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의 이기적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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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엔호빵
작품등록일 :
2024.09.13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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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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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메시지

DUMMY

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다. 명문대 축에 속하는 서울 소재의 대학교 재학생이기도 하다.


1년 전에 군 복무를 마쳤고, 현재 휴학 중이며,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하루 10시간을 편의점에서 일한다.


나머지 14시간은 수면과 공무원 시험 준비, 여가 생활에 5:3:2의 비율로 분배한다.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 딱 그만큼만 공부를 한다는 뜻이다.



매일 편의점과 집 그리고 도서관을 오간다.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처럼.


부모님 두 분 모두 중학생 때 돌아가신 걸 빼놓고 보면, 내 기준에선 여느 20대 남자들처럼 평범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하루하루 지루할 만큼 무난하게 보내면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분에 넘치는 희망까지 바라는 건 아니다.


어찌저찌 대학교 졸업을 하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직업을 얻고, 비슷한 연봉을 받는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그런 평범한 삶. 뭐, 남들은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어렵다고들 하지만.


어쨌든 내 인생 계획은 그렇다. 가늘고 길게,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사는 것.



남자가 돼서 큰 포부를 품지 못하는 건, 어릴 적부터 사업가셨던 아버지 때문에 이리저리 치여 살았기 때문이리라.


늘어난 부채로 부도 위기를 맞은 아버지는 빚을 갚기 위해 또 빚을 지셨다.


그 뒤로 집안 곳곳에 빨간 딱지가 붙었다. 그것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손도 대지 못하게 만들었다.


내 손길을 차단하는 빨간 결계가 쳐진 것 같았다.


국세청 공무원들에 이어 거머리 같은 채권자들이 약속도 없이 불쑥 찾아왔다.


그들은 온 집안을 헤집고 돈 될 만한 것들을 가져갔다.


메뚜기떼가 다녀간 것 마냥 살림은 순식간에 거덜 났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점점 지쳐갔다.


얼굴은 몰라보게 초췌해지고, 집은 난장판으로 변해갔다.


음식물 쓰레기에 핀 곰팡이와 화장실 물 냄새가 합쳐져 집안에선 늘 쾨쾨한 냄새가 풍겼다.



그 모든 것들이 두 분을 짓눌렀고 끝내 버티지 못해 포기했다.


자신이 피땀 흘려 세웠다던 회사와 정원이 딸린 2층 저택을 포기했고, 친구들이 부러워하던 외제 차와 내가 태어날 때 심었다던 사과나무를 포기했다.


두 사람의 목숨과 그 목숨보다는 소중하지 않았던 나 역시도.



중학교 3학년. 추운 겨울. 졸업식 대신 장례식을 치렀다.


장례식장 직원의 도움을 받아 홀로 두 분의 장례를 치르면서, 나는 애도가 아닌 다짐을 했다.



‘절대 아버지처럼은 살지 말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뻔한 이야기가 되지 않게.’



하지만 내 삶은 내가 추구하지 않던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한순간에. 전혀 예측 불가능한 것으로부터.



[한세현 씨. 당신은 평행세계의 플레이어로 선택되었습니다.]



그날 받은 이 메시지는 내 모든 걸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그리고 이 메시지를 보낸 발신자는 이렇게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



이 메시지를 받은 건······.


아니, 메시지라고 부르는 게 맞나?


눈앞에 떠 있는 60cm 길이의 문자열을 마땅히 부를 만한 단어가 그 말고는 떠오르지 않는다.



‘메시지.’



웹소설과 게임 속 주인공이 서문을 열자마자, 절대자·신 혹은 설계자로부터 받는 전언을 그리 부르지, 아마?


그렇담 딱딱한 글씨체에 진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이 메시지를 보낸 자가 설마 신일까?

뭐, 당장 발신자를 따지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다.


저걸 누가 보냈든, 병원의 중환자실에 누운 내 대소변을 간호사 누나가 치워줄 때의 수치심과 쪽팔림을 감내해야 하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관악구에 소재한 대학 병원의 중환자실 침대 위에서 산소호흡기를 낀 채 정신만 멀쩡한 상태로 누워 있다.


손가락 까딱 할 수 없고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코르크 마개로 성대를 막아놓은 것 같다.


정신만 육신에서 뚝 떼어 감옥에 갇힌 기분이다.



답답하다. 의사가 말하길 락트인 신드롬(Lock-in Syndrome)이란다.


후두부에 강한 충격으로 뇌 손상을 입었고, 다행히 뇌 기능은 유지되어 의식은 있지만 눈을 제외한 전신의 근육이 마비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뇌사나 식물인간보다 그나마 낫고, 회복 가능성이 남아 있다니 기운을 내라는데.


의사의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의사가 한 말이 입에 발린 말이라서가 아니다.



[한세현 씨. 당신은 평행세계의 플레이어로 선택되었습니다.]



의식이 돌아오자마자 이 메시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환각을 보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면 누가 내 뇌를 해킹해서 가상현실을 주입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여긴 병원이 아니다. 락트인 신드롬인지 뭔지도 아니다.’



나는 납치당한 채 어디론가 끌려와, 하얀 침대에 누워 머리에 이상한 기계를 쓰고 있는 거다.


하지만 확신까지 들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잖아.



조실부모에 일가친척 하나 없는 고아가 되면 몇 가지 능력이 생긴다.


몽골 사람의 시력이 도시인들보다 월등하다거나, 눈이 먼 사람의 청력이 급격히 향상되는 것처럼.


인간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능력이 생기는데, 내 경우 주목할 만한 능력은 바로 관찰력이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학우들 사이에서 가난하고 약해 빠진 소년은 쉽게 먹잇감이 된다.


게임 자동 사냥, 매점, 체육복, 교복 등등 각종 종목의 셔틀로 부려지는 것이다.


나는 그중 샌드백 셔틀이었다. 심심풀이로 맞는 용도. 이유는 대중없다.


담임한테 혼나서, 급식이 거지 같아서, 담배가 돗대라서, 날씨가 좋아서.



되도 않는 이유로 두어 달을 신명 나게 맞다 보니, 자연스레 덜 맞으려고 관찰하게 되더라.


일진 무리의 미세한 표정부터 사소한 몸짓, 대화와 농담들마저 유의 깊게 관찰한 다음, 오늘 더 맞을지 덜 맞을지 가늠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어쨌든 1년간 늑대들 틈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생긴 관찰력은 이제 그만 망상에서 빠져나오라고 일러주고 있다.

네가 보는 모든 것들을 가짜라며 부정하지 말라고 한다.



‘그래, 맞다. 여긴 가상현실도, 환상 속 세계도 아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배우가 아니며, 중환자실을 연극 무대처럼 꾸며놓은 것도 아니다.


전부 다 사실이고 진실이다.


눈앞에 떠 있는 메시지 역시도.



*



[한세현 씨. 당신은 평행세계의 플레이어로 선택되었습니다.]



나는 왜 평행세계의 플레이어로 선택된 것일까.


그 질문이 의미가 있나 싶지만, 그거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이골이 날 것 같다.


온종일 침대 위에 누워 주기적으로 들르는 간호사와 눈인사를 하는 것 외에는 천장만 쳐다보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 의식이 두뇌에 갇혀 외부로 표출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그 사실을 믿지 못하고 발버둥을 쳐보고 소리를 질러댔다.


하지만 그 모든 발악은 머릿속에서만 벌어졌다.



중추 신경계에 내린 명령은 전신으로 전달되지 않았다.


철로가 중간에서 뚝 끊긴 탓에 대륙을 횡단해야 할 열차가 오도 가도 못하고 멈춰버린 것처럼, 내 의지는 뉴런까지도 닿지 못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팔다리는 내 의지를 무시하고, 방광은 내 체면 따위 안중에도 없이 소변을 비워댄다.


등이 배겨 몸을 뒤집고 싶어도 불가능하고, 콧등이 간지러워도 긁을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오직 사유(思惟)다.


초등학교 때 짝사랑한 짝꿍이 얼마나 예뻐졌을지 그려보고, 새벽마다 소음공해를 일으키는 옆집 여대생에게 어떻게 복수할지 상상한다.


망상하는 것. 관찰력에 이어 내가 가진 능력 중 하나다. 능력이라 부르기엔 뭣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능력이라 부를 만하다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망상력을 발휘해 시간을 좀먹는 것만이 따분한 병원 신세에서 벗어날 유일한 탈출구다.


그리고 내가 플레이어로 선택받은 이유를 찾는 것은 내가 처한 상황에서 꽤 괜찮은 주제다.


가진 게 시간뿐인 상황에선.



‘나는 왜 플레이어로 선택된 것일까.’



그 외에도 평행세계와 플레이어가 정확히 뭔지, 나는 플레이어가 되어 어떤 게임을 해야 하는지.


답을 구해야 할 질문은 많지만, 일단은 뒤로 미뤄두자.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이니까.



‘나는 왜 플레이어로 선택된 것일까.’



나는 다시 금세 몰입한다. 비현실적인 현상에 현실적인 원인을 대입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억지로 인과관계를 끼워 맞추는 셈이다. 실소가 머금어진다.


물론, 입꼬리는 미동도 없다.



*



병실 신세를 지기 하루 전으로 되감기했다. 사실 그날이 어땠는지는 따져볼 필요도 없다.


그날은 그날의 어제와 비슷했을 거고, 그제는 그끄저께와 별반 다르지 않을 테니까.


오후 1시쯤 기상해서 대충 씻고, 퇴근 전에 챙겨온 폐기 상품으로 끼니를 때운다.


그다음 학교 도서관으로 가서 수험공부를 하고, 오후 8시 반 전에 책가방을 메고 편의점으로 향한다.



행운과 행복을 준다는 뜻에서 지어진 럭키 편의점.


이름과 거리가 먼 그곳에서 일한 지 1년이 다 되어 간다.


대학교 원룸촌 구석진 자리에 위치한 이 편의점에서 오후 9시부터 오전 7시까지 시간을 보낸다.


새벽 6시 55분 즈음에 점장과 교대를 하고 편의점에서 3분 거리에 있는 원룸으로 복귀.


침대에 몸을 뉘이고 눈을 감기 무섭게 잠에 들었다가, 알람 소리에 맞춰 일어나는 게 내 루틴이다.


알바를 하지 않는 주말을 제외하면 월화수목금 내내 그 루틴이 반복된다.



그러나 그날만큼은 달랐다.


작가의말

안녕하십니까. 아포칼립스의 이기적 플레이어 연재를 시작한 겨울엔호빵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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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화. 탈출(2) NEW 23시간 전 8 0 13쪽
4 4화. 탈출(1) 24.09.17 9 0 14쪽
3 3화. 첫 걸음 24.09.16 12 0 15쪽
2 2화. 선택의 이유 24.09.14 15 0 14쪽
» 1화. 메시지 24.09.13 22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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