 내내 수도 없이 되뇌었으니까.


오디션을 볼 배역은 공교롭게도 <결혼지옥>의 이혼남이었다.

비교적 대사도 있는 단역 오디션.

배역의 비중은 작았지만 페이는 제법 셌다.

회당 50만원.

단역 오디션치고는 꽤 높은 출연료.

하지만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 개런티가 높다는 건 즉 경쟁률도 높다는 뜻.


문제는 감독이었다.

완벽주의자 박용태 감독이었다.

감독 생활 20년 동안 이번 작품까지 하면 네 작품밖에 안 한 셈이었다.

5년에 한 번 찍는 감독 박용태.


이미 한 번 오디션에 떨어졌지만 이번 작품은 공교롭게도 이혼에 관련된 영화였다.


<결혼지옥>은 결혼 생활의 어려움과 이혼 과정에서의 현실적인 문제를 다룬 작품이었다.

주인공 결혼상담사 육하정과 다양하게 이혼을 상담하는 사람들의 내용이었다.


복귀작으론 딱이네.


대본을 꺼내 읽어본다.

이혼남의 독백 연기.


아까는 오랜만에 오디션이라 조금 경황이 없었지만,

그래. 보여주마. 진짜 이혼 남의 이혼남 연기.


다시 해보자.

여기 지원자들 중에서 나처럼 실제 이혼해 본 경력직은 많지 않을걸?


* * *


오디션 내부.


“잘 봤습니다. 나가주세요.”


박용태 감독은 실망 가득한 기색이었다.

그런 낌새를 알아챈 장준환이 말했다.


“감독님 조금 쉬었다 가실까요?”

“몇 명 남았지? 거의 끝나가나?”

“네 감독님. 앞으로 두 명 남았습니다.”


박용태는 관자놀이를 어루만졌다.

가끔씩 생각이 많아지면 시작되는 편두통 때문이었다.


쓸만한 사람이 없다.

무대 연기와 카메라 연기의 차이점도 모르는 지원자들이 태반이었다.

거기다 30대 이혼남 배역을 뽑는데 예고부터 중년까지 나이도 천차만별.


“그래. 잠깐 쉬었다 가지.”


조감독 장준환이 조심스럽게 박용태에게 물었다.


“혹시 무슨 고민이라도?”

“확 끌리는 사람이 없네 연기들도 비슷하고.”


수준도 대부분 비슷했다.

특색이 있으면 고민이라도 해볼텐데,


이거 원.

연기보단 비주얼적인 면을 고려해서 뽑아야 할 판이었다.

각 지원자들마다 빼곡하게 적힌 단점들.


“힘드시겠습니다. 감독님.”


장준환은 맞장구를 쳤지만 속으론 다른 생각을 했다.


‘이런 단역 오디션에서 고르면서 너무 깐깐하게 보시네. 딱 마음에 드는 배우가 어디 있으려고?’


박용태가 관자놀이를 만지면서 말했다.


“다시 시작하지.”

“네. 다시 시작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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