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세요 헌터전문 한방병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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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민
작품등록일 :
2024.09.11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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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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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DUMMY

화장실을 핑계로 오크뒷고기를 빠져나왔다.


술도 깰 겸 운동 삼아 책을 팔았던 아저씨를 찾아서 노점이 늘어선 거리를 기웃거렸다.


‘이 근처였는데?’


지난번 그 자리를 찾아갔는데 아저씨가 없었다.


혹시 자리를 옮겼나 싶어서 거리를 돌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노점 상인으로 보이는 대머리 아저씨가 아는 척을 해 왔다.


“한의사 선상이제?”


“어떻게 아시네요?”


“인터넷이랑 TV에 나온게 봤제, 김씨를 찾아온 겨?”


“저쪽에서 책이랑 잡동사니를 팔았던 아저씨를 찾아왔습니다.”


“푸른색 등산 모자에 돋보기 쓴 사람, 아녀?”


“맞습니다.”


“거기가 김씨여.”


“아! 예.”


“김씨가 그제 지방에 내려갔는디 물건들이 많아서 돌아올라믄 여러 날 걸릴 것 같담서, 나보고 한의사 선생 오믄 대신 야기 좀 해달라더라고.”


“그랬군요. 아저씨는 언제쯤 돌아오실까요?”


“그건 나도 모르제.”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노점을 돌며 구경을 더 하다가 식당으로 돌아갔다.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두 여자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애틋한 분위기가 흐르는 게 서로 싸운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카운터로 가서 소주와 안주를 추가로 넉넉하게 주문하고는 계산하고 나왔다.


아무래도 오늘은 자리를 비켜 주는 게 맞았다.



***


매서운 한풍은 삭막한 콘크리트 벽을 사정없이 할퀴더니 뿌연 차원 스모그를 날카롭게 관통하며 귀신의 통곡 같은 기괴한 울음을 토해 냈다.


사정없이 흩날리는 차원 스모그를 뚫고 병원 주차장에 당도했다.


어제보다 더 떨어진 기온에 발을 동동 구르며 현관문을 밀어대는데 안에서 훈훈한 온기가 느껴졌다.


‘누가, 벌써?’


아직 8시 30분도 안 되었건만 병원 안에는 박 선생과 임 선생이 벌써 출근해 있었다.


“두 분, 빨리 왔네요.”


“원장님, 큰일 났어요.”


“원장님, 이것 보셨습니까?”


“뭔데 그래요?”


어제의 일이 궁금해서 어떻게 되었는지 슬쩍 물어보려고 했건만 두 사람은 부리나케 다가와서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뭐죠?”


“빨리 보시지 말입니다.”


액정 화면에는 최용훈이 대기실에서 소동을 피우는 장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마도 너튜브 영상 같았다.


‘이걸 누가 찍었지?’


최용훈의 절규를 지켜보고 있자니 다시금 가슴이 미어졌다.


원래 큰 병에 걸리면 누구라도 부정하고 분노하기 마련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영상을 계속 주시하는 동안 익히 아는 얼굴이 튀어나왔다.


불독이었다.


“형님들, 잘 보셨습니까? 제가 어제, 명성한방병원에 가서 직접 찍은 영상입니다. 이게, 장안에 명의라고 소문이 자자한 이수호 원장의 실체입니다. 목이 불편해서 오신 분인데 다짜고짜 헌터 마목이라고 했답니다. 제가 이전에 게이트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이수호 원장은 관종에 쇼맨십이 풍부한 사기꾼입니다.”


잔뜩 신이 난 불독은 물 만난 물고기마냥 한참을 물고 뜯고 씹어댔다.


불독의 모함과 날조가 한바탕 이어지는 동안 익히 아는 이가 한 명 더 등장했다.


“이번에 모실 분은 서초동에 자리한 건강한방병원의 노경호 원장님입니다. 노경호 원장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여러분께 노경호 원장님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노경호 원장님은 지난번 4급 게이트 영상 보셨을까요?”


“워낙 유명해서 저도 봤습니다.”


“같은 한의사로서 경막하 출혈을 침술로 치료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그리고 이는 저뿐만이 아니고 모든 한의사와 의사들의 공통된 소견일 겁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어떤 이들은 이수호 원장은 화타나 편작 같은 전설의 명의처럼 아주 빼어난 침술을 가지고 있어서 충분히 가능하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제가 이수호와 한의대 동기라서 잘 아는데, 황당할 뿐입니다.”


“어! 같은 한의대 동기라면 이수호 원장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겠네요?”


“모를 수가 없죠.”


“한의대 동기라니 툭 까놓고 묻겠습니다. 한의대 시절, 이수호 원장의 실력은 어떻습니까?”


“지극히 평범했습니다.”


“그토록 빼어난 침술을 갖고 있다면 한의대 시절부터 아주 남달랐을 것 같은데 평범했다고요?”


“네.”


불독과 노경호는 환상의 궁합이었다.


둘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날 사기꾼으로 몰아가더니 최용훈의 일을 다시 언급했다.


“노경호 원장님, 아까 그분은 진짜로 헌터 마목 환자일까요?”


“헌터마목은 진단이 간단해서 엄지발톱의 반점 유무를 확인하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보다 자세한 설명을 해 주시겠습니까?”


“헌터 마목에 걸리면 엄지발톱에 반점이 생기는데 까만색은 하지마비, 파란색은 상지마비, 빨간색은 전신마비입니다. 또 한쪽에만 생기면 그쪽만 마비되는 편마비입니다.”


“만약 반점이 없으면 헌터 마목이 아닌가요?”


“어쩌면 헌터 마목 초기 환자일 수도 있겠지만 현재의 의학 수준으로는 반점이 없는 상태에서 헌터 마목을 조기에 진단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대학병원에서도 불가능한가요?”


“대학병원이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반점 발생 이전에 조기 진단은 불가능합니다.”


“그 말은 아까 그분의 발톱에 반점이 없으면 헌터 마목 환자가 아니거나, 설령 환자라고 해도 지금은 누구든 발병 사실을 알 수 없다는 겁니까?”


“정확합니다.”


“그러면 그분의 발톱에 반점이 있을까요?”


“그것까지는 제가 알 수 없죠.”


“형님들, 제가 누굽니까? 온갖 수소문 끝에 제가 그분을 직접 모셨습니다.”


화면이 바뀌면서 최용훈이 등장했다.


그는 불독과 노경호 앞에서 양쪽 엄지발톱을 공개했다.


발톱에는 반점이 없었다.


“노경호 원장님, 어떻습니까?”


“양쪽 모두, 반점이 없습니다. 최용훈 님은 헌터 마목 환자가 절대 아닙니다.”


“형님들, 보셨습니까? 이게, 진실입니다!”


“원장님, 저는 헌터 마목에 걸린 게 아니죠?”


“그럼요,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저도 그럴 줄 알았습니다. 애초에 그 사기꾼을 찾아가는 게 아니었는데, 그동안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정말 감사합니다.”


‘반점은 늦어도 내일이나 모레쯤에 생길 텐데.’


각 경맥의 상황을 볼 때 최용훈은 전신마비에 걸릴 것 같았고 발병이 임박한 상태였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불독과 노경호는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한 경찰처럼 기세등등해서 막말 대잔치를 이어 갔다.


그 와중에 나는 한의대 시절부터 튀고 싶어 안달 난 중증 관심종자에 실력은 쥐뿔도 없는 열등생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원장님, 댓글은 보지 마세요.”


“사람들이 뭐라고 떠들지 충분히 예측이 가네요.”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떠들든, 저희들은 원장님 말이라면 무조건 100% 신뢰하지 말입니다.”


“말이라도 고맙네요.”


“원장님, 제가 아는 기자분이 계시는데, 해명 기사를 부탁해 볼까요?”


“헌터 마목 발병이 좋은 소식도 아니고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네요.”


“장안의 화제가 되면서 아침 뉴스에도 나왔는데요?”


“그래서 고작 이런 일로, 어제 과음을 하신 분들이 평소보다 빨리 오신 겁니까?”


“원장님 명예가 달렸는데, 고작 이런 일이라니요? 우리는 가족이나 다름없는데 공동으로 대응해야죠.”


“그건 임샘 말이 맞지 말입니다. 그리고 이번 일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지 말입니다.”


두 선생의 따뜻한 마음에 고마워하는 동안 스마트폰이 연신 울어댔다.


확인해 보니 어머니와 여동생의 깨톡이었다.


아침 뉴스에도 나왔다더니, 그걸 보고 톡을 보낸 것 같았는데 그게 시작이었다.


김태식과 손성호의 톡에 이어서 내게 치료를 받은 환자들의 깨톡이나 문자 메시지가 계속 들어왔다.


그중에는 마석병에서 완치된 이후로 종종 연락을 해 오던 백보람의 문자도 있었는데 그녀는 불독과 노경호를 비난하면서 날 항상 응원하겠다고 했다.


감사하다며 응답 문자와 톡을 차근차근 보내는 동안 전화가 걸려 왔다.


백승철이었다.


-선생님, 아침 뉴스를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어떤 빌어먹을 놈들이 선생님을 음해하던데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총재님, 말씀은 고맙지만 늦어도 내일이나 모레쯤에는 환자분의 양쪽 엄지발톱에 붉은 반점이 생길 거라, 그렇게 되면 절로 조용해질 것 같습니다.


-늦어도 내일이나 모레쯤이라고요? 알겠습니다. 이번 일이 잘 해결되도록 제가 신경을 써 볼 테니 선생님은 아무 걱정 마십시오.



***



방송의 영향인지, 더욱 쌀쌀해진 날씨 탓인지 평소보다는 내원한 환자의 숫자가 적었다.


또 내원한 환자들의 분위기도 평소와 달라서 쑥덕거리는 이도 여럿 있었다.


“저기요, 이전에도 여기 와 보신 적 있으세요?”


“오늘 첨인데요.”


“저도 처음인데 여기서 진료받아도 괜찮을까요?”


“제가 아는 분은 완전 명의라고 강추하던데요.”


“저도 그래서 왔는데, 오늘 아침 뉴스 안 보셨어요?”


“왜요?”


“안 보셨구나. 뉴스 보니까 여기 원장님이······”


“공미선 님, 다 들리지 말입니다.”


“그게 아니라 나는······”


“공미선 님, 저도 뉴스 봤는데 우리 원장님 침을 맞아 보면 뭐가 진실인지 바로 알 수 있지 말입니다.”


“뉴스가 가짜란 건가요?”


“제가 가짜라고 말해 봐야 안 믿으실 건데 입만 아프지 말입니다. 곧 진료받은 환자들이 나올 텐데, 그분들을 직접 보시고 판단하시지 말입니다.”


침구실의 문이 열리며 70대 환자가 나온 것은 그때였다.


진료실에 들어갈 때만 해도 심각한 요통으로 지팡이에 의지한 꼬부랑 할머니였던 환자는 놀랍게도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지팡이의 도움 없이 걸어 나왔다.


“어머! 저기 좀 봐?”


“할머니, 괜찮으세요?”


“허리와 종아리가 너무 아팠는데 침 몇 방 맞으니까 싹 나았어. 내가, 여길 왜 이제야 알았는지 모르겠어? 아줌마도 잘 왔어. 여기, 원장님이 진짜 최고야!”


“할머니, 정말 그 정도예요?”


“아까, 나 안 봤어?”


“봤죠.”


“두 눈으로 보고도 그래? 내가 여기 오기 전에 온갖 병원을 다 다녀봤는데 고작해야 통증만 줄이는 정도였어. 허리를 세워주고 두 발로 걷게 해 준 곳은 여기가 처음이야.”


“할머니, 혹시 진통제를 맞은 것은 아니시죠?”


“아유-! 그런 것 아니야.”


“할머니, 그러면 오늘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두 발로 계속 걷을 수 있다고 하던가요?”


“당연하지. 그런데 근육이 많이 빠졌다고 며칠은 재활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더라고.”


허리를 꼿꼿이 편 할머니는 활짝 웃으며 병원 밖으로 걸어 나갔다.


할머니가 사라지면서 대기실의 기온은 조금 전과 달라졌다.


그게 시작이었다.


“오-! 환자가 또 나온다.”


“저분, 들어갈 때는 다리를 절뚝거렸잖아?”


“지금은 멀쩡해 보이는데?”


“저기요, 발목은 괜찮으세요?”


“안 아프고 힘을 제대로 줄 수 있는 게 아주 좋습니다. 완전 정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지금 보니 여기 원장님이 소문대로 명의네.”


“누가 여기 원장님을 돌팔이라고 한 거야?”


“환자들 보면 뭐가 진실인지 알 수 있을 거라더니, 뉴스가 가짜였네.”


“이러니 병원 직원들도 원장을 철저히 신뢰하는 거지.”


진료가 끝난 환자가 하나둘 나오면서 대기실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


의기양양해 하는 단골손님들.


조금 의심했지만 지금이라도 생각을 고쳐먹고 예약하려는 사람들.


거짓이란 걸 잡아내는 영상을 찍어 너튜브에 올리려고 했지만, 실제로 치료되는 모습을 보고 고프로조차 꺼내지 못한 사람까지.


희망의 분위기가 병원 전체를 감싸는 듯했다.


그사이 구급차 특유의 요란하면서도 다급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사이렌 소리는 급격하게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바로 문 앞에까지 다가왔다.


“응급 환자입니다.”


“여기요, 도와주세요.”


“원장님 계십니까?”


요란한 사이렌 소리 사이로 다급한 음성이 들리며 119구급대원들이 스트레쳐카를 밀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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