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 후 천만 배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새글

흐와왕
작품등록일 :
2024.09.13 14:55
최근연재일 :
2024.09.19 23:43
연재수 :
8 회
조회수 :
135
추천수 :
4
글자수 :
39,561

작성
24.09.18 22:55
조회
10
추천
1
글자
11쪽

오디션(2)

DUMMY

6화 오디션(2)


도지훈 지원자가 문밖을 나간 순간 정성훈은 안경을 고쳐 올렸다.


‘나쁘지 않네.’


남들과 다른 시작이 그를 집중시켰다.


“선배님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대사를 뱉었을 땐.


‘이걸 이렇게 소화한다고?’


놀랐다.


신인배우.

아니 배우 지망생이라고 봐도 무방할 지원자였다.


‘쉬워 보일 수 있어도 어려운 연기야.’


뮤지컬, 연극, 드라마 모두 각각에 맞는 연기 톤이 따로 있듯.

지금도 연기 학원에서나 배웠을 만한 것과는 다른 것을 보여줘야 할 때였다.


‘도전은 즐거워’ 멤버들 대부분은 방송 경력 20년 정도의 베테랑들이었다.

이것이 연기 톤인지 아닌지는 듣는 순간 단번에 판단할 터.


‘일상에 가까워야 하지.’


하지만 이것은 초보가 캐치하기엔 힘든 부분이었다.

그래서 대본의 최소한으로 줄인 것이었다.


게다가 방송에 겨우 1분 나갈까 말까 한 단역.

이런 자리에 그 정도 실력자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다 고만고만하네요.”


도지훈이 들어오기 전 면접관들의 평이었다.


서른 명 정도의 연기를 보았다.

하지만 딱 마음에 드는 이는 없었다.

아예 결을 잘못 짚거나 국어책 읽듯 대사를 읊는 참가자가 대부분이었다.


“저는 황지석 배우가 제일 괜찮았어요. 어떠세요?”


조연출이 말하였다.

황지석.

지금까지 중에선 가장 괜찮은 배우였다.

하지만 그도 ‘그나마 나은’ 수준이었다.


사실 일말의 기대는 있었으나 허황된 걸 알기에 실망은 없었다.


지금 앞에 있는 마지막 지원자.

하지만 연기가 처음이라는 도지훈은 달랐다.


‘자연스러워.’


주위를 보니 카메라 감독과 메인 작가 역시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조연출만은 당황스러워하는 눈치였고.


‘그렇지. 그거지.’


정성훈 PD는 머릿속에 그렸던 장면 그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해내는 지원자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짧지만 강했던 연기였다.


“지금까지 지원자들은 다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도지훈씨는 캐쥬얼한 복장이네요?”

“자율 복장니까 그럴 수 있죠. 그쵸?”


‘좀처럼 마음에 드는 지원자 나왔는데 왜 저러는 거야.’


꼬투리가 잡힐까 대신 말해주는 메인 작가였다.


“역할이 국정원인 만큼 저도 정장을 고려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지만 대본에서의 상황은 비밀 임무를 수행 중이라 생각되어 눈에 가장 띄지 않는 복장인 캐쥬얼을 선택하였습니다.”

“캐릭터를 분석하고 입은 의상이었다···. ”


PD를 몰래 흘기던 메인 작가는 놀란 듯 나를 쳐다보았다.


‘연기에서 본 디테일이 우연이 아니었다고? 이 사람 어디까지 계산된 거지.’


이는 정성훈과 카메라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연기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오바네. 연기도 과하게 실려있고.”

“흠흠. 정말 그렇게 봤으면 아직 보는 눈이 덜 컸네.”


반면 조연출만은 혼잣말이라고 하기엔 큰 소리로 악평을 쏟았다.

어두워진 낯빛으로.


하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완전히 내 편이 되어버린 듯 보이는 메인 작가만은 제외하고.


조연출의 말에도 오히려 PD의 오른쪽 입꼬리는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올라갔다.


“단역2 연기는 안 봐도 될 거 같네요.”


정성훈은 궁금해졌다.


지금 보여준 연기가 도지훈이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톤인지.

혹은 계산된 연기인 건지.


자신이 정말 원석을 발견한 것인지 말이다.

오랜만에 오디션을 보며 느끼는 두근거림이었다.


“자유 연기 준비했죠?”


막내 작가에게 메일로 지정 대본을 받을 당시, 자유 연기 또한 준비해오라는 문구가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새어 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네. 준비했습니다.”


자유 연기 준비를 했냐고?

당연했다.


나는 이것을 하러 왔으니까.


+


정성훈 PD의 첫 번째 드라마 ‘세치혀’는 2000년대를 배경으로 한 수사극이었다.


하나뿐인 가족이었던 중학생 여동생.

주인공은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듯한 흔적과 함께 차갑게 식은 그녀를 발견하고 형사의 길을 선택한다.

당시 형사들이 잡지 못했던 진범을 잡기 위해.


내가 노리는 역할은 40대 주인공의 20대.

여동생의 주검을 목격한 당사자였다.


「주인공의 서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


당시 정성훈이 인터뷰에서 한 말이었다.

드라마 PD가 되고 찍은 첫 장면이었기에 더욱 기억에 남고 힘을 주었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따로 있었다.

똑같은 배우 쓰지 않기로 유명한 그.

유일하게 3번 연속 작품을 같이한 배우가 주인공의 청년 시절을 연기한 배우였다.


드라마를 성공으로 이끈 첫 시작인 그와 함께하면 안정적인 느낌이 들었다나.


정성훈 사단이라 불리는 단 한 명의 연예인이었다.


‘음주운전은 왜 해선.’


해당 배우가 음주운전이 걸리기 전까진.


나는 일평생 배우였다.

그러니 정성훈 PD 눈에 들고 싶은 건 당연한 터.


‘팬이냐는 말도 많이 들었는데.’


시간이 나는 대로 그의 자료를 집착적으로 찾아보곤 하였었다.


10년 전으로 돌아온 지금,

그 덕에 나만이 알고 있는 한 가지가 있었다.


그가 ‘세치혀’를 구상하기 시작한 시기가 바로 지금 이맘때라는 것.

그러니 나는 반드시 그의 눈에 들어야했다.


“그럼 연기 볼까요.”


정성훈의 큐사인과 함께 감정을 몰입했다.


‘제가 만들고 계신 그 이야기에 영감을 드리죠.’


감독이 내 연기를 보며 마음껏 상상할 수 있도록 나는 준비한 것을 시작하였다.


“민아야. 오빠 왔다.”


도지훈은 작은 미소와 함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손에는 봉지라도 든 것처럼 무엇인가를 쥐고 있었다.


“민아야.”


계속되는 부름에도 답이 없는 듯 의아한 표정이었다.


“간식 먹자. 맛있는 거 사왔어.”


역시나 공간은 고요했다.


동시에 그의 표정은 조금씩 불안함에 물들기 시작하였다.


오디션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혼자 벌이는 원맨쇼.

하지만 그를 보는 면전괍들은 텅빈 하얀 벽에서 배경들이 절로 그려지는 것 같았다.


그만큼 그의 연기는 풍부했다.


도지훈은 무언가를 발견한 듯 몸이 얼어붙었다.

그리곤 천천히 몸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뇌리에 스친 생각이 진실이 될까 두려워하는 듯.


눈에는 두려움이 담겼고 몸은 조심스러웠다.


“민아야? 오빠 왔다니까. 일어나봐. 좋아하는 과자도 사왔어.”


그는 그것의 코에 손을 대보았다.

물론 이 무대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도지훈만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은 숨도 조용히 쉬게 될 정도로 몰입되어갔다.

오디션일 뿐인데 앞으로 이어질 내용이 궁금했다.


“아 아니지?”


이번엔 심장에 귀를 대보았다.


“숨 좀 쉬어봐.”


그의 눈에 눈물이 순식간에 차올랐다.

그리고 바닥엔 굵은 빗줄기가 내리듯 눈물이 떨어졌다.


“아니야! 아니지. 할머니. 할머니이!”


이제는 식어버린 그는 작아진 몸을 품에 안았다.


“할머니까지 나 두고 가면 어떡해. 할머니. 눈 좀 떠봐 제발. 민아야. 오빠 왔다니까.”


도지훈의 얼굴은 온통 눈물로 번졌다.


‘그대로 가면 재미없지.’


그의 상상력에 자그만 변주를 주었다.


“민아가 동생이 아니었어? 할머니가 치매라도 오신 건가.”


오디션 지원자의 연기를 판가름하는 것 이상으로 집중하는 정성훈은 작은 소리로 손잣말을 했다.


“할머니. 나 할머니 오빠 아니고 손자야. 마지막에는 알아 봐주지. 그러니까 눈 한 번만 떠줘. 이름 한 번만 불러달라고!”


곧 숨이 뒤로 넘어가기라도 할듯한 울음이었다.


“아니다. 할머니라도 이제 편해져서 다행이다. 아직 효도도 못 했는데. 받기만 해서 미안해요.”


팔 안에 안긴 작은 몸에 얼굴을 묻었다.


“잘가요. 나 때문에 고생 많았어요.”


준비한 연기는 끝이 났다.

하지만 오디션장엔 정적이 흘렀다.


나는 눈물을 훔치고 면접관들을 향해 섰다.


“감사합니다.”


함께 몰입하던 메인 PD의 눈빛, 면접관의 그것으로 다시 넘어왔다.

그리고 메인 작가는 도지훈의 연기를 보고는 다시 한 번 놀라고 말았다.


‘감정선을 바로 바꿨어. 이건 4,5년 한 배우들도 쉽지 않아.’


슬픈 감정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었다.

이전 단역1에서는 비장함에 뭍은 슬픔이었다면 이번에는 슬픔과 미안함이 주된 감정.

비슷하지만 완연히 다른 것이었다.


연기경력이 없다던 도지훈은 그 차이를 연기한 것이었다.


“잘 봤어요. 목은 멨지만, 발성이나 대사 전달력 모두 흐트러지지 않았네요.”

“온 힘을 다해 연기한 게 보여서 좋았어요.”

“연기경력이 없는데 연기를 노련하게 하시네요.”


애써 무덤덤하게 말하려는 그들이었다.

하지만 정성훈 PD의 올라가는 입꼬리는 숨길 수 없었다.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게 아니야. 이건 실력이야.’


조연출은 면접관들의 좋은 평에 잠시 눈치를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불합격 혹은 합격 여부는 3일 후에 문자로 통지될 겁니다.”


마지막 지원자에 대한 면접관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을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네. 감사합니다.”


도지훈은 면접관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그때 정성훈이 한마디를 거들었다.


“3일보다 더 빨리 나올 수도 있고.”


+


오랜만에 느낀 설렘이었다.

이 우중충한 고시원도 오늘은 아늑하게만 느껴졌다.


이전 생에선 연기도 해 보지 못하고 늘 서류에서 탈락이었다.

경력이 부족해선 아니었다.

연기한 작품 수는 차고 넘쳤고 심지고 최연소 신인상 수상자였다.


얼굴에 크게 남은 상처.

그것이 늘 내 발목을 잡았었다.


“이 얼굴에 정수리까지 채웠으니. 이제”


-쾅쾅쾅


“조용히 하세요!”


‘엿 같은 고시원.’


이곳에 방음이라는 이 두 글자가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때랭 때랭 때랭


꺼 놓았던 휴대전화를 다시 켜니 알림이 끊임없이 울렸다.


-쾅쾅쾅


「보증금 아직 이야?」

「집주인이 보냈다고 하던데.」

「돈 보내라.」

「겨우 돈 몇 푼 가지고 유세 떠니? 늘 말했지만, 장남이 살아야 집안이 서는 거다.」


어머니라고 저장된 번호로 온 문자들이었다.


「개새끼야. 돈 아직 안 보냈다며. 누구 앞길 막을 일 있어?」


형이라 저장된 번호에서도.


오전부터 오디션에 지금까지 휴대전화를 꺼 놓고 있었다.

일부러는 아니지만 오랜만에 하는 연기의 기쁨을 되씹으며 아무것에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왜 이렇게 다들 돈 달라면서 당당해?’


유세니 뭐니 하는 것 보면 맡긴 돈을 달라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제 돈 없어요. 그리고 있다 해도 없어요.」


답장을 보내고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곤 내 연기를 보던 오디션 면접관들의 눈빛을 곱씹어 보았다.


‘내가 바라던 삶.’


거기에 한발 내디딘 시작이었다.

희열을 느꼈고 심장이 두근 거렸다.


-띠링.


[퀘스트3 성공 보상으로 머리카락 300가닥이 자라납니다.]


“아직 합격 통보 안 받았는데.”


-때랭,


말이 끝나기 무섭게 휴대전화가 울렸다.


[‘도전은 즐거워’ 단역 2로 캐스팅되셨습니다. 오디션에 합격하신 것을 축하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메일을 확인해주세요. - 도전은 즐···.]


3일 후에 온다던 통보가 단 몇 시간 만에 왔다.

재고 따질 것도 없다는 뜻이었다.


도착한 문자를 다 읽을 새도 없이 번쩍이는 빛이 내 정수리를 멤돌았다.

살갗이 간질간질하더니 무엇인가 두피를 뚫고 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거울을 들어보니 조금은 수북해진 정수리.


‘그래 이거지.’


이제는 가능해 보였다.

쉬지 않고 연기할 수 있는 것이.


작가의말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탈모 후 천만 배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탈모 후 천만 배우'로 제목이 변경됩니다. 24.09.17 8 0 -
8 단역 NEW 4시간 전 1 0 11쪽
» 오디션(2) 24.09.18 11 1 11쪽
6 오디션(1) 24.09.17 19 1 11쪽
5 모발이식 24.09.16 20 1 12쪽
4 보석함 24.09.15 19 0 13쪽
3 변수 24.09.14 19 0 13쪽
2 불운 24.09.13 23 1 15쪽
1 프롤로그 24.09.13 24 0 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