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연기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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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범호
작품등록일 :
2024.09.10 19:37
최근연재일 :
2024.09.20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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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20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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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물

DUMMY

아무래도 어제의 불편했던 감정을 가지고 가는 것이 서로에게 더 도움이 되겠지?


고성민의 슬레이트와 함께 촬영이 시작됐다.


일찍 출근한 이혼 상담센터엔 문이 열려있었고 자신의 자리에 커피가 보이고 전남편 황강현이 있었다.

육하정은 평상시 웃는 얼굴과 달리 굳어있다.


“뭐야. 당신이 여길 어떻게 들어왔어?”

“비번 안 바꿨던데?”

"그럼 그동안의 커피들 다 당신이 놓은 거야?"


딱딱하면서도 소름 돋는 듯한 표정.


"아 뭔가 오해가 있는데 난 오늘은 처음이야. 그냥 걱정돼서 와봤다고."

"오늘은? 걱정은 무슨 걱정."

"요 근래 당신한테 이상한 일이 생기잖아. 그래서 겁날까 봐 그랬지."

“그건 어떻게 알았어? 당신 짓 아니고?”

“아니지. 절대로. 난 그냥 당신이 위험할까 봐 이것저것 확인차 온 거야.”


너무나도 태연한 표정. 정말로 그렇다는 듯.

그래, 실제로 그녀는 위험했다.

혈서도 받았고 발신 제한 번호로 전화가 걸려 오길 수십번이었다.


그런데 육하정은 왜,


“······.”


눈앞에 있는 황강현에게서 어떤 불쾌함이 느껴지는 걸까.


-오늘은 일찍 출근 했네.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면 하지 못할 말.

발신 제한 번호로 걸려 온 전화 속 변조된 음성이 지금에서 생각해보니 꼭 황강현의 목소리만 같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아는 건 전 남편 황강현이었다.


“······.”

“정말 당신 위험할까 봐 걱정돼서 왔다니까. 못 믿겠어?”


그래도 나에게 해를 끼칠 사람은 아닌데.

그런 생각 때문에 일찍이 용의선상에서 지웠는지도 모른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우린 아무 사이 아니라 했지?”


육하정의 눈이 가늘어진다.


"알겠어. 그리고 사실 이거 때문에 온 거야.”


황강현이 작은 렌즈 같은 것을 건넸다.


“이게 뭔데?”

“렌즈 방식의 몰카 같아. 오랫동안 당신을 보던 사람이 있나 봐. 짐작 가는 사람 없어?”

“당신은 아니고?”

“절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지만, 여전히 미심쩍은 건 마찬가지였다.


핸드폰을 꺼내는 육하정.

112를 누른다. 발신 버튼에 손을 가져다 댄다.


“나갈래? 아니면 끌려 나갈래?”

“나갈게. 근데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면 일단 나한테 전화해. 112는 늦어. 항상 근처에 있을게.”

“진짜 유치장 가고 싶어? 빨리 나가.”

“알겠어. 내 번호 알지? 안 바꿨으니까 단축번호 꼭 해두고.”


발신 버튼을 누른다.


“네. 거기 112죠?”


나가는 황강현.

그의 뒷모습을 보자 육하정은 온몸에 힘이 쫙 빠진다.

그리곤 울음이 나온다.


가장 믿었던 사람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고 다시 두려운 사람이 됐다.


"컷! OK 좋습니다."


박용태 감독은 흡족했다.

백이면 백 OK를 할 정도로 그림이 잘 나왔기 때문이었다.


감독뿐 아니라 조감독을 비롯한 연출, 촬영, 미술팀은 모두 쾌재를 불렀다.


먼저 사무실의 여명 빛이 잘 담겼다.

푸른 새벽빛을 끌어내기 위해 블루 톤을 강조했다.

은은하면서도 부드럽게 밝은 추가 조명을 사용하고 배경을 더욱 인상적으로 담기 위해 배우들의 대화 부분은 아래서 위를 바라보게 로우 앵글로 잡았다.


특히 지범의 얼굴은 반쪽은 어둡고 또 밝은 느낌을 주어 그의 캐릭터를 더욱 모호하게 만들었다.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기에 멋진 그림을 담을 수 있었다.

하루에 단 30분만 촬영할 수 있어서 최소 5~10일은 걸릴 거로 생각했건만.


이번에도 원 테이크로 끝났다.


-와 이 장면도 한 번에 되네.

-대박. 된다고?

-배우들도 신 내린 거 아니야? 새벽에 목도 안 잠기나 봐.

-그러게. 바로 카메라 돌아가자마자 연기 차력 쇼를 보여주다니.


물론 비공식적으로 10번의 슬레이트를 외친 지범이 있었지만.


* * *


촬영이 끝나고 박혜윤 배우가 지범을 찾아왔다.


"공 배우님. 제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요."

"네. 선배님."

"덕분에 감정을 잘 잡을 수 있었어요."

"그렇게 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배려해 주신 거군요.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민망했다. 그냥 감정 잡기 편하시라고 한 건데.

도와주기 전까지 박혜윤 배우는 감독님께 몇 번이고 지적을 받았다.


- 혜윤 배우님. 지금 그 감정 아니에요. 너무 다정하게 보고 있어요.

- 지금도 그래요. 이거 멜로 아닙니다.

- 다시요. 아직도 달아요.


온 미녀한테 싸늘한 눈빛을 요구하니 될 리가 있나.

그래서 조금 도와줬을 뿐이었다.


"그럼 전 다음 촬영 때문에 먼저 가보겠습니다."

"네. 선배님 파이팅입니다."


오늘의 스케줄은 끝이었다.

가뿐한 마음에 기지개를 켠 뒤 상일에게 갔다.


"오래 기다렸다, 상일아."


상일의 입이 딱 벌어져 있었다.


"왜 그래? 못 볼 거라도 본 사람처럼."

"야. 너 뭐야. 공지범 맞아?"

"뭐가."

"너 진짜 배우였네?"

"새삼스럽게 왜 그래?"

“너무 낯설어. 뭐야 이거. 네까짓 녀석이 우리 혜윤 배우한테 왜 안 꿀리는 거야.”

“됐어. 참 칭찬도 신선하다.”

“오히려 압도하는 것 같았는데?”

“잘못 봤겠지.”


상일은 안경을 벗으며 대뜸 선포했다.


"야. 나 결심했다."

"뭘 또 불안하게 결심까지 해?"

"시켜줘. 너의 매니저."

"뭐야. 갑자기 그게 무슨 역겨운 말투야."

"들어봐. 내가 딴 건 몰라도 안목은 아버지를 닮았거든?"

"얼굴도 똑같이 생겼는데."

"어쨌든 내 유전자가 말하고 있어. 모든 세포 하나하나가 너한테 전 재산 베팅하라는데?"


불타올라 매니저가 되겠다는 상일을 진정시켰다.


"세포까지? 뭔가 더러운 기분이지만 진정해. 관리소장 하라고 할 땐 언제고."

"아냐 넌 연기를 해야 했어. 오케이. 매니저로 시작해서 기획사 사장까지 좋았어."


이미 인생 계획까지 거창하게 마친 상일이었다.

따로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이후에도 촬영 때마다 상일이 따라 나왔다.


나도 더 말리지 않았다.


안 그래도 최근 연습 시간을 늘리는 바람에 갈수록 스케줄 관리가 어려웠다.

그런 와중에 상일의 서포트는 큰 도움이 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필요한 역할을 친한 친구가 옆에서 척척 해주니 편한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어쨌거나, 상일은 본격적으로 매니저 일에 뛰어들게 됐다.


"이거, 네 체질에 맞는 보약이야."

"내 체질이 뭔데."

"소양인이잖아. 유명한 곳에서 지은 거야. 숙지황이랑 구기자, 생지황 넣고 달인 거래. 꿀떡 삼키고 여기 알사탕까지 먹으면 된다."

"뭘 이렇게까지."


서포트가 과한 것 같긴 하지만.


#

조용한 절 안.

김홍준 감독은 오후 햇살을 머금은 바닥 앞에 합창한 채 기도를 했다.

영단에서 절을 하며 중얼거렸다.


“부처님 중생의 원을 들어주소서. 제게 영감을 주시고 현실로 만들 힘을 주십시오.”


그렇게 세 번을 절과 기도를 마치고 나왔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


큰 나무 앞에 고요히 합장하는 스님이 보였다.

김홍준은 그곳에서 어떤 울림을 느꼈다.


“이거다. 이거였어.”


서둘러 가슴 안쪽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냈다. 아이디어가 달아날까 정신없이 끄적이기 시작했다.


“스님, 나무, 악령, 거기다 순애 한 스푼. 좋다 좋아.”


그렇게 그 자리에서 수첩이 끝날 때까지 두 시간을 끄적이는 김홍준.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김홍준은 수첩을 품 안에 넣고 다시금 절 안으로 들어와 기도를 시작했다.


“부처님. 부처님. 부처님. 이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는 그런 배우를 제게 허락해 주십시오. 그리고 알아볼 수 있는 그 눈까지 주십시오.”


아까보다 더 간절하게 기도하는 김홍준을, 거대한 불상이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 * *


촬영은 어느새 막바지가 되었다.

오늘은 마지막 촬영이었다.


황강현의 최후는 육하정을 대신해서 신주영에게 칼에 찔려 죽는 장면이었다.


"하정··· 하정아 도망···가."


연습 때도 그랬지만 대사가 여전히 잘 와닿지 않았다.

한숨을 내쉬자, 상일이 물었다.


"마지막 촬영이지? 잘 안되냐?"

"응. 칼 맞는 장면인데 뭐 맞아봤어야 알지."

"내가 그럴 줄 알았지."


상일이 서류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설마 칼?”

“그럴 리가 있나. 이거 받아. 칼에 찔린 사람들 후기 모은 거야.”

"오늘 촬영 때문에 갖고 온 거야?"

"응. 혹시 도움 될까 해서. 읽어봐."


앞 장을 읽어보니 실제로 칼에 맞은 사람들의 생생한 후기였다.


매니저가 되긴 했는데,

뭘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며 웃던 상일은 이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움이 되고자 하는 상일의 의지가 느껴졌다.


"고맙다. 진짜."


후기를 읽어보니 공통적인 의견이 있었다.


‘찔릴 당시에는 인식을 못 한다고?’


또 심각성을 모르다 출혈로 인해 혼절이 온다는 것이었다.


'작은 고통으로 시작해 심장이 갑자기 두근거리기 시작하며 어느 정도 말은 할 수 있구나···.'


그 뒤부턴 어떤 식으로 연기할지 생각했다.


그래. 지금 칼을 맞는다.

신주영과 몸싸움. 처음엔 칼에 찔린 줄도 모르고 어느 순간 따끔하겠지.

배 쪽을 바라본다.

그러고는 칼을 찌른 사람을 보겠지?


예상했던 그 사람이다.

상담센터 주변에서 자주 보이던 그 여자.

하정이 도망갈 시간을 끌어 줘야 한다.

맞은 칼을 뽑지 못하게 손으로 잡는다.


하지만 힘이 안 들어가겠지? 호흡은 빨라질 테고.

출혈이 있을 테니 조금은 어지러울 테고.


눈에 조금 힘을 뺐다. 시선은 조금 흐리멍텅하게.

그리고 하정을 바라보고.


"하정···아, 도··· 도망가···."


마지막까지 쥐어 짜내는 목소리.

그리고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칼에 맞고 오래도록 대사를 이어 나갈 수 없다.

몇 마디 더 할 그런 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더 짧은 호흡으로. 뺄 건 빼고 다시.


인지하지 못하는 부분을 줄이고 바로 칼에 맞은 배 쪽을 본다.

다시 범인 신주영을 보고 손에 힘을 주며 육하정에게 말한다.


"도···도망,···.“


말하는 중에 호흡이 가빠지고 어지럽다.

목소리를 쥐어 짜내면서.


"도망··· 가 하정···아."


서서히 무너진다.

슬레이트로 몇 번의 레퍼토리를 만들고.

바로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었다.


"레디 액션!"


범인 신주영에게 위협받고 있는 하정.

황강현이 대신 달려든다. 후웁.


칼에 찔린 강현. 배를 보고 하정을 바라본다.


"하정아. 도망··· 도망가···."


가빠지는 호흡.

곧바로 쓰러지지 않고 최대한 버티는 강현.


눈에 핏발이 가득 선다.

그대로 몸이 무너지면서 혼절하는 강현.


컷!


드디어 강현의 마지막 촬영이 끝났다.

박용태 감독이 세트 안으로 들어가 내게 말을 걸었다.


"공지범 배우. 고생 많았어요. 혹시 내가 부탁 하나 해도 될까?"


작품의 수장이어선지, 장현태 감독의 목소리에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네. 감독님."


박용태 감독은 종이와 펜을 건넸다.


"제 이름 박용태로 싸인 하나 부탁해요."

"예? 제 싸인을요?"

"네. 촬영도 끝났으니, 팬으로서 응원하겠습니다."


박용태 감독은 항상 그랬다.

갑작스럽고 사람을 민망하게 했고 또 많이 신경 써줬다.


이혼 합의를 제외하고 처음 하는 싸인이었다.

싸인이야 어렵지 않았지만, 막상 흰 종이를 보니 어떻게 쓸지 고민이 길어졌다.


어?


박용태 감독의 뒤로 어느샌가 긴 줄이 세워졌다.

박혜윤부터 촬영팀, 미술팀, 연출팀까지 오십 명도 넘는 스태프들이 줄을 서 싸인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코가 시큰거린다.


내가 뭐라고.

그래 잘하라는 뜻이겠지.

훌쩍 콧물이 나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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