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의 이기적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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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엔호빵
작품등록일 :
2024.09.13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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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7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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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탈출(1)

DUMMY


감시자.


아니, 감시자였던 자는 결코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형태로 살아 있었다.


옆구리는 뜯겨져 갈비뼈가 훤히 드러나고, 뒤통수는 함몰되어 움푹 파여 있음에도.



‘눈에 보이는 사인(死因)만 두개골 골절에 뇌출혈, 과다출혈에 장기 손상까지······.’



당장 영안실에 누워있어도 모자랄 판에 기괴한 몰골로 살아 움직이는 그를 확인한 순간, 머릿속에 단 한 단어만이 떠올랐다.



‘좀비’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좀비와 영락없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리얼하다.


특수분장은 말 그대로 분장일 뿐임을 새삼 느끼게 할 정도로.



잠시 후, 느린 보폭으로 걸음을 옮긴 감시자 좀비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를 불러 세워 하소연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후우······.”



숨을 낮게 내쉬며 호흡을 골랐다.


감시자가 좀비란 사실을 알게 되고부터 숨을 참았던 탓에 머리가 멍했다.


이제야 뇌 쪽으로 산소가 도는 것 같다.


벽에 기대어 앉은 나는 무너지지 않게 정신을 다잡아야 했다.



감시자가 좀비였단 놀라운 사실은 단순히 그것으로 끝나지 않으니까.



그 사실로 내가 알게 된 건, 지독한 악취가 꽉 들어찬 독방에 갇혔단 것보다 훨씬 절망적이다.


내가 플레이어로 뛰게 된 이 세계의 배경이 ‘아포칼립스’란 사실이기 때문이다.



‘현재 평행 세계에는 종말이 닥쳤다.’



그 절망적인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는 내게 첫 번째 퀘스트를 내렸다.



[플레이어 한세현 님이 평행 세계에 온 지 한 시간이 지났습니다.]


[튜토리얼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남자는 저돌적이어야 한다고.


어떤 난관이 닥치더라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어릴 적부터 연약하고 숫기 없는 내가 걱정됐다기보다 탐탁지 않으셨겠지.


자길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며 입에 닳도록 불만을 쏘아내기도 했었으니.



아버지가 내게 제 잣대를 들이밀수록 나는 거기서 멀어지려고 노력했다.


매일 회식에 접대로 바깥을 쏘다니던 사람이다.


여자들의 화장품과 향수 냄새가 진하게 밴 채로 귀가하기 일쑤.


어쩔 땐 셔츠에 립스틱 자국을 묻혀올 때도 있었다.



그런 사람이 내게 뭐라고 할 자격이 있는가?


나는 가정에 충실하지 않은 사람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무시했다.



하지만 지난 삶을 돌이켜보면, 어쩌면 나는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세상에 홀로 던져진 16살이 살아남기 위해선 아버지의 말을 따라야 했으니까.



저돌적으로. 강인하게. 내게 닥친 난관을 돌파해 왔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다시금 해결책을 모색하려, 나를 선택한 자가 내린 퀘스트를 불러왔다.



[튜토리얼 퀘스트 : 탈출]


-내용 : 플레이어 한세현 님이 감금된 건물에 좀비들이 창궐하고 있습니다. 세 시간 내에 현 건물은 좀비들로 포화 상태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달성 목표 : 감금된 건물에서 탈출


-제한 시간 : 2시간 55분 41초


-성공 보상 : 랜덤 스탯 포인트 카드


-실패 페널티 : 좀비화



튜토리얼 퀘스트.


게임으로 치면, 플레이어가 그 게임에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는 과정이다.


단축키를 알려주고, 조작법을 익히고, 플레이 방식을 설명하는 등 사전 지식을 튜토리얼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다.


게임을 처음 하는 플레이어가 튜토리얼 대상이기 때문에 메인 퀘스트보다 난이도가 훨씬 쉬운 게 당연한데······.



‘어째 튜토리얼이 아니라 최종 퀘스트 삘이네.’



사방이 꽉 막힌 독방에서 탈출을 하라니.


게다가 보상과 페널티의 형평성이 심하게 맞지 않는 것 같지만.



‘별 수 없지. 손가락 들이밀고 따진다 해서 정정해줄 것도 아니니, 지금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고민을 거듭하다 보니 벌써 4분이 지났다.


이대로 시간만 축낼 순 없다.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건물을 탈출하려면 먼저 독방을 빠져나가야 하고, 그러려면 빌어먹게 단단한 자물쇠부터 풀어야 한다.


열쇠는 감시자 좀비가 가지고 있고.



무슨 수로 놈에게서 열쇠를 탈취할 수 있을까.


그때 머릿속에 한 줄기 빛이 번뜩였다.



‘그래, 선물이 있었지.’



나는 신이 주신 선물 상자를 개봉했다.



‘상태창’



상태창을 마음속으로 말하니, 곧바로 메시지가 반응했다.



[플레이어 한세현 님의 현재 상태를 불러옵니다.]



이후 눈앞에 반투명한 창 하나가 생성되었다.



[플레이어 한세현]


-고유 특성 : 염력(念力)


-보유 스킬 : 염력(Lv.1)


-스테이터스 : 근력 5 / 민첩 4 / 체력 4 / 정신력 6


-추가 포인트 : 0



취미로 RPG 게임을 하는 내게 상태창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게임 캐릭터의 능력치를 보여주는 그것과 굉장히 흡사했으니까.


외관뿐만 아니라 하위 항목인 특성, 스킬, 스테이터스까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내가 잘 아는 것들이다.



이제 스킬을 파볼 차례. 보통 RPG 게임에서 스킬을 알아보려면 클릭을 해야 하지만, 마우스가 없으니 다른 걸 사용해야 한다.


나는 스킬 항목의 [염력]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



하지만 내 검지는 가볍게 상태창을 통과했다.



‘이게 아닌가?’



스킬창을 불러오는 것은 상태창 때와 같은 방식일지도.


나는 마음속으로 ‘스킬 염력’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눈앞의 상태창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스킬창이 채웠다.



[플레이어 한세현 님이 보유하신 스킬 ‘염력’을 불러옵니다.]


[염력(念力)]


-레벨 : 1


-설명 : 물체를 본인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스테이터스 「정신력」의 영향을 받습니다. 「정신력」의 수치가 올라갈수록 스킬 [염력]의 성능이 향상됩니다.



스킬 설명과 밑의 부가 설명을 천천히 읽었다.


이 역시도 설명이 필요하진 않았다. 염력이야 대중적인 초능력 중 하나니까.



다만 조금 아쉽다. 설명이 너무 부실한 거 아닌가.


레벨이 올라감에 따라 염력의 위력이 얼마큼 향상되는지.


무게나 물체 개수에 제한이 있는지. 가동범위나 지속시간은 존재하는지.



‘적어도 어떻게 발동하는지는 알려줘야지.’



내가 보기에 이 스킬창을 만든 자는 게임에 문외한인 게 틀림없다.


그게 아니면 모든 걸 자력으로 알아내길 바라던가.



나는 그가 바라는 대로 스킬 발동법 몇 가지를 행동으로 옮겼다.


바닥에 깔린 시멘트 부스러기를 향해서.



“염력!”


“움직여!”


“스킬 발동!”



주위에 아무도 없는데도 혼자 이러고 있으니 얼굴이 뜨거워진다.


반면 시멘트 가루는 미동도 없다. 잘못 짚은 모양이군.


육성은 제외다. 손가락으로 가리켜 지휘자처럼 까딱여보지만 먹히지 않는다.



“몸을 쓰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나는 다시 스킬 설명으로 돌아갔다.


뭐든 제대로 사용하려면 설명서를 잘 읽어봐야 하는 법이지.



-물체를 본인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나는 ‘의지’란 단어에 주목했다. 내가 물체를 움직이고자 마음먹으면 내 의지대로 된다는 뜻인가?


해보자. 나는 바닥에 시멘트 부스러기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런 다음 부스러기들을 움직이겠다고 강한 의지를 보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나와 시멘트 가루가 연결되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내 의지에 따라 그것들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참고로 독방 안에는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



퀘스트를 받은 지 30분째. 그동안 나는 [염력] 스킬을 연습했다.


독방을 빠져나가려면 감시자 좀비가 지닌 열쇠 꾸러미를 훔치는 수밖에 없다.


어떻게? 바로 내가 가진 스킬로.



‘열쇠를 훔친다고 능사가 아니지.’



열쇠 꾸러미에서 자물쇠에 일치하는 열쇠를 골라내야 하고, 그걸 자물쇠에 끼우고 돌려야 한다.


물론 여기엔 감시자 좀비가 다시 내 앞을 지나가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어쨌든 이 모든 과정을 실수 없이 해내기 위해서 필요한 건?


바로 정교함이다.



‘방금 막 배운 [염력]에 정교함을 가미하려면······.’



바닥으로 내린 시선 끝에 닿아 있는 건 내가 신은 신발.


유명 스포츠 브랜드의 제품으로 러닝용 운동화다.



밑창이 마모되었고 냄새가 조금 났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뛸 생각은 없으니.


나는 운동화에서 신발끈을 전부 풀었다.


그리곤 신발 끈 끝에 달린 플라스틱 부분, 그러니까 에글릿이라 부르는 부분을 들어 올린다.


나와 에글릿 사이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다.


염력이다. 그 힘을 팽팽하게 유지한다.


에글릿이 공중으로 5cm 떠올랐다.



그런 다음 신발 끈을 끼우는 구멍을 향해 에글릿의 방향을 틀었다.


좁은 구멍으로 느릿느릿 이동하던 에글릿은 갑자기 약에 취한 코브라처럼 비틀거렸다.


방향 전환을 위해 힘을 살짝만 줬는데 이런 사달이 벌어진 것이다.



“힘 조절이 쉽지 않네.”



나는 숨을 고른 뒤 도자기를 빚는 장인의 심정으로 신발 끈을 섬세하게 조작했다.


그렇게 한 3분 정도 지났을까.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하더니 강한 두통이 전두엽을 강타했다.


집중력이 흐트러지자 신발 끈이 바닥으로 힘없이 추락했다.



“으으······.”



나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입에서 끙끙 앓는 소리가 절로 날 만큼 머리가 지끈거렸다.


퀘스트고 뭐고 다 포기하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멀쩡한 인간으로 남고 싶지, 죽어도 좀비가 되고 싶진 않다고.


이를 꽉 깨물고 고통을 견뎌냈다. 그러고 한 10분 있으니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해진다.



‘해보자.’



인내와 반복만이 살 길이란 일념으로 훈련을 재개했다.


신발 끈에 내 정신을 연결하고, 미간을 찌푸린 채 집중해서 녀석을 조종한다.


하지만 녀석은 귀에 무선 이어폰을 꽂고 일하는 MZ 사원처럼 지시를 내리는 족족 무시한다.


열이 확 오른다. 제멋대로 고개를 까딱거리는 신발 끈을 갈기갈기 찢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그러나 이 운동화는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재산이다. 지켜야 한다.



참자. 참고 다시 하자.


나는 뜻대로 되지 않는 신발 끈을 길들이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



훈련을 시작하고 한 시간 째.


시계는 없지만 퀘스트 창에 적힌 ‘제한 시간’을 통해 시간 경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내게 남은 시간은 1시간 53분.


1시간 동안 [염력]을 반복하며 알아낸 몇 가지 사실이 있다.



알아낸 점 하나.


[염력] 스킬에 ‘지속시간’과 ‘재사용 대기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지속시간은 5분 이내. 5분을 넘어가면 뇌에 과부하가 걸린다.

거기서 억지로 스킬을 유지하려고 했다간 뇌를 인두로 지지는 고통을 맛볼 것이다.


재사용 대기 시간은 10분. 그 10분이 지나야만 다시 멀쩡한 상태로 스킬을 쓸 수 있다.



알아낸 점 둘.


[염력]에 거리 제한이 있다. 대략 2m.



알아낸 점 셋.


감시자 좀비가 40분에 한 번씩 돌아온다는 것이다.


생전에 규칙적으로 순찰을 돌았고, 그 기억이 몸에 새겨진 듯하다.


머리가 빠개져도 주기적으로 순찰을 도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어쨌든 이제 15분이 지나면 놈이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번 턴을 넘겨야 할지, 아니면 놈을 붙잡아둬야 할지 고민이다.


아직까지 에글릿을 신발 끈 구멍에 넣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에글릿을 구멍에 정확히 끼운다는 게 바늘구멍에 실을 꿰는 것 만큼 어렵게 느껴졌다.



그래도 에글릿을 구멍 앞까지 가져가는데 성공했다.


나름의 진척이 있던 것이다.


다만 마지막 한 방을 해내지 못한 탓에 감시자 좀비를 털지 말지 애매하다.


고민을 거듭하던 그때였다.



“으으······.”



별안간 옆방에서 신음이 들려왔다.


죽어가는 소리가 라디오의 노이즈처럼 들렸다가 끊겼다가 했다.


나는 벽에 몸을 밀착시켰다. 작게 말소리가 새어들었다.



“사, 살려줘······.”



또박또박하진 않지만 남자는 인간의 말을 뱉고 있었다. 좀비가 아니라 사람인 것이다.


나 말고도 생존자가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저기요?”



곧장 그에게 말을 걸었다. 대답은 한참이 지나 돌아왔다.



“······거기 누구야?”



되묻는 목소리에 경계심이 깔려 있다. 아무래도 나를 감시자 좀비와 한편이라고 오해한 듯하다.



“당신과 같은 처지인 사람이죠. 경계할 거 없습니다.”


“······정말이야? 내 옆방에 사람은 없었는데.”



그는 자연스럽게 말을 낮췄다. 그러려니 했다. 목소리에 연륜이 묻어나기도 했고.



“잠깐··· 오늘이 며칠이지?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야?”



그는 횡설수설하더니 다시금 내 정체를 의심했다.



“너 지금 나 놀리는 거야?!”


“속고만 사셨나. 정말입니다. 제가 아저씨한테 거짓말할 이유가 없잖아요.”



의심이 많은 양반이네. 더 꼬치꼬치 캐묻기 전에 나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어쨌든 저 말고 생존자가 있어서 다행이네요. 여기 갇힌진 얼마나 되셨습니까?”


“몰라. 세어보질 않아서. 한 반년 됐으려나. 너는? 목소릴 들어보니 나이가 어린 것 같은데.

어쩌다 잡혀 온 거야?”


“뭐······.”



적당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아, 나는 대충 둘러댔다.



“운이 더럽게 없었죠.”


“하하······.”



자조적인 웃음을 흘린 남자가 말을 이었다.



“너나 나나 운이 없어도 더럽게 없는 모양이다. 빌어먹을 식인종들한테 잡혀 오다니.”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문장에 몹시 이질적인 단어가 섞여 있는 탓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어야 했다.



“···뭐라고요? 식인종이라뇨?”


작가의말

다들 추석은 잘 보내셨는지요?


저는 아침에 제사 지내고 성묘를 다녀왔는데요. 진짜 쪄죽는 줄 알았습니다.


매년 제사 지내는데 오늘 처음으로 에어컨 틀고 지냈고, 성묘 가서 처음으로 양산 썼습니다.


이제 좀 실감이 납니다. 앞으로 추석을 여름에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요.


그래도 곧 가을이 온다니 다들 기운 내시고, 남은 명절 연휴 알차게 즐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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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화. 탈출(1) 24.09.17 9 0 14쪽
3 3화. 첫 걸음 24.09.16 11 0 15쪽
2 2화. 선택의 이유 24.09.14 15 0 14쪽
1 1화. 메시지 24.09.13 21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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