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집 주방에 게이트가 열렸다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새글

트라비숑
작품등록일 :
2024.09.12 20:55
최근연재일 :
2024.09.19 11:02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1,386
추천수 :
63
글자수 :
64,042

작성
24.09.19 11:02
조회
77
추천
7
글자
13쪽

돈까스 삐진다

DUMMY

만약 음식의 기본이 뭐냐고 묻는다면, 대다수의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 그거야 당연히 재료지.


하지만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양념이라고···.


‘요리는 재료에서 시작해서 소스에서 완성된다.’


이건 미국의 어느 유명한 스테이크 소스 만드는 사람이 한 얘기다.

재료도 중요하지만, 그 재료의 맛과 함께 어우러지며 한층 가치를 더 높여 주는 소스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

한식은 소스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대신 양념이라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사실, 소스와 양념은 요리가 완성된 후 조화를 이루느냐, 아니면 요리할 때 함께 시작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근본적인 역할은 같다.

주재료 맛의 한계를 넘게 해주는 메인 서포터 역할.


오늘 하루 종일 내 마음을 찜찜하게 했던 건 바로 이 점이었다.

최고의 고기, 하지만 평범한 양념.

마치 값비싼 선물을 신문지로 포장한 느낌이랄까.


만약 고추를 건조한 후 제분한다면,


‘고춧가루다!’


제육의 주된 양념이 바로 이 고춧가루.

더군다나 나는 고추장도 거의 쓰지 않는, 되도록 깔끔한 양념을 선호하기 때문에 특히 이 고춧가루의 사용 비중이 아주 높다.

그렇다면 제육볶음의 완성도를 현격히 올릴 수 있다는 얘기.


“급하게 달려와 놓고는 또 멍하니 무슨 생각해! 그래서 달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줘!”

“알았어, 앞으로도 편하게 말해. 아냐, 잠깐만···.”


한혜린은 한편에 있는 책상으로 가더니 종이 한 장과 펜을 들고 왔다.


“온 김에 아예 여기에 다 써서 줘. 가만 보니 필요한 게 많은 것 같네.”


무슨, 써 내면 다 줄 수 있는 것처럼 얘기한다.


“다 있기는 한 거니?”


이 말에 한혜린이 무슨 뚱딴지같은 말을 하냐는 듯 피식 웃었다.


“뭐? 후후후, 여기 청록국이야. 그것도 청락 부족이라고. 네가 타지에서 왔다 해도 여기에는 없는 농축산물이 없다는 거 정도는 잘 알 거 아니야?”


아무리 다 심으려고 해도 경작물이란 건 기후, 온도, 강수량 등 복잡한 요건들이 많다.


“더운 데서만 나는 작물들도 있을 텐데?”


한혜린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야! 그러니까 산책 좀 하고 부족 구경도 하고 그래! 구역마다 기후가 다른 것도 아직 몰라?”


뭐? 구역마다 기후가 달라?

이게 말이나 되냐고?

아, 어쩐지. 부족 회관 오는 데도 어딘가서부터 갑자기 후끈하기도 하고 막 그렇더라.


“너희 집 뒷터도 높이마다 온도가 다 다르잖아. 지금 그래서 거기에 맞춰 다 씨를 뿌려놨다고!”


그런데,

얘는 왜 항상 이렇게 화가 나 있냐?

뭐, 악의는 단, 일도 없어서인지 오히려 정이 가는 거 같긴 하지만.


‘좋다. 그렇다 치고···.’


이세계인 이 세상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는 건 의미 없다.

그냥 나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세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걸로 결론 내렸지 않나.

그저 누릴 수 있는 걸 누리면 그만이다.


“너, 또 멍때리니?”

“아, 미안, 잠깐···.”


가만 보자, 어쨌든··· 필요한 거라.

물론 생각해 보면 한도 끝도 없겠지.

하지만 간장이나 된장 같은 건 당장 재료를 구한다고 해도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일단은 이렇게 3개의 메뉴로 가기로 한 이상, 다른 재료를 구해서 메뉴를 늘리는 것도 부담스럽다.

당장 떠오르는 건 없는 것 같다.

메뉴가 늘어나고 일이 더 늘어나는 건 지금으로서는 벅차다.

어, 그런데 잠시만···.

제육만 업그레이드해 주면 돈까스가 화낼지도.


- 야! 나 돈까슨데 너 지금 쟤만 새 옷 사줬어?

- 아··· 미안.

- 끓는 기름 속에서 그냥 타버릴래!


“··· 혹시, 밀··· 도 있어?”


어차피 제분이 된다면 돈까스 튀김옷도 바꿔주자.


“밀? 당연하지. 그런데 그것도 닭 모이로나 쓰는 건데 왜 필요한 건지···. 영 이상한 것만 먹는구나?”

“아··· 하··· 하··· 그래? 아무튼 그것도 줘!”

“오케이! 곧 가져다 놓으라고 할게! 또 필요한 거 있으면 얼마든지 말하고!”


아! 갑자기 하나 또 생각났다.


“마늘도 줘!”

“마늘? 어휴, 그런데 그거 냄새나고 매워서 어떻게 먹니? 여기서는 벌레 쫓는 데만 쓰는데···.”


아, 그래서 밀도 마늘도 안 갖다줬었구나.

식생활이 확실히 다른 세상이다.


“알았어. 마늘도 가져다줄게. 그런데 다 까놓은 마늘밖에 없어. 다음에는 미리 말하면 통마늘로 줄게.”


깐 마늘이라고? 오, 잘됐다.

그럼 분쇄기에 놓고 하나 가득 돌리면 간마늘은 금방 만든다.

그렇지 않아도 마늘 생각을 언뜻 하긴 했었지만, 일단은 접어 둔 이유가 있었다.

어차피 고춧가루도 시중에서 파는 거.

마늘 하나 달라진다고 생기는 변화가 뭐, 드라마틱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막 새로운 식재료를 사용하기 시작한 마당에 이것저것 맞출 정신이 없었기도 했고.

하지만 이렇게 되면 조금이라도 구색을 갖춰보는 게 좋다.


“아니야! 깐마늘 좋아!”

“훗, 알았어!”


집으로 돌아와서 게이트를 지나 주방으로 왔다.

일단 고기 먼저 썰어 놓고, 내일 쓸 이것저것 먼저 마무리했다.

그리고 다시 게이트를 지나 청록국 집 앞마당에 가 보니 역시 고추 한 상자와 밀 한 포대, 그리고 마늘 한 상자가 놓여 있다.

와, 그런데···.


고추 색깔이 안에 전구라도 들어있는 것처럼 선명하다 못해 눈이 부셨다.

광이 나다 못해 마치 거울같이, 이 뜨거운 아침 햇살을 온전히 다 내 눈에 반사하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갈아버리기가 미안할 정도네···.’


그리고 밀 포대.

슬쩍 열어보니 역시 탈곡은 완벽하게 돼 있다.

밀은 대표적인 냄새가 적은 곡식이기에 특별한 향을 풍기지는 않았지만, 역시 알이 크고 선명하고 밀도가 상당히 높았다.


‘이걸 닭을 준다고? 와, 여기 닭들 호강하네. 이렇게 탈곡까지 해서 준다는 거 아니야?’


그나저나 닭이 밀을 먹나?

저번에는 돼지에게 감자를 먹인다고 하더니···.

아, 이것도 내 영역이 아니다.

여기서는 뭐, 그럴 수 있는 거다.


밀 몇 알을 들어 손으로 비벼보니, 적당히 수분을 머금고 있는 게 바로 제분해도 문제없어 보였다.

어떻게 이것도 이렇게 딱 맞춰진 상태로 주는지···.

사실 밀 제분을 위해서는 수분을 조절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만약 안 되어 있으면 몇 시간 불려서 살짝 건조한 후 일찍 일어나 내일 장사 전에 제분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이것조차 필요 없다.

우연이겠지만 지금 이대로가 완전한 제분 직전의 밀 상태이기 때문이다.


또 한 번 날 놀라게 한 건 마늘이었다.

아마도 냄새가 안 나가게 하려는 듯 꽁꽁 싸 놓은 봉투를 열어보니 전체적으로 월등히 크고 실한 건 물론이었지만, 이것보다도 향이 엄청났다.

알싸한 마늘의 기본적인 향, 그런데 떫은 냄새가 전혀 없다.

봉투 입구에서부터 강렬하지만, 마치 청량한 새로운 과일이라도 되는 양 기분 좋은 향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영차 들고 와서 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먼저 세척을 해야 한다.

고추와 밀, 그리고 마늘을 세척하는 데 2분이 걸렸다.


그리고 바로 건조,

세척을 마치고 실온 보관 공간으로 이동한 고추를 건조 공간으로 이동했다.

10분 걸린다니···.

몇 날 며칠을 말려야 하는 건조가 10분 만에 된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이 틈에, 밀 제분도 해 놓으면 좋을 것 같았다.


‘밀 전부 제분 공간으로 이동’


■ <밀 5kg>을 제분 공간으로 이동합니다. 제분 레벨 1 상태에서는 ①고운 제분과 ②거친 제분 두 단계만 선택 가능합니다. 제분은 1분 정도 소요됩니다. 제분을 마치면 자동으로 원래 있던 보관 공간으로 이동됩니다.


‘오, 두 단계로 제분이 되는구나. 그러면···.’


고운 밀가루로 먼저 옷을 입히고, 거친 밀가루로 빵가루를 대신해 보자.

밀을 꺼내 용기를 나눠 담고 다시 집어넣은 후 계획대로 진행했다.

그리고 일 분 후,


꺼내보니 제분이 아주 잘 됐다.

고운 제분은 흔히 보는 밀가루 밀도로 제분이 되어 있고, 거친 제분은 이보다 훨씬 크다.

색은 약간 누리스름한 빛깔.

시중에 파는 밀가루처럼 하얗지는 않다.

원래 밀은 갈면 이 색깔이다.

하지만 빵 등을 만들었을 때 뽀얀 모양새와 조리의 편의를 높이기 위해 표백 작업을 거치는 것.

물론 이때 이런저런 첨가물도 많이 들어간다.

결론은, 지금 이 밀가루는 표백도 안 하고 첨가물도 안 들어간, 그야말로 천연 웰빙 밀가루라는 것.

어차피 튀김용이니 하얀색일 필요도 없다.


그다음, 마늘을 분쇄기 하나 가득 갈아버렸다.

이 마늘은 살짝 육질이 살아있게 가는 게 맞을 듯했다.

평소보다 살짝 덜 돌려서 분쇄를 끝냈다.

이정도 양이면 내일 충분히 쓰고도 남는다.


그리고 곧, 고추 건조가 끝났다.

꺼내보니 짙붉은 색으로 바싹 말라 있는 게 아주 완벽하다.


꼭지를 다 따니 20분 걸렸다.

다음부터는 꼭지를 따서 달라고 해 볼까?

분위기를 봐서는 분명 해 줄 것 같다.


씨는 그대로 갈자.

빨갛기만 한 예쁜 모양은 안 나오지만, 몸에도 좋고, 더 맵싸한 게 요새 트렌드에 맛는 핫한 맛이 될 수 있다.


이렇게까지 재료 준비를 마치니 한 시간 정도 지났다.

생 고추와 밀 알곡을 가지고 와서 고춧가루와 밀가루를 만드는 데 고작 한 시간 걸리다니.


‘고추 꼭지만 안 땄어도 더 빨리 끝났을 텐데···.’


이렇게 고춧가루와 밀가루, 그리고 마늘까지 준비됐다.

이제, 어제와 같은 준비 작업을 시작하면 된다.

야채 준비해서 제육 양념, 그리고 돈까스 튀김 옷 입히기.

먼저 양념이 바뀌었으니 이 맛을 파악해야 새로운 레시피가 가능하다.


‘고춧가루를 먼저 먹어볼까?’


오!

입에 살짝 넣자마자 퍼지는 매운 향에 얼굴이 순간 확 달아올랐지만, 그냥 맵기만 한 게 아니다.

처음 봤을 때 내고 있던 화사한 붉은 빛깔처럼, 매운 맛도 무지하게 화려하다.

붉은 야채 특유의 따뜻한 향취가 진동하다가 뜨겁게 혀를 한 번 자극하고는 깔끔하게 사라진다.

마치 조미료라도 섞은 듯한 복잡한 맛, 하지만 조미료 따위의 인공적인 맛이 아닌 완벽한 자연의 맛이다.


‘지 혼자 세상 햇살은 다 받고 자란 것 같네!’


그다음은 밀가루,

살짝 집어 입에 털어 넣었다.


아, 이런!

정말이지 담백함의 끝판왕이다.

원래 밀가루는 자기가 존재감을 확 보이는 식재료가 아니다.

그야말로 다소곳하고 묵직하게 기본이 되어주는 역할.

이 밀가루는 이 기준으로 봤을 때 그야말로 완벽한 배경이다.

그런 와중에 느껴지는 자연적인 글루틴의 감칠맛.

그냥 밀가루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겸손한 존재감이 여기에는 확실하다.


‘시중에 밀가루는 이거에 비하면 완전 분필 가루네···.’


마지막으로는 마늘이다.

간 마늘을 조금 퍼서 혀에 살짝 놨다.


‘이··· 이게 마늘이라고?’


그래, 분명 마늘이 맞다.

입안 가득 특유의 마늘 향이 마치 천 번은 정제한 듯, 일체의 떫은 맛없이 풍부하게 차올랐으니까.

훨씬 알싸하지만 그만큼 더 농후해서 그 균형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와, 속만 건강하면 생마늘을 씹어 먹어도 되겠네!’


아, 그리고 사람들을 안 만난다면···.

하긴, 이 마늘은 그런 악취는 싹 빠져있다.

한혜린이 냄새난다고 한 건 그야말로 청록국 기준이었나 보네.


이렇게 새 재료의 맛을 확실히 파악했다.

본격적으로 음식을 시작하려고 하니, 갑자기 요리원에 입학하자마자 큰 꿈을 가졌던 때의 각오가 내 마음을 채웠다.


수석 입학까지 했던 내가, 처음에는 요리 천재 아니냐는 칭찬만 받았던 내가, 싼티 난다느니 하는 얘기를 들으며 망가져 버린 것도 어차피 좋은 재료를 구할 수 없다는 자포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 눈앞에 이제 최고의 재료들이 있다.

메인 재료만 있었던 어제와는 또 다르다.

이제는 최고의 고춧가루와 밀가루까지 생겼다.

게다가 마늘도 청록국산이다.

음식을 준비하는 지금 내 손에 들어가는 힘이 어제와는 다르다.

음식을 바라보는 지금 내 눈빛도 어제의 눈빛이 아니다.


‘진짜, 제대로 한 번 해보자!’


***


아침이 됐고, 또 새로운 하루가 시작됐다.

그리고 준비한 음식도 분명 새로운 음식이었다.

메뉴가 바뀐 건 아니었지만 결정적인 재료가 또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유난히 더 가슴이 뛰어 댔다.


10시쯤 되니 벌써부터 밖이 웅성거렸다.

슬쩍 내다보니 이미 줄이 저어어어쪽까지 뻗어있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까지 빨리 소문이 나지?’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한 세상이라고는 해도 말이다.

부지런히 준비를 마치고 11시에 문을 열자, 어제와 같이 손님이 또 밀려 들어왔다.


- 돈까스 둘, 제육 하나. 식탁 정리 터치 꼭 해! 감자볶음 받아야 한다고.

- 제육볶음하고 돈까스! 테이블 정리 셀프 체크!


다들 오가는 대화가 지금 순간에는 이거 하나다.

다 튀겨진 돈까스를 건지며, 큰 웍에서 익어가는 제육을 휘젓는 이 순간에도 내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가득 찬 기대감과 긴장, 어서 빨리 음식을 내 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첫 주문지가 배식구에 놓였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분식집 주방에 게이트가 열렸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돈까스 삐진다 NEW +2 21시간 전 78 7 13쪽
9 새 알바 키오스크 +1 24.09.18 98 7 15쪽
8 새로운 환경 24.09.17 114 5 14쪽
7 제일 많이 바뀐 건 +1 24.09.16 124 6 14쪽
6 돼지야 미안해 +1 24.09.15 130 6 15쪽
5 무상 수급 +1 24.09.14 144 6 16쪽
4 새 메뉴 24.09.13 151 6 15쪽
3 이세계의 첫 식재료 +2 24.09.13 155 5 16쪽
2 교류 활성화 +1 24.09.13 175 7 13쪽
1 셰프는 아니지만 +1 24.09.12 218 8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