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한 빙의자들이 살인을 너무 잘함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새글

설화담
작품등록일 :
2024.09.13 17:19
최근연재일 :
2024.09.19 18:05
연재수 :
9 회
조회수 :
359
추천수 :
22
글자수 :
50,660

작성
24.09.14 18:05
조회
46
추천
3
글자
13쪽

4화. 빙의자들(4)

DUMMY

***



“하...... 씨발.”


없다.

며칠을 고민해봤는데 날로 먹는 방법같은 건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내도 없었다.

역시 인생은 실전인 건가.

불사조 라디카의 능력은 돈벌이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죽으면 하루 전에 부활한다거나 어? 몇 분, 아니 몇 초 후의 미래를 알 수 있다거나 이런 게 있으면 얼마나 좋아?’


왜 활활 타오르는 능력이랑 죽지 않는 능력 뿐이냐고.

그나마 화력을 모으면 잠깐의 비행이나 순간적인 가속은 할 수 있다지만 그걸 어디다가 써먹냔 말이지.

게다가 분신자살 마냥 너무 눈에 띄다보니 정작 몸으로 때우려고 해도 그게 쉽지가 않다.


“답이 없네, 답이 없어.”


이제 좀 치트키를 써보나 했더니 말이야.

내 인생은 왜 이렇게 안 풀리는 걸까.

차라리 우리나라가 치안이 불안하고 폭력이 난무하는 곳이었다면 이런 고민할 필요도 없이 어디 한 군데 조져서 전리품을......


“돌아버리겠네......”


이러다 진짜 누구 하나 태워죽일까 겁난다.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살벌함에 나조차도 깜짝깜짝 놀랄 정도니.


“에효, 도서관이나 가자.”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으니 머리가 굳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곧바로 가방을 메고 방을 나섰다.


거실을 나오니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주방.

식탁에는 언제나 그렇듯 어머니가 써놓은 ‘밥 챙겨먹어, 아들 ^^’이란 노란 포스트잍과 이만 원이 놓여 있다.

식탁에 밥과 반찬이 아닌 돈만 덜렁 놓여 있는 것은 어머니께서 가진 게 돈 밖에 없는 대단히 바쁜 전문직이라 그런 게 아니었다.

그랬다면 겨우 이만 원이 놓여 있진 않았겠지.

그저 먹고 살기 바빠서,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트럭사고를 당한 후 들어간 병원비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것이었다.

당시 몇 달간 중환자실 신세를 지고, 이후 혼수상태, 또 그 이후로 재활을 한다고 들어간 돈은 다 빚이었으니까.


-꼬깃.


이만 원을 아무렇게나 주머니에 우겨넣고 집을 나선다.

고작 이런 꼴을 당하려고 저쪽 세계에 끌려갔던 건가?

보상은커녕 이전보다 더 비참한 현실이라니.

이만 원 덕분에 그때의 년놈들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고생해서 얻은 능력이잖아요. 기억을 못해서 하나도 사용하지 못하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아요?

-이 새끼 지금 억울하다거나 좆같은 현실을 벗어나는 것보다 살고 싶은 게 먼저라고.


두 년놈의 말에서 공통된 부분은 억울하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기억의 일부를 되찾기 전이라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이제는 공감이 된다.

억울하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저쪽 세계에 끌려가서 개같이 굴렀다는 것도, 그리고는 없던 일이라도 된 것처럼 어떤 존재에 의해 기억이 사라진 것도, 다녀와서 현실이 좆같아진 것도...... 전부 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들에 대해 다시금 궁금증이 일었다.


‘근데 그 인간들은 내 능력을 되찾게 해서 뭘 하려고 그런 거지?’


아마도 나만이 아닐 것이다.

그 두 사람도 나름의 능력이 있었고, ‘규정’을 들먹인 걸 보면 어떤 조직화된 단체인 모양이니.

그렇다면 이계의 능력을 되찾은 다수의 빙의자들이 함께 하고 있다고 봐야 할 터.

어떤 목적인지 모르나 그런 자들이 모여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터지기 직전의 폭탄처럼 느껴졌다.


‘아무래도 위험해. 더 이상은 엮이지 말자.’


내 뒷조사를 한 것 같았으니 언제가 되든 또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더군다나 자신들이 원하던 각성이라는 걸 내가 해버렸으니 더더욱.

그러니 그때는 싸우는 건 최대한 자제하되 서로 갈 길 가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이 최선일 듯 싶었다.



***



약 100미터.

최빛나는 그 정도의 거리를 두고 백성민의 주변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의 감지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기에 비교적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빛나야, 꼭 이렇게 지켜봐야 해? 그냥 가서 설득하면 안 돼?”


곁에 있던 붉은 머리 여자가 질문을 던졌다.

선글라스에 잠복에 어울리지 않는 검은색 원피스와 구두.

그녀는 징계를 받은 도종수를 대신해 최빛나의 임시파트너 역할을 맡은 오혜윤이었다.


“첫 단추를 잘못 꿰서 더 이상 설득이 안 될 거예요.”

“그래서 어쩌려고? 지켜본다고 답이 나와?”

“답은 몰라도 문제는 생길 걸요?”

“문제? 아하, 보여주려는 거구나?”


오혜윤은 그제야 최빛나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설득이 안 되는 상대이니 결과로 보여주려는 것이다.

자신들이 빙의자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 존재인지.


“역시 혜윤언니. 도종수 그 개새끼랑 다르게 척하면 척이네요.”

“그런데 문제는 생길 것 같아? 저쪽 세계에서의 백성민이 어떤 인간이었는지 제대로 파악된 것도 아니잖아?”


아무리 최빛나의 눈썰미가 뛰어나다 해도 그를 파악하기에 접촉한 시간이 너무 짧았다고 들었다.

오혜윤은 괜히 시간낭비하는 게 아닌지 묻는 것이었다.

지루한 기다림의 끝이 헛수고인 것만큼 힘 빠지는 일은 없으니까.


그런데 최빛나는 자신있는 모양이었다.


“생길 거예요.”

“왜 그렇게 확신하지?”

“그때 종수자식의 대가리를 너무 서슴없이 따버렸거든요. 살인에 주저함이 없었어요.”

“흐음......”


초기 각성상태에서는 일시적으로 기억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기에 대부분 사고의 흐름을 따르기보다 본능에 따라 움직인다.

그렇다보니 그 순간의 움직임은 저쪽 세계에서의 행동패턴이 그대로 녹아있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 백성민 씨도 만만찮은 지옥을 헤쳐나왔다는 거겠죠. 그런 기억이 뇌리에 박힌 이상 문제는 반드시 생겨요. 특히나 지금처럼 초기에는 더더욱.”

“케어를 받은 것도 아니니 그렇긴 하겠네. 아니, 그 눈알귀신은 어떻게 된 게 사람을 빡센 데만 던져? 그러니 하나같이 미쳐서 돌아오는 거잖아.”


오혜윤은 입으로는 탄식을 내뱉었지만 그녀도 빙의자이기에 내심 알고 있었다.

이곳 현대사회, 특히 이 대한민국이 유달리 평화롭고 안락하다는 걸.


“그러니 신이라는 작자가 기억을 지운 건지도 모르죠. 현대사회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고방식을 가지게 됐으니까.”

“신은 무슨 그냥 귀신이라니까, 눈알귀신.”


그것의 정체를 모르니 모두가 각자 부르고 싶은대로 부르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오혜윤은 그 존재에 대한 경외보다는 얕잡아 부르고 애써 비하했다.

이는 그녀가 이계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었다.


“네, 네. 한 번 보죠, 우리 눈알귀신이 또 사람을 얼마나 미친 놈으로 만들었는지.”


최빛나는 팔짱을 끼고 멀리서 백성민의 뒷모습을 주시했다.



***



나의 일과는 매일이 거의 비슷하다.

어떤 날은 방안에서 나가지 않을 때도 있고, 어떤 날은 도서관, 또 어떤 날은 스터디카페, 독서실, 일반카페 등 장소만 조금씩 바뀔 뿐 하는 일은 똑같았다.

바로 공부. 학생의 본분이기는 하지만 내 나이를 생각하면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

서른 한 살에는 보통은 공부라고 부르기보다 취업준비라고 하니까.


그런데 왜 공부냐고?

토익이니, 토플이니 하는 것들도 공부라고 부르면서 동시에 취업을 위한 것이니 취업준비 아니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아니다.

내가 하는 건 공부다.

나는 공시생이니까.

그것도 대학교를 졸업하고 벌써 삼년 째였다.


누군가가 그랬었다.

교통사고로 인해 또래친구들보다 삼 년이 늦어지긴 했지만 사유가 명확하니 불이익이 없을 거라고.

하지만 취업시장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보다 뒤쳐진 기간을 만회하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냐, 식물인간 그거 뇌에 후유증 있는 거 아니냐, 건강상 불안요소가 있는 당신을 왜 뽑아야 하느냐, 일 하다가 쓰러지면 병력을 이유로 산재 안 해줘도 되냐 등등.

면접 때마다 그때의 사고를 들먹이는 경우가 잦았다.

나에겐 그게 트라우마인데 말이다.


현실이 그렇다보니 공무원이 눈에 들어올 수밖에.

시험점수만 된다면 출신, 나이, 병력 등 아무런 장벽이 없는 직업이니까.

하지만 정작 그 시험점수가 엄청난 장벽이라는 걸 당시엔 몰랐었다.


‘알 수가 없지. 다들 편돌이보다 못하다고 공무원을 얕잡아보니까.’


심지어 주변에서 다들 추켜세웠었다.


성민이 네 머리면 조금만 공부해도 붙을 걸?

다들 기본 이 년 정도 한다던데 너 정도면 일 년만 해도 붙을 거 같아. 한 번 해봐.

박봉이긴 하던데 일단 다녀봐.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때 다른 곳 가면 되잖아.


시작도 하기 전에 벌써 붙은 것마냥 설레발을 쳐대니 나도 어깨를 들썩거렸더랬다.

일 년이 이 년, 이 년이 삼 년이 될지도 모르고.


그래도 이 년까지는 다들 이 정도는 한다고, 괜찮다고 자위했었는데 삼 년부터는 달랐다.

공백의 삼 년. 시험에 떨어지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인생 실패자의 낙인이랄까.

남들은 8수, 10수도 하는데 엄살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삼 년의 투병생활이 있었기에 너무나도 불안했었다.

삼 년에 더해진 또 다른 삼 년은 실패자가 아닌 노예의 낙인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래, 공시노예 말이다.


“후......”


이러니 내가 다른 돌파구가 좀 절실해?

날로 먹지 않더라도 불사조 라디카의 능력을 활용해 조금이라도 돈을 벌 수 있다면 몸을 굴려볼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없고 말이야.


게다가 능력을 돈벌이에 활용할 생각이 머릿속에서 끊이지 않다보니 공부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마땅한 방법이 없는데도 매달릴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에 그런 것이었다.

이도 저도 아닌 상황.

결국 어영부영 시간만 보내다 귀가길에 올랐고, 오늘도 어제와 다름없는 나날이었다.


-띵.


똑같은 엘리베이터 소리까지 지긋지긋하다.

나는 문이 열리자 터벅터벅 아파트 복도를 걸었다.

구형 복도식 아파트.

결코 좋다고 할 수 없지만 내 병원비로 빚더미인데도 어머니는 이 집 만큼은 사수하고 계셨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함께 했던, 마지막 기억을 담고 있는 공간이라는 이유로.

그러니 불편한 점이 있어도......


“아 씨발, 진짜 화를 안 낼 수가 없네.”


참으려고 해도 참아지지가 않는다.

하루이틀이어야지.


나는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걸어 집앞으로 다가갔다.

정확히는 옆집이었다.

그 앞에 이웃집 돼지새끼가 복도에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저씨.”

“어, 그래 성민이. 공부하고 오냐?”

“말씀드렸잖아요. 여기서 담배 피면 냄새나니까 1층에 내려가서 펴달라고.”

“야야, 1층이나 여기나 똑같잖아? 후우, 봐. 바람에 날아가네.”


날아가긴 지랄로 날아가냐.


“그래도 저희 집에 냄새가 들어온다고요.”

“아, 새끼...... 남자새끼가 뭘 그렇게 예민하게 구냐, 응?”

“저만 있는 게 아니라......”

“알았다, 알았어. 거 새끼 지엄마 되게 챙기네.”


말로는 듣는 척을 하지만 행동은 아니다.

기어코 길게 쭉 빨아 피던 걸 거의 다 피우고는 담배끝을 난간 바깥으로 탁탁 털었으니까.


“재떨이를 쓰세요. 그렇게 털지 말고.”

“바람에 날아가잖아, 인마. 이것도 니네 집으로 들어가냐? 쫑알쫑알 잔소리는.”


이러니 돼지새끼라고 하는 거다.

사람새끼면 이렇게 나올 수가 없는 거거든.


“남한테 잔소리할 시간에 네 앞가림이나 잘해 새끼야. 넌 나이가 몇인데 아직까지 그러고 다녀?”

“제가 뭘요?”

“뭘요? 몰라서 묻냐? 하기사 알면 지엄마 등골을 저렇게 빼먹진 않겠지. 쯧쯧!”

“......”


돼지새끼 오지랖이 좆같이 넓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상하다.

왜 저 말들이 칼날이 되어 날아드는 것 같지?

왜 지금 대처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환이 되어 내 등에 칼이 박힐 거 같지?

엄마 등골이라는 말에 속이 뒤집어질 거 같아서? 아니면 설마 이계의 기억 때문인가?

이유가 뭐든 참아야 하는데......


내가 가만히 살심을 억누르며 조용히 있자 돼지새끼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집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닫히기 직전에 한 번 더 긁으려는 듯 한 마디를 내뱉었다.


“차라리 그때 디졌으면 보험금 받아서 누구랑 새출발 했을 텐데 말이야. 흐흐.”


그 순간 나는 닫히기 직전의 현관문 틈으로 손을 밀어넣었다.

쿵하고 손가락이 찍히긴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금 그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으니까.

중요한 건......


“야, 돼지. 잠깐 얘기 좀 할까?”


방금 들은 말을 육하원칙에 따라 해석하는 것이다. 주어 넣고, 제대로.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귀환한 빙의자들이 살인을 너무 잘함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시간은 매일 오후 6시 5분입니다^^ 24.09.13 20 0 -
9 9화. 권장호(1) NEW 27분 전 5 0 13쪽
8 8화. 클랜(3) 24.09.18 17 2 12쪽
7 7화. 클랜(2) 24.09.17 22 2 13쪽
6 6화. 클랜(1) 24.09.16 31 2 12쪽
5 5화. 빙의자들(5) +1 24.09.15 39 2 13쪽
» 4화. 빙의자들(4) 24.09.14 47 3 13쪽
3 3화. 빙의자들(3) 24.09.13 57 3 12쪽
2 2화. 빙의자들(2) 24.09.13 59 4 13쪽
1 1화. 빙의자들(1) 24.09.13 83 4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