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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참치
작품등록일 :
2024.09.13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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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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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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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높은 건가?

DUMMY

- 피고인은 들으라.

- 저승의 양형 기준상 살신(殺神)은 영멸에 해당하는 중죄이다.

- 그러나 공소 사실을 유죄로 입증할 만한 직접증거가 존재하지 않다는 점,

- 타계에서 방출된 영령을 심판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미비한 점,

- 범행 동기의 정당성이 인정된다는 점 등을 고찰한 바,

- 범죄가 성립해도 위법성조각사유로 판단되어 처벌을 논하기 어렵다.

- 이에,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피고 테인 레모스에게 무죄를 선고하노라.


항소심이 종결되었다. 테인이 사후재판에 회부된지 1년 만의 일이었다.


“후. 드디어 끝났네요.”


법원에서 나오자마자 변호량(辯護蜽) 김서방이 후련하다는 듯 기지개를 켰다.


“고생 많으셨슴다, 테인 형님.”


그러곤 슬쩍 테인의 반응을 살핀다. ‘뭐 할 말 없냐’고 보채는 듯한 눈빛이다. 테인은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덩치에 안 맞게 굴기는.’


그가 김서방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수고했다. 다 네 덕이야.”

“헤헷, 뭘요.”

“이제 집으로 가나?”

“왜요? 재판도 끝났겠다, 각자 갈 길 가자니 아쉬우심까? 이것도 인연인데 그냥 같이 살까요?”

“······.”

“하핫, 농담임다! 그렇게 정색하실 것까지야.”

“재미없는데 억지로 웃을 순 없잖아.”

“윽. 도깨비한테 재미없다는 말이 쌍욕인 건 아시죠?”


김서방이 상처받았다는 듯이 가슴을 움켜쥐었다. 테인은 무시하고 걸음을 옮겼다.


“어엇, 잠깐만요! 이렇게 가시려고요? 국밥에 소주 한 잔 안 하고?”

“그 놈의 국밥, 지겹다. 넌 안 물리냐?”

“전혀요.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데 밥 한 끼만 해요. 네?”


김서방이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을 기세로 설득했지만, 테인은 딱 잘라 말했다.


“싫어.”




30분 뒤, 법원 근처의 국밥집.

주문한 국밥 두 그릇이 나왔다.

김서방이 소주를 잔에 따라 테인에게 건네주었다.


“형님 은근히 쉬운 남잔 거 아시죠?”

“······먹기나 해.”

“또 또, 틱틱대신다. 좋으면서. 자, 짠!”

“아, 뭘 또 짠이야.”

“에헤이! 어서요.”


테인은 마지못해 잔을 부딪혔다. 김서방이 소주잔을 머리 위로 털고는 숟가락을 들었다.


“헙! 으음, 이거지. 헙! 헙!”


소리 한 번 요란하다.


테인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을 한 술 떠서 입에 넣었다.


‘맛있긴 하네.’


고깃국물에 밥을 말았을 뿐인데 어찌 이리 풍미가 깊은지. 국물이 기름지고 칼칼해서, 뒷맛이 쓴 소주와도 궁합이 잘 맞았다.


‘김서방과 처음 만났을 때도 여기에 왔었지.’


처음엔 망자가 무슨 밥이냐며 김서방을 나무랐다. 하지만 저승 사회는 그의 예상과는 달리 전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망자도 밥을 먹고, 잠을 잔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 일가를 이루기도 하고, 이별도 한다. 심지어 이승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엔 자신이 죽은 게 아니라 미지의 세계로 전송된 것 같다는 착각도 들었다.


공원, 음식점, 술집, 미용실, 아파트 등등. 저승의 문명은 테인의 고향보다 훨씬 진보된 형태였다.


“크! 든든하다!”


그새 국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운 김서방이 입술에 묻은 기름기를 손등으로 슥슥 닦았다. 테인은 아직 세 숟갈도 뜨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앞으로 뭐 하시게요? 계획은 있슴까? 환생? 아니면 인생 2막?”

“글쎄.”


사후재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영혼에겐 전생의 기억을 삭제하고 환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만, 여기서 새로운 삶을 영위할 수도 있다.


1년 전의 그였다면 고심할 필요도 없이 환생을 택했을 것이다. 지난 삶의 잔재들로부터 완전히 해방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1년 사이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듣기로는 상당수의 망자들이 환생을 포기하고 안식을 누린다고 한다.


그들처럼 저승에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새로운 문화에 적응해가는 재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지금 생각으론 좀 쉬고 싶다.”

“쉬는 방법도 여러 가지임다.”

“그냥,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려고. 혹시 저승에도 바다가 있나? 죽기 전엔 한적한 바닷가에 집을 사서 유유자적하는 게 꿈이었거든.”


전생의 테인은 바다를 동경했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평생을 내륙에서 산 그에게 바다는 언제나 신비롭고 막막한 곳이었다.

그 무한함에 압도되는 게 좋았다고 해야 하나.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그 순간에, 테인은 오히려 위안을 얻곤 했다.


“아, 형님은 타계에서 오셔서 잘 모르겠구나. 삼도해라고, 바다가 한군데 있긴 함다. 하지만 거긴 이승과 저승의 경계지대라, 사람 살 곳이 못돼요.”

“왜?”

“영혼포식자가 득실거리거든요. 물길도 험하고. 삼도해에 가는 사람들은 태반이 이승 여행자들임다. 그들도 보통은 은퇴한 저승사자를 경호로 대동하죠. 비용이 더럽게 비싸서 문제지만. 하핫!”

“너는 가끔 혼자서 이승에 갔잖아.”

“그거야 제가 항로를 훤히 꿰고 있어서죠. 이래 봬도 특급 항해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슴다.”


테인이 나지막이 웃으며 물었다.


“그 영혼포식자들이 많이 위험한 놈들인가 봐?”

“···우리 같은 일반인한테는 그렇죠?”

“그럼 영령은?”

“······끙. 영령이라면 상관없을 지도 모르겠네요. 아귀 낚시도 다니시는 양반들인데.”

“그럼 됐네. 나도 영령이잖아.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나 강해.”

“알죠. 알다 마다요. 게다가 그저 그런 영령도 아니시죠. 모든 무에 통달한 천무성(千武成)을 앞에 두고 제가 괜한 걱정을 했네요.”

“알면 됐다.”

“알아봐 드려요?”


테인이 조금 뒤늦게 대꾸했다.


“뭘?”


김서방이 호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명함을 내밀었다.


──────────────

<저세상 나이트>

부킹 확실히 책임져 드립니다! 입구에서 ‘꼭’ 몽룡을 찾아주세요. (*도깨비 가능!)

──────────────


“저세상 나이트?”

“엥? 아, 헐! 이게 왜. 아 씨,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 주머니에 넣어뒀었지, 참.”


김서방이 황급히 명함을 회수하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어, 음. 제가 요즘 좀 외로워서. 도깨비 받아주는 나이트가 여기밖에······.”


테인도 나이트가 뭐 하는 데인지는 알고 있었다. 저승의 사교회 같은 곳이다.


“기운이 넘치나 보네.”

“크흠.”


김서방은 헛기침을 흘리고서 다른 명함을 건네주었다. 테인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명함과 김서방을 번갈아 봤다.


- 김서방네 공인중개사


“제가 변호 일 말고도 이것저것 하고 있슴다. 하핫!”


참으로 다재다능한 도깨비였다.




──────────────

SSS급 성좌의 무인도 힐링 라이프

#1 이거 높은 건가?

──────────────




그로부터 한 달 뒤.


나룻배 한 척이 연안에 정박했다. 갑판에서 뛰어내린 테인이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선선히 불어오는 해풍과 파도 치는 갯바위, 그리고 소금기 섞인 공기.

저승의 바다가 이승과 다르지 않아서 다행이다.

기분이 좋아진 테인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어때요? 끝내주지 않슴까?”


테인을 따라 배에서 내린 김서방이 뿌듯한 얼굴로 물었다.


“그래. 마음에 드네.”


그곳은 삼도해에 위치한 외딴 섬이었다. 암초와 백사장, 언덕을 따라 형성된 풀숲이 이 섬을 구성하는 전부였지만 김서방의 말대로 경관 하나는 끝내줬다.

김서방이 섬 중앙의 고지를 가리켰다.


“거처는 저기다 지으면 되겠네요.”


테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도가 낮고 지반도 평탄하다. 작은 섬이라 해안도 코앞이었다. 거점으로 삼기 좋은 장소였다.


테인은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김서방이 한 걸음 뒤에서 따라붙으며 재잘재잘 떠들었다.


“여긴 나무가 없어서, 집을 지을 거면 보통은 따로 목재를 사서 들여와야 했을 검다. 하지만 형님은······.”

“그럴 필요 없어.”


김서방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그럴 필요 없다뇨?”

“전에 네가 그랬잖아. 영령은 생전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그런데요?”

“잘 봐.”


고지에 다다른 테인이 적당한 위치에 자리를 잡고 오른팔을 어깨 높이로 들었다.


“소환.”


눈부신 광채가 시야를 덮쳤다.


“어!?”


김서방이 반사적으로 양 손을 교차해 눈을 가렸다.


“형님! 갑자기 뭠까!”

“놀랄 것 없어. 눈 떠 봐.”

“예?”


김서방은 머리를 가리고 있던 팔을 내리며 가늘게 눈을 떴다. 빛이 이운 자리에 갑자기 이층 집 한 채가 뚝딱 생겨났다.


“은퇴 후에 살려고 예전에 사둔 집이다.”


화이트톤으로 도장된 외벽과 파도를 형상화한 듯한 무늬의 지붕. 전체적으로 바다와 어울리는 색감이다.


“형님 능력으로 소환한 검까?”


김서방이 얼떨떨해하자, 테인이 별 것 아니라는 투로 설명했다.


“아공간이라고, 내 권능 중 하나야. 시공에 관계 없이 물건을 저장할 수 있어.”

“집도 보관이 가능해요?”

“살아 있는 것 빼곤 뭐든 가능해.”

“오. 들어가 봐도 됨까?”

“살아 있는 건 안 된다고 했잖아.”

“전 망자입니다만.”

“······뭔 일 생겨도 난 책임 안 진다?”

“하핫, 농담임다. 아공간이 아니라 집에 들어가도 되냐고 묻는 거였어요.”

“그거야 당연히 되지.”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다. 아담한 외관과 달리 실내는 그런 대로 공간이 넉넉했다. 살림이 단출해서 그런지 한편으론 삭막한 인상도 받았다.


“이대로 사시게요? 뭔가 좀 허한 느낌인데.”

“있을 건 다 있어. 여기서 뭘 더 채워.”

“에헤이, 모르시는 말씀. 모름지기 집 안이 꽉 차 있어야 인복이 찾아오는 법임다.”

“당분간 혼자서 고독하게 지낼 계획이다. 됐냐?”

“그럼 개라도 키우시는 게 어떻슴까?”

“동물은 질색이야. 키우는 건 더 싫고. 애초에 저승에선 동물을 기를 수 없다며.”

“장난감 개 말하는 검다. 요즘 AI기술이 좋아져서 나름 진짜 같대요.”

“그건 더 싫어.”


김서방이 시무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입주 기념으로 뭐라도 해드리고 싶은데······.”

“됐다. 나중에 올 때 먹을 거나 좀 사오던가.”

“음식이라면 굳이 외부에서 사올 필요 없슴다. 시스템을 이용하시면 되거든요.”

“시스템?”

“초월자들만 가입할 수 있는, 일종의 프리미엄 종합 복지 센터임다. 성좌는 그 시스템의 회원을 말하고요. 코인만 지불하면 웬만한 건 다 하실 수 있슴다.”

“그래?”


뭔진 모르지만 상당히 편리한 기능일 것 같다.


“어떻게 하는 건데?”

“우선 시스템에 성좌 가입을 해야 함다. 원래는 기관에 직접 가셔야 하지만, 형님 귀찮으실까 봐 제가 미리 절차를 밟아놨슴다.”


김서방이 어깨에 맨 서류가방에서 서류를 한 움큼 꺼냈다.


“여기 사인만 하시면 시스템에 성좌로 등재되실 검다.”

“음식 주문 말고 다른 혜택은 있나?”

“제가 이용해본 건 아니지만 다른 성좌들 보니 별 걸 다 하더라고요. 개인 사원도 짓고, 커뮤니티에서 소통도 하고. 심지어 이승에 개입할 수도 있슴다.”

“음.”


이승을 떠난 마당에 굳이 현세의 일에 관여하고 싶진 않다. 테인이 주목한 것은 필요한 물건이나 음식을 직배송해주는 기능이었다. 시스템을 사용하면 무인도 생활이 훨씬 쾌적해질 것이다.


“사인만 하면 돼?”

“계약서 꼼꼼히 보셔야 함다. 제가 무슨 사기를 칠 줄 알고.”


네가 잘도 그러겠다.

테인이 1년 동안 겪어본 바로, 김서방은 남을 등쳐먹고 살 위인이 못된다.


“그렇게 말하는 것부터가 사기꾼으로서 소질이 없다는 반증이다.”

“연기일 수도 있잖슴까.”

“후. 알았다. 읽어볼게. 됐지?”


계약서를 대충 훑어 봤지만 별 내용은 없다. 당연하게도 독소 조항 같은 건 눈에 띄지 않았다.

시스템을 악용하면 영멸에 처하겠다는 말을 몇 장에 걸쳐 길게 늘여쓴 것에 불과했다.

이 정도면 계약서가 아니라 경고문 아닌가.

슥슥.

서명란에 사인을 하자 계약서에서 뿌연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제 조금 있으면 시스템에서 반응이 올 검다.”


김서방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테인의 눈앞에 반투명한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성좌 가입이 수락되었습니다.]

[전생의 업적을 토대로 고객님의 고유등급을 책정하겠습니다.]

[등급이 책정되면 수식언이 부여됩니다.]

[······]


테인이 잠자코 메시지창을 응시하고 있자, 김서방이 호들갑을 떨었다.


“고유 등급을 책정하겠다고 나오죠? 형님 정도면 A등급은 거뜬히 받으실 것 같은데. 천무성이라 불렸을 정도니 수식언도 되게 화려한 느낌이려나? 흐흐, 기대됨다.”


[책정 완료.]

[고유등급 SSS.]

[성좌, ‘역천의 대학살자’님을 환영합니다.]


“···SSS라는데.”

“······예?”

“이거 높은 건가?”


김서방이 말문을 잃고 테인을 멍하니 쳐다봤다.

저승 유일의 SSS급 성좌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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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너지? NEW 18시간 전 15 1 13쪽
5 계산 도와드리겠습니다, 고객님. +1 24.09.17 20 2 15쪽
4 밥이나 한 끼 하자 24.09.15 21 2 15쪽
3 들어올래? +1 24.09.14 27 4 16쪽
2 먹지 않아도 배부른 기분 +1 24.09.13 36 6 12쪽
» 이거 높은 건가? 24.09.13 54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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