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라탄이 에고를 안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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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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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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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5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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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 로센고드 출신.

DUMMY

“이브라 말이야··· 정말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

“응?”


토니는 키 크고 건장한 메테에게 슬며시 다가가서는 한풀이 하듯 말했다.


“내가 뭘 믿고 깝치냐고 물어보니까 뭐라고 대답하는 줄 알아?”

“뭐라고 하던데?”

“···자길 믿는단다 자길! 참 어이가 없어서.”

“푸하하! 역시 이브라네. 그 녀석 원래 그런 놈이었잖아?”


메테는 토니의 기분을 풀어주려는 듯 갑작스레 어깨동무하곤 그의 귀에 슬며시 말했다.


“이브라 자식이 왜 그러는 줄 알아? 나라 잃고 넘어온 가난한 이민자들의 모인 촌 동네 로센고드 출신이라 그렇다고. 그곳 아이들은 이브라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래. 가진 건 쥐뿔도 없으면서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거칠게 살아온 녀석들이잖아?”

“···닥쳐 메테.”

“엥? 혹시 삐진 거야 토니? 알았어! 알았다고 내가 시작과 동시에 저 멸치 새끼를 쥐잡듯 밀어버릴 테니깐 넌 뒤에서 지켜만 보고 있어.”


메테는 언짢은 기색을 보이는 토니를 뒤로하고 껄껄 웃으며 하프라인으로 향했다.


토니는 그런 메테의 뒷모습을 보곤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저 개자식. 사실 나도 로센고드 출신이란 걸 모르니까 함부로 입을 지껄이는군.”


토니.

그는 사실 즐라탄과 같이 스웨덴 서남부에 있는 말뫼 시 외곽에 위치한 로센고드 출신이었다.


비록 같은 로센고드 출신이었다 하더라도 그는 즐라탄보단 유복하고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터라 메테가 흔히 생각하던 로센고드의 아이들처럼 거친 불량아까진 아니었지만, 토니가 자라오며 보았던 동네 친구들의 모습은 사실 메테가 말한 그 자체였다.


이민자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로 제대로 된 임금을 받았던 가정이 드물었을뿐만 아니라, 골목엔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로 넘쳐났고 도둑질이 곧 일상이었다.


그런 동네 이미지 때문에 로센고드를 조금만 벗어나기만 해도 다른 동네 사람들로부터 온갖 멸시와 차별을 받던 게 자연스러울 정도였으니.


토니뿐만 아니라 로센고드에서 유년기를 보낸 아이들은 중학생이 될 때쯤 자신을 소개할 때면 다른 동네 출신인 것처럼 속이는 것이 어찌 보면 현명한 처사였다.


올해 즐라탄과 함께 말뫼 유소년팀에 입단했을 당시 토니는 자신을 로센고드가 아닌 그 주변에 위치한 비테묄레가탄 거리 근처에서 살았다고 소개했을 정도로 토니에겐 자신의 출신 때문에 차별받는 것을 내심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런 자신과 반대로 자신과 동갑내기인 즐라탄은 처음부터 감독, 코치, 팀원들에게 자신을 로센고드 출신이라 떳떳하게 밝히며 다녔다.


그로 인해 즐라탄은 역시나 타지역 학부모들의 반대와 특유의 자존심으로 늘 말썽을 일으키는 사고뭉치로 낙인찍혀 입단 초기에 많은 트러블이 있었고.


난 그런 즐라탄 때문에 괜히 불똥이 튈까 겉으로는 무시하고 싫어하는 척하면서도 단둘이 집에 갈 때면 언제나 둘도 없는 베스트 프렌드였던 비겁한 놈이었다.


물론, 내가 코치님께 이번 미니게임을 해보자고 한 것 역시 절대 즐라탄을 팀에서 쫓아내기 위한 의도가 전혀 아니었다.


단지.

로센고드 출신으로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자신의 현실을 제대로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비겁하게 들릴 순 있지만, 난 그저 즐라탄을 위한 악역을 자처했을 뿐이다.


‘이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브라 녀석은 정말···.’


약간은 의기소침해진 듯 풀 죽어있던 모습의 토니를 보며 즐라탄은 웃으며 말했다.


“혹시 날 막기 위해 생각해둔 수비 전략이라도 있어?”

“하··· 전략은 무슨 얼어 죽을.”

“토니 너 말야. 난 네가 분명 나보단 아니지만 뛰어난 축구 선수가 될 거라 생각했어.”

“··· 무슨 말이야?”

“널 보니 어렸을 때 동네에서 함께 축구를 했던 때가 생각나는군. 넌 분명 우리 동네에서 최고로 실력이 뛰어난 선수였어. 하지만 내가 아약스로 이적했을 무렵 너의 축구인으로서의 소식은 전혀 들리지 않더군.”

“아약스?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아무것도 아니야.”


즐라탄은 어렸을 적 자신의 죽마고우였던 토니를 보며 약간은 추억에 잠긴 듯 과거를 회상하는 모습이었다.


‘토니 녀석··· 축구를 포기하기에는 솔직히 아까운 재능이란 말이야?’


내가 아약스로 이적할 무렵. 그 당시 내가 인정했던 나보다 뛰어난 축구 선수는 사실 브라질의 호나우두뿐만이 아니었다.


그건 바로 늘 동네에서 축구를 함께 했던 토니 플라이게어.


로센고드에 있던 자전거란 자전거는 다 훔쳐버렸던 우리 둘의 솜씨는 정말 장난이 아니었지 크큭!.


아! 이 이야긴 됐고. 다시 각설하자면.


이 녀석은 흔히 말하는 천재였다.



***



이미 프로 리그에서 수많은 우승을 경험하고 월드클래스들을 상대해본 내가 그 시절 토니를 다시 회상했을 때 그는 흔히 말하는 떡잎이 남다른 놈이었다.


뭐 굳이 그 재능을 비유하자면 ‘제2의 메시’랄까?


물론 나는 이런 비유를 정말 싫어한다.

자신을 뛰어난 누군가의 복제품으로 비유한다니? 그건 정말 X 같은 말이다.


실제로 뛰어난 잠재력을 가졌던 수많은 유소년 중에 ‘제2의 메시’같은 과분한 별명을 가지고도 축구 선수로서 성공의 반열에 오른 녀석을 난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내가 아약스에 입단했을 무렵 문득 토니의 근황이 궁금해져 고향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려 그의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땐 감히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봐 혹시 토니 녀석은 어떻게 된 거야? 왜 나만큼 세상에 아직 이름을 떨치지 않는 거냐고?”

“이봐 이브라! 토니가 아직 축구를 하는 줄 알아? 걔는 진작에 축구계를 떠났다고. 지금은 고향의 젤리 공장에 취직해서 일하고 있어.”

“··· 정말?”


하지만 나는 구태여 토니가 왜 축구를 그만뒀는지 되물어보지 않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아깝긴 했지만, 그것은 토니의 선택이었을 거고 그 선택 역시 본인의 선택이었기에 난 토니의 선택을 존중했다.


그렇게 문득 토니를 잊고 산 지 20년이 지났을까?


나는 40살에 가까운 나이에 나의 정신적 고향 로센고드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스웨덴의 영웅이었던 날 보기 위해 다른 동네 사람들이 물밀듯 밀려왔었지만, 난 그들을 신경도 쓰지 않고 지나치며 동네로 향했다.


그 모습에 개 같은 스웨덴 언론들은 역시나 날 거만한 이민자 출신으로 자국민을 무시하는 놈이라 비난하는 기사들이 쏟아지긴 했지만.


즐라탄은 그런 거?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물론 진짜 나를 반겨주던 그 시절 로센고드 사람들에겐 난 매우 다정하게 대했다.


반가운 고향 친구들과 남자다운 포옹을 하고 그들에게 선물도 주며 시간을 보내고 고향을 떠나려던 찰나.


난 한 사람을 발견했다.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멀리서 다가오지 못하고 내 모습을 바라보던 익숙한 나의 친구 토니였다.


토니는 분명 공장에서 퇴근하자마자 옷도 갈아입지 않고 내 얼굴을 보기 위해 달려온 모습인 게 분명했다.


“이봐 토니! 뭐 하는 거야?”


나는 유년 시절을 함께했던 죽마고우 토니에게 제일 반갑게 다가갔었다.


토니는 그런 나를 보며 반기면서도 그에게서 사색에 잠긴 듯한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스웨덴의 영웅이 로센고드로 돌아왔군!”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토니!”

“··· 난 그저 로센고드 젤리 공장에서 20년 넘게 젤리를 생산 및 관리해왔어. 나도 이브라 너처럼 훌륭한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는데. 뭐 모두 과거의 얘기지.”


나이에 비해 늙어 보이는 그의 얼굴은 고생한 흔적이 역력했다.


“대체 왜 축구를 그만둔 거야 토니?”

“하하··· 사정이 좀 있었어.”


-스윽.


토니는 조심스레 자신의 왼발을 내밀었다.


“내가 먼저 말뫼 유소년팀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축구 인생의 끝이라고도 하는 전방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부상을 당했어. 물론 그때 구단에선 제대로 된 치료조차 해주지 않고 날 방출해버리더라고.”

“···.”

“그뿐만 아니라 그 후로도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지금처럼 절름발이가 되어버렸다고 젠장!”


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토니를 꼬옥 앉아주었다.

그의 인생을 동정하고 측은해하는 말 자체가 토니를 무시하는 행동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토니는 화목한 가정을 이루어 자신과 똑 닮은 아들을 낳아 기르고 있었고. 난 그 자리에서 바로 토니에게 연락처를 건넸다.


“이봐 토니. 내 아들 녀석만큼은 즐라탄 같은 축구 선수로 키워보라고. 내가 모든 걸 지원해 줄 테니.”

“정말이야 이브라?”

“그리고 나한테 죽고 싶지 않으면 퇴근하고 절름발이로 걸어 다니지 마. 포르쉐나 타고 다니라고.”


나는 즉시 페라리에 연락해 토니를 위한 슈퍼카를 뽑아주었다.

물론 유지비나 기타 등등도 내가 지원해줬다.


그렇게 로센고드의 자전거 도둑 중 한 명은 슈퍼스타 억만장자가 되어있었고, 다른 한 명의 인생은 떡잎에 비해 너무나 초라했다.


혹시 오해할 것 같아 다시 말하자면.

장애를 얻고 젤리 공장에서 일하는 걸 무시하는 게 아니다.


난 그저 토니가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시들어버렸다는 게 너무 아쉬웠다고 말하고 싶은거다.


아 혹시 왜 내가 그렇게까지 토니를 지원해줬냐고?


토니가 불쌍해서?

아니.


토니는 내 축구 인생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준 은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얘기는 다음에 하겠다.


***



‘회상이 너무 길었군.’


즐라탄은 아직 두 발이 멀쩡한 토니의 무릎을 확인하곤 미소를 지었다.


‘혹시 신이 나에게 두 번째 삶은 주신 이유 중 하나일까?’


즐라탄은 토니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봐 토니. 다시 생각해봤는데. 내기라는 게 성립하려면 내가 얻는 것도 있어야 하잖아?”

“음 그렇긴 하지. 뭐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네가 이긴다면 내가 뭘 해주면 되는데?”

“···언젠가 같이 빅이어를 들어올리자고.”

“빅이어? 그게 무슨 소리야?”

“챔피언스리그 우승.”

“너 정말··· 코치님! 그냥 이번 내기는 취소하고 이브라를 바로 병원으로 보내야 할 것 같아요. 정말 뇌를 다친 게 분명하다고요!”


토니의 외침에 코치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왜 또! 무슨 일이야 토니? 이브라가 또 뭐라 했어?”

“···그게.”


코치가 다가왔지만, 토니는 얼버무리기 시작했다.


“아···! 아니에요 코치님.”

“토니 너까지 이상하게 왜 그래? 놀랐잖아? 얼른 준비해 너 빼고 이미 준비를 다 마쳤으니깐.”

“네!”


토니는 반대편 골대를 향해 뛰어가면서도 딴생각에 빠진 모습이었다.


사실 토니는 짧은 순간 즐라탄에게서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사자와도 같은 패기.

허풍쟁이가 하는 근거 없는 말 따위가 아닌.


큰 열망을 지닌 사내에서만 볼 수 있던 눈빛이었기에.

토니는 그의 그런 눈빛에 압도되어 순간 자신이 내기에서 질 수도 있을 것이란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이브라가 해낼 수 있을까?’


어느덧 반대편에 도착한 토니는 센터서클에 공을 올려두고 홀로 공격을 준비하려 서 있는 즐라탄을 반신반의하며 쳐다보았다.


-삐이익!


코치의 휘슬 소리가 경기장에 힘차게 울려퍼졌고.


즐라탄은 오른발로 공을 툭 건드려 드리블을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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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화 : 수 싸움. NEW 23시간 전 12 2 12쪽
4 4화 : 팀의 에이스. 24.09.17 28 2 12쪽
3 3화 : 마이티 마우스(mighty mouse) 필립 람. 24.09.16 32 2 12쪽
» 2화 : 로센고드 출신. 24.09.15 49 2 11쪽
1 1화 : "즐라탄." +2 24.09.14 80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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