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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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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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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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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지 않아도 배부른 기분

DUMMY


“형님은 전생에 도대체 어떤 존재셨던 검까.”


김서방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전에 말했잖아. 어쩌다 용사가 돼서 마족들 죽이고, 이웃나라들이랑 전쟁도 하고, 그리고 신도······.”


테인이 씁쓸하게 웃고는 뒷말을 얼버무렸다.


“······뭐 그러고 다녔다고.”

“성좌 등급이 SSS로 판정될 정도면, 형님이 계시던 세계는 난세 중에 난세였다 봄다.”

“새삼스럽게 왜 이래. 이미 다 들어놓고.”

“듣기만 했을 땐 확 와 닿진 않았죠. 등급도 놀랍지만 수식언 역시 무시무시함다.”


민망해진 테인이 뒤통수를 긁적였다. 역천(逆天)은 그렇다 쳐도, 대학살자라니.


‘하기야 천 년이 넘도록 매일 같이 마족을 죽여댔으니 이런 수식언이 붙을 만도 한가.’


썩 유쾌한 기억은 아니다. 테인은 이 주제로 대화를 더 이어나가고 싶지 않았다.


“벌써 해가 중천이다, 야. 너 배 안 고프냐? 성좌 가입도 했겠다, 기념으로 밥이나 사줄게.”

“오, 그럼 전 국밥 한 그릇 부탁함다.”

“한 그릇 말고 두 그릇 먹어라. 매번 느꼈지만, 부족해 보이더라.”

“하핫! 어떻게 아셨슴까?”

“어떻게 알긴. 지나가던 개도 알겠다. 근데 이거 어떻게 주문하는 거지?”


그러자 상태창 메시지가 나타났다.


[음식 주문 TIP.]

[1. 원하는 음식의 이미지를 연상하며 키워드를 말해주십시오.]

[2. 시스템창에 목록이 작성되면 원하는 음식을 선택해주십시오.]

[3. 코인을 지불합니다.]

[4. 음식명을 호명하는 즉시 상품이 배송됩니다.]

[연상한 이미지와 요구 조건이 자세할수록 검색이 용이해집니다.]


······과연 프리미엄 복지 서비스답다고 해야 하나.


테인은 설명을 숙지한 뒤 머릿속으로 국밥을 떠올렸다.


“국밥.”


키워드를 말하자마자 상태창이 전환되었다.


[메뉴를 선택해주십시오.]

1. 「저승」 500년 전통의 주모국밥/모듬국밥(1코인)

2. 「저승」 원조법원국밥/도깨비해장국(2코인)

3. 「저승」 염라국밥/지옥불닭해장국(2코인)

4. 「이승」 역전할매국밥/순대국밥(2,000코인)

5. 「이승」 진또배기국밥집/소고기국밥(1,999코인)

···


국밥 목록이 줄줄이 이어졌다. 테인은 조금 놀랐다. 저승뿐 아니라 이승에서 판매하는 국밥도 취급했던 탓이다.


‘근데 가격이······.’


이승 국밥이 저승 대비 1000배 정도 비싸다. 물가 차이가 너무 심한데?


“내가 가진 코인이 얼마나 있지?”


[현재 역천의 대학살자님께서 보유하신 코인은 10,000코인입니다.]

[TIP. 코인은 등급에 따라 매달 차등 지급됩니다.]


매월 만 코인씩 충전된다는 소리다. 잠시 고민하던 테인이 김서방에게 넌지시 물었다.


“야. 너 이승 국밥 먹어본 적 있어?”

“이승 국밥이요? 그럴 리가요.”

“왜? 이승에 한 번씩 간다며.”

“구경하면서 침만 흘렸습죠. 성좌가 아니고서야 이승에 간섭할 수 없슴다.”

“흠. 전생에는?”


김서방이 어깨를 움찔 떨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형님. 죄를 저지른 영혼들 중 일부는 저승의 주민으로 환생하기도 함다. 도깨비들이 그런 케이스죠. 저는 전생의 기억이 없어요.”

“······아, 그래?”


말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 테인이 얼른 화제를 돌렸다.


“너, 너가 이승에 갔을 때 제일 먹고 싶었던 국밥이 뭐야?”


당황한 나머지 말까지 더듬었다.


“가장 먹어보고 싶었던 건, 대한민국의 명가국밥이란데서 파는 얼큰콩나물국밥임다. 산 자들이 줄 서서 먹는 곳이길래 한 번 들러 봤는데, 진짜 맛있어 보였슴다.”


김서방은 말하면서 중간중간 군침을 삼켰다.


“근데 그건 왜 물어보심까?”

“별 뜻 없어. 사주려는 거 아니니까 기대하지 마.”

“그렇슴까. 하긴 이승 음식이 원체 비싸니까요. 전 그냥 도깨비해장국 한 그릇이면 충분함다.”

“안 그래도 그거 시키려고.”


테인은 곧바로 목록에서 ‘명가국밥’을 찾았다.


[명가국밥/얼큰콩나물국밥(2500코인)을 구매하시겠습니까?]


다른 데보다 훨씬 비쌌지만, 어차피 코인은 매달 들어오니까.


[명가국밥/얼큰콩나물국밥(2500코인) 두 그릇을 주문했습니다.]

[5000코인을 지불합니다.]

[잔여 코인: 5000코인]

[배송 위치를 지정해주십시오.]


위치 지정도 음식 주문이랑 비슷한 매커니즘이겠지?


“식탁.”


눈을 깜빡이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 두 그릇이 탁자 위에 나타났다.


“어랏. 두 그릇 뿐이네요?”

“나는 됐다. 네가 두 그릇 다 먹어.”

“왜요? 식욕이 없으심까?”

“원래 점심은 굶는 편이야.”


전생의 테인은 장시간 공복을 유지하는 편이었다.

몸이 가벼워야 전장의 변수에 유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지만, 오랜 기간 습관으로 굳어졌다 보니 이 시간엔 뱃속으로 뭐가 잘 안 들어간다.


“잘 먹겠음··· 어?”


김서방이 숟가락으로 국밥을 휘젓다 말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거··· 혹시 얼큰콩나물국밥임까?”


테인이 괜스레 딴청을 부렸다.


“이제 보니 집이 좀 허하긴 하네.”


생색을 내고 싶지도 않고, 한편으론 자신이 대가 없이 무언가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낯설기도 했다.

천 년을 넘게 살았지만 테인은 여전히 누군가와 감정을 주고받는 데 서툴렀다.

그의 주위엔 늘 뒤통수 치기 바쁜 인간들만 득실거렸고, 마음의 문은 기억도 나지 않는 먼 과거에 닫혔다.

그리고 그 문은 죽고 나서야 조금쯤 열리기 시작했다.

순수한 마음으로 다가와준, 한 도깨비 덕이었다.


“크흑. 형님.”


김서방이 국밥을 한 술 뜨다 말고 갑자기 즙을 짜기 시작했다.


“···야야, 울 일은 아니잖아.”


곰 같은 덩치에 비해 마음이 왜 이리 여린지.


“헙! 크흡! 맛있슴다! 정말 맛있슴다! 제 평생 이렇게 맛있는 국밥은 처음임다! 헙! 헙!”


눈물 젖은 국밥 먹방.

테인은 멀뚱히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뭘 먹지도 않았는데, 배가 부른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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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성좌의 무인도 힐링 라이프

#2 먹지 않아도 배부른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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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도 살아간다. 삶이 있는 곳에는 어떤 형태로든 변화가 생기는 법이다.

전통을 고수했던 국수주의자들이 하나둘 영면에 들면서, 저승은 급변하는 현세의 흐름을 받아들였다.

다시 말해, 이승의 문화를 답습해온 것이다.

현대 저승 사회는 당대의 이승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죽어서 저승에 당도한 수많은 천재들이 일조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앨런 튜링, 라이트 형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니콜라 테슬라, 비교적 최근에 환생한 스티브 잡스까지.

그들이 전파한 지식은 저승의 생활상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쳤다.

컴퓨터가 보급되었고, 저승 전역에 광랜이 깔렸으며, 스마트폰을 모방한 ‘데스폰’이 출시되었다. 세세한 양상은 달랐지만, 결과적으론 이승의 맥락을 따라온 거나 마찬가지다.

이제 저승은 예전처럼 국경을 나누지 않는다. 글로벌 시대의 망자들은 통행권만 발급 받으면 저승 어디든 갈 수 있었다.

평범한 영혼들만 시대에 적응한 건 아니다.

영령과 신령, 생전에 업적을 남긴 위인들 역시 저승에서 자유롭게 교류했다.

그렇다 보니, 이런 일도 벌어진다.


저승 북부에 위치한 화과산 꼭대기.


“그게 무슨 소리야? 갑자기 헤어지자고?”


어떤 성좌는 허구적 기원을 초월해 저승에서 실체를 얻기도 한다.

고전소설 ‘서유기’에서 비롯된 이 성좌의 수식언은 불사(不死)의 금모원후(金毛猿候).

현세의 인간들에겐 손오공이란 법명으로 잘 알려진 존재다.


“내가 잘못 들은 거지?”


불타는 듯한 금빛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렸다. 방금 전 그에게 이별을 통보한 여자가 코웃음을 쳤다.


“태생이 원숭이라 그런지 말귀를 못 알아듣네. 한 번만 더 말해줄 테니 잘 들어. 너, 지금 차인 거야.”


여자 역시 성좌였다.

수식언은 신성한 새벽의 지휘자. 진명은 이슈타르.

그녀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화에 등장하는 사랑과 전쟁의 여신으로, 저승에서 제 2의 삶을 살고 있었다.

참고로 남자를 자주 갈아치우는 것으로 유명하다.

손오공이 억울하다는 듯이 다그쳐 물었다.


“내가 뭐 잘못했냐? 사귄지 일주일 만에 다짜고짜 헤어지자 할 만큼, 무슨 큰 죄라도 저지른 거야?”

“너 뭐 잘못 한 거 없어. 근데 죄는 있지.”

“내가 모르는 죄라도 있나?”

“그냥 죄가 많게 생겼어.”

“······하아, 이슈타르.”

“왜?”

“난 말이야, 여자도 때려.”

“그래서? 나도 때리겠다? 어디 해 봐.”


살벌한 시선이 교차했다.


“······.”


순간 출타한 이성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손오공이 재빨리 눈을 내리깔았다.


‘X될 뻔.’


이슈타르는 S등급의 성좌고, 자신은 A등급이다. 이 미친 여자는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더럽게 쎘다.


“주제 파악이 좀 되나 봐? 아무렴, 실제로 걷어차이는 것보단 말로 차이는 게 낫지.”


오공은 부글부글 끓는 속을 애써 달랬다.


“후. 난 도저히 납득이 안 돼. 이유가 진짜 그게 다야? 외모 때문에?”

“그건 사소한 이유지.”

“그럼?”

“음. 나보다 약해서?”

“언젠 강해서 좋다며.”

“그땐 그랬지. 화과산에 머무는 동안엔 이 일대에서 제일 강한 성좌랑 사귈 작정이었거든.”

“그 말은, 여기서 떠나겠다는 소리야?”

“맞아. 궁금한 남자가 생겨서.”


당당한 환승 선언!

오공의 입장에선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 남자가 대학살자인가 뭔가 하는 놈은 아니겠지?”


신규 성좌가 시스템에 등록되면 가입 알림과 함께 회원들에게 수식언이 노출된다.

수식언이란 성좌의 시스템 활동명, 닉네임이기 때문이다.

이슈타르가 순순히 인정했다.


“맞는데? 역천의 대학살자라니, 보자마자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야.”


설마 설마 했는데 그 설마가 맞았다.


“···결정이 너무 빠르다는 생각은 안 드냐? 그 놈이 가입한지 고작 한 시간 밖에 되지 않았다고.”

“결정은 빠를수록 좋지.”

“걔가 나보다 약할 수도 있잖아.”

“너보다 강할 수도 있고.”

“남자가 아니라 여자일 가능성도 무시하진 못해.”

“그럼 날 능멸한 죄로 흠씬 두들겨 패줄 거야.”


오공이 정신적 비명을 내질렀다.


‘미친 여자다. 미친 여자야······.’


더 큰 문제는, 자신이 이 미친 여자에게 이미 마음을 빼앗겨버렸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답도 없는 상황.


“이슈타르. 우리 시간을 두고 천천히 다시 생각해 보는 건······.”

“싫어.”


이슈타르가 홱 돌아서더니 멀어져갔다. 오공이 참지 못하고 그녀를 불러 세웠다.


“야!”


이슈타르가 우뚝 멈춰 서더니 고개만 옆으로 틀었다.

차게 식은 그 눈을 보는 순간, 오공은 그녀를 더 이상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무언가 뜨거운 것이 울컥 밀려 올라왔다.

오공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나 너 사랑한 적 없는데?”


이슈타르가 훌쩍 도약하더니 화과산 정상을 벗어났다.

배신감과 허탈함에 다리에 힘이 빠진 오공은, 그대로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못된 년.”


사랑,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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